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뻐꾸기
김 이 석
서울서 H까지는 사백 리나 되는 길이다. 버스가 잘 달린다고 해도 여덟 시간은 실히 걸린다고 한다. 나는 한종일 버스에 시달리며 그곳까지 갈 생각을 하니 버스를 타기도 전에 먼저 한숨부터 지어졌다. 그것도 보고 싶은 다정한 친구나 만나러 가는 길이라면 그렇지 않을는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런 일과는 전혀 달리 일자리를 구하러 가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그곳에 가면 일자리가 꼭 있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요행을 바라며 미심결로 가보는 것밖에 못되는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곳이라도 가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내가 실직 한 지 거의 일 년이나 가까워왔기 때문이었다.
내가 실직하기 전까지는 미국 어느 군수품 용달회사의 사원으로 꽤 무던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것이 미군 축소와 아울러 그 회사가 본국으로 철수하자 따라서 나도 실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처음엔 회사에서 받은 퇴직금도 있어 앞으로 얼마 동안 지내기는 별로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그동안 천천히 맞춤한 직업을 고를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맞춤한 곳이 두 달이 지나고 석 달이 지나도 좀처럼 나서질 않았다.
실상 나같이 사십이 넘은 놈은 취직하기가 대단히 힘든 노릇이었다. 위선 젊은 사람보다는 낫살 대우도 해줘야겠으니 봉급도 많이 줘야겠고 더군다나 부려먹기가 귀찮은 노릇이다. 그러므로 고용주들이 사십이 넘었다면 대면도 하기 전에 얼굴을 돌릴 일도 사실이었다.
그렇다 해도 나는 여기저기 친구들의 주선으로 이야기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이 될 듯 될 듯 하기만 하면서 하나같이 되는 일이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일 년이나 살아왔으니 생활 형편이 말이 아니었을 것은 물론이었다.
그렇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도 어느 찻집에서 중학 시절의 옛 친구를 만나게 되어,
“그렇다면 내 소개 편지를 써줄겐, 곧 H로 가보게나. 그곳은 지금 댐공사루 대단한 공사판이 있는데, 거기에 인사 책임자로 있는 이가 바루 내가 잘 아는 M이라는 미국 사람이야. 하여튼 내 편지만 가지고 가면 십중팔구는 틀림없네.”
하고 그는 자신 있게 말하며 분주히 만년필을 꺼내어 소개 편지를 써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받고 나서도 그 십중팔구라는 말이, 된다는 소리로 들리니보다도 그와 반대로, 될 리가 없다는 소리로밖에 들리지가 않았다. 말하자면 나는 그만큼 속아온 셈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 그곳은 서울과도 달라 벽촌이니 혹시 자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가 가져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러한 기대를 은연히 가져보며 삼사 일을 망설이다가 드디어 H행 버스를 타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막상 버스를 타고 떠나놓고 보니 떠나기 전의 생각과는 아주 딴판으로 하여튼 서울을 떠나볼 수 있는 일만 해도 잘했다고 생각되었다.
버스가 달릴수록 한껏 풍겨지는 바람을 받아가며 나는 금시에 바깥 풍경에 황홀해지고 말았다. 사월의 바람은 아직도 차가운 맛이었지만, 그럴수록 서울 거리에 지쳤던 나의 머리를 일층 산뜻하게 해줄 수가 있었다. 소를 몰아 밭갈이를 하는 농부를 보아도 나는 갑자기 생활의 어떤 약동을 보는 것 같았다. 금방 갈아놓은 검은흙에서는 흙냄새가 코밑으로 풍겨지는 것 같기도 했다. 동구 앞에 꽃이 활짝 핀 살구나무가 눈 둘 사이 없이 휙 지나가자 생기가 도는 긴 포플러들이 앞에서 춤을 추듯 우쭐대며 달려오는 것도 신기스러웠다.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 갑자기 물소리가 요란스러운 계곡을 끼고 달리자, 소란스럽 게 바위에 부딪치는 물이랑을 보아도 지금까지 가슴에 무엇이 막혔던 것이 탁 풀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먼 산에는 아직도 눈이 희뜩희뜩 보이었다. 나는 눈을 보면 언제나 고향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고향은 철로에서 삼십 리나 떨어진, 고개를 몇 개나 넘어야 하는 깊은 산골이었다. 겨울방학으로 집에 돌아가던 때 눈이 펑펑 쏟아져도 나는 그 길을 걸어야 했다. 나는 그 길에서 마을 사람이 얼어죽은 것을 본 일도 있다. 그 사나이의 수염에는 고드름이 허옇게 달린 채 구리처럼 거멓게 굳어져 있었다. 이렇게도 무서운 기억이 남아 있으면서도 역시 고향은 그리운 것이었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고향을 그려보았다. 눈으로 묻혀버렸던 세계가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김이 솟아오르며 흙잔등이 드러날 정경이 눈앞에 벌어졌다. 마을 사람들의 얼굴도 하나하나씩 떠올랐다. 그들은 모두 봄이 오면 기뻐했다. 그들이 기뻐하는 것은 눈 속의 괴롭던 생활이 끝나서가 아니고 다시금 자기들의 새로운 생활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이러한 생각을 하다가 나는 문득 봄을 맞아 고향을 찾아가는 듯한 착각을 느껴가며, 나에게도 무슨 행운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실상 어지러운 서울에서 복대기는 것보다는 이런 산골에 와서 낚싯대라도 드리우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 이렇게도 생각이 자꾸만 앞질러지며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지금 찾아가는 일자리가 별로 당기지도 않던 일자리라고 생각했던 것이 구와 반대로 나에겐 그 이상 더 좋은 자리가 없는 것같이 생각되었다. 그럴수록 더욱 초조하고 궁금해졌다. 정말 일자리나 있을는지. 그것은 마치도 입학시험을 치고 나서 합격 발표를 보는 마음과도 같은 것이었다.
깊은 산속으로 점점 들어갈수록 차 안의 사람들도 점점 줄어지며 굵은 나무들은 많아지어 파릇파릇하니 잎이 트기 시작한 노목들도 버스 위로 쳐다보이었다.
둘이서 앉는 자리를 혼자서 차지하듯이 앉아서 아까부터 졸고 있던 바로 나의 옆의 비대한 중년신사가 문득 깨어서 몇 시나 되었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시계가 없다기도 귀찮아,
“글쎄요, 서너시쯤 되었을까요.”
