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엄경산림 대법회 75강-4 (2016. 5. 2.)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二十三
十廻向品 第二十五之一
四. 十廻向
2. 第一 救護一切衆生離衆生相廻向
(6) 代苦救護
나. 廻向心 다. 保護衆生
라. 得樂 마. 智慧炬
바. 行願具足
(7) 衆生濟度
(8) 報恩廻向
(9) 離相廻向
가. 種種廻向 나. 業과 智慧
(10) 廻向의 利益
여러분도 어디 가서 다 스승으로 대접받는 스님들인데,
여기 와서는 또 이렇게 합니다. 저에게는 여러분이 스승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공부시키지 제가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이렇게 화엄경공부 같이 하려고 저는 사실은 상당히 공부를 많이 하거든요. 그러니 여러분이 저를 공부시키는 겁니다.
제가 쉬면서 TV를 보다보니까 이상우라고 하는 남자가수 있지요? 자식이 형제인가 있는데요. 큰 얘가 장애인입니다.
그래서 장애인을 위한 좋은 일을 많이 하더라고요.
자기 자식도 위하지만, 그것 따라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면서 하는 소리가 그겁니다.
“내 장애아는 나의 스승이다. 왜냐?
장애있는 아들이 없었으면 내가 그런 사람들에게 눈
돌릴 줄 몰랐다. 그리고 그런 불행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
그렇게 많다는 것도 그 아이를 통해서 알게 됐다.”
그동안은 몰랐대요.
장애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있는 줄도 전혀 몰랐다는 겁니다. 안 그러겠어요? 노래나 하고 계속 그런 연예인들 세상에서 살았으니 아마 일반 서민들 보다 더 몰랐을 겁니다. 전혀 몰랐대요. 그런데 “저 아이를 통해서 내가 그러한 세상에 눈을 뜨게 됐고, 그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알고,
그 사람들을 위해서 내가 헌신할 줄도 알았다. 전부 저 아이가 나를 가르쳤다. 그러니 나의 스승이 아니고 누구냐?”
이러더라고요.
야~~ 연예인 치고도 그 정도 되면 아주 훌륭한 연예인이지요. 그리고 좋은 일을 많이 하고요. 사실 그렇게 돌아가는 겁니다. 인연 관계가 전부 그렇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주 감동을 받았습니다.
‘야~~ 참, 괜찮은 말씀이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공부내용이 아주 참 좋은 내용이네요.
좋은 내용이 나오면 제가 열을 많이 내고, 목소리를 높여서 목이 쉬이갑니다.
나. 廻向心
復作是念호대 我所修行이 欲令衆生으로
皆悉得成無上智王이라 不爲自身하야 而求解脫이요
但爲救濟一切衆生하야 令其咸得一切智心하야
度生死流하야 解脫衆苦라하며 復作是念호대
我當普爲一切衆生하야 備受衆苦하야
令其得出無量生死衆苦大壑하고
我當普爲一切衆生 於一切世界와 一切惡趣中에
盡未來劫토록 受一切苦호대 然常爲衆生하야
勤修善根이니 何以故오 我寧獨受如是衆苦언정
不令衆生으로 墮於地獄하고
我當於彼地獄畜生閻羅王等險難之處에 以身爲質하야
救贖一切惡道衆生하야 令得解脫이라하며
廻向心(회향심)
復作是念(부작시념)호대, 이러한 생각을 하되,
我所修行(아소수행)이, 내가 수행하는 바가,
欲令衆生(욕영중생)으로, 중생들로 하여금,
皆悉得成無上智王(개실득성무상지왕)이라.
無上智王.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지혜의 왕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말입니다. 내가 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중생이 모두 전부 지혜의 왕이 되게 하는 것이다.
智王 = 지혜의 왕은 70억 인구가 다 돼도 경쟁이 없습니다. 경쟁 없어요. 싸울 필요도 없고, 투표할 일도 없고,
서로 시기 질투할 일도 없고 그렇습니다. 지혜의 왕.
다 비어있는 자리입니다. 누구든지 앉으면 되는 자리입니다.
不爲自身(불위자신)하야 而求解脫(이구해탈)이요.
자신을 위해서 해탈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但爲救濟一切衆生(단위구제일체중생)하야,
일체중생을 다만 구제하기 위해서,
令其咸得一切智心(영기함득일체지심)하야,
또 그들로 하여금 전부 일체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한다.
불교에는 뭐니 뭐니 해도 지혜입니다. 지혜가 우선입니다.
지혜와 자비. 또는 자비의 종교ㆍ지혜의 종교. 그러는데요. 사실은 지혜가 우선입니다. 그런데 어느 것이 우선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 치우친 뜻이 있지만, 그 지혜가 없이 자비를 행하는 것은 情에 떨어지기가 일쑤입니다.
전부 情에 다 떨어집니다. 그런데 지혜가 있고, 자비가 없으면 그것도 사실은 쓸모없는 지혜입니다. 지혜는 자비를 잘 쓰자고 하는 그런 도구에 불과한 것이고, 씨앗은 지혜라면 결국 열매는 자비입니다. 자비의 실천행입니다.
그래서 지혜의 왕 = 無上智王. 좋네요.
그 다음에 一切智心.
