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9일 주택종합대책이 발표됐습니다. 정말 망국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최근의 부동산 투기 현상을 잡겠다고 전 정부 부처가 의견을 모아 만들어 낸 대책인만큼, 연일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습니다. 일부 신문들은 사실을 왜곡해 전달하거나, 설득력이 결여된 주장을 함으로써 여론을 호도하기도 했습니다.
'수치의 속임수', '신문의 노림수'
정부는 강북과 고속철도 인근 지역에 주택을 대량 공급하고, 투기 지역 아파트 보유자에 대한 담보 대출 비율을 하향 조정하며, 1가구 3주택 이상 보유자에 대해 고세율의 양도소득세를 물리겠다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소형주택 분양가원가연동제 등 서민 주거 안정 대책이 빠져 있고,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보유세 중과 정도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 등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이에 대한 지적은 고사하고, 액수로 따지면 투기 세력에 대한 보유세 중과 폭이 그리 크지 않음에도, 수치의 속임수를 이용해 '조세 저항'을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고 있습니다.
[부동산 보유세 개편] 稅올려 투기잡기. 조세저항 우려 (동아일보, 11월 1일)
(…) 세 부담을 지나치게 늘릴 경우 자칫 조세저항을 불러올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 실제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35평형을 실제로 살지는 않고 투자용으로 가지고 있다면 올해 재산세는 28만원에 불과했지만 내년에는 99만원, 2005년에는 524만원으로 오른다. 이 기준을 똑같이 적용할 경우 타워팰리스 69평형의 2005년 재산세는 1060만원, 50평형은 792만원에 이른다.
왜 이 기사를 '수치의 속임수'라고 했는지, 설명드리면 이렇습니다. 기사는 타워팰리스 35평형과 69평형 아파트의 현재 시가가 얼마고, 최근 아파트 가격 폭등으로 시세 차익을 얼마나 올렸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거주할 목적도 없이, 오로지 투기 목적으로 구입한 아파트, 그리고 그 아파트 가격이 폭등함으로써 거둬들인 불로소득에 대해 어느 정도의 세금을 과세해야 합당한지에 대해 신문은 일언반구하지 않습니다. 단지 수치가 얼마나 뛰었는지만을 부각시켜 지나친 세금 부담임을 은연 중에 강조하고 있습니다. 조세 저항이 우려된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사실은 신문이 조세 저항을 부추기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1가구 1주택을 소유한 대부분 서민들의 경우엔, 보유세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지 않도록 세율 조정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사는 강남의 고가 아파트 소유자의 조세 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기준으로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독자들의 아파트 보유 수준이 모두 타워팰리스 소유자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 것 같군요. 제대로 된 신문이라면 투기 의혹이 있는 고가 아파트 소유자의 조세 저항보다는, 일반 서민과의 조세 형평성에 더 초점을 맞췄어야 했습니다.
기사를 좀 더 자세히 해체해 볼까요? 기사가 언급한 도곡동 타워팰리스 사례는, 재경부가 지난 10월 31일 부동산보유세개편추진위원회를 개최한 후 기자들에게 배포한 문답 자료를 기초로 작성된 것입니다. 정부 자료에 의하면 기사에서 예로 든 35평형의 경우 현재 시가는 8∼9억원입니다. 50평형은 시가가 11∼12억원, 69평형은 15∼16억원입니다(11월 4일 확인 결과, 실제 시가는 정부 자료보다 더 높습니다. 68평형이 18억까지 거래되고 있습니다).