하고 해를 쳐다보아 대중으로 대답하여버리고 말았다. 그 중년신사는 나의 대답이 못 미덥다고, 맞은편 양장한 여자에게 다시금 시간을 물었다. 대중잡지를 무릎 위에 놓고 보는 듯 마는 듯 무료하니 앉아 있던 그 여자도 시계가 없다고 고개를 흔들어 보이고는 다시금 잡지에 눈을 두었다. 첫눈에 보통 여자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와 마찬가지로 양키들이 많다는 그 공사판을 찾아가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 여자는 다시금 잡지에서 눈을 떼어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운전수가 가르쳐주는 대로 내가 H 발전소로 통하는 인도교 앞에서 내렸을 때에는 해가 거의 질 무렵 이었다. H 발전소 댐의 거대한 배수관이 바라보이는 험한 산비탈에는 먹물을 뿌린 듯이 어둠이 젖어드는 그 속에서도 봄빛은 완연했고, 그 밑으로 북한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인도교를 거의 다 건너자, 사방은 더욱 어둠 속에 묻혀든 채 찬바람이 솔솔 옷깃으로 스며들었다. 이 다리에서 백 미터쯤 떨어져 있는 산비탈 아래에 헬멧을 쓴 젊은 사내가 강물을 물끄러미 굽어보고 서 있는 것이 그곳에서 겨우 보이었다. 나는 그 사내가 있는 곳을 향하여 걸음을 옮기었다.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산비탈을 올려다보았다. 뻐꾹새는 보이지 않았고, 어둠 속에 묻힌 수풀의 적막만이 흐를 뿐, 사방은 지극히 아늑하고 고요했다.
그 젊은 사나이는 미군 잠바를 입고 S·G라고 씌어 있는 황색 헬멧을 쓰고 있었다. 그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그는 ×미인(美人) 청부회사 H 발전소 댐 건설 현장 경비원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나는 그의 앞으로 가 인사를 하고 나서,
“여기가 × 미인 청부회사 현장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도 공손히 입을 열어 내가 온 용무를 물었다.
“실상 전 서울서 이곳에 있는 미인 M씨를 좀 만나러 왔습니다. 그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M씨를요? 그러나 오늘은 시간이 넘어서 면회하기가 좀 힘들 것 같군요. 그이는 현장 사무실에 있는데 그곳은 이 산비탈을 따라 한 오 리가량 더 들어가야 합니다. 그네들의 숙소도 물론 거기에 있지요. 어떤 일로 오신지 모르겠지만, 역시 내일 아침 다시 오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도 그동안 미인에게 붙어먹은 덕으로 그들이 직무시간 이외의 면회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기 때문에 그대로 돌아갈 생각을 하면서도 숙소가 걱정되어,
“오늘밤은 여기서 묵어야겠는데, 초면에 대단히 미안한 청입니다만, 숙소를 좀 소개해줄 수 없을까요?”
하고 그것을 좀 가르쳐달라고 했다.
“숙소요, 숙소라야 이곳은 서울과 같이 깨끗한 여관이란 없습니다. 발전소 아랫동네에 손님을 받는 판잣집이 몇 있지요. 그런데 그나마 어제 서울 본사 사장이 와서 이 현장 안에서 동거생활을 하는 양갈보들을 모조리 내쫓는 바람에 그년들이 그리로 몰려들 갔답니다. 그러니 그년들 때문에 쉬실 방을 얻기가 힘들지도 모르겠군요. 하여튼 그년들이 쫓겨나니 얼마나 속이 서원한지 모르겠어요. 정말 꼴불견이었으니까요.”
하고 나의 숙소 걱정 같은 것은 딴 문제란 듯 흥분한 채 침을 탁 뱉었다.
그렇다면 한데서 자는 판국이 아닌가 하고 나는 그의 말에 약간 불안해지며 걸음을 돌리려고 하자,
“참 선생님, 한 십 분쯤 있으면 경비원 교대차가 나올 것입니다. 그때 미인도 한 사람 나오겠으니까 그에게 물어봐요.”
하고 그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을 말해줬다. 그렇다면 나는 그 차가 나올 때까지 이 경비원에게 현장 내막이나 물어보면서 기다릴 생각으로,
“서울서 듣기엔 여게 경기가 아주 대단하며, 그리구 한국 사람들의 대우두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떻습니까?”
하고 담배를 꺼내 그에게도 권하며 물었다.
“그렇다면 선생님두 여기 취직하러 오셨군요. 통역 자리를 구하시지요?”
벌써부터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이 싱긋 웃고 나서,
“글쎄요. 통역은 대우가 좀 낫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일반 노무자의 대우야 말두 아니지요. 여기에 매일같이 일자리를 구하러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면 경기가 대단하다는 소문이 굉장히 난 모양입디다만 다 어이없는 생각들이지, 지금 미인 관계 직장에 좋은 곳이 어디 있겠어요. 아주 개판입니다. 나두 부대에 있다가 나와, 이 사람네를 따라다니는 지가 벌써 사 년입니다만 이 꼬락서닌걸요. 이자네들두 한국서 굴러먹을 대로 굴러먹어서 이제는 깍정이를 부려두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지요. 그래두 이전엔, 그런대루 식사도 괜찮고 대
우도 좋았지만, 지금이야 글쎄 말인들 돼요. 식사와 숙소를 거저 준다는 소문에 노무자들이 각처에서 모여드는 모양입디다만, 거저가 어디 있어요. 자기 품삯에서 제하는 것인 줄도 모르고. 하긴 농토 없는 농군들이야 하는 수 없으니 와볼 만도 하다구 할 수 있겠지요.”
그는 자기의 한탄처럼 이야기하고 나서 어조를 고쳐,
“여게 통역 일이란, 부대와는 다르답니다. 현장 포맨(반장)을 겸하게 되니까 현장일을 좀 알아야지요. 그네들은 일을 잘못하면 노무자를 욕하지 않고 포맨을 타발하니 까요.”
그러고는 그것을 내가 걱정할 듯해서인지,
“그러나 현장의 일이란 실상 알고 보면 우스운 일이지요. 한 주일쯤 있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니까요. 처음 들어갈 때 현장의 경험이 있느냐고 물으면 있다고만 대답하면 그뿐입니다. 염려할 것 없어요.”
나에게 안심을 주다가 불시에,
“저게 오는 저 사람두 선생과 마찬가지로 서울서 일자리를 구하러 온 사람입니다.”
하고 고개를 들어 내 뒤를 가리키었다. 그곳에는 낡은 백 하나를 든 키가 크고 몸이 홀쭉한 삼십 미만으로 보이는 사나이가 어둠 속에서 튀어나듯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우리 앞으로 와서,
“이거 큰일 났소. 내 친구가 출장을 가서 만날 수 없으니, 까뗌.”
하고 까뗌이란 소리를 멋지게 외고 나서,
“예까지만 오면 만사 오우케이라기에 하바하바 버스값만 갖고 달려왔는데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참 싸나바베치 아냐. 경비원 선생, 이전 허는 수가 없군요. 선생과 같이 여기서 밤을 밝힐 수밖에, 지저스 크라이스트.”
