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싱 부츠는 슈퍼 스포츠 모터사이클을 타고 있는 라이더라면 꼭 갖춰야하는 라이딩 기어 중 하나다. 굳이 레이싱 수트가 없더라도 부츠는 꼭 갖추는 편이다. 레이싱 수트를 갖춰 입고 운동화를 신은 슈퍼 스포츠 라이더를 본 기억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XPD, XP7 WRS
모터사이클의 운동성능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하체로 정확하게 홀딩할 수 있어야 한다. 흔히 이야기하는 니그립(knee grip)은 하체 홀딩을 통틀어 언급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발목 아래의 역할은 절대적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레이싱 부츠는 본격적인 스포츠 주행을 고려한 만큼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나 뜨거운 여름철, 쉴새없이 돌아가는 모터사이클의 엔진 열기가 더해졌을 때는 말할 것도 없다.
▲ XPD의 레이싱 부츠를 신고 있는 WSBK의 레온 하슬람
XPD, 브랜드의 존재 가치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모터사이클 레이스는 단연 모토GP와 WSBK(월드 슈퍼바이크 챔피언십)일 것이다. 최고의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격전을 벌이는 레이스는 스포츠 라이딩을 즐기는 라이더에겐 선망의 대상이다.
물론 이런 레이스는 모터사이클 제조사와 각 파츠 제조사의 경쟁이기도 하지만, 라이더가 없다면 레이스는 열릴 수 없다. 당연히 라이더의 몸을 불의의 사고로부터 지켜낼 수 있는 라이딩 기어 역시 함께 경쟁을 벌인다.
▲지난 2009년 BSB(British Superbike Championship)에서 우승을 차지한 레온 카미에 선수 역시 XPD의 부츠를 신는다. 2010년 레온 카미에는 WSBK에서 맥스 비아지와 함께 아프릴리아 RSV4를 타고 있다.
XPD의 모체인 SPIDI(이하, 스피디)는 다이네즈, 알파인스타, 레빗 등과 함께 최상위급 레이스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제품을 개발해 일반 라이더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물론 단순히 제품의 완성도만으로 참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보호 성능과 기능성을 경쟁하기에 레이스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XPD 부츠 역시 마찬가지로 이런 최상위급 선수들이 애용하는 브랜드 가운데 하나다.
▲XPD의 부츠는 세계 정상급 레이스에서 활약하고 있다.
전문 디자이너의 손에서 태어나다XPD의 XP7 WRS는 지난 2008년 이태리 밀라노에서 열린 EICMA 모터사이클 쇼에서 첫 선을 보인 레이싱 부츠다. 당시 XPD의 최상위 클래스 레이싱 부츠인 XP7의 통기성을 높인 제품이 XP7 WRS다. WRS는 윈드 레이싱 시스템의 약자로 레이싱 부츠의 안전성과 충분한 통기성을 동시에 제공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부츠의 외관은 일반적인 레이싱 부츠와 크게 다른 모습은 아니다. 스테인리스 재질의 토 슬라이더(toe slider)와 XPD 로고가 배치된 신(shin:정강이) 가드, 앞쪽으로 살짝 기울여진 부츠의 형상 등이 그렇다. 균형이 잘 잡힌 디자인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몇 몇 특별한 점들이 눈에 띈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된 토 슬라이더
사실 XPD의 XP7 WRS 부츠는 이태리의 로비아노 디자인(Robbiano design)에서 디자인된 제품이다. 로비아노 디자인의 대표인 세르지오 로비아노는 그 유명한 마시모 탐부리니(Massimo Tamburini)와 함께 CRC 그룹에서 모터사이클 디자인을 진행한 경력이 있다.
▲로비아노 디자인의 세르지오 로비아노. 사진은 2004년 모터사이클 디자인 어워드에서 슈퍼스포츠 부문에서 수상했을 때의 것이다.
탁월한 디자인으로 명성이 높은 비모타(Bimota)의 500V듀에(500VDue), SB8R, DB5, DB6와 같은 모터사이클이 로비아노의 손에서 탄생했으며, 최근에는 아프릴리아의 RSV4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맡기도 했다. 세계 최고의 모터사이클 디자이너 중 하나인 로비아노 디자인에서 디자인한 XP7 WRS는 그 명성이 헛되지 않음을 증명한다.
레이싱 부츠는 불편하다?본격적인 레이싱 부츠의 조건 중 하나는 유사시에 정강이부터 발목, 발 전체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뿐인가, 모터사이클의 변속 기어 레버나 브레이크를 유연하게 조작할 수 있어야하며, 스텝에 정확하게 체중을 이동시켰을 때의 감각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안전상의 이유로 발의 움직임은 제한적이며, 단단한 외부 구성 때문에 신고 벗는 것조차도 힘이 드는 레이싱 부츠도 있다. 하지만 XPD의 XP7 WRS는 이런 불편한 부분은 최소화하면서 본연의 기능인 안전성과 조작감을 극대화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XP7 WRS는 벨크로와 지퍼로 부츠를 고정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부츠의 가장 윗부분인 정강이 부분이 다리 안쪽으로 벨크로가 감싸지는 형태가 일차적으로 고정하며, 정강이와 발목의 중간 부분을 다시 한번 조이는 이중 고정 방식을 채택했다.
