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
염 재 호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
최근 노년의 삶을 다룬 영화를 몇 편 보게 되었다. 프랑스 영화 '아무르'는 정말 암울했다. 치매에 걸린 부인을 뒷바라지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삶의 종착역이 저처럼 힘들면 인생이 너무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영국 영화 '송포유'는 고집스런 남편이 성격이 밝은 아내의 죽음으로 세상에 마음을 여는 따뜻한 영화였다. 그래도 홀로 남은 노년은 서글프다. 요즘 신문광고가 많이 퇴조했다. 남아 있는 광고는 오직 세 가지뿐이라고 씁쓸한 농담을 던진다. 건강을 지키기 위한 등산용품, 건강 잃을 것을 대비한 실버건강보험, 건강 잃고 세상 떠날 때를 위한 장례상조 광고가 바로 그것이다. 젊은이들이 신문을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대기업 이미지 광고를 빼고는 노인들 광고만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다. 활기찬 노년의 건강한 말년을 위하여 인생의 마무리가 이처럼 본능적 생존을 위해서만 힘겹게 싸우다가 결국 떠나고 마는 것이라면 우리 삶의 모습이 너무 애처롭다. 인생의 마지막이 갓난아이처럼 누군가의 손에 의해 돌봄을 받다가 결국 고통 속에서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은 너무 허무한 일이다. 가을의 낙엽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다가 쨍하는 서릿발의 추위와 함께 모든 잎을 겸허하게 스스로 떨구듯 산뜻하게 떠날 수는 없을까? 노인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쳐서 노인들끼리 인터넷 신문을 만드는 NGO를 시작한 후배 교수가 있다. 삼백 명 정도의 노인들이 다양한 정보를 검색하고 교환하여 인터넷 신문을 만든다. 처음 배운 컴퓨터 실력이지만 열의가 대단해서 매일 몇 시간씩 그 일에 빠져든다고 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회원 중 팔십 대가 넘는 분도 꽤 많은데 지난 몇 년간 돌아가신 분이 몇 분 안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분들도 돌아가시기 전 길어야 한두 주 정도만 병원신세를 졌다고 한다. 많은 노인들이 엄청난 병원비와 오랜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빠져드는 일거리가 있으면 소위 "구구팔팔 이삼사"라는 덕담도 실현되나 보다.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에 많다. 어린이날은 물론이고, 유아원도 있고, 놀이동산도 있고, 피아노, 미술학원도 있고, 어린이 T.V.도 있다. 그런데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은 없다. 있어도 노인정, 독거노인, 탑골공원 등 모두 떠올리면 부정적인 이미지뿐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노인들조차 노인이라는 말 쓰는 것이 싫어서 노인대학, 경로대학을 평생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기를 선호한다. 취학 전 아이들의 무임승차는 당연하게 여긴다. 그런데 경로우대 무임승차는 지하철 적자의 원흉이라고 거품을 무는 사람들도 있다. 홀로서기가 힘든 것은 어린이나 노인이나 마찬가지인데 아직도 사회적 인식은 노인을 어른으로만 생각하고 돌보기를 게을리 한다. 노인 노동력을 이용한 창조산업을 만들어야 이제 노인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은퇴하면 마치 폐기처분된 노동력으로만 생각하는 인식도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알루미늄 캔도 이전에는 쓰레기로 환경오염의 주범처럼 취급되었다. 그러나 이제 알루미늄 캔 재생은 우리의 중요한 자원산업이 되었다. 이처럼 노인 노동력 재생도 필요한 것은 아닌가? 아직도 충분한 능력이 있는데 나이 때문에 생산현장에서 밀려나야 하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된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 아닌가? 이제 초고령화 사회를 걱정만 하지 말고, 노인 노동력을 새로운 창조산업의 동력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노인의 날도 만들고, 노인들을 위한 에코 신도시도 만들고, 노인들이 다니는 대학도 만들고, 노인들이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노동시장도 만들어야 한다. 젊은이들에게 인기 많은 "일박이일"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 원로연기자들이 나오는 일박이일, "꽃보다 할배"라는 프로그램이 케이블 채널에서 곧 방영된다고 한다. 은퇴한 장년들이 색소폰도 배우고 드럼도 배우고 노래도 배우는데 이제 노년층을 위한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도 하나 만들면 어떨까? 고령화 사회를 버려진 노인들의 사회로만 보지 말고 노인들의 역량이 발휘될 수 있는 사회로 바꿔야 한다. 그런 노인을 위한 나라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고령화 사회로 고민하는 많은 다른 나라들은 또 다른 한류에 크게 환호할 것이다. |
▶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
|
|
다산포럼은 일부 지역신문에 동시게재합니다.
컬럼은 필자의 고유의견이며 다산연구소의 공식견해가 아닙니다.
이 글에 대한 의견을 주실 분은 dasanforum@naver.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