하고 경비원에게 팔을 벌려 힘없는 제스처를 보이고 나서 서글퍼진 얼굴로 쪼그라치고 앉았다.
“그렇다면 참 난처한 일이시군요. 여기는 서울과도 달라 밤이면 몹시 춥습니다. 도저히…….”
하고 말을 이으려다가 문득 저편 산 밑에서 비쳐진 헤드라이트를 보고는 분주히,
“선생님, 경비원 교대차가 옵니다. 이야기 하여보시지요.”
하고 한 걸음 나서서 차렷의 자세로 차를 기다리다가 거수경례를 했다.
나는 운전대에 앉은 미인에게 내가 온 사유를 말하자, 그도 역시 경비원의 말과 마찬가지로 내일 아침 일찍 와서 만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해줬다. 그러고는 우리와 이야기하던 경비원을 다른 경비원과 교대시킨 후 돌아가버리었다.
쪼그리고 앉아 있던 그 친구는 자기를 동정해주던 경비원까지 사라져버리니 더욱 불안스러운 모양이었다. 서울서 예까지 친구를 의지하고 무일푼으로 일자리를 구하러 왔다는 그의 딱한 사정을 나로서도 모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남의 일 같지도 않았다. 나는 그를 혼자 두고 나만이 잘 곳을 찾으러 갈 수도 없는 노릇이므로,
“서울서 오신 선생, 나와 같이 내려가서 잠자리를 구해봅시다. 여기선 추워서 새울 순들 있겠어요?”
하고 말을 건네자 그는 기다리고나 있었던 듯이 껑충 일어나며,
“네, 그렇습니까? 그래요 참,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하고 고개를 몇 번인가 숙이었다.
“실상 나도 여비는 넉넉지 못하지만, 하여튼 같이 가봅시다. 죽을 수가 있으면 살 수도 있겠지요.”
“글쎄 말입니다. 여게 있는 친구가 일자리가 있다고 급히 오라기에 부랴부랴 왔더니 이 모양이 됐구려.”
하고 미안스러움을 변명하고 나서,
“그 친구만 만나면 다 해결될 터인데, 까뗌.”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가 문득 생각한 듯이,
“이거 노상에서 실례이지만……”
하고 그는 내 옆으로 한 걸음 더 다가서며 자기는 왕십리에 사는 최아무개라 하며 통성을 청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어두운 산비탈길을 따라 잘 곳을 찾아 H발전소를 향하여 걸어가기 시작했다. 밤은 완전히 어두워 하늘엔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
“참 선생님, 어디서 많이 뵌 듯싶은데요.”
그는 문득 입을 열어 어둠 속에서 나의 얼굴을 찾았다. 윤곽도 알아볼 수 없는 이 어둠 속에서 그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꺼내는지 모르면서도 나는 그것이 약간 우스운 대로,
“글쎄요. 서울서 살았으니까 혹시 보았을는지도 모르지요.”
하고 평범한 대답을 했다. 그러자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명동에 자주 나오지 않습니까?”
“어쩌다가 간혹 나가는 수도 있지요.”
“그러시다면 어느 다방에 자주 나가세요?”
“정해두고 다니는 다방이라곤 별로 없습니다.”
“그래두 혹시 진달래란 다방에 들른 일이 없습니까?”
그 다방이라면 한두 번 들렀던 기억이 있는 대로 그렇다고 하자, 그는 큰 발견이나 한 듯이,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그곳에서 뵈었군요. 그렇다면 선생님과 저와는 초면 이 아니고 구면이구만요. 그저 인사만 늦었지.”
하고는 자기가 결코 불량청년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나 하듯이,
“선생님도 저와 같은 처지이실 터인데 폐를 끼칠 수는 없는 일이지요. 내일 아침 그 친구만 만나면 틀림없어요.”
그의 친구를 내세워, 그는 이곳의 한국인 책임자라면서 부도 좋은 모양이라는 설명 을 붙이었다. 그러고는,
“선생님, 담배 가진 것 없어요?”
하고 아까부터 속으로 망설이던 모양인 말을 꺼내었다. 나는 그에게 담배를 주고 나서 나도 한 대 붙여 물려고 하자 그는 분주히 라이터를 켜 나에게 붙여주었다.
“담배마저 떨어진 신세가 됐으니, 까뗌. 그런데 선생님두 여게 취직하러 오셨지요? 이런 산골이래두, 우리 한번 둘이 다 같이 있어봅시다. 저도 막상 사귀어보면 그리 나쁜 놈은 아니 랍니다.”
웃음을 히쭉하니 웃어 보이었다. 그러나 내가 아무런 대꾸도 없으므로 흥이 죽는 모양이었다. 그는 피우던 담배를 몇 모금 더 빨다가 길게 두어 모금 들이켜고 나서 불을 꺼 주머니에 넣었다.
“선생님, 선생님은 이런 양키판에 전에두 있은 경험이 계신가요?”
하고 물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나의 지난 일을 일일이 외어바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여,
“없습니다.”
하고 간단히 대답했다.
“아, 그러면 제 추측대로 역시 선생은 대학에 계셨구만요.”
“그런 곳은 나와 인연이 먼 곳입니다.”
그는 기대에 어그러지는 듯 고개를 두어 번 비틀고 나서 내가 무엇이나 해먹던 놈인지 궁금한 대로 그것을 생각하는 모양인 듯 얼마 동안 묵묵히 걸었다. 그러나 그 이상 더 묻는다는 것도 실례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화제를 돌려서 점잖게 입을 열어,
“하여톤 양키판에서 일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요령이 있어야 합니다. 처음에 들어갈 때도 그렇습니다. 좋은 자리를 뚫고 들어가야지, 그리고 월급 같은 것도 분명히 정하고요. 그렇지 않았단 큰 낭패를 보기가 일쑤이지요. 그자네들한테 어수룩하게 보였단 큰 결딴이지요. 우리 한국 사람들은 겸손을 무슨 미덕으로 생각하지만, 그애들이야 누가 그것을 알아줘요, 까뗌 이지. 그저 양키판에선 그애네들과 사바사바해서 수지 맞추는 것이 제일이지요.”
하고 양키판에 대해선 무엇이나 안다는 듯이 말했다.
“최형은 양키판에 오래 있은 모양이군요. 얼마나 됐어요?”
나는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기도 미안스러워 묻지 않아도 좋은 말을 한마디 물었다.
“육이오 전부터지요. 그러니까 거의 십 년이나 되는 셈이지요. 십 년이나 된 것이 요 모양입니다. 그래두 놀긴 좋았어요. 선생님, 참 말씀 낮춰요. 저를 친동생같이 생각하시구, 전 이런 산골에서 형님 같은 좋은 선생을 알게 돼서 정말 기쁩니다. 그런데 선생님, 전쟁이 없으면 양키판이 아주 개판입니다. 첫째로 그때처럼 물자가 안 들어오니까요. 그때는 정말 좋았습니다. 식사두 좋았거니와 오바타임도 많이 받았지요. 부대 물건 내다 수지 맞추는 일두 어수룩했으니까요. 그것이 전쟁이 끝난 후부터는 까뗌, 국물도 없으니.”
