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라파엘로 '아테네학당'에 개략적인 설명을 했는데, 내년 여행준비를 위한 인문 예술을 다루는 책을 한 권 사러 서점에 갔다가(책들이 너무 많아서 정신을 잘 못차림 ) 르네상스 시대를 들여다보는 대목에서 제대로 된 그림해설을 보고 공유해보고자 보충합니다.
우선 이 작품에는 당시 철학을 대표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소크라테스, 피타고라스, 유클리트 등의 학자들이 등장한다.
물론 동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은 아니지만 그리스 고전주의를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들을 출현시킨 것이다.
그림의 중심에 나란히 서있는 두 인물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다.
이들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은 몸의 자세인데 왼쪽에 있는 플라톤의 손가락은 하늘을 향하고 있고 반대편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손바닥이 땅으로 향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간단한 손동작에서 그들이 추구하는 세계관의 내용과 그 차이를 엿볼 수 있다.
추상적 관념의 세계인 이데아를 이야기한 플라톤은 하늘은, 현상과 관찰 및 논리에 집중하면서 현실의 세계를 이야기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땅을 표상하고 있다.
특히 이들 손에 들려 있는 책을 통해 대별되는 세계를 보여준다.
플라톤의 손에는 우주와 인간, 보이지 않는 영혼의 세계를 다룬 그의 저서 티마이오스(Tiaeos) 가 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손에는 현실세계의 도덕을 다룬 니코마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이 들려있다.
재밋는 사실중 하나는 플라톤의 얼굴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얼굴은 라파엘로를 도와 성베드로 성당 계획에 참여하기도 했든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줄리아노 다 상갈로를 모델로 삼았다는 점이다.
이상적인 예술가 다빈치와 현실을 딛고 서 있는 건축가 상갈로를 통해 이데아와 현상세계의 대비를 들어낸 것이다.
아테네 학당은 두 인물을 중심으로 당시에 집대성한 모든 지식과 지혜를 총망라하는 그림으로까지 여겨진다.
관념의 세계와 실재의 세계, 다시 말해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을 모두 아우르는 세계는 결국 세상의 모든 지식의 총채와도 같기 때문이다.
트레비 분수에서 8분을 걸으면 도착하는 곳이 판테온이다
기원전 27년에 건축되었으나 기원후 128년 경 재건.
'모든 신들에게 바쳐진 신전'의 의미로 로마의 관용정신이다
609년 부터는 기독교 교회로 변신.
현존하는 로마건축물 중 가장 오래 돼고 보존이 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슷한 돔은 이탈리아 전역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돔의 내부 장식은 무게를 줄이기 위해 속이 빈 장식용 우물반자로 만들고 돌과 석회를 섞은 콘크리트로 사용했다.
이 돔은 피렌체에 가서 브루넬레스키를 소개할 때 또 나온다.
건물의 정면에 보이는 삼각형으로 보이는 부분을 '페디먼트'라고(정면 상부의 박공)
하는데 건물을 지을당시의 용도 특성등을 조각들로 남기지만, 교회가 되고 부터 지붕도 뜯기고 페디먼트의 조각도 뜯겨버려 백지
만 남았다
라파엘로의 묘
그의 바람대로 판테온에 안치됐다. 묘비에 추기경 벰보가 쓴 글귀,
"여기는 생전에 대자연이 그에게 정복될까 두려워 떨게 만든 라파엘로의 무덤이다. 이제 그가 죽었으니 그와 함께 자연 또한 죽을까 두려워하노라."
잊혀진 포르나리나,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하든 예술가들의 전기 '미술가 열전' (1550년)을 펴내면서 미술사학의 아버지 '조르조 바사리'는 "라 포르나리나가 라파엘로의 모델이며 정부로 라파엘로가 죽을때 까지 사랑한 여인이다."
허나 정작 이 젊은 나이에 (37살) 요절한 라파엘로의 무덤 옆에는 포르나리나 대신 그의 약혼녀이자 추기경의 조카인 마리아 비비에나 의 무덤이 있다는 것이다( 추기경의 힘이 쎗으니까).
