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바라본다
진 연 숙
‘띠 링“ 문자가 왔다.
”헌혈 보유량 급감! 전혈 및 혈소판 헌혈 시 영화, 문화 상품권 등 증정.“
그 문자를 읽는 순간 나는 헌혈을 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보유량이 급감이라 하지 않는가. 내게 있는 소중한 피를 절실한 누군가와 나눠야겠다고 생각한다.
잊고 지내던 지인 언니의 투병이 생각나서였을까? 오래전 바로 그 언니가 유방암으로 수술을 하게 되었다. 위험하고 힘든 수술이었는데 혈액이 부족해 수혈을 받아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같은 혈액형이어서 기꺼이 내가 헌혈을 해 주었다. 후에 수술이 잘 되어 퇴원하여 지금껏 건강히 잘살고 있다.
매스컴에서도 날씨가 추워지고 코로나-19의 장기화 등으로 헌혈 참여율이 저조하다고 염려한다, 군인들이나 농촌 마을, 학교 단체로 헌혈을 하는데 그나마도 방학이면 할 수 없어 혈액 수급의 경계 단계가 될 때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문자가 왔는가 보다. 안정적인 혈액 확보가 시급한데 특히 젊은 청소년들의 자발적 참여가 중요하다. 이런 공급 부족을 좀 더 알려야 많은 참여를 할 수 있을 텐데 안타깝다. 우리 주변에 많은 헌혈의 집들이 생겨서 손쉬웠으면 좋겠다. 혈액은 인공적으로 만들 수 없어 수혈이 필요한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유일한 수단인 소중한 생명 살리기 봉사이기도 하다.
나는 1년에 세 차례 헌혈을 한다. 새로운 피가 생성되어 좋고, 아픈 환자들에게는 건강과 생명을 회복시킬 수 있는 좋은 행복 실천이다. 이틀 후 헌혈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우선은 먹거리에 신경을 썼다. 기름진 음식. 피자. 육류, 탄산음료 등은 피했다. 적십자 안내서에도 나와 있는 전날 음주 금지는, 원래 먹지 않으니 조심할 조차 없다. 그리고 전날에는 일찍 잠자리에 들고 푹 숙면했다. 그래야 내 몸 상태가 좋고 환자도 온전한 혈액을 수혈 받아 빠른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시내에 있는 헌혈의 집으로 향했다. 혹시 자가 운전하여 집으로 돌아올 때 어지럼증이 생길 수도 있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안전하다. 헌혈의 집으로 들어서니 입구에 안내하는 젊은 청년이 미소를 띠고 나를 맞이한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우선 컴퓨터로 문진 체크를 해 주세요.”
칸막이가 된 컴퓨터 모니터를 켜고 이름과 주민등록 번호를 입력했다. 최근 3개월 이내에 수술, 입원한 적이 있나? 외국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나? 등등을 자세히 묻는다. 해당 사항이 없어 신속히 넘긴다. 문진을 다 마치고는 대기 번호를 받고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나 말고도 젊은 남자 대학생과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반갑고도 고마운 생각이 든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낯선 이들의 생명을 위해 시간을 내고 헌혈 봉사를 온 그들이.
한쪽 벽에 나무 육각형으로 된 조그마한 조각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호기심에 가까이 가서 보고는 깜짝 놀랐다. 헌혈 300회 이상 김 아무개라 쓰여 있다. 그 옆에 좀 더 큰 육각형에는 500회 이상 이 아무개라고 쓰여 진 표찰이 붙어 있다. 한사람이 그 많은 횟수로 헌혈 봉사함에 놀랐고, 그런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들 이름 옆에는 장식장이 있고 그 안에 표창장들이 여러 개 놓여 있다. 300회 최고 명예 대장이라는 금목걸이와 훈장이 있고, 헌혈 유공 패라는 공로패도 진열되어 있다. 숨은 공로자들이 다시 한 번 위대하다고 느껴졌다.
드디어 내 번호를 부른다. 검사실로 들어가니 기계로 혈압을 확인한다. 혈압 약을 안 먹고 180mmHg 이상이면 헌혈은 불가하고 혈압 약을 먹으면 그 이하의 수치로 가능하다. 그 후 본인 확인을 위해 신분증을 제출했다. 본인 얼굴과 주민 등록 번호를 확인 대조를 했다. 예전에 한 번 주민등록증을 안 가져와서 되돌아간 경험이 있어서 이번엔 신경을 써서 잘 챙겨왔다. 본인 확인 후 손가락 끝에 침을 놓아 피를 뽑아 혈색소 검사를 간단히 확인하고 헌혈실로 들어갔다. 전혈, 혈소판 성분 헌혈 등이 있는데 나는 일반적인 전혈로 약 400mL를 신청했다.
넓고 높은 침대에 누우니 머리맡에 달린 의료 기계들과 연결된 줄을 가지고 간호사가 왔다. 내 오른쪽 팔에 주사를 꽂았다. 뜨끔하며 주삿바늘이 들어오고 순간 피 주머니로 호수를 타고 빨갛게 빨려 들어가는 내 피를 내려다보았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운동을 해줘야 피가 잘 빠져나간다. 10여 분 주먹 펌프를 하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이 피는 혈액원으로 모여서 잠시 대기하고 있다가 필요로 하는 각각의 병원들로 이송되어 수혈자에게 전달이 된다. 누군가가 잘 받고 건강해져서 밝은 세상을 나와 함께 살아가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생각에 잠겨 있는 것도 잠시 금세 끝이 난다. 갑자기 일어나면 어지러울 수가 있어 지혈하는 동안 침대에 누워 쉰다. 헌혈 간격은 8주 후 가능하며 연 5회 가능하다는 안내문을 읽었다.
옆에 서 있던 만삭인 간호사가 늘 혈액은 부족한 상태라고 이야기를 한다. 특히 방학 기간에는 학생들의 헌혈을 받지 못해 좀 더 부족한 시기라고 한다. 그 공백을 요즘은 나와 같은 50, 60대가 메운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스럽다. 출산이 얼마 남지 않은 간호사도 수혈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수혈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가 있다는 생각에 흐뭇했다. 이온 음료와 초콜릿을 준다. 당과 수분 보충을 위해 단숨에 맛있게 먹었다. 도서 상품권도 받았다. 저번에 받은 상품권을 모아서 집에 가는 길에 책을 살 생각에 기분까지 좋다. 헌혈증도 휴대전화기 문자로 받았다.
나의 작은 헌혈 봉사가 위급한 환자들의 소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니 더불어 사는 세상에 일조한 듯 뿌듯하다. 헌혈의 집 문을 열고 나오려는데 택배 조끼를 입은 젊은 청년이 헌혈하러 들어온다. 자주 온 듯 직원들과도 익숙하게 인사를 한다. 잠시 짬을 내서 왔다 한다. 그를 보니 든든하고 멋져 보이며 우리의 밝은 미래를 보는 것 같다.
도로에 나와 서서 하늘을 바라본다. 맑은 하늘이다.
“아!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랑을 함께 나누며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라 희망차다!”
희망과 행복이 하늘에 넓게 퍼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