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물었습니다.
“교회는 계속 많아지는데 왜 세상은 점점 더 악해가죠?”
간단합니다.
이 세상 마지막이 구원이 아니고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교회가 많아지고 믿는 사람이 늘어나도 이 세상의 큰 흐름은 멸망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제가 자라던 시절에는 학원이 없었습니다.
방과 후에는 집에서 저녁 먹으라고 찾을 때까지 골목에서 노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그런데 같이 어울려 놀기에 너무 어린아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6학년 아이들이 노는데 형을 따라 나온 1학년짜리가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 그 아이는 ‘깍두기’를 합니다.
술래는 안 하고 같이 놀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깍두기’는 없고 대신 ‘왕따’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수준이 안 되어도 같이 놀아줬는데 이제는 수준이 되어도 안 놀아줍니다.
세상이 점점 악하게 변질되어 가고 있다는 단적인 예입니다.
피자 가게 상호를 얼마나 아십니까?
제가 아는 것은 피자헛, 파파존스, 미스터피자, 피자마루, 피자에땅, 빨간모자피자, 도미노피자, 임실치즈피자 정도입니다.
어떤 책에 보니까 뉴질랜드에는 ‘헬피자(Hell Pizza)’라는 피자 가게도 있다고 합니다.
메뉴 이름을 단테 <신곡>에 나오는 일곱 가지 죄악에서 따왔는데 탐식, 탐욕, 나태, 음란, 교만, 시기, 분노입니다.
거기에 가면 “치즈크러스트 슈퍼 슈프림 피자 주세요.”라고 하면 안 됩니다.
“음란 피자 한 판에 교만 피자 한 판이요.”라고 해야 합니다.
이런 것을 재미있어 하는 것이 이 시대 풍조입니다.
지옥에 속한 것을 재미있어 하면 천국에 속한 것은 따분하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군주론>으로 이름 높은 마키아벨리가 “나는 착하고 어수룩한 사람들과 천국에 있기보다는 지옥에 가더라도 고귀한 사람들과 정치 얘기를 나누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마키아벨리 생각에 천국은 주로 고리타분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지금 그가 지옥에서 고귀한 사람들과 정치 얘기를 하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몇 년 전, 프랑스 하원에서 동성애자들의 결혼과 자녀 입양을 허용하는 ‘동성 결혼 법안’이 찬성 331표, 반대 225표로 가결되었습니다.
프랑스가 세계에서 열네 번째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남자끼리, 혹은 여자끼리 가정을 이루어서 재산을 공유하고 자녀를 입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동성애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만큼 민망한 단어였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동성애를 인정해야 시대 흐름에 맞는 사람이고, 반대하면 시대에 뒤처진 사람으로 여기는 풍조가 되었습니다.
어떤 연예인 커플이 혼전 순결을 서약했다는 기사가 뜨자, 누군가 거기에 댓글을 달았다고 합니다.
“잘난 척 하기는,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모르나 보네?”
사람들 심리가 참 묘합니다.
동성 결혼은 인정하면서 혼전 순결은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무슨 심보입니까?
요즘이 그런 시대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을 싫어하는 시대입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 바보, 병신 소리를 듣는 세상입니다.
차마 상상하기도 거북합니다만 동성 부부가 자식을 입양한다고 하십시다.
자기들에게는 행복을 위한 선택일 것입니다.
그러면 입양된 아이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남자를 엄마라고 부르거나 여자를 아빠라고 부르며 자란 아이가 바른 심성으로 자랄 수 있을까요?
세상이 그런 것은 별수 없습니다.
그들은 자기만 좋으면 되는 줄 압니다.
자기가 중요하게 생각하면 그것이 정말로 중요한 줄 압니다.
문제는 그런 풍조가 교회에도 스며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일주일 내내 교회 안에서 지내지는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 지내는 시간보다 교회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교회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죄다 세상 풍조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중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먼저 주의 나라와 주의 의를 구하며 살면 우리도 아무 갈등 없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하지 않는데 우리만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여기에 우리의 고민이 있습니다.
우리한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을 주의 나라와 주의 의를 구하는데 써버리면 우리 인생은 누가 책임집니까?
신앙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지만 신앙만 믿고 세상을 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슬그머니 ‘교회 따로 세상 따로’로 살아갑니다.
이 세상이 그렇게 살도록 부추깁니다. 신앙은 교회 안에서만 따지면 되지, 교회 밖에서도 따져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는 그의 책 <한길 가는 순례자>에서 그리스도의 제자 된 이들이 빠지기 쉬운 가장 큰 위험은 두 개의 종교를 갖고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는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킨 영광스러운 복음입니다.
그 복음의 요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신구약성경 66권에 가득한 것이 그 복음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친구들의 조언이나 언론이 하는 얘기들입니다.
‘남들은 다 그렇게 살아간다.’는 얘기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 우주만물의 주인인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실제 세상을 살아갈 때는 주변에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것 역시 성경만큼이나 중요한 진리입니다.
대체 누구한테 속은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