1, 어떤 목사가 ‘주여 나를 굴복시키시고 주께서 역사하소서’
기도하라고 한다. 그 말대로 다들 그렇게 기도할 수도 있겠다.
이 사람은 예수동행을 줄기차게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피동과 능동의 원리를 혼동하는 것 같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깨끗함을 받아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가 된 것은
피동이다. 그렇게 된 사실을 듣고 믿었을 뿐이다. 믿는 수고의
대가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원하셨고
구주가 되신 사실을 듣고 믿어 구원을 받은 것이다. 오직 은혜다.
내가 믿은 삯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내가 죄인이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므로 나를 아담 안에 있던
죄의 자리에서 사로잡아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 놓으시고 난 뒤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이를 듣고 믿어 성령의 인침을 받은 거다.
잘못하면 주를 믿어 드렸으니 이제 굴복시켜 달라고 구하게 된다.
2, 아담 안에서 죄와 사망의 종이었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와 생명을 얻은 것은 우리가 믿은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에 의해 되어 진 사실을 듣고 믿은 것이다.
그래서 복음이며 은혜이다. 심지어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힌
사실까지도 피동이 된 사실임을 듣고 믿어 구원을 받는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 된다(엡2:8) 그건 말씀을 들으면 믿어지는
믿음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 믿음은 아브라함이나 다윗과 동일하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으면 죄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믿습니다가
아니라 이미 피동이 되어 진 사실로 여겨진다. 간주한다(롬6:11)
어떤 얼간이가 5만원을 놓고 5만원임을 내가 믿습니다 하겠는가?
3, 포도나무의 가지가 된 사실 곧 생명나무이신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은 것은 나의 믿음의 수고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활의 사역을 통해 이루어진 사실이다. 피동이 된 거다.
다만 가지가 되었으므로 조직과 성분을 맞추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건 기도할 내용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순종할 일이다. 지체를
주를 위해 사용해 주옵소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지체를 하나님께
드려 의의 무기가 되도록 반복해서 경건의 연습을 해야 한다. 나를
굴복시켜 주옵소서 평생 기도해도 안 된다. 된 것 같다가 제 자리다.
그리스도 안에 자유케 하신 것은 주님이 하신 일(갈5:1)이고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은 능동적으로 성령을 좇아야 하는 거다(갈5장)
만약 주여 나를 굴복시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기도를 한다면
사탄이 기가 막혀 웃을 일이다. 성령을 좇는 일은 우리의 의지이다.
4, 성령이든 악령이든 인간의 동의가 없으면 내주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우리가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한다고 역사하시겠는가?
임금에게 수라상을 올리면서 폐하 이제 식사를 하시옵소서 하는가?
수라상을 대령했다고 아뢰기만 하면 먹던 안 먹던 임금이 결정한다.
아랫것이 먹어라 말라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의를 앞세워 행하신다.
성령은 죄와 상관이 없는 곳으로 회개와 세례를 통해 옮겨 올 때에
자동으로 역사하신다. 내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오면 바로
임재하시고 나타내신다. 감히 우리가 밤 놔라 대추 놔라 할 수 없다.
성령이 역사하실 수 있는 조건만 갖추면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이
반드시 나타나신다. 죄인의 자리 곧 혈과 육으로 성령이 임하시길
고래고함을 치던 버릇이 있어서 하나님께 역사하시라고 기도할거다.
5, 흙덩이인 우리 몸을 성전으로 만드시는 건 어처구니없는 은혜이다.
나는 바라거나 원한 적도 없다. 말씀을 듣다보니 질그릇인 내 몸 속에
보배로우신 그리스도가 계신다. 처음엔 얼떨떨하지만 점점 선명해 진다.
인과응보의 세상에서 공짜가 어디에 있나 하는 체질로 얼른 수용하기가
어색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이 스며들어오면서 하나님의 그 계획과
그 절묘한 경륜에 의한 은혜와 사랑에 피동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한 일은 오랜 세월 참고 기다리시며 말씀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믿음의 반응뿐이었다, 순전한 피동이다.
어느 날 내가 예수의 죽음을 짊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후4:10)
그토록 주께 헌신되어 지길 바라며 나를 사용해 주소서 하고 부르짖었던
지난날의 기도를 멈추고 내가 주의 죽음을 짊어지므로 주의 영과 생명이
나의 몸과 나의 죽을 육체에 나타나길 사모하는 능동의 자리에 온 거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그 은혜를 받은자로 진리가운데 나아가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은혜를 받아 진리를 따라 주께 더 가까이, 그 영광을 향해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