하고 그는 손가락을 비틀어 딱 하고 소리를 내었다.
“부대에선 뭐 통역 일을 했습니까?”
“처음에야 잡부루 들어갔으니까 그애네들 시키는 대루 다 했어요. 그러다가 말을 좀 알아가지구 인타루 나섰지만. 말하자면 인타란 건 요령입니다. 제아무리 영어를 벼락같이 잘한다 해도 첫째로 미인한테 잘 보이지 않으면 까뗌입니다. 내가 무엇이라고 영어로 지껄이는지 영어 모르는 사람은 알 리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또한 양키들도 내가 한국말로 무어라고 하는지 알 도리가 없는 것이 아닙니까. 여기에 인타로서의 요령이 필요한 것이지요. 요령껏 양편의 기분만을 좋게 해주면 만사는 오우케이니까요. 혀를 슬슬 굴리며 멋들어지게 어깨나 춰올리며 재빨리 중얼거리면야 그 인타 잘한다 하고 소문이 대번에 나는 것이지요. 그리구 그자들이 묻는 말엔 알든 모르든 간에 하여튼 반문하면 까뗌입니다. 그런 땐 어쨌던 아는 척하고 예스 오라이로 슬쩍 그 고비를 넘겨야 한답니다. 하하……·너무 웃지 마시오. 세상만사는 다 요령이니까요.”
“참 요령이 대단하군요.”
“너무 그러지 마세요. 하긴 지금껏 그 요령으루 살아온 셈이지요. 참 내 우스운 이야기 한마디 할까요. 바로 내가 일선 후방 어느 띠비죤(사단)에서 인타 노릇할 때의 일입니다. 그곳의 멧싸젠트(취사반장)가 개를 한 마리 길렀는데 그놈의 개가 갑자기 없어졌어요. 그 싸젠트는 동네 사람들이 자기 개를 잡아먹었다며 나하구 같이 동네를 조사 나가자는 것이 아녜요. 그래서 난 우리 한국 사람은 절대로 개를 잡아먹는 법이 없다고 했지요. 그래두 그자는 내 말을 곧이듣지 않고 하여튼 같이 나가자고 하므로 하는 수 없이 따라나갔는데, 재수가 없을 때라 어느 집에 들어가니까 때마침 젊은 친구 칠팔 명이 둘러앉아서 손을 걷고 김이 문문 나는 개고기를 뜯어먹고들 있지 않아요. 그 싸젠트는 그것을 보기가 무섭게 성이 벼락같이 나서 ‘저것이 바루 내 개다’ 하고 주먹을 부르쥔 채 부들부들 떠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자 그 젊은 친구들은 상대편이 양키라, 그에겐 대들지 못하고 입장 거북하게도 나한테 대들어, ‘이 개가 아이를 물었기에 잡아먹는데 무슨 야단이오. 여보 통역 양반, 저이가 바루 개 임자요? 그러면 마침 잘됐소. 약값이나 듬뿍 받아내야겠소.’ 이런 판국이라, 그것을 그대루 싸젠트에게 이야기했단 어떻게 될 노릇이오. 그러니 별 수가 있소. 요령을 썼지요. 위선 그 젊은 친구들에게 엄숙하니 타이르는 말로, ‘이분은 멧홀(식당)의 책임자로 우리 한국 사람을 데리고 있는 아주 좋은 사람이요. 그런데 저 개가 자기의 개인 줄 알 것 같으면 큰일 날 것입니다. 미국선 남의 개를 죽이면 징역살이를 한다니까요. 하여튼 당신들은 잠자코 있어˙요. 내 적당히 처리해드릴겐’ 하고 슬그머니 위협을 주고 나서 그 싸젠트에겐 ‘저것이 개고기인 줄 안건 당신의 잘못 생각이요. 저 사람들은 당신이 개고기를 먹는 야만인이라 한 줄 알고 사람을 모욕해두 분수가 있지 하고 야단을 치는 것입니다’ 하자, ‘저것이 개고기가 아니구 그럼 뭐야’ 하고 고함을 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갑자기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저 나오는 대로 ‘미트 노루(노루고기다)’ 하고 씨부리댔지요. 그러자 그는 대번에 눈을 커다랗게 뜨며 ‘홧 이즈 노루(노루가 뭐냐)’ 하는 바람에 갑자기 영어로 노루가 무엇인지 생각이 나야지요. 그렇다고 우물쭈물해서 되겠어요. ‘스몰 타이거 (작은 범)’ 라고 까뗌 해치우고 말았지요. 그 말에 그는 그만 눈이 둥그레져서 ‘스몰 타이거 까뗌 빅 파티 이즈 완다풀(굉장하구나)’ 하고 머리를 흔들며 까뗌을 몇 번인가 소리치지 않겠어요. 그때두 요령껏 해치웠기 말이지 ‘코리안 떡(개) 찹찹’ 했을 것 아니예요. 참 그때는 멋들어지게 풀 스피드로 해치웠다니까요.”
하고 벌쭉 웃었다.
“참 재미난 이야기군요.”
“뭐 그런 이야기나 하자면 끝이 없지요.”
하고서는 역시 망설이다가 나에게 담배를 또 한 대 달랬다.
H발전소 앞을 지나다가 우리들은 순경에게 검문을 당하였다. 시민증을 제시한 후, 우리들이 여기 온 사유를 이야기하자,
“이곳은 지역이 지역이니만큼 경비가 심합니다. 직책상 검문한 것이니 달리 생각지 마십시오.”
하고 친절히 대해주었다. 우리가 묻는 숙소에 대해서도,
“보시다시피 여게는 별달리 여관이란 것이 없습니다. 이 아래로 좀더 내려가면 음식점들이 있는데 그 집에 가서 이야기하면 하루쯤 쉴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가르쳐주었다.
우리들은 그에게 치사를 하고 불빛이 반짝거리는 판잣집 동네로 향하여 산비탈 언덕길을 내려갔다.
“그 폴리스맨 참 나이스인데. 우리나라 순경이 모두 그렇다면 데모크라시 넘버원이 되겠는데 모두가 싸나바베치니. 선생은 물론 야당이겠지요. 야당도 좋은데 어디 부가 있어야 말이지요. 지저스 쿠라이스트.”
