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서 태어나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하고 숭실전문대학과 대동공업전문학교 교수를 지낸 사람.
1928년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마침내 1936년 한국 단편문학의 백미라고 평가되는 '메밀꽃 필 무렵'을 발표하여 소설가로서 문명을 떨쳤지만 1942년 서른 여섯의 나이로 아깝게 세상을 버린 사람.
처음에는 노령근해,상륙,행진곡 등을 통해 동반자 작가로 활동하였으나 후기에는 돈(豚),산,들 등을 발표하며 자연과 교감하는 시적인 문체로 유려하게 묘사한 작품들을 발표했던 가산 이효석을 찾아가는 길은 즐거웠다.
지난 해 겨울. 영양 조지훈 생가를 거쳐 두들마을 이문열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행을 했었는데, 일년 사이 얼굴들은 바뀌었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문학기행은 즐겁고도 보람 있었다.
가산문학관이 있는 현장.
봉평,대화,충주집,물레방아간,노루목 고개,여울목....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을 이루는 지명들이 간단없이 떠오르고 등장인물인 허생원,동이,조선달,당나귀 등이 눈앞에 밟히듯 선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실로 만남과 헤어짐, 떠돌아 다니는 이의 애수랄까 결코 쉬 지울 수없는 그리움의 순간들이 자연과 두루뭉수리 되어 미학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내던 이효석의 소설을 떠올렸다. 문학기행 안내를 맡은 책임감으로 십 대에 읽었던 이효석을 나는 다시금 읽고 길을 나섰는데 아아, 그 감동과 여운은 달밤의 메밀밭을 묘사한 시적 문체가 주는 감동 하나만으로도 한 편의 오래된 흑백영화 같기만 했다.
이효석 문학관 앞 주차장 맞은 편에는 봉평 장터를 소박하게나마 재현해 두고 있었는데, 장터로 들어가는 입구의 간이 썰매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손 꼽아보니 오십년 가까이 되었다. 내 유년의 썰매타기로 하루낮이 축축하게 저물도록 얼음을 지치곤 했던 그런 날의 그리움과 추억들이....
이효석의 모습
모처럼 나선 여행길에 그럴듯하게 아는 시늉을 내어야 했다.
답사여행의 길잡이-동해 설악편의 평창과 오대산 항목에 나오는 이효석 외 율곡 이이와 관련된 봉산서재와 팔석정과 내친김에 상원사와 관련된 세조이야기 까지......
이효석 선생의 집필실 모습이다.
일찍이 서양음악에도 조예가 있었던 모양인다 사진에는 안 나오지만 오른쪽 편에는 오래된 풍금이 있었고, 왼 편에 보이는 것은 축음기이다. 책꽂이 상단에 도너츠판이라고도 불렸던 sp판인지 LP판인지...보인다. 벽면에 턱 자리한 서양 여인은 누구시온지? 한참을 쳐다보았으나 모르겠다.
평창에서 짜하게 인물 좋기로 알려졌던 성씨성 가진 처녀와 방앗간에서 허생원과 만나는 모습.
봉놋방에서 잠 자다가 하두 더워 메밀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는 개울에 목욕이나 하러 갔다가, 하필 방앗간에서 울고 있는 처녀를 만날 줄이야....야반도주라도 해야 될 처지에 있던 성씨 처녀 집안의 딱한 사정이 어떠했는 지는 모르겠으나, 하룻 밤 인연을 품고 처녀를 찾아 평생을 장터마다 떠도는 허생원의 심사가 어떠했을까?
피는 못 속인다더니 아니 씨도둑질은 못 한다고 했던가.
얽음뱅이(곰보)에 왼손잡이인 허생원을 닮아 하룻밤 인연으로 생겨난 동이도 그예 왼손잡이일 줄이야.
충주집에서 주모와 노닥거리던 젊은 동이의 모습에 질투 반 부러움 반 쯤으로, 심사가 뒤틀린 허생원의 늙은 푸념과 투정이 없었다면..... 동이와 허생원과 조선달이 다음 장을 위해 메밀꽃 지천으로 핀 밤길을 함께 나서지는 않았을 것을.
저 쌍팔년도의 박노식과 김지미 주연의 영화포스터라니....
수정알처럼 영롱히 영화화된 메밀꽃밭의 서정은 과연 어떠 했을까 못내 궁금키만 하다.
지천으로 메밀꽃 피어있던 물레방앗간의 서정과 첫날밤이자 평생에 마지막 밤이 되어버린 농밀한 연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허랑방탕 길들은 투덜거리고 세상은 속절없이 흘러만 가 버렸는데 성처녀의 흔적은 천지간 자취가 없는데....
지난 해 1월에도 나는 집을 떠나 있었다.
막부시대 사무라이들이 애용했다는 140년 된 구로가와 온천이 있는 눈밭에 묻힌 신명관에서 보낸 적이 있다. 눈과의 인연은 이토록 가까이 있어 강원도 봉평 땅까지 치달려 나로 하여금 다시 이리도 커다란 설레임으로 마주해 서게 하는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자라바위가....푸른물과 층암절벽이.......그래 드디어 단종의 한이 밴 영월 땅 넘어가는 산마루에 들어선 것이다! 오른 쪽 우뚝선 바위가 선돌.
