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그레아 해변
겐그레아 해변
겐그레아 교회가 물에 잠겨서 허물어지고 기둥이 보일락 말락 하다
해수면이 날로 높아간다는 사실이다
겐그레아는 고린도에서 약11km 동남쪽에 위치한 항구 이름이다.
당시 고린도에는 2개의 항구가 있었는데 북쪽 항구에서 승선하면 로마로 가게 되었고,
남쪽 항구인 이 겐그레아에서 승선하면 소아시아와
예루살렘 방향인 중동과 북아프리카로 갈수 있었다.
현재 지명을 케흐리에스(Kehries)라고 부르는 이곳에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기념하여 항구 방파제에 큰 동상을 세워놓았다.
그리고 근협 지역에서 매 2년마다 소위 고린도 지협경기가 열렸는데
이를 Isthmian Games이라고 부른다. 바울은 고린도 전서 9장24절에서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을 비유하며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얻기 위해
절제할 것을 권면했었는데 바로 고린도 지협경기를 연상하며 기록했을 것이다.
이곳은 고린도에서 나가고,고린도로 들어가는 선적의 화물을 취급하고
승선객의 승강장 역할을 감당한 고린도의 중요한 동해항이었다.
바울도 제2차 전도여행의 귀로인 이곳에서 배를 탔다(행 18:18).
이곳에는 겐그레아 교회가 있었고 그 교회에 ‘맑고 순결함’ 혹은 ‘빛남’이라는
이름을 가진 ‘뵈뵈’라는 여집사가 있었다.
니케 여신상(승리의 여신)
도미시안 황제 숭배 신전
역사상 에페소는 4차례의 네오코로스(Neokoros)가 될 자격을 얻었다.
네오코로스가 된다는 것은 황제의 신전에 파수꾼이 된다는 것으로
다른 도시들이 모두 부러워 할만한 특권이었다.
에페소는 처음으로 도미티안(81∼96년)에 대한 신전의 파수꾼 역할을 부여 받았다.
그러나 도미티안 황제가 자신의 한 하인에 의해 암살 당하자 에페스인들은 어렵게
얻은 네오코로스의 권리를 잃을 처지에 놓였다.
그래서 그들은 황제의 아버지 베스파시안(Vespasian)을 신으로 모셔 이 신전을 그에게 바쳤다.
도미티안 황제는 사도 요한을 로마로 불러 고문을 가한 후 파트모스
(밧모섬)로 유배 시켰던 황제이다.
요한은 그가 암살 당한 후 요한은 에페소로 돌아 올수 있었다.
이 도미티안 신전에서 발굴된 도미티안 황제의 조각상이 에페소스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도미티안 신전은 헤르메스와 카두세우스(의학의 상징으로써 뱀들이 서로 꼬여
있는 모양의 지팡이) 부조물로 장식된 2개의 동상 받침대 앞에 있다.
도미시안 신전
에베소 유적지 도로
에베소 병원터(아스클레피온 신)
오데온(Odeion) 소극장
오데온(Odeion)은 2세기에 세워진 음악당으로 극장과 같은 형태로 소극장이라고 도한다.
에베소의 정치 조직은 두 그룹이 있었는데, 하나는 보울레(Boule)라고
불리는 원로원(상원에 해당하며 300명으로 구성)으로 바로 이 소극장에서 회의를 개최했다.
또 하나의 그룹은 데모스(Demos) 라고 불리는 민회로서 모든 에베소인으로 구성되어있고
이들은 대원형극장에서 집회를 가졌다. 이 소극장은 콘서트 등 문화적 행사를 위해
사용되었는데 총 1,400명을 수용하였다.
가장 낮은 부분인 오케스트라의 중앙에 빗물을 받는 홈통이 없는 것으로 보아 원래
지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귀족 전용이었다.
맨 꼭대기의 대리석 좌석은 현재 없어졌지만, 아래 쪽의 좌석들은 잘 보존되어 있다.
계단 옆 부분에 새겨진 그리핀(머리와 날개는 독수리이고 몸은 사자인 괴물)의
발 모양은 오데온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오데온 옆에는 기원전 3세기 아우구스투스
통치때 세워진 시청 건물인 프리타네이온(Prytaneion)이 있다.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봉헌된 신성한 지역에는 영원히 꺼지면 안되는 성화가 타고 있었으며,
이 불은 크레테스라고 불리는 성직자들에 의해 꺼지지 않게 잘 관리가 되었다.
에베소 아데미 신전
에베소 트라얀 황제 신전(우물)
쿠레테스 도로 북쪽 끝에 위치한 12m 높이의 이 우물은 102~114년에
트라이안 황제에게 바쳐졌다.
우물 중앙 받침대 위에는 트라이안 황제의 동상이 있었고 그 발목으로부터
물이 흘러 나오게 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받침대와 오른발 한쪽만 남아있다.
이 곳에서 여러 황실가족의 동상이 발굴되어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황제 숭배신전
에베소 티베리우스 황제 신전
에베소 하드리안 황제 신전
에베소 셀슈스 도서관
셀수스 도서관은 에페소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물로 쥴리우스 셀수스가
소 아시아주의 총독으로 114년에 70세의 나이로 죽게 되자
그의 딸 쥴리우스 아퀼라가 그의 아버지 셀수스를 기리기 위해 이 도서관을 건축하여
125년에 완성하였다. 도서관의 정면 입구는 2층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있는데
지혜, 행운, 지식 그리고 선행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4명의 여성들의 석상이 있다.
도서관 내부는 습기를 방지하기 위하여 이중 벽으로 되어 있어서
당시에 소장되어 있던 수 천 권의 두루마리책을 보호하게 했다.
그러나 262년 코트족 침략 때 모두 소실되었다.
아고라
에베소 음악당(극장)
우리 일행들을 위에 뒷자리에 올라가서 들어보라, 하고는
내가 앞 무대에서 "주 하나님 독생자 예수 날 위하여 오시었네 ~ 그 찬양을 불러서
당시에 앰프 확성기없이 어떻게 음향이 전달되었는지를 시험을 해보았는데..
뒤에도 소리가 잘 전달 되더라고 한다
피온산 기슭의 비탈을 이용해 건설된 이 극장은 리시마쿠스 시대에 지어졌으며
오늘날의 모습은 트라얀(Trajan) 황제 시대의 모습이다.
따라서 로마-그리스 타입으로 무척 아름다운 극장의 표본이 되겠다.
고대 극장이 모두 그러하듯이 3부분으로 되어있다. 약 18m 높이의 무대 정면
건물은 3층으로 되어있고 각종 부조와 조각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었다고 한다.
약 40 m 지름의 중앙 무대는 정교한 음향학적 구조로 되어 있어,
배우가 작은 소리로 대화를 해도 관중석 끝자리의 사람도 모두 알아 들을 수 있었다 한다.
관중석은 외곽까지 150m의 크기이며, 각 단은 22줄의 좌석이 배치되어 있어
약 25,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이곳은 기독교 역사에서도 의미 있는 곳으로
사도바울이 3차 전도 여행 중 이곳에 들러 선교를 하다 에페스의 은 세공장이들로터
수난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성모 마리아의 교회
-주님을 사랑하는 시마을- 바나바
첫댓글 아직도 서울 남한산성 모임에 갔다온 여파로 몸도 마음도 뻐근합니다 "바울이 겐그리아에서 서원이 있어서 삭발을 하였더라 " 우리는 이 말씀에서 전도를 위한 그런 남다른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