우리가 판잣집 동네로 들어˙서자, 그는 나에게 가만있으라고 손짓을 하고 나서 헛기침을 두어 번 한 후 점잖게 음식점 주인을 찾았다. 그 집 주인인 듯싶은 사십에 가까운 사나이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우린 공사판에 물건을 넣으러 서울서 온 사람들입니다. 오늘 하룻밤만 댁에서 신세를 집시다. 실상 우린 발전소 앞 순경과는 잘 아는 사이로 이리로 안내해줘서 찾아온 것입니다. 아마 그이도 이제 이곳으로 곧 놀러올 것입니다.”
최는 낯색 하나 구기는 일 없이 태연스럽게 주워대자, 주인은 오히려 송구스러운 듯이,
“방이라 해두 너무 누추해서 손님을 모실 방이 못됩니다만, 들어와 보시고서…….”
하고 남폿불을 밝혀주었다.
“우리가 여기 와서 일등 호텔을 찾어든 것은 아니니까 하여튼 고맙습니다.”
하고 방을 한번 휘둘러보고서는 나를 돌아다보며,
“선생님, 방이 누추하지만 어떻게 하겠소. 강원도 산골짜기라 할 수 없지 않습니까. 하룻밤 고생을 하시는 수밖에…….”
하고 나를 점잖게 추켰다. 그리하여 나는 그와 하룻밤을 지내게 될 음식점 뒷방으로 들어가 앉게 되었다.
“선생님, 우리들을 대하는 품이 좀 다르지요. 시굴놈들이란 별수 없습니다. 이렇게 관리를 빙자하여 엎눌러대야지, 하하……”
그는 자기의 수단을 웃음으로 자랑하며 무료하니 앉아 있는 나의 기분을 돋워주려는 모양이었지만, 나는 그의 웃음을 따라 웃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피곤한 대로 눕고만 싶었다. 그러나 누워도 좀처럼 잠이 올 성싶지 않아, 술이나 한잔 먹고 푹 잠을 들어볼 생각으로, 저녁상과 함께 술을 한 되 청하였다. 최는 저녁상을 갖고 온 주인에게 숙박료는 얼마며, 밥값은 얼마며, 술 한 되는 얼마냐고, 매 마디에 까뗌과 싸나바베치를 붙여가며 일일이 따지었다. 그러고는,
“선생님, 이거 참 뭐라고…… 하여튼 그 친구만 만나면 됩니다. 꼭 돼요.”
하고 술상 앞에 꿇어앉아 그 말을 또 꺼내었다.
나는 거북하니 앉아 있는 그가 보기에 민망해서 편안히 앉게 한 후 먼저 술을 한 잔 듬뿍 부어주었다.
“아니 아니, 제가 먼저 선생을 부어드려야지, 실상 전 술도 그렇게 많이 못합니다.”
그는 두 손으로 공손히 술잔을 받아들고서 단숨에 쭉 들이켰다.
“공연히 그러지, 술두 곧잘 하는구만.”
“실상 술두 부대에 들어가서 배웠어요. 그전엔 한 잔두 못했어요. 부대 들어가서 비루(맥주)루, 참 그때는 썩어나는 것이 비루였으니까요. 비루뿐이었나요. 코카콜라, 레몬주스, 좋았지요. 그애네들은 우리들하구 체질이 달라요. 하여튼 오동짓달두 비루를 얼음에 채워서 먹으니까요.”
그는 두 잔째의 술도 역시 단숨에 들이켰다.
“코리아 막걸리 베리 나이슨데. 이건 틀림없이 밀주입니다. 서울선 이런 술 좀처럼 만나기 힘들지요. 이거 정말 그애네들이 좋다는 카나디안보다 못하지 않구만요.”
벌써 이제는 사양이 필요 없게 된 그는 안주를 한 숟가락 입에 넣고 나서,
“위스키 이야기가 났으니 말이지, 그애네들한테 한국 위스키 가지구 카나디안으루 숱해 곯려먹었지요. 피엑스에 위스키가 떨어지면 우리보고 위스키를 사다달래는걸요. 그러면 누가 진짜를 꼬박꼬박 사다줘요. 가짜루 먹이지. 하여튼 카나디안 한 병이면 열 병은 만들수 있었으니까요. 그래두 그애네들이 뭐 알아요. 정말 그애네들 술맛 알구 먹는 애가 몇 안돼요. 그걸 생각하면 참 우스운 일이지요. 한국술이라면 죽는다고 벌벌 떠는 애들이 카나디안 위스키 병에만 넣으면 넘버 원이 된단 말요. 그러면서두 한국 술은 하여튼 넘버 텐이라니, 까뗌.”
그는 술기운이 높아질수록 어세도 더욱 높아졌다. 나는 그의 까뗌이란 소리도 이제는 싫증이 날 대로 나, 술은 그만 할 생각으로 밥을 뜨기 시작했다.
“밥은 왜 벌써 들어요. 우리 술 한 되만 더 합시다.”
그때에 이 지방에서 보기엔 이상스럽다 해야 할 양장한 여인이 옆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이었다. 그는 갑자기 긴장해서 눈을 반짝이며,
“야하 나이스 까뗌.”
하고 물팍을 탁 쳤다. 그러고는 분주히 주인을 불러 고개로 의미심장하게 윗방을 가리키며 누구냐고 물었다. 주인이 미인과 현장에서 살림하다가 어제 쫓겨나온 여자라고 알려주자 나이스 까뗌을 다시금 연발했다. 주인도 그 친구의 마음을 잘 알겠다는 듯이 벌쭉벌쭉 웃고 섰다가 술이라도 한 되 더 팔자는 셈으로,
“술 좀 더 가져올까요?”
하고 물었다.
“까뗌, 술을 먹고 안 먹는 건 우리의 자유야, 왜 이리 참견이야?”
“여보, 술을 가져오라느냐고 물어보는 것도 내 자유가 아니요. 야단칠 것 없지 않소?”
“오, 퍼니 가이, 오브 코스 프리돔 이즈 프리돔 까뗌(재미난 친구다, 물론 자유는 자유지).”
최는 기분이 나는 대로 손가락을 딱 치며 빨리 술을 가져오라고 소리치고 나서는 나에게 눈짓을 찡긋이 하여 보이었다.
“웃방에 꽃을 두고 그냥 놀 수 있어요. 이왕이면 웃방 피메일(여성)을 부릅시다.”
그러고는 나의 말을 기다릴 필요도 없는 듯이,
“굿 이브닝 레이디, 위 해브 넘버 원 파티 오우케이, 컴 히어.”
하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윗방에서는 무슨 대답이 있을 리가 없었다. 최는 까뗌 소리를 연발하다가 제풀에 벌쭉 웃었다.
나는 너무도 어이가 없어,
“젊은 사람이 왜 그렇게 주책없이 야단이오. 이전 술도 그만했으면 됐으니 잡시다.”
하고 피곤한 대로 바람벽에 몸을 기대었다. ¨
“형님, 걱정 말구 가만히 앉아 계서요.”