차후 그녀를 다시 소개할 곳이 있다
로마의 건축 기술, '아치'
이 아치는 한쪽이 얇고 뽀족한 쐐기모양의 돌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는, 그 당시 대단히 혁신적인 건축 기술이다.
쐐기 모양의 돌이 서로 받쳐주기 때문에 기둥으로 천장을 기둥으로 천장을 세우는 사각 구조의 건축물보다 더 높고 넓게 지을 수 있었고,
이를 이용해 개선문, 다리, 수로 등 거대한 토목공사를 했을 뿐 아니라 웅장과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돔 형식의 천장을
만들 수 있었다
판테온은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직선 높이가 43.3미터, 내부공간을 직선으로 이어도 43.3미터로 완전한 구가 된다
로마에서 북쪽으로 진출할때 관문, 포플로 광장인데 여기 보이는 오른쪽 산타마리아 델 포플로 성당에 중요 작품이( 카라바조 회화 2점 성 바오로의 개종 등, 카라치 성모의 승천) 있다고 해서 힘들어 찾아갔는데 문들 닫았다. 시간은 19시 까지임에도. 이럴 때 맥 빠져. 이런때는 대부분 내부 수리중이라 미련없이 옮겨.
대신 광장 건너 보이는 쌍둥이 성당은 예고대로 문열려 있는데 별로 찍은 것이 없었고,
이제 산 루이 데이 프란세시 교회를 찾아갔고 중앙 제단을 중심으로 화려한 천정과 내부 모습이다
여기서 카라바조(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3부작을 감상한다.
돈 많은 집안이나 유력집안에서 기부금 듬뿍 내고 교회내의 중앙제단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영구전세(?)인 개인기도 공간( 개인 예배당)의 한 곳에, 세 개의 작품이 걸려있는데 그 중 오른쪽 그림,
성 마테오의 순교(바로크 시대 1599 -1600년)
가로 323 세로 343 대형 제단화
지방군주(에티오피아 왕)를 거슬린 이유로 에티오피아 교회에서 피살된 사도 마테에 관한 전설에 관한 이야기.
마테가 칼에 찔려서 죽기 직전의 순간을 보여주고 있고 등장 인물들은 세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왼쪽 아래는 카라바조
자신일 것이고 역시 빛과 어둠의 표현으로 죽음의 순간을 역동적으로 연출한다
제단 정면에 있는 그림, 성 마테오와 천사,
성 마테오가 천사의 영감을 받아 복음서를 쓰는 장면을 그렸다
제대 왼쪽 그림,
성 마테오의 부르심( 혹은 성 마테오의 소명).
누가 예수의 지목을 받는 마테오인지 논란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림 속의 예수를 X-선 사진기로 찍어보니 오른팔 방향이 3번이나 바뀐 것으로 밝혀졌다.
엄청 명작 중 하나라고 하는데, 마테오가 예수의 부름을 받는 순간을 그린 것으로,
위에서도 느꼈지만 과도하리만큼 탁월한 빚과 그림자의 대비로 입체감과 감정을 표현.
그의 작품과 인생을 가리켜 극단적인 화가라고 하는데,
극적인 빚, 강렬함이 특징인, 바로크 회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후대의 많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교회마다 그렇듯이 여기도 많은 개인 예배공간이 있으나 여기만 이렇게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이 많다.
들어서자마자 ' 아 저기구나' 하고 바로 찾는다.
이어서 찾아간 곳이,
서강대학교와 광주가톨릭대학교를 설립한 예수회의 본거지로 1584(1540년 창립 )년에 지은 성당이다.
남자만으로 이루어진 카톨릭 수도회인데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 운동 당시 교황을 도와 반종교개혁운동을 벌였다
예수회를 창시한 사람 이름을 따서 노욜라고도 하고.
여기는 천정화다
'예수의 이름으로 거둔 승리'
역시 바로크 양식의 대표적 특징인 강렬한 명암대비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시 효과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힌다.
특히 그림 속 인물들이 천당의 틀을 부수고 튀어나올것 같은 생생한 묘사로 당대 최고라는평가를 받는다.
그림 속에 묘사된 천당 부분에는 예수회를 상징하는 IHS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다
첫댓글 웅장하고 화려하고 세세한 묘사에 고개가 수그려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