갑작스런 눈발은 내려서 네 그리움과 헤매임의 모오든 무모한 열정도 잠시 푹푹 묻히고...그렇구나 이 먼 유배의 땅에서 나도 잠시 세상 끝날처럼 그리움 하나 없이도 홀로 외롭고 싶구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시대 왕릉은 하나같이 한양 100리 땅 안에 있다 했거늘, 이북 땅에 두 기의 왕릉 말고도 조선조 6대 단종의 왕릉은 500리는 장안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라.
계유정란이후 1455년 단종은 세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上王)이 되었다 했다.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죽임을 당한 사육신과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 청령포에 유배된 단종의 심사는 어떠했을까. 시간 관계로 단종이 두 달 머물다가 홍수로 거쳐를 옮겼다는 청령포를 배경으로 그래 그렇지 인증 샷!!!
처음에는 영월역 앞 올갱이국을 먹으러 갈까 했었다. 올갱이를 못먹는 학생이 있어 곤드레밥집으로 향했는데 그런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유심'이라는 잡지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난 해 여름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새벽까지 함께 술판을 벌인 김남극 시인의 詩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첫사랑은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김남극
내게 첫사랑은
밥 속에 섞인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데쳐져 한 계절 냉동실에서 묵었고
연초록색 다 빠지고
취나물인지 막나물인지 분간이 안 가는
곤드레 같은 것인데
첫사랑 여자네 옆 곤드레 밥집 뒷방에 앉아
나물 드문드문 섞인 밥에 막장을 비벼 먹으면서
첫사랑 여자네 어머니가 사는 집 마당을 넘겨보다가
한때 첫사랑은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햇살도 한 평밖에 몸 닿지 못하는 참나무숲
새끼손가락만한 연초록 대궁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까실까실한,
속은 비어 꺾으면 툭 하는 소리가
허튼 약속처럼 들리는
곤드레 같은 것인데
종아리가 희고 실했던
가슴이 크고 눈이 깊던 첫사랑 그 여자 얼굴을
사발에 비벼
목구멍에 밀어 넣으면서
허기를 쫓으면서
-『유심』(2003년 봄호)
<솔잎가든> 곤드레밥은 최고였다.
음식은 차치하고 서비스와 마음 씀씀이에 큰 감동을 받았다. 서빙을 하며 학생들에게 살갑게 대해준 아주머니 두 분 중 한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혹시 주인이세요?'
"종업원이에요."
'그런데 왜 그렇게 친절하세요?'
영월에서야 관광자원 말고 달리 먹고살 것이 없는데 잘 해야지요. 아마 주인도 우리와 같은 마음일 거에요....'
필요한 것이 없냐기에 밥 좀 더 있냐니까 2인분은 넘는 곤드레밥을 갖고 오는 것이었다. 한창 먹성 좋은 학생 세 명이 덜어먹고 함포고복 [含哺鼓腹] -달리 무엇을 더 말하랴!
영월시내를 서너 바퀴 돌았다.
'라듸오스타'-한물 간 록가수 박중훈과 프로듀서로 분한 안성기가 나와 지방방송국 디스크 자키를 통해 보여주었던 감동과 사람살이의 구구절절함(?)...곁에 두고도 촬영장 주변만 배돌면서 지나치고 만 아쉬움이 크다,
난고 김삿갓기념관 오른쪽 켠에 자리한 내가 익히 잘아는(물론 나 혼자만 작품으로 만나고 했지만..) 시인들의 시비가 한동안 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오세영,문효치,이재무,이동순,오탁번,정진규, 이승훈 선생의 시비들. 다음 시인의 이름은 그 누구?
홍경래란에 연루되어 항복한 김익순의 손자 난고 김병연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조금이라도 시간을 여투느라 무리해서 마구령을 넘다가 낭패를 겪을 뻔 했다. 기아 1단 놓고 5키로 속도로 겨우 넘어온, 온통 눈길인 탓에 슬금슬금 미끄러지던
응달진 산길. 사고가 이렇게 해서 나는구나.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던 백두대간 마구령 고개길.
영주 부석사와 풍기 희방사를 지척지간에 두고도 대구로 치달려야 했던 1박 2일의 문학여행길.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잠시 동안이지만 좋은 선생이고자 했다.
문득 희방사에 관해 말씀하시던 ,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이우출 시조시인이 보강수업차 들어와 들려주었던 고등학교 1학년 때의 국어시간을 떠올렸다.
국어과 시간강사 모씨와 국어과 교수 몇 이서 희방사에 가기로 했단다.
'선생님 희방사가 어디 있습니까?"
'희방사가 어디인지 잘 모르시는가?'
'예...'
석보상절이 발견된 그 유명한 희방사도 모르고 국문과 교수가 되겠다니....그 시간강사는 결국 그 사소한(?) 희방사건으로 인해 교수 심사에서 떨어졌다고 했던가.
그러고 보니 또 있다.
세상에는 월탄 박종화의 '흑방비곡.이 있는데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최독견의 '승방비곡;이라는 소설이 있는데 서로 사랑하는 두 남녀가 알고보니 오누이였단다. 그래서 아픈 상처를 안고는 끝내 절로 들어갔다는...그 소설을 아직까지 나는 읽지 못하고 있으니.....돌아보니 사십년 이쪽 저쪽의 이야기이다.
차가 눈길에 언 응달을 오르다가 미끄러지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건만 나는 뜬금없이 희방사의 석보상절과 최독견의 '승방비곡'을 생각했느니....
말마따나 억시게 운좋은 1박 2일의 여행이었다. 다치지 않고 돌아와 언젠가 다시 눈썹이라도 빼놓고 길 나설 수 있을 터인즉 참 좋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