선생이 어느덧 형님으로 변해지며 그는 벌떡 일어섰다.
“알지도 못하는 여자한테 가서 어쩔라구 그래요?”
나는 당황해서 약간 노기를 띠었다. 그러나 나의 말 같은 것은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듯,
“내게 맡겨요.”
하고 한마디 던지고서는 옆방으로 가서 노크를 했다.
나는 저 사람이 술이 취해가지고 실수나 할 것 같아,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좋은 일이면서도 공연히 가슴이 설레었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윗방에서는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 일이 되는가 하고 나도 약간 흥미를 가져보고 있을 때 그는 희색이 된 얼굴로 돌아와 ‘오우케이’ 하고 나에게 윙크를 던지었다. 그러고는 불시에 목소리를 죽이어 ,
“형님은 미인 관계의 굉장한 청부업자로 되어 있으니 그리 알아요. 여자란 돈냄새만 풍겨주면 그만입니다. 대학을 나왔건 무식한 갈보년이건, 돈 앞에는 모두가 쎄임 쎄임 올 쎄임(다 같다)이니까 형님 오늘 저녁 요령껏 해봐요. 잘만 하면 그 여자와 따뜻한 잠도 잘 수 있습니다.”
하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몸을 흔들어댄다. 이렇게까지 되고 보면 그가 귀엽다고 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말만은,
“여보, 장난을 해두 분수가 있지 그게 무슨 노릇이오?;,
“글쎄 형님은 걱정 말구 굿이나 보다가 떡이나 잡숴요. 하여튼 형님은 이 댐 현장에 하청을 맡게 되었는데 미인과 타협하러 오늘 저녁 서울서 왔다고 해두었습니다. 물론 앞으로 미인과의 교제는 그 여자보구 맡아달라고 했지요. 저 친구 약간 구미가 도는 모양이에요. 형님한테 곱게 뵈겠다구 지금 이러구 있습니다.”
얼굴에 분첩을 치는 시늉을 해보이었다.
조금 후에
“실례합니다.”
하고 젖가슴이 툭 튀어나온 녹색 원피스를 입은 문제의 주인공이 방문을 열었다. 첫눈에 못생긴 얼굴은 아니었다. 최가 분주히 일어서서,
“웰콤 웰콤.”
하고 맞아들이자, 그 여자는 그럴듯하니 고개를 한번 끄덕여,
“땡큐.”
하고 조금도 서슴지 않고 술상 앞으로 와 앉았다.
“먼저 우리 인사나 하고 놉시다. 제 이름은 토니 최라고 합니다. 이 형님은 아까 말씀드린 제가 늘 신세를 지는 제 형님과 다름없는 분입니다.”
“저는 짹키라고 부릅니다. 앞으로 많이 사랑해줘요.”
“미스 짹키, 사랑은 내가 해드릴 터이니 안심해요.”
“그런 사랑 싫어요.”
짹키가 최에게 밉지 않은 눈총을 쏘았다.
“미스 짹키, 정말 오늘 저녁 우리 형님한테 교제를 잘해둬요. 앞으로 파티가 많을 터이니. 그리구 형님에게도 잘 부탁합니다. 물론 미스 짹키는 영어도 능란하니까 모든 일에 오우케이.”
하고 최는 짹키에게 술잔을 주었다.
“서울서 오셨다지요?”
짹키는 나에게 이러한 인사가 없을 수 없다는 듯이 숙녀답게 입을 열었다.
“오시기에 몹시 고단했겠어요. 그런데다 이곳엔 여관도 없어 이런 곳에서 주무시게 되니.”
이런 고마운 말에도 나는 무엇이라 대답할 말이 없어 그에게 술을 한잔 권했을 뿐이었다. 그녀도 술은 사양을 하면서도 꽤 마시는 편이었다.
술잔이 오고 가는 사이에 짹키도 어지간히 취한 모양이었다. 최와 둘이서는 “유 노우” “아이 노우” 하고 서로 다투다시피 미인 부대 이야기를 끄집어내었다.
“뭐니뭐니 그래두 역시 군대가 제일 좋았어요. 더욱이 마린 (해병대) 애들은 기막히게 좋았으니까요. 그런데 이 씨빌리안(민간인) 애들이란, 말두 말아요. 담배 한 갑 가지고도 벌벌 떠는 애들이랍니다. 미스터 토니, 난 공연히 기분만 켯다가 쫄딱 망해버리고 말지 않았어요. 마산에 있을 때 재니란 메이좌하고 참 재미나게 살았는데 그이도 결국 꼬 홈 했으니. 미스터 토니, 나는 지금두 그이를 잊을 수가 없어요.”
“참 그때는 호화판이었지.”
“말해 무엇해요. 매일 파티가 없는 날이 없었는데, 요즘이란, 아이 기가 막혀.”
“용산 에이스 아미(팔군) 에는 아직 경기가 좀 있는 모양이던데.”
“아이구 말씀 마세요. 일본서 나온 애들인데 나두 그에네들하구 두어 달 살아봤지만, 생각만 해두 진저리가 나요.”
“그래두 그건 사람 나름이지, 지금이래두 좋은 애만 만나게 되면 수지 맞지 않아. 유 노우 쁠랙 마케팅?”
“글쎄, 그것두 다 옛날의 일이에요. 그땐 담배두 한 츄럭씩 실어다주는 애들도 있었건만 그 좋은 세월 다 놓쳐버리고…….”
“까뗌, 술이나 먹읍세다. 그런 것 다 잊어버리고.”
“그래요. 오늘밤 하닌지 뭔지 그 새끼나 오면 좋겠다. 술이나 실컨 먹었다가 술주정이나 실컨 해주구 서울루나 달아나구 말게. 그러구선 홧스 꼬나 두(어쩌면 좋아).”
“나하구 달아나.”
“미스터 토니, 정말 가줄래?”
“미스 짹키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그런 농담 그만 하고 어서 술이나 비워요.”
“오우케이.”
최는 술을 비우려다가 빈 주전자를 들어보고는 나를 힐끔 쳐다보며 술을 한 되 더 청하였다. 그러고는 뒤이어 이왕이면 안주도 하나 더 가져오라고 한 후, 정신을 차려 같이 술을 먹자며 내 어깨를 툭 치고 나서 귓속말로,
“내게 시계도 하나 있으니 걱정 말아요. 하여튼 내일 아침 그 친구만 만나면 만사 오우케이입니다.”
하고 중얼거렸다.
나는 그의 말을 듣다가는 내일 갈 차비까지 들짱날 것도 걱정이려니와 또한 몸이 고단해 견딜 수가 없었다.
“난 좀 자야겠는데 여자가 앉아 있으니 누울 수도 없고.”
