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斷想)
[경전 이야기]
♡ 안수정등(岸樹井藤) 이야기 일체 중생은 세상의 쾌락에 탐착 하여 덧없음을 생각하지 않고 큰 우환을 괴로이 여기지 않는다. 비유하 면, 옛날의 어떤 사람과 같다. 그는 어떤 일을 저질러 죽게 되었는데, 감옥에 갇혀 있다가 죽음이 두려워 달아났다.
그 나라 법에, 만일 사형을 받은 어떤 죄수가 탈옥을 하면 미친 코끼리를 놓아 밟아 죽이게 하였다. 그래서 미친 코끼리를 놓아 그 죄수를 쫓게 하였다.
죄수는 코끼리가 오는 것을 보고 빈 우물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밑에는 독룡(毒龍) 한 마리가 위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고, 또 우물 네 귀퉁이에는 독사 네 마리가 각기 있는데, 거기에는 나무 한 구루가 있었다. 그 죄수는 오로지 두려운 마음으로 급히 그 나무뿌리를 붙잡았다. 그런데 흰 쥐 검은 쥐 두 마리가 그 나 무뿌리를 쏠고 있었다.
그때 그 우물 위에 큰 나무가 있고 그 나무에는 꿀이 있어서, 하루에 한 방울씩 그 사람 입 안에 떨어졌 다. 그는 그 꿀맛만 생각하고 다른 일은 생각하지 않으면서 우물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성인은 이것을 끌어와 비유로 삼았으니, 감옥은 삼계요, 죄수는 중생이며, 미친 코끼리는 덧없음 이요, 우물은 중생의 집이며, 밑의 독룡은 지옥이요, 네 마리 독사는 네 가지 요소[四大]이며, 나무뿌리는 사람의 목숨뿌리요, 흰 쥐와 검은 쥐는 세월[日月]이다.
세월이 사람의 목숨을 쏠아 먹으므로, 목숨은 날마다 줄어들어 잠깐도 머무르지 않는다. 그러나 중생들은 세상 쾌락에 탐착 하여 그것이 큰 우환임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수행하는 사람은 항상 덧없음을 관(觀)하여 갖가지 괴로움에서 떠나야 한다.
《중경찬잡비유경(衆經撰雜譬喩經)》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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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불교의 사자성어 '안수정등(岸樹井藤)에서 자세히 살펴본 바 있습니다. 도입부에서 약간 다른 것만 빼면 대동소이한 내용입니다.
다시 복습하는 차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불교의 무상(無常) · 고(苦) · 탐욕 · 죽음에 대한 성찰을 아주 생생한 비유로 보여 줍니다.
특히 이 비유는 단순히 "인생은 덧없다"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고통이 눈앞에 있는데도 순간 적인 즐거움에 빠져 그것을 잊어버리는 중생의 어리석음을 경책 하는 데 핵심이 있습니다.
1. 비유에 등장하는 것들의 의미
비유 상징하는 것을 살펴봅니다.
감옥은 삼계(三界)로 중생이 살아가는 생사의 세계이고, 죄수는 일체중생을 가리킵니다.
미친 코끼리는 무상(無常),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뜻하고, 우물은 중생의 집으로 중생의 삶과 생사윤회를 가 리키며, 독룡은 업(業) 혹은 지옥의 고통을 상징합니다.
네 마리 독사는 지 · 수 · 화 · 풍의 사대(四大)의 고통, 또는 네 가지 근본 괴로움을 상징합니다. 이는 지수 화풍(地水火風)의 불균형이 낳는 병고 · 불안 · 고통을 의미하기도 하고, 또는 태어남 · 늙음 · 병듦 · 죽음의 '사고(四苦)'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나무뿌리는 목숨, 생명을 상징하고, 흰 쥐와 검은 쥐는 낮과 밤, 곧 끊임없이 흐르는 세월을 의미합니다. 낮과 밤이 번갈아 오며 우리의 '생명줄'을 갉아먹습니다. 즉 시간이 흐르면 목숨은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꿀 한 방울은 세상의 쾌락과 오욕(五欲)을 뜻합니다. 꿀(단맛)은 감각적 즐거움, 탐욕의 대상을 상징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잠시 떨어지는 '한 방울의 즐거움' 이를테면 감각의 쾌락, 명예, 재물, 인정 욕구, 오감 만족 등…
중생은 이 '한 방울'을 맛보느라 죽음 · 고통 · 무상함을 잊어버립니다. 살아 있는 동안 잠깐 맛보는 즐거움 때문에, 생사의 본질을 잊어버리는 것이 중생의 어리석음입니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흰 쥐와 검은 쥐가 쉬지 않고 나무뿌리를 갉아먹고 있다는 것입니다.
