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에서여행정보 그곳에선 나도 자연의 일부가 된다. ..소이작도

[영영]

건강상식과 일상생활 그곳에선 나도 자연의 일부가 된다.

이번 여름은 강수량은 많지 않았지만 흐리고 비가 오는 날이 많았던 탓에 피서객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각각 다른 기간에 휴가를 다녀온 직장 동료들, 친구들, 그리고 내 동생의 말들 들어봐도 모두들 비때문에 제대로 놀지 못했다고 말한다. 하긴 내가 서해의 섬 네곳을 찾아다니는 중에도 승봉도를 제외한 나머지 세군데의 섬에서는 비를 맞았다. 비오는 섬에서 시간을 보내는것도 나름대로 운치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어쩌다 한번이지.

"혼자 거길 뭐하러 가? 내가 한번 가봤는데 진짜 진짜 아무것도 없어. 가지마 가지마!"

이번 여행의 목적지를 들은 한 친구는 손을 내저으며 만류했다.

"그래도 한번 가보고 싶어. 자, 술이나 마셔."

오랜만에 정말 제대로 여름같은 날씨였다.

뜨겁다 못해 따가울 정도였지만 햇볓아래 서는게 싫지 않았다.

이번 여름동안 지겨울만큼 많이 봐온 풍경이지만

지겹지 않았다. 바다도 갈매기도.

언젠가부터 내 사진도 좀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나는 사진 찍히는걸 정말 싫어한다).

1박 2일의 일정이었지만 이번엔 짐도 없이 떠났다. 바지 주머니에 칫솔하나 넣고 카메라 한대만

딸랑 메고 집을 나섰다. 배에서 새우깡 한봉지를 사서 갈매기들에게 던져 주며 놀다가 그것도 잠시.

간밤에 마신 술때문에 좀 피곤해서 얼굴에 모자를 덮고 객실에 누워 잠이 들었다.

아무도 없는 텅빈 객실이었는데 누가 갑자기 모자를 낚아챈다.

너냐?

사자처럼 털을 깎은 작은 강아지 한마리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자꾸 장난을 건다.

강아지를 데려온 젊은 부부와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대이작도에서 내렸고

소이작도의 선착장에 내린건 단 두명이었다.

배는 다시 대이작도와 소이작도 사이의 좁다란 바닷길을 지나 덕적도로 떠나고 있다.

표를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없는 텅빈 매표소 앞에 못생긴 개 한마리만

웅크리고 앉아 지나가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이 섬에는 해군 기지가 있었다. 그 칙칙한 색깔의 건물과 배들 때문인지 섬의 첫인상이

썩 좋지는 않았는데, 길가에 무리지어 피어있는 해바라기들이 말했다. "우릴 봐서 참아요^^" 라고.

 해군기지 앞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물 한병을 사며 아주머니께 물었더니

이 섬에서 갈곳은 벌안 해수욕장 밖에 없다고 했다. 그리고 걸어서 가기는 힘들다고.

선착장에서 벌안 해수욕장까지는 약 4.8km인데 내 걸음으로는 한시간도 채 안걸리는

거리지만 산을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제법 힘든 코스였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이 섬은 옛날에는 해적들이 숨어 살던 섬이라고 해서 '이적도'라고 불렀었는데

나중에 '이작도'로 바뀌었다고 한다. 직접 올라가 보니 과연 산이 높아 도망치면 잡으러

쫒아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 멀리 선착장과 대이작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중간 중간 힘들때마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쉬어갔다.

물을 마시며 쉬고 있는데 예쁜 장지뱀 한마리가 내 옆을 지나간다. 몸을 이리저리 요란하게

흔들며 앞으로 가는 모습이 재밌었는데 섬 곳곳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다.

한번 잡아볼까 했지만 멋진 꼬리를 자르고 도망갈까봐 눈으로만 봤다.

휴우~ 땀을 뻘뻘 흘리며 두시간 정도를 걸어 벌안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파란 하늘 빛을 그대로 담고 있는 잔잔한 바다.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멀리 벌안마을이 보이는 물맑은 바닷가에서 할아버지 한분이 낚시를 하고 계셨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뭐 잡으세요?"

"우와~ 이 망둥어 잡아서 먹어요?"

갑자기 나타난 땀에 흠뻑 젖은 거구가 어린애처럼 촐랑거리는 모습이 우스워 보였는지

할아버지는 입가에 묘한 웃음을 지으신다.

"못먹을껀 없지. 우럭 미끼로 쓰려고 잡는거야."

한참동안 낚시질을 구경하고 벌안 마을로 갔다.

인적없는 작은 마을에 크고 작은 민가와 민박집도 보인다.

마을 어귀의 바위 그늘 아래서 꽃게잡이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부부.

검게 그을린 선한 눈매의 아저씨가 낯선 이방인의 인사에 주름진 웃음으로 답해주신다.

길은 낚시배가 드나드는 바깥벌안 선착장까지 이어져 있었다.

선착장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부자.

