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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이 주는 기쁨
2010, 3, 21
요14 : 19-20
나는 존 번연의 천국과 지옥이라는 책을 읽고 여러분에게 2주에 걸쳐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낙원으로 들림 받아 가서 “사람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들었고, 사람이 할 수도 없는 말을 들었다” 고 고린도후서 12 장 4절에서 말하고 있고, 고린도전서 2장 9절에서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이 사람이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천국에서 본 것은 세상에서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 것들이요, 마음으로도 생각할 수도 없는 것들로 말로 형언할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존 번연도 천국대해서 말하기를 자기가 본 것을 1/1000도 표현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세상과는 너무나 달라서 세상에 무엇과 비교할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존 번연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빛의 나라요, 영혼들이 서로 사랑하는 나라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 천국은 기쁨의 나라라고 했습니다.
그 기쁨은 끝이 없고, 다양하고 언제나, 새롭기 때문에 무어라고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옥은 어둠의 나라요, 가공할 만한 맹렬한 유황불 가운데 들어간 영혼들이 그 고통으로 인해 끝임 없이 울부짖는 비명소리가 나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지옥의 고통은 맹렬히 타는 불의 고통만 아니라, 세상에서 함께 죄 짓던 영혼들이 결국 같은 지옥의 공간에서 만나 서로 얼굴을 맞대고 너 때문에 이 저주 받는 곳에 들어왔다고 원망하며 이를 갈며 저주하며 증오하는 곳이었습니다.
지옥이 가장 절망적인 것은 극심한 불의 형벌은 한 숨 돌릴 여유도 없이 그 고통이 조금도 완화 되는 순간도 없이 계속해서 맹렬하게 타는 불만이 아무 소망도 없이 100만년이 지나도 계속되는 저주 받은 곳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어떤 고통을 당해도 그 고통은 끝날 때가 있어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옥은 맹렬하게 타는 불의 고통이 영원히 계속되는 곳입니다.
지옥에서 고통 받는 영혼들은 세상에 있으면서 수 없이 많은 지옥에 대한 경고를 듣고도 비웃고 조롱하며 믿지 않았던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고,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원망하고 있는 곳이 지옥이었습니다.
천국이나 지옥에 대해서 존 번연이 말한 것은 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천국이나 지옥에 대해서 들으면 매우 어리석게 여깁니다.
나는 여러분들 중에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그리심각하에 마음에 두지 않거나,
혹시 의심하며 믿지 않는 분이 있을까 무척이나 염려가 됩니다.
세상에 살면서 지옥에 대해서 수 없이 경고를 들었지만 믿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들어간 부자 애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셨습니다.
지옥에 대해서 믿지 않는 자들이 지옥에 들어간 다음에야 알게 되면 그 때는 너무 늦어 돌이킬 수 없을 때입니다.
여러분 철학자 플라톤은 세상의 모든 법은 하나님 나라의 영의 법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죄 지은 자가 그 죄 때문에 형벌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법 율법이요,
불신자들이 그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 나라에 가서도 형벌을 받는 것이 곧 하나님 나라의 법인 율법입니다.
이 율법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법입니다.
그러므로 지옥은 없다고 단정하고 제 뜻대로 사는 사람들은 후에 그 영혼이 영의 세계에 들어가서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고, 사람의 영혼은 불멸의 존재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여러 번 말씀 드린 것처럼 영혼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썩지 않고 쇠하지 않으며 소멸되지 않는 존재입니다.
무신론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사람의 육체뿐이요, 사람의 영혼은 불멸의 존재로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죄 씻음 받지 못한 영혼은 자기가 지은 죄를 지고 지옥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영의 법칙입니다.
우리가 보는 T.V의 어느 채널에서 영매가 사람 죽은 영혼과 대화하는 내용이 방영되고 있는 것을 여러분도 보았을 것입니다.
죽은 영혼과 대화하는 내용이 구약성경에도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블레셋의 대군이 쳐들어오자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 물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이미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버림받아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무 응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영매를 찾아가 죽은 사무엘의 영혼을 불러 전쟁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 영매는 이 전쟁에서 사울 왕이 패할 것이요, 이 전쟁에서 사울 왕과 그 아들 요나단도 죽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영매의 말대로 이스라엘은 그 전쟁에서 패했고, 그 결과는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도 그 전쟁에서 죽었습니다.
지금 T.V에 영매가 나와서 죽은 영혼과 대화하는 것처럼 사람은 영혼이 있고, 그 영혼은 불멸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요, 불멸의 영혼으로 영의 세계 즉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내 말을 지금도 심각하게 듣지 않으면, 후에 무서운 결과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 불행한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영의 세계는 없는 것처럼, 지옥은 없다고, 단정 짓고 세상을 제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 지옥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또 하나의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가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세상에 오셨음을 사람의 이성으로도 능히 깨달을 수 있도록 확실한 많은 증거로 입증 하셨습니다.