하고 최에게 난처한 얼굴을 하자, 그는 홍이 죽는 듯이 있다가 짹키에게 귓속말로 수군거렸다. 둘이서 윗방에 가서 새로운 기분으로 한 잔 더 하자는 모양이었다. 짹키가 고개를 끄덕이자 최는 ‘오우케이’ 하는 소리를 질러, 그러면 자기는 짹키와 좀더 놀다 오겠으니 먼저 자라며 윗방으로 술상을 옮기었다.
나는 주인을 불러 군대 요를 한 장 얻어 덮고 누웠으나 술을 설먹었기 때문인지 으슬으슬 춥기만 하고 잠이 오지를 않았다. 윗방에서는 여전히 “유 노우” “아이 노우” 하며 지껄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밤도 어지간히 깊은 모양이었다. 그들은 몹시 취한 모양으로 말소리도 혀가 꼬부라져 분명 치가 않았다. 드디어 최의 재즈송이 시작됐다. 짹키는 젓가락 장단을 맞춰가며 이따금씩 기성을 지른다.
짹키가 “뷰티 보이스” 라는 데 최는 더욱 신이 난 모양이었다. 노랫소리가 변하여 “퀵퀵 슬로우슬로우 퀵퀵 슬로우슬로우” 하고 소리치는 품이 그제는 서로 얼싸안고 비틀거리며 춤을 추는 모양이었다. 나는 고함이라도 치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아가며 요를 둘러쓰고 벽을 향해 돌아누워보았으나 역시 잠은 오지 않았다.
윗방에서 갑자기 퀵퀵 소리가 뚝 그치고 조용해졌다. 모름지기 키스라도 붙은 모양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최를 데리고 온 것을 후회하면서 최는 역시 요령으로 사는 놈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간신히 잠이 들었던 나는 문득 바람벽이 무너지는 듯한 요란스러운 소리에 다시금 눈을 뜨고 말았다.
윗방에서는 싸움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다시금 무엇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하니, 하니” 하고 짹키가 외치는 소리와 뒤섞이어 금시에 숨이 넘어가는 듯한 최의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순간 짹키의 하니가 나타나 싸움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싸움은 일방적인 모양이었다. 다시금 바람벽에 머리를 쪼아대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졌다. 짹키의 하니가 최의 멱살을 그러잡고 바람벽에 다그치는 모양이었다. 짹키의 울음소리와 함께 킥킥거리는 최의 소리가 더욱 세차게 들려왔다. 최가 죽는 것만 같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흥분한 채 불시에 일어나 어둠 속에 혼자 앉아서 가슴을 울렁거리고 있었다. 그 서슬에 내 머리맡에는 초를 꽂아놓았던 비루병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낼 수가 있었다. 그 서슬에 나는 그것을 쥐고 윗방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생각이면서도 망설이고 있었다. 동족이 하나 죽어가는데도, 하고 여기까지 생각하면서도 나는 가쁜 숨만 내쉬고 있을 뿐이었다. 최는 이제는 더 견딜 수가 없는 듯 킥킥하다 못해 기성으로 변해졌다. 그 순간에 “싸나바베치” 하고 고함치는 소리와 함께 쾅 하고 집이 무너지는 듯한 요란스러운 소리가 울려왔다. 멱살을 그러잡아 최를 뒤로 밀어던진 모양이었다.
“돈 츄 원아 고우(안 가겠니)?”
뒤이어 거칠고도 노기 띤 미인의 굵은 소리가 흘러졌다. 짹키에게 묻는 모양이었다.
“아 앰 소리.”
눈물이 그렁한 짹키의 소리였다. 그러자 미인이 구둣발로 방문을 차는 소리가 들리었고 그 뒤로 짹키가 따라나가는 소리가 들리었다. 이윽고 집 문밖에서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났다. 점점 멀어지던 그 소리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그때에 죽은 듯이 조용하던 윗방에서 갑자기 울음소리가 아닌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코 고는 소리는 점점 더욱 높아졌다. 나는 그 코 고는 소리에 다시금 잠을 못 이루면서 지금까지 흥분해서 앉아 있던 내가 어이없어지고 말았다.
날이 밝은 지도 벌써 오랜 모양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고, 앞을 막고 있는 험한 산비탈을 쳐다보았다. 산마루턱에는 무거운 구름장이 잔뜩 끼어 있었다. 비가 내릴 것 같은 흐린 날씨였다. 그러나 잎이 트기 시작한 초목들은 볼수록 정신이 들었다. 나는 그것을 한참이나 보고 서 있다가 윗방의 최를 불렀다. 아무 대답이 없기에 아직 자는 줄로 알고 윗방에 가서 문을 열어보자, 어젯밤의 어지러운 풍경이 그대로 벌어진 채 최는 보이지가 않았다. 아래로 다시 내려와 그의 가방을 찾아보았으나 그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나는 주인을 불러 최가 어디를 갔느냐고 물었더니, 셈은 내게 맡기면서 벌써 나갔다는 것이었다. 셈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배나 되었다. 어째서 그렇게도 많으냐고 물었더니 어젯밤 싸우면서 깨친 그릇값을 얹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어이가 없다니보다도 그것을 다 주고 보면 서울에 돌아갈 차비가 없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은 내가 낼 것이 아니라고 떼를 써보았다. 그러나 주인이 들을 턱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당신들 때문에 잠을 한잠 못 잤는데 나중에 와선 실없는 소리까지 하자는 거요?”
그의 성풀이는 나도 마찬가지이면서도 나로서는 변명 할 도리가 없었다. 결국 나는 주머니를 털고 나서 이제는 최를 만나 그에게 매달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는 서울로 돌아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그 집을 나와 어젯밤에 온 산비탈길을 다시 돌아, 댐 건설 현장을 찾아 들어갔다. 나는 무엇보다도 현장에서 최를 만날 수가 없을 것만 같은 불안스러운 마음이 잠시도 떠나지를 않았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욱 울렁거리며 어쩌면 사람이 그렇게도 못났느냐고 자신이 미워지기까지 했다.
내가 현장 사무실에 거의 이르렀을 때 내 등 뒤에서,
“선생님 선생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었다. 돌아다보니 최가 백을 흔들며 따라오는 것이었다.
“선생님, 어젯밤은 대단히 실례했습니다. 어제 확실히 술이 너무 지나쳤어요. 나는 완전히 녹아우트이었으니까요. 싸나바베치.”
그는 어젯밤 미인에게 얻어맞아 눈자위가 퍼렇게 멍이 든 것을 별로 감추려고도 하지 않았다.
“하숙집에선 먼저 나와 어딜 갔다 오는 길이요?”
“선생님두, 그걸 뭘 물어요, 다 아시면서.”
하고 열쩍은 웃음을 헤헤 하고 헤쳐놓았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뜻을 못 알아차리고 있자,
“미스 짹키가 마음이 나쁜 앤 아니예요. 어제 자기 하니를 따라 이곳으로 들어 왔지만, 실상 좋아서 들어온 것은 아니지요. 떨어질 바에는 서울 갈 여비라도 떼내자는 것이지요.”
