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이야기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들
『토니와 수잔』, 오스틴 라이트, 오픈하우스, 2016.
<토니와 수잔>은 액자소설이다. 소설은 한 권 안에 두 가지 야기를 담아 전달한다. 토니와 수잔이 두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수잔에 관한 내용이다. 수잔은 남편인 아놀드와 아이 셋과 함께 중산층 주부로 살고 있다. 어느 날 수잔 앞으로 깔끔한 원고가 도착한다. 그 원고는 전 남편인 에드워드 셰필드가 보낸 소설이다. 그 소설의 내용이 두 번째 이야기다. 소설 제목은 <녹터널 애니멀스>이며 주인공은 토니다. 수잔은 크리스마스 다음 날 남편이 출장을 가고 그때부터 원고를 읽기 시작한다. 소설 안에 또 한 권의 소설이 들어 있는 셈이다. 독자는 두 권을 읽는 효과를 얻게 된다. 이런 구상을 한 작가는 오스틴 라이트(Austin Wright,1922-2003)이다.
그는 뉴욕 출생으로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신시내티 영문학과에서 40년 동안 교수로 재직했다. 라이트는 좋은 글쓰기에 대한 연구와 기술적인 면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쓴 플롯들은 종종 풀어내야 할 퍼즐처럼 만들어 놓기도 했다. 액자식 구성을 띤 <토니와 수잔>도 1993년에 출간되어 꾸준히 팔렸고 ,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의 원작 소설이기도 하다. 「싱글맨」의 감독 톰 포드의 두 번째 장편영화 「녹터널 애니멀즈」로 2017년 개봉되었다. 영화는 2016년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수잔은 책 읽기를 좋아한다. 재혼한 남편 아놀드는 심장외과 의사다. 그가 환자들을 돌보는 동안 그녀는 집안일을 하고 전문대에서 강의를 한다. 일상적인 일들(청소, 요리, 육아)을 하면서 틈틈이 책도 읽는다. 수잔은 전 남편 에드워드가 20년 만에 보내 온 소포에 살짝 충격도 받지만 어떤 종류의 소설일까 궁금해 하며 첫 장을 열어본다. 에드워드가 쓴 ‘녹터널 애니멀즈’의 장르는 스릴러이다. '녹터널 애니멀스‘의 주인공 토니 헤이스팅스는 아내 로라와 딸 헬렌과 펜실베니아 북부 주간고속도로의 동쪽에 있는 여름별장에 가는 중이었다. 시간은 늦은 밤이다. 토니와 아내, 딸은 불시에 괴한들로부터 고속도로에서 희롱을 당하고 갓길에 차를 세우게 된다.
수잔은 원고 첫 장을 읽다가 잠깐 멈춘다. 그리고 감탄한다. 전 남편 에드워드가 이렇게 소설을 잘 썼었나 반추해본다. 작품은 수잔이 ‘녹터널 애니멀즈’를 읽어야 진도가 나가게 되어 있다. 그녀는 때론 빠르게 몰입해서 읽기도 하고 천천히 읽기도 한다. 수잔이 소설읽기를 멈추면 독자도 멈춰야 한다. 그러면서 독자인 그녀의 심정이나 행위의 변화를 읽게 될 것이다. 이런 번거로움이 싫다면 ‘녹터널 애니멀즈’로 되어 있는 부분만 찾아서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는 영리하다. 이런 액자식 장치를 통해 독자는 더욱 토니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고 수잔과 함께 뒷 이야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게 될테니 말이다.
독자는 두 가지 인물을 동시에 조망한다. 토니를 읽고 있는 수잔까지 말이다. 그녀는 소설읽기를 중단하고 박하차를 마시거나 스트레칭을 하기도 한다. 때론 소설에서 충격을 받으며 치욕과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불량배들이 아내와 딸과 차를 가지고 도망친 상황에서 숲 속에 버려진 남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p.62)를 읽으며 수잔은 한줄기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물을 것이다. 그녀의 전 남편은 왜 소설을 그녀에게 읽히게 했을까 말이다. 수잔 또한 원고를 읽는 내내 에드워드의 숨은 뜻을 몰라 두렵고 겁났지만 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수잔은 소설에 몰입하면 할수록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녹터널 애니멀’의 주인공 토니는 수학교수다. 여행 중에 느닷없이 닥친 불행에 토니는 이상하리 만치 현실적인 모습을 보인다. 아내와 딸을 무참하게 잃었음에도 토니의 슬픔이 오롯이 전달되지 않는다. 수잔은 불안감을 느낀다. 토니는 자신의 생활을 예전처럼 하고 있으며 심지어 대학원생과 관계도 가진다.
수잔은 소설 속 토니를 통해 자신을 직면하게 된다. 아놀드와 바람을 피워 에드워드와 헤어진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이혼의 공식적인 이유는 수잔이 에드워드의 글에 대한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p.317). 에드워드는 자신의 글을 인정해주지 않는 수잔에게 불만을 가졌다고 말했지만 비공식적인 이유는 그녀의 불륜 때문이었다. 현재 자신은 시간강사, 평범한 주부이다. 또한, 남편이 병원접수계 여자와 바람이 나서 전전긍긍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녀는 사흘 동안 소설을 다 읽었다. 에드워드의 소설에 그녀는 잠깐 동안 장악됐다. 소설을 읽는내내 에드워드의 상상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이것이 그가 소설을 보낸 이유일까. 그의 복수일까. “에드워드는 처음부터 그녀를 무시하고 모욕할 수 있도록 판을 짜서 자신의 새롭고 깜짝 놀랄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p.474)
한 권의 책이 삶을 흔들리게 할 수 있을까? 목차는 이전, 첫 번째 독서(...), 세 번째 독서, 이후로 되어 있다. 수잔이 독서 전과 독서 후의 삶이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인생에 불쑥 끼어든 이혼처럼 독서도 또다시 고통스럽게”(p,283) 자신을 바꿀 수 있다. 수잔에게 ‘녹터널 애니멀즈’는 인생에 불쑥 끼어든 책이 되었다. 수잔은 소설을 읽는 내내 불편했지만 자신을 찾게 된다. 그녀는 이제 그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에드워드에게도, 아놀드에게도 말이다. “에드워드가 말했다. 그러니까 말해봐. 내 책에 빠진 게 뭔지?”(p.481). 수잔은 에드워드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할 것이다. ‘그러니까 내 인생에서 빠진 게 뭔지?’ 말이다. 수잔은 이제 아놀드에게 강해질 것이며 좀 더 스스로를 존중할 것이다.
독자는 두 개의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관계를 만나게 된다. 에드워드와 수잔, 수잔과 아놀드, 아놀드와 셀레나, 에드워와 스테파니를 통해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관계. 독자와 작가의 관계다. 작가 에드워드와 독자 수잔은 토니를 중심에 놓고 소통하고 있다. 소설은 단지 소설이 아니다. 독자는 수잔이 토니를 통해 변화되는 의식의 흐름을 지켜보게 된다. 오스틴 라이트는 이 점을 전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수잔은 토니를 통해, 독자는 수잔을 통해서 말이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그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p.17)” 한 권의 소설의 미치는 영향력은 이처럼 위력적이다.
<서평-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