度生死流(도생사류)하야, 생사의 흐름에서 건너서,
解脫衆苦(해탈중고)라하며,
온갖 고통에서 벗어나게 한다면,
復作是念(부작시념)호대, 또 이러한 생각을 하되,
我當普爲一切衆生(아당보위일체중생)하야,
내가 마땅히 널리 일체중생을 위해서,
備受衆苦(비수중고)하야,
온갖 갖추어서 고통을 갖추어서 다 받겠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받겠다. = 受備.
令其得出無量生死衆苦大壑
(영기득출무량생사중고대학)하고,
한량없는 생사의 온갖 고통의 큰 구렁에서 벗어나게 하고, 我當普爲一切衆生(아당보위일체중생)하야,
내가 널리 일체중생을 위해서
於一切世界(어일체세계)와, 일체 세계와
一切惡趣中(일체악취중)에
盡未來劫(진미래겁)토록, 미래제가 다 할 때까지
受一切苦(수일체고)호대,
일체 苦를 받되, 모든 고통을 받되,
然常爲衆生(연상위중생)하야,
그러나 항상 중생을 위해서,
勤修善根(근수선근)이니,
고통 받는 것만 가지고는 사실은 아무 의미가 없지요.
그러면서 한편 勤修善根해야 됩니다.
선근을, 좋은 일을 부지런히 닦아야 됩니다.
그래 또 회향을 하지요. 고통을 대신 받겠다.
참 좋은 일이긴 하지요. 한편 끊임없이 선근을 닦아야 된다.
何以故오? 왜냐?
我寧獨受如是衆苦(아영독수여시중고)언정,
내가 차라리 홀로 이러한 온갖 고통을 받을지언정,
不令衆生(불령중생)으로 墮於地獄(타어지옥)하고,
중생들로 하여금 지옥에 떨어지지 않게 하고,
我當於彼地獄畜生閻羅王等險難之處
(아당어피지옥축생염라왕등험난지처)에
以身爲質(이신위질)하야, 몸으로서 바탕이 되어요.
몸으로서 그 험난한 곳의 바탕이 되어서,
救贖一切惡道衆生(구속일체악도중생)하야,
일체 악도 중생을 구제해서 면하게 한다. 贖罪(속죄).
그 죄를 면하게 한다. 그래서
令得解脫(영득해탈)이라하니라. 하여금 해탈케 한다.
참, 지옥ㆍ축생ㆍ염라왕 등 그런 險難之處에 내 몸이 바탕이 되어서, ‘그것이 되어서’ 이 말입니다.
다. 保護衆生
復作是念호대 我願保護一切衆生하야
終不棄捨라하고 所言誠實하야 無有虛妄이니
何以故오 我爲救度一切衆生하야 發菩提心이요
不爲自身하야 求無上道며 亦不爲求五欲境界와
及三有中種種樂故로 修菩提行이니
何以故오 世間之樂이 無非是苦며 衆魔境界라
愚人所貪이요 諸佛所呵시니 一切苦患이 因之而起며
地獄餓鬼와 及以畜生閻羅王處에 忿恚鬪訟하고
更相毁辱하는 如是諸惡이 皆因貪着五欲所致라
耽着五欲에 遠離諸佛하야 障碍生天이어든
何况得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아
菩薩이 如是觀諸世間에 貪小欲味하야 受無量苦하고
終不爲彼五欲樂故로 求無上菩提하야 修菩薩行이요
但爲安樂一切衆生하야 發心修習하야 成滿大願하야
斷截衆生의 諸苦罥索하야 令得解脫이니라
保護衆生(보호중생). 중생들을 보호한다.
復作是念호대
我願保護一切衆生하야,
나는 원컨대 일체중생을 보호해서,
終不棄捨(종불기사)라하고, 마침내 棄捨하고,
버리지 않는다 하고,
所言誠實(소언성실)하야, 말한 바가 성실해서,
無有虛妄(무유허망)이니, 허망함이 없음이니,
何以故오?
我爲救度一切衆生(아위구도일체중생)하야,
내가 일체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해서,
發菩提心(발보리심)이요, 보리심을 발하게 함이요,
不爲自身(불위자신)하야, 내 자신을 위해서,
求無上道(구무상도)며, 가장 높은 도를 구하는 것이 아니며,
亦不爲求五欲境界(역불위구오욕경계)와
及三有中에 種種樂故(급삼유중종종락고)로,
5욕 경계와 그리고 三有中에, 3계 가운데서 가지ㆍ가지
즐거움을 구하기 위한 까닭으로
修菩提行(수보리행)이니,
보리행을 닦는 것이 아니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보살불교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利他心입니다. 利他心! 끝까지 利他心입니다. 중생을 위해서, 고통 받는 중생을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발심도 중생을 위해서 하고, 보살행 하는 것도 중생을 위해서 하고, 선근을 닦는 것도 중생을 위해서 하고,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은 아무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를 위한 것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는 것이 보살의 정신입니다. 그것이 보리심이고, 그것이 利他心이고 보살정신이고요.
何以故오? 世間之樂(세간지락)이
無非是苦(무비시고)며, 고통 아닌 것이 없으며,
衆魔境界(중마경계)라.
온갖 마의 경계들뿐이다. 말입니다.
愚人所貪(우인소탐)이요,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것을 탐하는 바고,
諸佛은 所呵(제불소가)시니,
모든 깨달은 사람들은 전부 그것을 꾸짖는 바고, 경계하는 바다.