나는 그 말에 부풀어오른 그의 얼굴을 한번 더 쳐다보고
“그래서 미스 짹킨 만났소?”
하고 물었다.
“그 자식이 아직 자빠져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니 만날 수가 있어요. 그렇지만 친구의 숙소는 알구 왔어요. 그런데 까뗌, 글쎄 우리 친구가 어젯밤에두 들어오질 않았군요. 그러나 선생님, 걱정 마시요. 오늘 오전중으론 꼭 들어오게 되어 있다니까요. 셈은 얼마나 했어요?”
“하여튼 난 주머니를 털었습니다. 당신네들 그릇 깨친 것까지 다 물었으니까요.”
나는 약간 화가 난 얼굴을 지어 보이었다.
“그것까지 다 물었어요. 그거야 내가 깨친 것인가요. 싸나바베치. 그런데 선생은 오늘 취직이 되더라도 일단 서울엔 돌아가셨다 와야겠지요.”
“되건 안되건 하여튼 난 오늘 열시 버스로 떠나야 합니다. 최형이 그 버스값만은 꼭 책임을 져줘야하겠소.”
“물론 그거야 책임지지요. 그 친구만 오면 염려 없으니까요.”
현장 사무실 앞에는 삼사십 명의 농군들이 일자리를 얻으려고 우두커니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가 핏기 없는 얼굴들이었다.
나는 M씨를 만나, 친구가 써준 소개장을 꺼내주었다. 그는 그 친구를 잘 아는가고 한마디 묻고서는, 지금은 자리가 없으니 언제든지 자리가 나는 대로 통지를 해주겠다며 주소를 적어두고 가라고 종이를 한 장 내주었다.
나는 그 한마디를 듣자고 여기까지 왔던가고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혹시라도 하는 요행을 바라며 주소를 써놓고 사무실을 나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최가 달려와 나의 취직 여부를 물었다.
“글렀습니다.”
하고 고개를 돌리자 그도 흐린 얼굴이 되며,
“그러면 역시 열시 버스로 떠나야겠구만요.”
하고 묻지 않아도 잘 알고 있을 말을 물었다. 내가 아무런 대답이 없자 그는 더욱 미안한 모양이었다.
“난 하여간에 친구를 만나 오늘 당장에 취직이 안되더라도 될 때까지 있을 생각이에요. 그런데 선생님, 차비두 차비려니와 점심 값두 가지구 가셔 야지 않겠어요. 참 선생님두 조반 식사를 안했지요?”
나는 그가 그러한 걱정을 하여주는 것도 귀찮았다. 그러면서도 이제는 별수 없이 그에게 매달려 그의 친구가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경비원이 서 있는 그곳으로 가서 그의 친구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의 친구가 차를 타고 들어와도, 그곳에서는 일단 섰다가야 들어가므로 그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곳까지 나오면서도 차가 들어오면 ‘헤이’ 하고 손을 들어보이면서 차 안을 살피곤 했다. 자기의 친구가 타지 않았는가를 보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실망하면서도 나에게는,
“하여튼 열두시 전으로 들어온다니까 틀림없을 것입니다.”
하고 그 말을 몇 번인가 되풀이했다.
경비원은 어제저녁 우리가 만났던 그 사람이었다. 그눔 우리를 보자 반기며,
“어떻게 되었소?”
하고 취직 여부를 물었다.
“자리가 없대서 난 서울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H읍까지 나가는 편 승차나 좀 부탁합시다.”
내가 풀이 죽어 말하자, 그는 우리를 동정하는 얼굴로, 나가는 차는 많으니 여기서 기다려보라고 했다. 우리는 어제저녁 최가 쪼그리고 앉았던 그 자리로 가서 앉았다. 나가야 할 사람이 들어가는 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도 생각할수록 우스운 노릇이었다.
“그가 오늘두 안 들어오면 최형은 어떻게 할 작정이요?”
내 일도 일이려니와 그도 한심한 대로 물었다.
“어떻게 할 작정이 뭐 있겠어요. 하여튼 그 친구가 들어와야 되겠는데, 꼭 들어올 겝니다.”
그는 초조한 얼굴로 막연히 자문자답할 뿐이었다.
그동안 차도 여러 대 드나들었다. 차가 들어오면 최는 분주히 뛰어가서 살펴보고는,
“참 이상하지, 오전중으로 들어온다는 사람이.”
하고 그 잘하던 까뗌이란 소리도 못 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경비원도 H읍으로 나가는 차가 있을 때면 잊지 않고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그럴 때면 최는,
“들어오는 사람을 잠깐 만나구야 떠나겠어요.”
하고 내 대신으로 일일이 대답해주었다.
나는 경비원이 차를 알려줄 때마다 최에게 시간을 묻곤 했다. 그는 내가 시간을 물을 때마다 몹시 무안한 얼굴을 했다. 여비가 떨어지면 자기의 시계를 풀어주겠다던 어젯밤 취중의 이야기가 가슴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곳서 한시까지 떠나지 않으면 H읍에서 서울 가는 막차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을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침내 산비탈의 안개가 자옥하니 내려앉으며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배도 고파왔다. 나는 강물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지루한대로 하나하나 세고 있었다.
그때에 경비원이 다시금 H읍으로 나가는 차를 알려주는 소리에, 나는 불시에 최에게 시간을 물었다. 최는 역시 무안스러운 얼굴로,
“벌써 한시 예요.”
했다. 나는 오늘은 좋든 싫든 간에 떠나는 것은 단념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지금껏 그의 말을 믿고 있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가고 생각하던 그 서슬에 내게도 만년필이 하나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것을 H읍에 나가서 팔면 서울까지 갈 차비는 되리라는 생각이 번개 친 것이었다.
나는 다급히 굴기 시작한 트럭으로 달려가 올라탔다. 그러자 최도 불시에 따라오며
“어떻게 가요, 어떻게. 이것을 갖고 가요, 이걸.”
하고 손목시계를 풀어 들고 소리쳤다. 그러나 차와 그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졌다. 그래도 그는 팔목시계를 쥔 손을 흔들면서 한사코 따라왔다. 그러면서 차가 산모퉁이를 돌자 그는 그만 보이지 않으며 갑자기 뼈꾸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우는지 알 수가 없으면서도 나는 안개가 자옥한 산중턱을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삐꾸기 소리도 점점 멀어졌다. 나는 그 멀어지는 뻐꾸기 소리에 귀를 기울여가며, 내가 예까지 왔던 것은 혹시 저 뻐꾸기의 울음소리를 들으러 왔던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문학예술』 25호(1957. 5) ; 『동면』 (민중서관 19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