성경을 주의해서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면 누구든지 확실한 증거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천국과 지옥 있음을 무조건 믿으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충분한 증거를 주시며 믿으라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목적은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들을 지옥의 멸망에서 구원하시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우리들의 죄 값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우리를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러 오셨다고 처음부터 하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세상에 계시는 동안에도 “내가 너희를 위한 대속의 십자가를 지러 왔노라” 하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죄 용서 받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분이 지신 십자가를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우리들의 죄 값으로 하나님께 드리신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이를 마음으로 믿는 자는 죄 용서 받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처방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들의 죄 값이 그리스도의 피로 지불된 곳은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주님이 말씀하셨고, 주님은 그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를 역사가 입증합니다.
주님은 이를 위해 세상에 오신 분이요,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은 분이십니다.
믿는 자에게는 자기 죄가 깨끗이 용서 받은 축복이 있습니다.
이렇게 믿는 자는 천국이 저희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본문을 봅시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하시는 말씀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너희는 나를 보리니 ” 하시는 말씀은 주께서 부활하시어 제자들 앞에 나타나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주님은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내가 부활하여 산 것처럼, 나를 믿는 너희도 살 것이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내가 부활하는 것을 보고 너희도 나처럼 부활하여 영원히 살 것을 믿으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그냥 육체를 가진 인간이 잠시 죽었다가 다시 산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부활은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입니다.
주께서 부활하신 그 신령한 몸은 이 세상의 육체가 아닙니다.
천사와 같은 신령한 몸의 부활이십니다.
주님의 신령한 몸의 부활이 증거 하는 것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주님은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하나님 나라에서 오신 분이심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둘째, 주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죽으신 것이 거짓이 없는 사실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신령함 몸의 부활이 그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셋째, 주님의 신령한 몸의 부활을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 믿는 우리에게도 부활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신령한 몸의 부활만이 그분이 하늘에서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고 오심을 증명할 수 있는 길이요,
그분의 신령한 몸의 부활만이 그분이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것은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셨다는 것을 믿게 하는 증거요,
그분의 신령한 몸의 부활은 예수 믿는 우리에게도 부활이 있다는 것을 믿게 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붙인다면 그분의 신령한 부활만이 그분이 하신 모든 말씀과 행위가 거짓 없는 진실임을 입증할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만약에 주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우리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의 말씀이 거짓이었다면, 예수 믿는 우리도 부활할 것이라는 주의 말씀이 거짓이었다면 주님은 결코 부활하실 수가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거짓말하는 자를 하나님은 부활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곧 하나님의 일이요, 하나님의 역사이십니다.
예수님이 만약 거짓말을 했다면 그것은 인류를 속인 큰 죄로 하나님은 결코 예수님을 용납하지 않으실 것이요, 주를 부활케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말씀과 십자가가 결코 거짓이 아님을 하나님이 증거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하시기를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하시는 말씀에 큰 확신을 주는 말씀입니다.
이 확신은 또한 내게 큰 기쁨을 줍니다.
이 믿음의 확신은 나를 세상에 어느 왕 보다도 더 큰 기쁘게 누리게 하십니다. 확신은 세상의 어느 왕 보다도 더 행복하게 합니다.
확신은 세상의 어느 왕 보다도 더 당당하게 살게 합니다.
확신은 세상에 어느 왕 보다도 안식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확신은 세상에 어느 왕 보다도 큰 위로와 미래에 대해서도 소망을 갖게 합니다.
오직 믿음에 확신만이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이러한 축복을 주는 것입니다.
내가 성지 순례 중 지중해를 밤에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내 생전에 처음 큰 호화 여객선을 타고 지중해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하늘에 빛나는 별들은 마치 많은 보석들이 뿌려진 듯 했습니다.
밤에 부는 시원한 지중해 바람은 내 삶을 축복하는 듯 했습니다.
거기다 지중해 연안에 있는 도시들의 찬란한 빛들의 장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지중해의 밤 야경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여행하고 되돌아오면서 낮에 다시 한 번 지중해를 여객선을 타고 지나오게 되었습니다.
낮에도 찬란한 햇빛아래의 지중해는 도시의 풍경과 어우러져 장관이었습니다.
그 때 나는 천국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 아름다움을 누리면서 영생을 주신 분께 감사 찬양을 올렸습니다.
여러분 영생을 가진 자로 모든 것을 보세요, 정말 감사와 찬양이 저절로 나올 것입니다.
나는 이 땅에서도 이미 영생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자연은 참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해 넘어가는 석양에 집에 돌아오면서 서쪽하늘의 노을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자연의 아름다움에 늘 감탄하면서 살았습니다.
나는 영생을 얻어서 이 세상에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이 아름다움을 누리고 살 것입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 사모님이 가진 행복한 눈물이라는 그림을 몇 십억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수근 화백의 빨래터의 여인들이라는 그림도 몇 십억이 넘어가는 그림이라고 합니다.
한데 나는 자연에서 그 보다 더 아름다운 그림들을 많이 보는데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천사보다 더 나은 생명으로 하나님 나라의 영광 가운데 모든 축복과 사랑과 화평함과 기쁨을 영원히 누리며 살 것입니다.