一切苦患(일체고환)이, 일체고통과 우환들이
因之而起(인지이기)며, 그것으로 인해서 일어나며,
地獄과 餓鬼(지옥아귀)와
及以, 그리고
畜生閻羅王處(축생염라왕처)에,
忿恚鬪訟(분에투송)하고,
분내고 화내고 싸우고 소송하고,
更相毁辱(갱상훼욕)하는,
다시 거기에 더하여 毁辱. 헐고 욕하고, 그래서
如是諸惡(여시제악)이
皆因貪着五欲所致(개인탐착오욕소치)라.
모두가 5욕을 탐착하는 것을 인한 소치다. 말입니다.
5욕은 眼耳鼻舌身. 5根이 서로 좋은 것만 탐하는 것.
경전에서 5욕은 그겁니다. 財色身名壽가 아닙니다.
財色身名壽는 유교에서 나온 용어이고, 여기서 5욕은
眼耳鼻舌身, 5根이 하고자 하는 것. 좋아하는 것.
눈은 좋은 것만 보려하고, 귀는 좋은 소리, 자기 칭찬하는 소리만 들으려고 하고, 전부 그런 것입니다.
耽着五欲(탐착오욕)에, 5욕을 탐착함에,
遠離諸佛(원리제불)하야,
모든 부처님들은 다 멀리 떠나서,
그렇지요. 5蘊이나 5根이나 좋아할 것만 자꾸 구하고 그러다보면, 깨달은 사람ㆍ지혜 있는 사람, 그런 길은 저절로 멀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障碍生天(장애생천)이어든,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장애하거든,
何况得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
(하황득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아?
어찌 하물며 최상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는가?
菩薩이
如是觀諸世間(여시관제세간)에,
이와 같이 모든 세간을 관찰함에,
貪小欲味(탐소욕미)하야 受無量苦(수무량고)하고,
이것은 여러 곳에서 인용하는 글입니다. 조사스님들이 참 많이 인용했습니다. 아주 조그마한 욕망의 맛을 탐해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으며, 세상은 온통 그렇지 않습니까?
절 집안이라 하더라도 그런 관점에서 살면 전부 여기에 다 해당 됩니다. 貪小欲味하야 受無量苦라.
그런 경우가 예를 안 들어도 무수히 많지요.
終不爲彼五欲樂故(종불위피오욕락고)로,
마침내 저 5욕 낙을 위하지 않은 고로,
求無上菩提(구무상보리)하야, 無上菩提를 구해서
修菩薩行(수보살행)이요, 보살행을 닦음이요.
5욕 낙을 위하지 않은 까닭에 無上菩提를 구하고,
보살행을 닦음이요.
但爲安樂一切衆生(단위안락일체중생)하야,
일체중생을 안락케 하기 위해서,
發心하고 修習(발심수습)하야
成滿大願(성만대원)하야, 큰 원을 成滿. 원만히 성취해서
斷截衆生(단절중생)의 諸苦罥索(제고견색)하야,
온갖 중생들의 여러 가지 고통의 그물과, 고통의 멍에,
이런 것을 끊어서 = 斷截해서
令得解脫이니라. 해탈케 하나니라.
라. 得樂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復作是念호대
我當以善根으로 如是廻向하야
令一切衆生으로 得究竟樂과 利益樂과 不受樂과
寂靜樂과 無依樂과 無動樂과 無量樂과
不捨不退樂과 不滅樂과 一切智樂이라하며
得樂(득낙). 낙을 얻는다.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復作是念호대
我當以善根(아당이선근)으로, 내가 마땅히 선근으로써
如是廻向(여시회향)하야, 이와 같이 회향하여,
令一切衆生(영일체중생)으로,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得究竟樂(득구경락)과 利益樂(이익락)과
不受樂(불수락)과, 받아들이지 않는 낙과,
寂靜樂(적정락)과 無依樂(무의락)과
無動樂(무동락)과 無量樂(무량락)과
不捨不退樂(불사불퇴락)과 不滅樂(불멸락)과
一切智樂(일체지락)이라하며,
일체지혜의 낙을 얻게 한다.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그러한 즐거움을 얻게 하는 것이다. 그것 得樂이지요. 낙을 얻는 것이다.
마. 智慧炬
復作是念호대 我當與一切衆生으로 作調御師하고
作主兵臣하야 執大智炬하고 示安隱道하야
令離險難하야 以善方便으로 俾知實義라하며
又於生死海에 作一切智善巧船師하야 度諸衆生하야
使到彼岸이니라
智慧炬(지혜거). 큰 지혜의 횃불.
復作是念(부작시념)호대
我當與一切衆生(아당여일체중생)으로,
내가 마땅히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作調御師(작조어사)하고, 調御師가 되어서,
調御師. = 지도자.
作主兵臣(작주병신)하야, 병사를 맡은 신하가 되어서,
군대를 맡은 신하. 무슨 장군이나, 무슨 제갈량이나,
손무나 같은 그런 신하가 되어서
執大智炬(집대지거)하고, 지혜의 횃불을 잡고,
그런 사람들은 지혜가 있어야 됩니다.
제갈량지혜 대단하잖아요.
