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토, <요아킴의 꿈>, 1302-05, 200x184cm, 파도바, 아레나 경당
성모님의 부친인 요아킴에 대해 성경에서는 언급을 하고 있지 않으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전 해진다.
이른바 전승 혹은 전설 이 그것인데 그 중의 하나가 「황금전설」이다.
이 책은 1290 년대 말 이탈리아 제노바의 수 도자였던 야고보 다 바라지네가 쓴 것으로 이전의 원전과 전승 을 한데 모아 주요 성인에 관한 생애와 일화를 흥미진진하게 기 록한 방대한 저술이다.
성인들의 생애가 그림으로 생생하게 그려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책 덕분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책은 오늘날까지도 출판이 되고 있어서 성인 연구의 핵심 으로 자리 잡고 있다.
「황금전설」에 따르면 요아킴은 갈릴레이 사람으로 베들레헴 사람 안나와 결혼했다.
두 사 람 모두 선행하며 살았으나 결혼한지 20년이 지나도록 자식이 없었다.
이에 두 사람은 자 식을 주신다면 하느님께 봉헌하겠노라고 약조했다.
어느 봉헌 축제의 날 요아킴이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가서 제단에 제물을 봉헌하고 있 는데 그를 본 사제가 아이를 갖지 못한
사람은 제단에 가까이 갈 수 없다며 그를 성전에서 내쫓았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것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지 못한 것으 로 여겨졌다고 한다.
심한 모욕감에 요아킴은 집에 돌아갈 용기마저 잃고는 목동들을 따라 벌판으로 갔다.
그로부터 며칠 후 천사가 그 앞에 나타나 놀라지 말라며 말했다.
“나는 주님이 보낸 천사다. 네 기도와 제물은 하느님께 전해졌다. 하느님은 네가 당한 모욕 을 다 지켜보셨다. 사라가 아흔이 넘어서도 임신을 할 수 있었듯이 네 아내 안나도 마리아 라 불리게 될 아이를 잉태하여 주님께 봉헌하게 될 것이다.
그녀가 임신이 불가능한 모친 에게서 태어났듯이, 그녀 역시 기적으로 아이를 갖게 될 것이며,
그 이름을 인류의 구원자 가 될 예수라 부르게 될 것이다.
너는 지금 예루살렘의 황금 문에 가서 아내 안나를 만나 서로 기쁨의 재회를 나누게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내가 지금 한 말이 모두 참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말을 마치고 천사는 사라졌다.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7~1337)가 이탈리아 파도바의 아레나 경당에 그린 성모님의 생애는 바로 이 「황금전설」에 기술된 내용을 그린 것이며 ‘요아킴의 꿈’이라는 이 작품은 그 중의 하나다.
여기서 요아킴은 머리와 수염이 하얀 노인으로 묘사되었으며, 아이를 갖지 못한 죄책감 때문인지 바싹 몸을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나 앞서 기술한 내용을 고지하고 있다.
요아킴 앞에는 두 목동이 눈에 띈다.
이들의 생동감 넘 치는 표정과 자세는 엑스트라에 머물 수도 있을 등장인물들을 조연으로 격상시키고 있다.
그 중 뒤에 있는 목동은 모자 달린 옷을 입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 의 수도복이 된 카푸친이다.
천사가 요아킴에게 성모님의 탄생을 예언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린다는 것은 사실 크게 재미있는 시각적 요소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조토는 요아킴이 목동들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생생한 목동들의 모습을 통해 리얼리티를 살렸고, 목동이 있으면 양도 있 어야 하겠기에 몇 마리의 양들도 그려놓았다.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비록 양들의 자세가 다소 어색하고, 원근감도 맞지 않으며, 풍경 묘사는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지만 조토는 전설의 내용을 이처럼 방금 일어난 사건처럼 생생하게 펼쳐 보임으로써 사실주의 회화의 시대를 활짝 열고 있다.
고종희 마리아 한양여대 교수 (가톨릭 신문 2009년 8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