거주가 아닌 단순히 투자 목적으로 (이 용어 또한 여론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투기 목적'이란 말을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소유한 주택 소유주들이 현재 납부하는 세금은 35평 28만원, 50평 93만원, 69평 226만원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사가 과도하다고 지적한 각 평수당 2005년 세금 납부액 524만원, 792만원, 1060만원은 현 재산세 최고세율인 7%를 적용했을 때 산출되는 액수입니다. 각 평형 아파트의 현재 시가는 제시하지 않고 최고 세율을 적용했을 때의 세금 납부액만 강조하면, 잘 모르는 독자들이 보기엔 정말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불로소득으로 앉아서 수억 원씩 버는 사람들에게 이 정도의 세금이 결코 과하다고 할 수도 없지만, 문제는 동아일보의 기사 작성 방향입니다.
사실 10월 31일 보유세개편위원회에서는 다주택 소유자 보유세 중과 방안에 대한 어떤 구체적인 결정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재산세 최고세율 7%를 적용하는 것도, 부동산 과다 보유자에 대한 건물분 재산세 과세 방안으로 정부가 제시한 3가지 안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위에서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동아일보 기사 원문 또한 정부가 고려 중인 3가지 안을 설명하며 "정부 방침이 비(非)거주 주택에 대한 최고세율 부과로 결정되면"이란 단서를 달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세 가지 중 유독 종토세 최고 세율을 적용한 수치만을 부각시켜 과도한 세부담을 강조, 조세 저항이 일 수 있다는 논리로 몰고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기자들에게 배포한 자료에 정부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2005년 종합부동산세가 도입되면 과표현실화와 함께 세율도 조정되어야 하므로 현재로서는 세율 수준을 말하기 어려움. 또한 현재의 재산세 최고세율 7%는 건물과표 현실화가 이루어지지 아니한 것을 전제로 한 세율이기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하기는 어려움."
이렇게 해서 신문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요? 다주택 보유자들에 대한 보유세 중과를 저지하는 것, 그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이쯤되면 보유세 중과를 반대하는 한나라당이 '투기 세력 옹호당'이란 비난을 받아 마땅하듯, 보유세 중과 필요성에 물타기 하는 동아일보 또한 비난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토지는 확대·재생산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시장에서 공급ㆍ배분되는 여타의 재산과는 다른 성격을 가집니다. 특히 강남 등 특수한 지역에 있는 아파트는 물량이 한정되어 있어 몇 채만 비싼 가격으로 팔리면 그 기대 심리가 그대로 확산돼 지역 아파트 가격이 동반 상승합니다.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보유세 중과는 토지 보유 부담에 대한 비용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여, 투기 목적으로 부동산을 과다하게 보유하려고 하는 심리에도 제동을 걸 수 있습니다.
투기 지역에서 담보 대출로 집 사는 건 서민들이 아니다
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을 하향 조정하는 것은 투기 지역 및 투기 과열 지구에 한해서입니다. 많은 언론이 비율을 축소하면 서민들이 피해를 입는다고 이야기하지만, 담보 대출까지 받아가면서 투기 지역에 그 비싼 집을 장만하려는 서민들이 얼마나 될까요? 매달 100만원씩 저축한다 해도 내집 마련을 위해서는 30년이 족히 걸리는 서민이 50% 담보 대출을 받는다고 해서 투기 지역에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투기 지역의 경우, 많은 수가 거주 목적보다는 투기 목적으로 집을 사는 게 현실입니다.