示安隱道(시안은도)하야, 안온한 길을 보이며,
令離險難(영리험난)하야, 험난한 곳을 떠나게 해서,
以善方便(이선방편)으로, 훌륭한 방편으로써
俾知實義(비지실의)라하며,
실다운 뜻을 알도록 한다 하며,
又於生死海(우어생사해)에, 또 생사의 바다에서
作一切智善巧船師(작일체지선교선사)하야,
일체지혜의 善巧船師. 선장이 되어서, 아주 지혜롭고 그리고 아주 익숙한 善巧. 아주 익숙한 선장이 되어서,
度諸衆生(도제중생)하야, 모든 중생을 건네서,
使到彼岸(사도피안)이니라. 저 언덕에 이르게 한다.
彼岸에 이르게 하나니라.
바. 行願具足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諸善根으로
如是廻向하나니
所謂隨宜救護一切衆生하야 令出生死하며
承事供養一切諸佛하야 得無障碍一切智智하며
捨離衆魔하고 遠惡知識하야 親近一切菩薩善友하며
滅諸過罪하고 成就淨業하야
具足菩薩廣大行願無量善根이니라
行願具足(행원구족).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諸善根(이제선근)으로, 모든 선근으로써
如是廻向(여시회향)하나니, 이와 같이 회향하나니,
所謂隨宜救護一切衆生(소위수의구호일체중생)하야,
편의를 따라서, 마땅함을 따라서 일체중생을 구호해서,
令出生死(영출생사)하며, 생사에서 벗어나게 하며,
承事供養一切諸佛(승사공양일체제불)하야,
一切諸佛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게해서,
得無障碍一切智智(득무장애일체지지)하며,
장애 없는 一切智智를 얻으며,
捨離衆魔(사리중마)하고, 衆魔를, 온갖 마를 다 떠나고,
遠惡知識(원악지식)하야, 惡知識을 멀리해서,
親近一切菩薩善友(친근일체보살선우)하며,
일체보살과 선지식을 친근하며,
滅諸過罪(멸제과죄)하고, 모든 허물과 죄를 소멸하고,
成就淨業(성취정업)하야, 淨業을, 청정한 업을 성취해서,
具足菩薩廣大行願無量善根
(구족보살광대행원무량선근)이니라.
보살의 광대한 행원과 무량한 선근을 구족하느니라.
참 좋은 내용입니다.
(7) 衆生濟度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諸善根으로 正廻向已에
作如是念호대 不以四天下衆生이 多故로
多日出現하고 但一日出하야 悉能普照一切衆生하며
又諸衆生이 不以自身光明故로 知有晝夜하야
遊行觀察하야 興造諸業하고 皆由日天子出하야
成辨斯事나 然彼日輪은 但一無二니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하야 修習善根廻向之時에 作是念言호대
彼諸衆生은 不能自救어니 何能救他리오
唯我一人이 志獨無侶하야 修習善根하야 如是廻向이니
所謂爲欲廣度一切衆生故며 普照一切衆生故며
示導一切衆生故며 開悟一切衆生故며
顧復一切衆生故며 攝受一切衆生故며
成就一切衆生故며 令一切衆生歡喜故며
令一切衆生悅樂故며 令一切衆生斷疑故니라
衆生濟度(중생제도)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以諸善根(이제선근)으로, 모든 선근으로써
正廻向已(정회향이)에, 바로 회향하고 나서,
作如是念(작여시념)호대, 이와 같은 생각을 짓되,
不以四天下衆生(불이사천하중생)이 多故(다고)로,
사천하의 중생들이 많기 때문에,
多日出現(다일출현)하고,
많은 태양이 출현하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태양하나만 출현해도 사천하 중생들이 다 혜택 받는데,
뭐 하려고 중생 한사람ㆍ한사람 따라서, 하나ㆍ하나의
태양이 다 뜰 필요는 없다.’ ←이런 뜻입니다.
但一日出(단일일출)하야, 한태양이 출현해서
悉能普照一切衆生(실능보조일체중생)하며,
일체중생을 다 능히 환히 비춘다. 말입니다.
중생만 비추나요? 온갖 식물 동물 할 것 없이 사물을 다 비춘다.
又諸衆生이, 또 모든 중생이,
不以自身光明故(불이자신광명고)로,
自身光明을 쓴 고로,
知有晝夜(지유주야)하야, 晝夜가 있음을 알아서,
遊行하고 觀察(유행관찰)하야,
그렇지요. 밤에는 들어가서 자고, 낮에는 활동하고요.
遊行하고 觀察해서
興造諸業(흥조제업)하고, 온갖 업을 짓지 않고,
(不以自身光明故의 不자를 여기 새깁니다.)
皆由日天子出(개유일천자출)하야,
자기광명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日天子出.
태양이 나와서 세상을 환히 비추니까 成辨斯事입니다.
成辨斯事(성변사사)나,
이러한 온갖 일들을 내가 전부 만들어 간다. 이 말입니다.
成辨해 가나니,
然彼日輪(연피일륜)은, 그러나 저 태양은,
但一無二(단일무이)니,
오직 하나지 둘이 없다. 말입니다.
菩薩摩訶薩도
亦復如是(역부여시)하야, 또한 이와 같아서,
修習善根廻向之時(수습선근회향지시)에,
선근을 修習하여 회향할 때에,
作是念言(작시념언)호대, 이러한 생각을 하되,
彼諸衆生(피제중생)은, 저 모든 중생은,
不能自救(불능자구)어니, 능히 스스로 구제하지 못하니,
何能救他(하능구타)리오?
