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을 시작할 무렵에는 농장에 도착하면 무슨 일부터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일들이 밀려 있었다. 남편이 포클레인이나 예초기계들로 장난처럼 일을 할 때 호미 들고 풀을 매며 원시적으로 일하고 있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농사짓고 싶다고, 싫다는 사람을 흙으로 끌어들인 사람은 남편인데,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억울했다.
남편은 더 큰 일?을 하느라 복숭아 밭에서 승용예초기를 타고 놀이처럼 풀을 깎고 있었다. 블루베리 하우스는 겨우 흙을 채우고 나무를 심어 놓고 한시름 놓았다. 가장자리와 출입구에 제초매트인 부직포를 깔고 마무리를 해야 풀들이 올라오지 못할 텐데 남편은 다른 일들이 더 급하다고 나 몰라라 했다. 어쩐지 풀이 나면 제거하는 일이 모두 내 일이 될 것 같은 예감에 빨리 부직포를 깔아야 했다.
결혼하고 30년 가까이 살면서 남편은 회사가 첫째였고, 항상 바빴다.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어!'라는 신념으로 집안의 일을 남편한테 넘기지 않았다. 남편의 직장과 아이들 학교문제 등으로 이사를 몇 번 했을 때도 아침에 출근했다가 퇴근할 때 이사한 집으로 왔으니 더 말해 뭐 하겠는가. 노모님 모시고 두 아이들 데리고 혼자서 칼춤을 추며 닥치는 일들을 해결하며 살았다. 덕분에 남편은 전구 한 번, 못 한 번 해결해 본 적 없다. 이번에도 그랬다. 망치를, 핀을, 가위를, 자를 부하들 같이 늘어 놓았다. 재단사처럼 길이를 재고, 기둥과 문들을 피해 가위로 잘라서 바닥에 펼쳐 망치로 핀을 고정했다.
비닐하우스 중간은 바닥을 평편하게 만들어서 부직포를 깔고 ㄷ자 핀으로 고정하며 한 줄 한 줄 화분을 배치하고 흙을 채워 나가며 완성했었다. 700평 비닐하우스의 가장자리 작업을 내가 혼자서 다 했다. 여유분을 남겨서 바깥쪽 깊숙이 넣어 풀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작업이다. 출입구들의 바닥을 호미로 고르게 만들었다. 매트를 깔아서 깨끗하게 마무리하는데 땀이 줄줄 흐르는 힘든 작업인데도 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일하고 있었다.
손으로 만드는 일은 재미있는 일이다. 아이들과 과학상자를 조립할 때나 레고블록을 쌓고, 퍼즐을 맞출 때도 아이들보다 내가 더 신이 났다. 퀼트며 십자수, 리본공예, 뜨개질, 자수 등의 소품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고 선물도 했었다.
어렸을 때 엄마는, 손재주가 좋으셔서 일손이 덜한 겨울철에는 손뜨개로 가족들 옷을 떠 주셨다. 조끼나 스웨터를 뜨는 엄마 곁에서 어설프게 머플러 뜨는 법을 배웠다. 처음에는 손에 잡기에도 큰 대바늘이라 손놀림이 힘들었다. 익숙해지고 나서는 뒤에 있는 코에 꿰어 무늬를 만들어 나가는 대바늘 뜨기, 둥그렇게 짜고 나가 동그란 물동이 받침이나 수세미를 짜는 코바늘 뜨기도 재미있었다.
대식구의 방마다 장롱을 넣을 수 없는 시절이라서 아랫목에 옷을 걸고 커다란 덮개를 덮었는데 그 위엔 엄마가 수놓은 십장생 그림이 자수로 색색이 새겨져 있어 초라하지 않았다. 날개를 펼친 학이랑, 싱싱한 초록이던 소나무도 생생하게 생각난다. 할머니와 아빠의 옷을 손수 만들어 드릴 때, 의자에 앉아 돌돌돌 발틀을 돌리던 엄마의 모습은 정말 멋있었다.
엄마의 많은 재주 중에 나는 바느질 솜씨를 닮았다. 웬만한 것들은 직접 수선하고, 만들 수 있다. 내 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바느질로 수선한 옷이나 양말을 거부감 없이 입었다.
망치를 들고 핀으로 고정해서 깔끔하게 완성된 것을 보면서 뿌듯했다. 해야 할 일을 마친 개운함이란 이런 기분일 것이다. 남편이 복숭아 밭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깔끔해진 출입구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추켜 올린다.
"뭐! 이 정도쯤이야~ 껌이지!"
첫댓글 '이 정도 쯤이야'가 아닌데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해 내는지 이해불가네요.
하는 일이 하도 많은데 이 정도 쯤이야라니요?
집안 일, 진행 중인 대학공부, 동시집 출간, 브런치 작가 활동, 수필쓰기, 책 읽기, 껌딱지 둘째 아들 손발이 되어주는 일은 어떻고.. 거기다가 농장 일을 도맡아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요?
슈퍼우먼이 이니면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데 즐겁게 일하는 모습이 신기할 정도네요.
회장님께서 좋게 봐주셔서 그렇지요. 제가 열심히 하는 것은 회장님께 배워서 입니다. 제 삶의 멘토시잖아요. 30년 넘게 회장님께서 살아 오신 모습을 곁에서 존경의 마음으로 배우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편한 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