서울시 평당 분양가는 2003년에 와서 1300만원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파주, 화성, 동탄 등 신규 택지 지역도 분양가가 평당 700∼800만원을 호가하고 있습니다. 11월 3일부터 시작된 서울시 10차 동시분양에서는 평당 1900만원이 넘는 곳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투기 과열 지구에 대한 과다한 아파트 담보 대출은 시중 은행 자금이 부동산에 몰리도록 하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특정한 지역에 지을 수 있는 아파트 수는 제한되어 있습니다. 현행 제도 하에서는 누군가가 강남 등 특정 지역에서 몇 채의 집만 비싸게 팔면 지역 일대의 아파트 가격이 일제히 오르고, 그 지역에서 분양되는 아파트 가격도 덩달아 오릅니다. 기존 아파트 가격과 신규 분양 아파트의 가격이 서로를 떠받치고 있는 격이지요. 큰 손 몇몇이 몇 번의 거래를 하는 것만으로도 아파트 가격은 금방 오릅니다. 아파트를 분양하는 건설업자와 1가구 다주택 보유자들이야말로 아파트 가격 폭등의 최대 수혜자들입니다. 30년을 저축해도 집 한 채 살까말까한 현실에서 주택담보대출을 현행대로 유지해서 실수요자들에게 주택 구입 기회를 부여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는 지적입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사설] 江南 집값만 잡으면 경제 살아나나 (조선일보, 11월 1일)
강남 집값이 지금 우리 경제의 최대 현안인지도 의문이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남 집값을 잡았다고 해도 400조원에 달하는 부동(浮動) 자금이 언제 어디를 들쑤셔 경제를 뒤집어버릴지 모를 위험은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지금 정부가 가장 고민해야 할 문제는 성장률 2%대로 추락한 경제를 살리는 일이다. 기업 투자를 장려하고, 기업 창업이 활발하게 일어나 일자리를 만들어 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요즘 정부의 태도를 보면 강남 집값 문제만 잡으면 우리 경제가 만사형통할 듯이 정책적 올인 베팅 자세로 매달려 있으니 정부의 의도가 뭔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조선일보는 정부의 의도가 아리송하다지만, 강남 투기 잡는 것이 그다지 중요치 않은 것처럼 이야기하는 조선일보의 의도가 더 아리송합니다. 이 기사를 보면 몇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1. 사이버상에선 '민란', '폭동'이란 표현까지 나오고 있는 시점에서, 강남 집값 잡는 것보다 중요한 경제 현안은 무엇인가?
2. 400조원의 부동자금 투자처를 만들지 못하면 강남 집값을 잡아서는 안 되나?
3. 강남 집값을 잡는 것은 경제를 살리는 것이 아니고 등한시하는 것인가?
4. 2%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리려면 부동산 투기를 통한 경기 부양을 계속해야 한다는 말인가?
5. 언제 정부가 강남 집값 잡는 데 올인한 적 있었나?
궁금함을 애써 누르며 끝까지 읽고 있자니, 심한 무력감에 빠지게 됩니다. 부동산값이 널뛰든 말든, 상실감에 치를 떠는 평범한 대다수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하든 말든 경제성장률 수치나 신경쓰라는 말이니까요.
마지막으로 기사 하나를 더 소개합니다. 같은 조선일보 기사로 앞의 기사와는 참 많이 다릅니다. 조선일보, 정말 아리송하지 않습니까?
[차학봉] 집값 떨어뜨리는 확실한 방법(조선일보, 10월 31일)
둘째, 집을 갖는 데 대한 부담을 높여야 한다. 당장 보유세를 높일 수 없다면 정확하게 강남의 6억원짜리 주택을 갖는 데 대한 부담이 현재 얼마이고 이것이 매년 얼마씩 오를 것이라는 것을 설명해 줘야 한다. 셋째, 양도세 인상이라는 카드도 유효하다. 넷째, 대출 제한이나 금리 인상을 통해 내집 마련 자체를 제한하는 것이다.
물론 정부도 이런 내용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왜 통하지 않을까. 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아져 있는 데다 대책의 강도가 약한 데 원인이 있다. …때문에 정부의 대책이 다주택자뿐만 아니라 1가구 1주택자도 겨냥하지 않을 경우,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정부가 다주택자에 대해서는 10의 패널티를 준다면 1주택자에 대해서도 최소 3∼4정도의 패널티를 줘야만 집값이 떨어질 것이다.
- 이 글은 사이버참여연대 www.peoplepower21.org 월 1회 연재되는 칼럼 <이달의 세금 브리핑> 입니다.
- <오마이뉴스>는 사이버참여연대측과 협의해 이 글을 동시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