그러니 능히 어찌 다른 사람을 구제하겠는가?
唯我一人(유아일인)이, 오직 나! 태양이 하나 듯이,
보살로서 긍지와 자부심이 참 대단하지요.
‘내가 중생들을 전부 구제할 것이다.’ 이 말입니다.
唯我一人이 志獨無侶(지독무려)하야, 오직 홀로,
벗이 없어요. 같이할 사람도 없어요. 그래서
修習善根(수습선근)하야 如是廻向(여시회향)이니,
그랬습니다. 그러한 마음을 갖는다. 이겁니다.
세상에 보살이 많겠지요. 보살이 많지만,
‘그 보살에게 의지하거나 부탁 하거나, 믿거나 그렇게 하지 않고, 나는 내 임무를 내가 완수한다.’←이런 뜻입니다.
所謂爲欲廣度一切衆生故(소위위욕광도일체중생고)며,
일체중생을 널리 제도하고자 하는 까닭이며,
普照(보조)一切衆生故며,
일체중생을 널리 비추는 까닭이며,
示導(시도)一切衆生故며,
일체중생을 인도함을 보이는 연고며, 인도하는 연고며,
開悟(개오)一切衆生故며,
일체중생을 開悟하는 연고며,
顧復(고부)一切衆生故며,
일체중생들을 되돌아보는, 일체중생을 보살피는 연고며,
攝受(섭수)一切衆生故며,
일체중생을 攝受하는 연고며,
成就(성취)一切衆生故며,
일체중생을 성취하는 연고며,
令一切衆生歡喜故(영일체중생환희고)며,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환희케 하는 연고며,
令一切衆生悅樂故(열락고)며,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悅樂. 기쁘게 하는 연고며,
令一切衆生 斷疑故(단의고)니라.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의심을 끊게 하는 연고이니라.
그렇습니다. ‘이러한 각오로 오직 내가 홀로하지,
다른 사람 기다리고 할 것도 없다.’ 이겁니다.
보살은 그렇게 해야지요. 그것 뭐
‘같이 해야 된다. 종단이 안 해서,’ 자기가 하면 되지,
무슨 종단이 해주길 바라요?
‘나라가 해야 되는데,’ 나라가 해주길 뭘 바라요?
나라나 종단은 실체가 없는 것인데요. 실체가 없습니다.
소임자 계속 바뀝니다. 대통령도 바뀌고, 종문의 소임자들도 바뀌고요. 실체 없습니다.
세상에 허망하고 실체 없기는 국가니 종단이니 하는 것
같은 것이 없습니다. 심지어 큰절에 사중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더 축소해서 보면 어떻습니까? 자기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몸도 책임진 어떤 실체는 아무도 없습니다.
눈도 아니고, 코도 아니고, 손도 아니고, 팔도 아니고,
전부 뿔뿔이 다 흩어집니다.
四大各離(사대각리)하니
今者妄身(금자망신)은
當在何處(당재하처)오.
地水火風사대가 각각 뿔뿔이 흩어지니, 지금 망령된 이 몸뚱이는 도대체 어디 있느냐? 우리 불자들은 최소한도 그런 이치는 알고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이 = 그런 지혜가 자신을 이렇게 지탱해주는 아주 좋은 지팡이가 되기
도 하고 그래요. 그런 데에 대한 안목이 하나의 지혜로써, 그런 것이 큰 의지처가 되기도 합니다.
그것 뭐 국가가 어떻느니, 종단이 어떻느니, 사중이 어떻느니, 누가 책임집니까? 청와대 기둥이 책임지는가요?
기왓장이 책임지는가요? 그런데 계속 그렇게 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계속 “정부가 어쩌고ㆍ정부가 어쩌고...”
참~~ 답답하지요. 정부는 실체가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데 무슨 그림자 보고하는 소리지요. 그것은 그림자 보고요. 따지고 보면 그것은 그림자 보고 하는 소리입니다.
幻影. 환영은 그림자 보다 더 한 것이지요.
그림자는 그래도 실체가 있어서 나타나는 것이 그림자지
만, 환영은 잘못 본겁니다. 헛것입니다. 내가 눈병 나서,
착각해서 보이는 어떤 영상이 幻影이잖아요. 사실은 환영
보고 하는 겁니다. 종단이니, 정부니, 사중이니, 뭐니 하는 것은 전부 환영보고 하는 소리입니다. 그런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
또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면, 내 몸에 대해서 또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그것 역시 환영입니다.
‘내가 있다.’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환영입니다.
단순하게 환영일 뿐이지, 실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환영에 속아서 그동안 잘도 살아왔지
요. 환영인데 환영에 속아서 그러려니 하고 살아온 겁니다.
