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명 작가의 동시집 『올레야 오름아 바다야』.hwp
올레야 오름아 바다야/ 박소명 동시집
'올레야 오름아 바다야'를 읽고
한혜영(시인,소설가, 동화작가)
박소명 시인의 동시집 『올레야 오름아 바다야』(섬아이)를 읽었습니다. 시집 전체가 제주에 관한 시로 채워졌네요. 박소명 시인에게 제주는 남다른 곳이기도 하지요. 남편이 제주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던 몇 해를 거기서 살기도 했고, 이후에도 자주 다녀오는 곳이니까요.
가끔 박소명 시인에게 전화를 하면 헉헉거리며 받곤 했어요. 숨소리가 왜 그러느냐 물으면 오름을 오르는 중이라거나 올레길을 걷는 중이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거 같다거나 하나님께 저절로 감사하게 된다는 말을 했지요. 그래서 조만간 뭔 작품이 나오려니 했더니, 그림동화 『흑룡만리』를 펼쳐내더라고요. 그러더니 이번엔 시집 전체를 제주에 관한 것으로 엮었네요.
돌하르방이 맞아주는
지붕 낮은 마을, 마을을 지나고
구불구불 밭담길 따라
놀멍, 쉬멍, 걸으멍
긴 머리카락 풀어 헤친
한라산 자락 지나고
산밭, 바당밭 내려다보이는
소등 같은 오름으로
놀멍, 쉬멍, 걸으멍
길이 바다를 물고서 출렁거리는 곳
섬이 졸레졸레 뒤따라오는 곳
오름과 오름이 하늘을 받치고 앉아 있는 곳
풀밭이 넓은 품에 조랑말을 풀어 놓은 곳
봄에는 유채꽃이 출렁
여름엔 산수국꽃이 홀홀
가을엔 귤 등불이 주렁주렁
겨울엔 동백꽃이 뚝뚝
그 길 따라
고르멍, 드르멍 함께 걸을래?
「올레길 걷기」 전문
*놀멍, 쉬멍, 걸으멍: 놀며, 쉬며 걸으며
*바당밭: 해산물을 따는 바다
*올레: 큰길에서 집까지 이어지는 길이라는 뜻으로 제주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올레길이 조성되어 있음
*고르멍, 드르멍: 얘기하면서, 들으면서
제주 방언을 그대로 살려서 지으니 한층 맛깔스러운 시가 되었네요. “길이 바다를 물고서 출렁거리는 곳/섬이 졸레졸레 뒤따라오는 곳/오름과 오름이 하늘을 받치고 앉아 있는 곳/풀밭이 넓은 품에 조랑말을 풀어 놓은 곳” 이런 표현은 실제 그 길을 걸으면서 눈으로 들어왔던 풍경 그대로를 끌고 온 듯이 생생합니다. “봄에는 유채꽃이 출렁/여름엔 산수국꽃이 홀홀/가을엔 귤 등불이 주렁주렁/겨울엔 동백꽃이 뚝뚝” 이라는 표현으로 제주 자연의 특징을 잘 살려주네요.
하늘은
땅이 좋았고
땅도
하늘이 좋았대.
땅이
움푹한 자리를 만들자
하늘이
살며시 내려앉았대.
둘은
아이스크림 같은 하얀 구름
가득히 담는
예쁜 그릇이 되었대.
「천지연」 전문
*천지연: 하늘과 땅이 만나서 이룬 연못이라는 뜻임
천지연에 하얀 구름이 가득하게 담긴 상상을 해봅니다. 아이스크림이 하얗게 담긴 예쁜 그릇 말이에요. 천지연엔 물이 가득할 텐데, 물을 말하지 않고 구름을 말하다보니 아이스크림을 발견할 수 있었네요.
큰 노꼬메는
밤마다
족은 노꼬메를
껴안고
잠이 들지요.
족은 노꼬메는
아침마다
큰 노꼬메를
간질이며
아침을 깨우지요.
큰 노꼬메
족은 노꼬메
나란히 사는
까닭이랍니다.
「노꼬메오름」 전문
* 노꼬메오름: 큰 오름 작은 오름이 나란히 있음. ‘족은’은 ‘작은’이란 뜻
오름이 의좋게 붙어 있는 모양입니다. 밤이면 큰 노꼬메가 작은 노꼬메를 껴안아주고 아침이면 작은 노꼬메가 큰 노꼬메를 간질여 잠 깨운다며 의인화를 시키네요. 그러니까 이때부터 상상의 폭이 한결 넓어집니다. 귓속말 속닥거리다 클클거리며 웃는 노꼬메의 등을 떠올리게도 하고 말이지요.
성산포 재봉이 삼촌은
집어등 아래에서
갈치를 잡아요.
꽁치 미끼로
밤새워 던지고
또 던지는 낚시!
사나운 파도와 싸우고
끈질긴 졸음과 씨름하다가도
줄줄이 갈치가 잡히면
번쩍번쩍 눈이 떠진대요.
뱃전 가득
은갈치가 파닥이면
멀리 성산포 항구도
은빛으로 빛나고
석류처럼 붉어오는
새벽하늘 아래에서
재봉이 삼촌은
세상을 다 가진 부자가 된대요.
「은갈치가 파닥이면」 전문
*집어등: 밤에 물고기들이 모여들게 하려고 배에 켜는 등불
바라만 봐도 아름다운 제주 바다지만, 그곳 사람들에겐 생활의 터전이지요. 밤을 꼬박 새우며 갈치 잡이를 하는 재봉이 삼촌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 점을 일깨워주네요. “뱃전 가득/은갈치가 파닥이면/멀리 성산포 항구도/은빛으로 빛나고”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성산포의 새벽이 아름다운 것은 밤새도록 견디어낸 노동의 대가가 있기에 가능하겠지요.
-캬하~
물맛 좋다!
오래전 다녀간 사람도
어제 왔던 사람도
-캬하~
오늘 온 사람도
자주 들르는 나도
-캬하~
절물 마시는 사람은
누구라도
시원한 바람소리
한 번은 내놓고 간다.
「물맛 좋다」 전문
*절물: 제주시 봉개동 절물오름 자락에서 나는 약수로 절에서 이용했다 하여 절물로 불림
제주, 하면 물맛 좋기로 유명하지요. 세 번의 “캬하~” 하는 탄성으로 그 물맛이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주네요. 오래전에 다녀간 사람이나 어제 왔던 사람이나 다 같이 그 입에서 “캬하~” 소리가 나온다면 그것은 변함없이 맛난 물맛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 입에서는 나오는 소리는 당연히 ‘시원한 바람 소리’가 아니겠는지요.
어느 한 지명을 대상으로 한 권의 시집을 묶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칫 비슷비슷한 풍의 시가 생산될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박소명 시인은 올레와 오름과 바다에 알맞은 비유를 각각 잘 찾아내었네요. 제주에 깊은 애정이 있어야 가능하겠지요. 제주와 독자에게 참으로 고마운 동시집이 되겠습니다.
박소명
월간문학 동시부문 신인상.
광주일보 및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은하수문학상, 오늘의동시문학상, 황금펜아동문학상을 수상하였음.
동시집 『꿀벌 우체부』 『빗망울 더하기』 『산기차 강기차』 『올레야 오름아 바다야』
동화집 『흑룡만리』 『알밤을 던져라』 『든든이와 푸름이』 『세계를 바꾸는 착한 똥 이야기』 『세계를 바꾸는 착한 마을 이야기』
『세계를 바꾸는 착한 식탁 이야기』 『동시와 동화로 배우는 속담 쏙쏙』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