낮과 밤이 교차하면서 우리의 목숨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실을 잊은 채 눈앞에 떨어지는 꿀 한 방울의 달콤함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2. 이 이야기의 핵심은 무엇인가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평소에는 마치 죽음이 나와는 관계없 는 일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돈을 얻으면 즐거워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 즐거워하고, 명예와 지위를 얻으면 기뻐하고, 욕망이 충족되 면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체가 반드시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즐거움에 탐착 하여 삶의 본질을 잊어버리는 것입니 다.
우물 아래에는 독룡이 있고, 사방에는 독사가 있으며, 위에서는 미친 코끼리가 쫓아오고, 생명의 뿌리는 날 마다 갉아먹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은 떨어지는 꿀 한 방울을 받아먹으며 "참 달다."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중생의 어리석음을 상징합니다.
3. '꿀 한 방울'의 비유
'꿀 한 방울'은 가장 무서운 비유입니다. 고통은 크고 분명하지만 쾌락은 작고 순간적입니다. 그런데도 인 간은 이상하게도 큰 위험보다 작은 즐거움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오늘 하루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오지 않습니다. 젊음도 지나가고, 건강도 변하고, 재산도 변하고, 인간관 계도 변하고, 결국 이 몸도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눈앞의 작은 즐거움에 정신을 빼앗겨 '내 목숨의 뿌리가 얼마나 남아 있는가'를 살피지 않습 니다.
그래서 이 비유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지금 내가 맛보고 있는 꿀 한 방울 때문에 더 중요한 것을 잊고 있지는 않은가?"
4. 그렇다면 수행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경전에서는 마지막에 분명하게 말합니다.
"수행하는 사람은 항상 덧없음을 관(觀)하여 갖가지 괴로움에서 떠나야 한다."
여기서 무상을 관한다는 것은 우울하게 죽음을 생각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시간이 유한하다는 사 실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더욱 바르게 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무상함을 알되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죽음을 알되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즐 거움을 누리되 탐착 하지 않고, 오늘 할 수행과 선행을 오늘 실천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한마디로 정리하면, 안수정등(岸樹井藤)의 가르침은
"죽음을 잊은 채 세상의 작은 즐거움에 탐착 하지 말고, 무상을 바로 보아 지금 이 순간을 바르게 살라"는 경책입니다.
우리는 모두 우물 속에 매달린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흰 쥐와 검은 쥐는 오늘도 쉬지 않고 나무뿌리를 갉아먹고 있습니다. 그러니 시간이 있을 때 수행하고, 시 간이 있을 때 선행하고, 시간이 있을 때 사랑하고, 시간이 있을 때 마음을 닦아야 합니다.
오늘이라는 꿀 한 방울을 맛보되, 그 꿀 때문에 우물의 실상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 흰 쥐와 검은 쥐가 밤낮 뿌리 갉아댐 속에
무상한 목숨은 물처럼 흐르는데
한 방울 달콤한 꿀에 위험 보지 못한다네.
무상을 바로 알면 오늘이 소중하고,
오늘을 바로 살면 죽음도 두렵지 않네.
오늘의 바른 한 생각 바르게 닦아 가세.
안수정등 이야기는 많이 접하지만 우리 중생들은 저 죄수가 절체절명의 위험 속에서도 달콤한 꿀 한 방울 에 취하여 위험을 잊듯 우리 또한 그렇게 쉽게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아니 위험을 알면서도 눈앞의 꿀 한 방울 때문에 위험을 잊어버리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도 무상과 죽음, 인생의 고(苦)를 머리로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막상 일상으로 돌아가면 재물 · 명예 · 감정 · 욕망 같은 작은 ‘꿀 한 방울’에 마음을 빼앗기고, 정작 중요한 마음 닦는 일과 선행과 알아차림 을 뒤로 미루곤 합니다.
그래서 이 비유는 한 번 듣고 끝낼 이야기가 아니라,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다시 꺼내 보는 경책의 말씀 이라 생각합니다.
새벽에도 30도 이상으로 후덥지근하더니 오늘 새벽은 26도로 오랜만에 청량감을 느꼈습니다. 오늘도 낮 기온은 상당히 높겠지만 살짝 가을을 느껴보는 오늘입니다.
오늘도 불보살님의 은은한 가피 속에 심신의 안정과 건강과 안전을 생각하며, 자애와 연민, 복과 지혜를 닦아 통찰지를 갖추고 정리를 따라 정심정행하며, 꿀 한 방울의 위험을 알아차리며 맑고 향기로운 만행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_ _(())_
향기로운 불교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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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