(8) 報恩廻向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復作是念호대 我應如日이
普照一切호대 不求恩報하야 衆生이 有惡이라도
悉能容受하고 終不以此로 而捨誓願하며
不以一衆生惡故로 捨一切衆生하고
但勤修習善根廻向하야 普令衆生으로 皆得安樂하며
善根雖少나 普攝衆生하야 以歡喜心으로
廣大廻向이니 若有善根이라도 不欲饒益一切衆生이면
不名廻向이요 隨一善根하야 普以衆生으로
而爲所緣하야사 乃名廻向이니라
報恩廻向(보은회향). 은혜에 보답하는 회향.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復作是念호대
我應如日(아응여일)이, 내가 응당히 저 태양이
普照一切(보조일체)호대, 일체 사물을 널리 비추되,
不求恩報(불구은보)하야, 은혜 갚기를 구하지 아니해서,
衆生이 有惡(유악)이라도 悉能容受(실능용수)하고,
악이 있더라도, 아주 나쁜 놈도 태양은 비춰주지요.
悉能容受하고.
終不以此(종불이차)로 而捨誓願(이사서원)하며,
이것으로써 서원을 버리지 않아요.
태양이 비출 것 안 비추지 않는다. 이겁니다.
햇빛 거둬들이거나, 무슨 햇빛만 비추고 따스한 기운은 없애거나 그렇게 않아요. 그대로 똑 같습니다.
不以一衆生惡故(불이일중생악고)로,
중생이 악한 놈이, 나쁜 놈이 있다고 해서
捨一切衆生(사일체중생)하고,
일체중생을 버리지 않아요. ‘나쁜 놈이 있는데, 아이고 그것, 저것 때문에 다른 사람도 손해 보겠다. 다른 사람에게
까지도 은혜를 베풀지 못하겠다.’우리는 그렇게 하잖아요.
사실은 그런 경우 많잖아요. 그런데 보살은 그렇게 아니합니다. 아무리 나쁜 놈이 있다 하다라도 그것까지 다 감싸고 같이 가는 겁니다. 더불어 같이 가는 것이지요.
한 衆生이 惡故로 일체중생을 버리지 아니하고,
그랬습니다.
但勤修習善根廻向(단근수습선근회향)하야,
다만 부지런히 선근회향을 닦아서
普令衆生(보령중생)으로
皆得安樂(개득안락)하며, 다 안락하게 한다.
모든 중생을 전부 안락하게 한다.
1점짜리 중생도 있을 수 있을 것이고, 마이너스 중생도
있을 수 있을 것이고, 100점짜리 중생도 있을 수 있을 것
이고, 별별 중생들 다 있지요. 으레 그런 것을요.
그렇게 알고 보살은 그것을 다 감싸고, 품고 가는 것이지
요.
善根이 雖少(선근수소)나, 선근이 비록 적으나
普攝衆生(보섭중생)하야, 중생을 널리 섭수해서
以歡喜心(이환희심)으로 廣大廻向(광대회향)이니,
환희 심으로써 광대하게 회향함이니,
若有善根(약유선근)이라도,
만약 어떤 이가 선근이 있다 하더라도
不欲饒益一切衆生(불욕요익일체중생)이면,
일체중생을 요익하게 하지 않고자 하면,
不名廻向(불명회향)이요. 그것을 회향이라 아니해요.
중생을 이익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것은 회향이 아니지요.
不名廻向이지요.
隨一善根(수일선근)하야, 한 선근을 따라서
普以衆生(보이중생)으로, 널리 중생으로써,
而爲所緣(이위소연)하야사,
그 널리 중생들을 인연할 바를 삼아요.
전부 ‘나하고 인연 있는 사람이다.ㆍ인연 있는 사람이다.’
라고 그렇게 해야
乃名廻向(내명회향)이니라.
그래야 비로소 회향이다. 말입니다.
마음이 툭 터져야 됩니다.
툭 터져서 어떤 경계도 없고, 어떤 분별도 없고,
취사선택이 없고, 가리는 것도 없고, 그 쯤 돼야 그것이...
至道無難(지도무난)이나
唯嫌揀擇(유혐간택)이라.
但莫憎愛(단막증애)하면
洞然明白(통연명백)이라.
명백하면 어쩌자는 말입니까?
洞然明白하면 어쩌자고요? 중생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없으면 그것 아무 소용이 없는 겁니다.
하~~ 말은 기가 막히지요.
至道無難이나 唯嫌揀擇이라.
지극한 도는 하나도 어려움이 없고 쉽다.
但莫憎愛하면 洞然明白이라.
증애심만 없을 것 같으면, 간택심만 없을 것 같으면 훤하
다. 훤해서 어떻게요? 그 다음에 뭐 하려고요?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그 다음이요. 明白하면 일단은 좋지요.
자기는 좋지요.
明白하다고해서 딱~~ 그냥, 그것만 품고 앉아 있으면 그것은 천하의 참 小乘. 附佛法外道(부불법외도).
대승불교에서 그러지요. 불법에 붙어사는 외도다.
이 화엄경 같은 보살대승불교에서 보면, 특히 10회향 품
같은 데서 보면 그런 것이 참 같잖지요.
(9) 離相廻向
가. 種種廻向
安置衆生於無所着法性廻向과
見衆生自性不動不轉廻向과 於廻向에
無所依無所取廻向과 不取善根相廻向과
不分別業報體性廻向과 不着五蘊相廻向과
不壞五蘊相廻向과 不取業廻向과 不求報廻向과
不染着因緣廻向과 不分別因緣所起廻向과
不着名稱廻向과 不着處所廻向과 不着虛妄法廻向과
不着衆生相世界相心意相廻向과
不起心顚倒想顚倒見顚倒廻向과 不着語言道廻向과
觀一切法眞實性廻向과 觀一切衆生平等相廻向과
以法界印으로 印諸善根廻向과 觀諸法離貪欲廻向이니
解一切法無하야 種植善根도 亦如是하며
觀諸法無二하야 無生無滅廻向도 亦如是니라
離相廻向(이상회향). 상을 떠난 회향.