아이도 아빠가 일러주는 대로 낚시대를 담궜다 뺐다 하고 있었다.

와아~ 제법 큰놈도 있고. 이 식구들 오늘 저녁엔 맛있는 우럭 매운탕을 먹겠구나.

매운탕은 역시 우럭이 최고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허기가 졌다. 아침에 집에서 컵라면 하나만 먹고 나와서 종일 물만 마시며 돌아다니고 있다.

다리도 풀리고 땀을 많이 흘려서 조금 어지러운것 같기도 하다.

배도 고프지만 얼른 씻고 싶다.

오늘은 이 마을에서 묵어야 할것 같아 숙소를 잡았다.

민박집 앞에서 한시간을 기다린 후에야 집주인을 만날 수 있었다. 이 민박집 주인 역시 고기를

잡는 사람인데 그물 손질이 바빠서 민박 손님을 신경쓸 겨를이 없다고 했다.

그는 목장갑을 낀 손으로 방값을 받고는 다시 서둘러 바닷가로 나갔다.

찬물로 샤워를 하고 잠시 눈을 붙였다. 아~ 바닷바람 참 시원하네...

눈을 뜨니 뉘엇뉘엇 해가 저물고 있었다. 뭘 좀 먹어야 할것 같아 밖으로 나갔다.

배에서 두명이 내렸는데 한명은 나고, 다른 한명은 저 바위에 걸터앉은 남자다.

그는 커다란 낚시가방과 텐트를 짊어지고 내렸는데 여기서 야영을 할꺼라고 했다.

아이고 이런... 식당이 없다. 구멍가게도 보이지 않는다.

이대로 굶어야 하나. 바지 주머니에 배에서 산 새우깡 반봉지가 들어있었다.

붉게 물든 노을을 바라보며 저녁으로 새우깡을 먹었다. 갈매기가 된 기분이다.

아... 엄마가 해주는 김치찌개가 먹고싶다.

아... 이 긴긴 밤을 뭘하며 시간을 보낼까.

아... 나 여기 왜 온걸까.

터덜터덜 민박집으로 들어서는데

"어이~ 총각, 혼자와서 저녁도 못먹었지? 이리와서 삼겹살에 소주한잔 하고 들어가."

민박집 아저씨가 내게 손짓하며 말씀하셨다. 아아!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한참 바쁠때와서 손님한테 신경을 못쓰네. 미안해요."

이집은 형제 부부가 운영하는 민박인데 요즘은 민박손님도 없고 꽃게잡이 준비가 바쁠때인데다가

아주머니들은 장을 보기위해 인천으로 나가고 안계시다는 것이다. 앞바다에서 직접 잡아

담궜다는 곤쟁이젖갈, 소라젖갈을 맛보라고 내주시며 고기도 많으니까 양껏 먹으라고 말씀하신다.

"그럼 염치불구하고 먹겠습니다."

"이건 뭐하러 찍어, 우리집에와서 삼겹살 먹고갔다는 소리는 하지말어. 꽃게 소라 조개 같은거

먹을때 왔어야지. 다음에 때 맞춰서 다시한번 와."

소주 한잔과 이런 저런 얘기에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다음날 아침 민박집 아저씨께서 선착장 까지 태워 주셨다.

"근데 아직 배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뭐 할라고..."

 그러게... 뭐하지?

다시 해바리기 꽃길을 지나 어제 물을 샀던 구멍가게에서 또 물 한병을 사며 물었다.

"저기 올라가면 약진이라고 조그만 바닷가가 있는데 길이 안좋아서 사람들이 잘 안가는데..."

그 가파른 길을 다시 걸어 올라갔다.

2km 쯤 지났을까 아무런 안내표지도 없지만 산 아래로 내려가는 틈이 보인다.

다시 이런 산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갔다.

중간 중간 길이 없어지는것 처럼 보였지만 내려갈수록

파도소리가 가까워지는걸 보니 바다가 나오긴 나오겠지.

구멍가게 아주머니 말대로 길이 험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긴 힘들겠구나.

소나무 사이로 파란 바닷물이 보인다. 철썩철썩 파도소리도 훨씬 크게 들린다.

산으로 둘러쌓인 작은 해변. 백사장의 길이가 채 50m도 안되는 아담한 곳이었다.

고운 모래사장에 바닷물도 더 없이 맑고 깨끗했다.

햇살들도 파도를 타고 노는냥 밀려오는 파도위에 반짝거린다.

가슴이 벅차 올랐다.

난 이곳에 도착하려고 이 섬에 왔던거였구나.

뭔가를 찾아 나섰던 여름 여행의 마지막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야 말로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땀에 젖은 옷들은 바위에 널어 놓고 알몸으로 바다에 뛰어 들었다. 

여름내내 흘렸던 모든 땀을 씻어냈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그렇게 나도 자연의 일부가되었다.

[파란하늘]

벌안 해수욕장에서 발담그고 놀다가 매운탕 끓여 먹으면...정말 즐겁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