일반적으로 정강이 가장 위쪽만 조이는 구조의 레이싱 부츠와 달리 이중 고정 방식은 생각보다 큰 차이를 보여준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이 부분은 무릎 아래에서 가장 너비가 넓기 때문에 단단하게 조인다고 하더라도 근육이 부푼 상태와 줄어든 상태의 유격이 클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해 정강이 중간 부분으로 내려간 조임끈은 부츠가 다리 전체에 밀착되도록 돕는 한편, 조여지는 부분을 분할하면서 좀 더 편안한 착용감을 제공한다.
부츠를 신고 벗을 때의 편리함도 상당하다. 부츠 바깥쪽과 안쪽의 벨크로와 지퍼를 각각 내린 상태에서는 일반 운동화를 벗는 것 이상으로 편하게 신고 벗을 수 있다. 타이트하게 부츠를 조인 상태에서도 3D 메시 소재가 사용된 안감 덕분에 쾌적함도 충분한 수준이다.
부츠의 깔창은 가운데 부분이 볼록하게 처리되어 있는데, 이것을 밟을 때 생기는 공기 흐름이 발생할 수 있도록 했다. 실제 효과 여부를 떠나 부츠 내부의 공기를 순환시킬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방법을 고려하고 있는 점은 높게 평가할 부분이다.
깔창 아래에는 약 2~3mm 두께의 폼이 깔려있다. 이 폼은 그 두께만큼의 쿠션감이 더해지는 것은 물론, 부츠 내부의 깔창이 밀려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도 함께 한다. 이런 세심한 배려들을 통해 XP7 WRS의 착용감이 완성되는 것이다.
▲깔창을 빼낸 상태의 부츠 내부 모습, 회색의 폼 패드가 깔려있다.
쿨(cool)한 이에게 권한다본디 영단어 쿨(cool)은 ‘시원한, 서늘한’이란 의미를 갖고 있지만, 현재는 하나의 감탄구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XP7 WRS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쿨’한 레이싱 부츠가 될 것이다.
겉보기에도 드러나는 것처럼 천연 가죽 소재로 이뤄진 갑피 거의 대부분엔 펀칭을 가해, 통기성을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히 ‘시원한’ 레이싱 부츠로만 평가하기엔 XP7 WRS가 아깝다.
단순히 레이싱 부츠의 모양을 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부분들은 본연의 임무를 기대 이상으로 해내기 때문이다. 레이싱 부츠라면 대부분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는 시프트 패드의 경우만 살펴보더라도 그렇다. 라이더의 발등과 발가락 사이에 위치하는 이 시프트 패드는 발의 양 얖으로 고정된 형태로 실제 사용에서도 든든한 아치와 같은 역할을 한다.
단순히, 기어 변속 시의 정확함 뿐만 아니라 보호 성능까지도 키워낸 것이다. 그 모습도 단순히 패드를 덧붙인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알루미늄 스틸 제질로 제작된 토 슬라이더(toe slider)는 그 범위가 넓은 편이며, 함께 제공되는 육각 렌치로 쉽게 풀고 고정할 수 있다.
렌치로 고정하는 방식을 사용하면서 공구가 없이는 교환이 어렵다는 단점이 발생하지만, 반대로 손으로도 쉽게 떼어낼 수 있는 토 슬라이더처럼 분실의 위험이 없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XP7 WRS의 밑창은 해외 유명 라이딩 기어 및 일반 신발에도 널리 사용되는 스카이워크(Skywalk)의 것이다. 전문 브랜드의 제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그 품질은 이미 인증된 것이라고 할 지라도, XP7 WRS의 밑창은 여지 없이 레이스 마인드가 투영됐다.
해외 유명 레이스를 눈여겨 본 라이더나 실제로 슈퍼 스포츠 모터사이클을 타고 있는 라이더라면 잘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스텝은 발을 올려두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밟기 위한 것이다. 그럼 발의 어느 부분으로 스텝을 밟을까.
일반적인 상황에서라면 발 전체의 회전운동을 발휘하기 위해 부츠의 뒷굽이 정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레이스에서의 적극적이고 빠른 체중 이동을 위해서는 뒷꿈치를 들고 점프할 때, 지면에 닿는 부분이 스텝에 위치해야 한다. 당연히 레이싱 부츠는 발의 모양대로 접혀야 하는데, XPD는 이 부분의 밑창 좌 우측에 홈을 냈다.
이 부츠를 자신의 발에 맞추는 노력이 없이도,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준다. 실제 모터사이클에 올라 앉아서 체중 이동을 가정해보더라도 완벽에 가깝다. XPD는 정말 레이스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브랜드가 틀림없다.
한 주류 회사의 광고 중 어떤 것이 ‘쿨’ 한 것인지 모델이 궁굼해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이 질문을 똑같이 라이더에게 던진다면 어떨까. 어떤 라이더가 ‘쿨’ 한 라이더일까. 여러가지 조건들이 앞서겠지만, 일반적인 가치가 앞서 자신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포기하는 이가 ‘쿨’ 한 라이더는 아니란 생각을 한다.
XP7 WRS의 단점을 꼽자면 역시 가격이다. 물론 비슷한 가격대의 상위급 레이싱 부츠들도 존재하지만,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가격인 것은 틀림없다. XP7 WRS의 디자인이, 보호 성능이, XPD의 레이싱 마인드 등등이 라이더의 마음에 쏙 들었다면 단숨에 현금 결제로 구입하든, 꼬박 꼬박 돈을 모아 구입하든 원하는 바를 이루자. 물론, 그 가치가 당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