10회향 중에 제 1회향인데요. 제 1회향 이름이
救一切衆호대 離衆生相廻向입니다. 일체중생을 구호하되
중생이라는 생각을 떠난, 중생이라는 相을 떠난 회향이다.
그렇습니다. 여기 離相廻向이라는 것이 중생이라는 相을 떠난 회향. ←이 말입니다.
種種廻向(종종회향)
安置衆生於無所着法性廻向
(안치중생어무소착법성회향)과, 중생을 無所着.
집착할 바 없는 법성에 安置하는 회향과,
見衆生自性廻向(견중생자성부동부전회향)과,
중생 자성이 不動不轉함을 보는 회향과,
於廻向(어회향)에, 회향에 있어서
無所依無所取廻向(무소의무소취회향)과,
의지할 바도 없고 취할 바도 없는 회향과,
不取善根相廻向(불취선근상회향)과,
선근의 상을 취하지 아니하는 회향과,
不分別業報體性廻向(불분별업보체성회향)과,
업보 체성을 분별하지 않는 회향과,
不着五蘊相廻向(불착오온상회향)과,
오온 상을 집착하지 않는 회향과,
不壞五蘊相廻向(불괴오온상회향)과,
오온 상을 깨뜨리지 않는 회향과, 오온 상을 집착하지 않는다고 오온 상을 그럼 무시하나요? 그것은 아니지요.
그것은 中道가 안 되지요. 바로 집착하지 아니하되, 무시하지도 않는 것. 五蘊빼버리면 우리가 없잖아요.
따지고 보면 사실은 오온이 다입니다.
色ㆍ受ㆍ想ㆍ行ㆍ識 ←이것이 우리 다 라고요.
그래서 무너뜨리면 안 되지요.
不壞五蘊相廻向이라. = 오온 상을 깨뜨리지 않는 회향이라.
不取業廻向(불취업회향)과,
업을 취하지 않는 회향과,
不求報廻向(불구보회향)과,
과보를 구하지 않는 회향과,
不染着因緣廻向(불염착인연회향)과,
인연에 染着하지 않는 회향과,
不分別因緣所起廻向(불분별인연소기회향)과,
인연 所起를 분별하지 않는 회향과, 회향하는 데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이 말입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회향하는
데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不着名稱廻向(불착명칭회향)과,
명칭에 집착하지 않는 회향과,
不着處所廻向(불착처소회향)과,
처소에 집착하지 않는 회향과,
不着虛妄法廻向(불착허망법회향)과,
허망법에도 집착하지 않는 회향과,
不着衆生相世界相心意相廻向
(불착중생상세계상심의상회향)과,
중생상. 세계상. 심의 상에도 집착하지 않는 회향과,
不起心顚倒想顚倒見顚倒廻向
(불기심전도상전도견전도회향)과,
心顚倒ㆍ想顚倒ㆍ見顚倒를 일으키지 않는 회향과,
不着語言道廻向(불착어언도회향)과,
語言道에 집착하지 않는 회향과,
觀一切法眞實性廻向(관일체법진실성회향)과,
일체 법 진실성을 관하는 회향과,
觀一切衆生平等相廻向(관일체중생평등상회향)과,
일체중생 평등 상을 관찰하는 회향과,
以法界印(이법계인)으로, 法界印으로써
印諸善根廻向(인제선근회향)과,
모든 선근을 印치는, 도장 찍는 회향과,
法界印으로, ←이것 아주 깊은 뜻이 있습니다.
觀諸法離貪欲廻向(관제법이탐욕회향)이니,
모든 법의 탐욕을 떠난 것을 관찰하는 회향이니라.
解一切法無(해일체법무)하야, 일체법이 없음을 알아서,
種植善根(종식선근)도, 선근을 심는 것도
亦如是(역여시)하며, 또한 이와 같으며,
觀諸法無二하야, 모든 법이 둘이 없어서,
無生無滅廻向도 亦如是니라.
無生無滅함을 관찰하는 회향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나. 業과 智慧
以如是等善根廻向으로 修行淸淨對治之法하고
所有善根으로 皆悉隨順出世間法하야
不作二相하나니 非卽業하고 修習一切智며 非離業하고
廻向一切智라 一切智가 非卽是業이나 然不離業하고
得一切智니 以業如光影淸淨故로 報亦如光影淸淨하며
報如光影淸淨故로 一切智智도 亦如光影淸淨하야
離我我所의 一切動亂思惟分別이라 如是了知하야
以諸善根方便廻向하나니
業과 智慧(업지혜)
以如是等善根廻向(이여시등선근회향)으로,
이와 같은 등 선근회향으로써
修行淸淨對治之法(수행청정대치지법)하고,
淸淨對治의 법을 수행하고,
所有善根(소유선근)으로
皆悉隨順出世間法(개실수순출세간법)하야,
다 출세간법을 隨順해서,
不作二相(부작이상)하나니, 二相을 짓지 아니하나니,
세간相이니, 출세간 相이니하는 상대적인 것을 二相이라고 그럽니다. 二相을 짓지 아니하나니,
非卽業(비즉업)하고, 업에 즉하지 아니하고,
修習一切智(수습일체지)며, 일체지를 닦으며,
非離業(비리업)하고, 업을 떠나지 않고,
廻向一切智라. 일체지혜에 회향함이라.