지금도 나는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더 행복합니다.
내가 육신의 감각적인 기쁨과 쾌락을 찾으며 살 때에는 내 양심이 늘 나를 대적하며 책망했습니다.
내가 육신적인 즐거움을 누릴 때에는 내 양심은 늘 나를 저항해 왔습니다.
내가 육신적인 즐거움을 찾을 때에는 내 양심이 늘 저항해 오기 때문에 갈등 속에서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육신적인 즐거움을 누릴 때에는 내 마음이나 양심이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몸만 잠시 즐거움을 누렸고, 내 양심이 그 즐거움을 저항하기 때문에 그 즐거움은 곧 사라졌습니다.
악인이 즐거움을 누리더라도 그 마음에는 평안이 없습니다.
그러나 경건한 사람은 이성과 양심도 함께 즐거움을 누리는 것입니다.
경건한 사람은 겉 사람과 속사람이 함께 즐거움을 누리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함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즐거움의 잔치입니다.
경건한 사람의 즐거움은 불신자와 같은 마음에 갈등과 혼란이 없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평안이요, 즐거움입니다.
믿음은 본질상 기쁨을 줍니다.
진실로 믿는 자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이 있습니다.
내가 만일 임종의 자리에 있어도 이제는 더 이상 회복될 가망이 없어도 이제 모든 것을 두고 떠날 때가 되어도, 나는 큰 위로와 소망을 가지고 떠날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몸과 마음으로 진실로 사랑하며 기쁨으로 섬겼던 그분은 만나러 갈 것입니다.
내가 주를 사랑함으로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를 따랐습니다.
내가 주의 나라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겠습니까?
그곳은 내 본향으로 내가 사모하고 기뻐하는 곳입니다.
나는 큰 기대를 가지고 나의 본향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나는 지금도 누구 보다 더 사랑하고 더 기뻐하는 분이 그분이시고,
나는 지금도 그분과 교통하고 교제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대 내가 이 분에 대해서 내가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나의 의뢰하는 분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내가 육신을 벗는 그날 내 안에 계신 성령이 나를 어디로 인도하겠습니까?
나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도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사랑이 내 영혼의 집입니다.
내가 만약에 이 세상에 물질적인 부족함이 있다 해도 그것이 나를 낙심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물질적인 부족함이 있다 해도 내게서 기쁨과 평안은 빼앗아 가지 못할 것입니다.
내게는 남이 알지 못하는 주가 주시는 양식이 있어 언제나 풍족하게 성찬을 들고 있습니다.
내게 육신이 양식이 부족하다면 주님이 주시는 양식은 더 풍족할 것입니다.
나는 젊어서 영의 양식을 먹기 위해 일부러 금식을 많이 했습니다.
내게 더 중요한 것은 영의 양식입니다.
내가 만일 질병 가운데 있어도 그것 때문에 낙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질병은 나의 기쁨을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그 질병 때문에 나는 더욱 주를 의뢰할 것이요, 나는 주와 더욱 깊은 교제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질병은 오히려 내게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내게 만일 지극히 어려운 고난이 닥쳐온다 해도 나는 그것을 인하여 승리하는 기간이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고난을 통하여 순종함을 배우셨다고 하셨습니다.
내게는 이 말씀이 얼마나 은혜로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고난과 고통이 따르겠지만 이는 내가 세상에 사는 날 동안 순종하고 승리하라고 주신 날들입니다.
내게 순종을 배우라고 주신 날들이요, 열매 맺으라고 주님이 나를 위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특별히 배려하신 날들입니다.
내가 어찌 은혜로 받지 않겠습니까?
고난도 내게는 중요한 것입니다.
내게 하나님 나라에서 승리의 면류관을 주시기 위해 예비하신 것입니다.
고난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승리를 위해 주신 날들이요, 열매들을 위해 예비하신 날들입니다.
그날에 내가 겸손하게 주님과 동행할 것입니다.
그래서 내 사랑하는 주님을 더 깊이 아는 축복이 있을 것을 내가 알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들 중에 주님께 관심은 있지만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있다면 그분은 이 세상에서 주로 말미암아 누리고 살 수 있는 많은 유익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해서 관심은 있지만 그리스도를 얻지 못하고 있다면 그리스도로부터 얻을 수 있는 많은 축복과 기쁨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이 세상에서 왕 같은 지위를 얻는 것보다, 왕 같은 부요함을 얻는 것 보다, 왕이 먹는 진수성찬 보다 더 많은 부요를 누리고 살 것이요, 더 큰 기쁨을 누리고 살 것이요, 더 좋은 진수성찬을 날마다 먹고 살 것입니다.
그리고 영생을 가진 자의 초월적인 여유와 기쁨과 위로와 소망과 행복이 있습니다.
이는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것들입니다.
주를 믿음으로 얻는 확신은 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특권 그리고 가장 영광스러운 특권을 누리고 사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결국 소멸될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멸망에 들어가지만 우리는 결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축복을 내 작은 입으로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 축복을 우리 모두가 누리기를 진심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