일체지에 딱 예속돼서, 卽이란 것은 그런 뜻이지요.
말하자면 닦는 것이 아니고,
업에 예속되지 않고 일체지혜를 닦고요.
또 그렇다고 업을 떠나느냐? 업을 떠나지도 않고 일체지혜에 회향함이라.
一切智가
非卽是業이나, 곧 업이 아니나
然不離業(연불리업)하고, 그러나 업을 떠나지 아니해서,
得一切智니, 일체지를 얻음이니,
업을 떠나서 일체지를 얻는 것도 아니니,
不자를 거기다 새겨야 됩니다.
그러나 업을 떠나서 일체지혜를 얻는 것도 아니다.
이것 참 유의해야 됩니다. 업과 지혜는 이와 같은 관계에
있습니다.
以業如光影淸淨故(이업여광영청정고)로,
업이 그림자와 같아서 淸淨 = 텅 비어있는 까닭에,
報亦(보역), 업도 또한
如光影淸淨(여광영청정)하며,
업으로 광영과 같이 청정하고,
업에 따르는 報도 또한 그림자와 같아서 텅 비었어요.
업도 텅 비었고 과보도 텅 비었어요.
報如光影淸淨故(보여광영청정고)로,
報가 그림자와 같이 텅 빈 까닭에,
一切智智도, 일체지혜의 지혜.
평등과 차별을 다 아는 지혜지요?
지혜도 사실은 따지고 보면
亦如光影淸淨(역여광영청정)하야,
또한 그림자와 같이 텅 비었어요. 여기서 淸淨이라고하는 것은 무조건 텅 비었다고 보는 것이 제일 쉽습니다.
離我와 我所(이아아소)의
一切動亂과 思惟分別(일체동란사유분별)이라.
我와 我所의 움직임과 思惟分別을 떠난 것이다.
如是了知(여시요지)하야, 이와 같이 알아서
以諸善根方便廻向(이제선근방편회향)하나니.
모든 선근방편으로써 회향하나니라. ←이것이 업과 지혜에 관계 그런 회향법이다. 이런 말입니다.
업과 지혜에 관계되는 회향 법.
(10) 廻向의 利益
菩薩이 如是廻向之時에 度脫衆生하야 常無休息호대
不住法相하며 雖知諸法이 無業無報나
善能出生一切業報하야 而無違諍하야 如是方便으로
善修廻向이니라
菩薩摩訶薩이 如是廻向時에 離一切過일새
諸佛所讚이시니 佛子야 是爲菩薩摩訶薩의
第一救護一切衆生호대 離衆生相廻向이니라
廻向의 利益(회향이익)
菩薩이
如是廻向之時(여시회향지시)에, 이와 같이 회향할 때에,
度脫衆生(도탈중생)하야, 중생들을 度脫해서,
常無休息(상무휴식)호대, 항상 휴식함이 없되,
不住法相(부주법상)하며, 법상에 머물지도 아니하며,
雖知諸法(수지제법)이 無業無報(무업무보)나,
비록 모든 법이 업도 없고 보도 없으나,
善能出生一切業報(선능출생일체업보)하야,
없지만 또한 일체업과 보를 잘 능히 출생함을 알아서,
而無違諍(이무위쟁)하야, 어기고 갈등, 다툼이 없어서,
如是方便(여시방편)으로, 이와 같은 방편으로
善修廻向(선수회향)이니라. 회향을 善修하나니라.
菩薩摩訶薩이
如是廻向時(여시회향시)에, 이와 같이 회향할 때에,
離一切過(이일체과)일새, 일체 過를 떠났을 세.
온갖 허물을 다 떠났기 때문에 그래서
諸佛所讚(제불소찬)이시니, 부처님이 찬탄하는 바다.
佛子야
是爲菩薩摩訶薩(시위보살마하살)의,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第一救護一切衆生(제일구호일체중생)호대,
일체중생을 구호하되
離衆生相廻向(이중생상회향)이니라.
중생이라는 상을 떠난 회향이니라.
오늘공부 여기까지 하지요.
|
첫댓글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不欲饒益一切衆生 不名廻向..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至道無難(지도무난)이나
唯嫌揀擇(유혐간택)이라.
但莫憎愛(단막증애)하면
洞然明白(통연명백)이라.지극한 도는 간택심, 증애심만 없으면 지극히 쉽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고맙습니다 _()()()_
지혜는 자비를 잘 쓰자고 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지혜는 씨앗이고 열매는 자비이다.
고맙습니다.
_()()()_
공부할수있게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_()()()_ 고맙습니다._()_
_()()()_
_()()()_
以業如光影淸淨故
報如光影淸淨, 나무대방광불 화엄경,
회향 ...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고맙습니다.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
_()_
_()()()_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_()()()-
지혜는 자비를 잘 쓰자고 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지혜는 씨앗이고 열매는 자비이다.
고맙습니다.
지혜는 자비를 잘 쓰자고 하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지혜는 씨앗이고 열매는 자비이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