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강영에게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방안 가득히 들여놓고 잠을 청하나
쉬--이 잠이 오질 않는다.
가을 애상이 한밤의 길동무가 되어 같이 가잔다.
늘 추억이 그립고
생각나는것 마다 옛일인걸 보면
내나이 쉰여섯은 추억을 먹고 사는 나이임에 틀림이 없나보다.
이시간 먼 캄보디아 에서도 잠 못드는 친구 강영이가 있네
훑고 지나가는 친구 강영의 뒤를 나도 따라가며 혼자 웃는다
친구는 요즘 어찌 지내고 계시오 ?
덥고 덥다는 그곳에서의 생활이 막연하게 생각되어질뿐
감이 잘오지는 않는다오.
근황도 길게 애기해 주고 그곳에서의 생활담 내지는 이국적인 감흥이 물씬 풍기는
에피소드도 얹어주면 좋으련만
친구는 늘 말이 없네...
예전 국민학교 6학년때 화장실 뒷편에 새로 지어져 도서실 건물이 들어서고
어린나이였지만 친구와 나는 꽤 열심히 그곳에서 책을 읽었더것 같은데,
나 혼자만의 기억인가...
친구는 참 잘하는게 많은 친구였네
글짓기, 웅변, 그림그리기, 노래등..
요즘말로 하면 만능 엔터테이너 !!
그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친구였지
공부도 빼놓을 수 없고
언제나 웃음을 많이 달고 살았던 친구이기도 했지
동순이가 서울로
정일이도 서울로
태호가 경복으로 중학교를 가고
갑용과수환 미영 그리고 비석거리의 친구들과 나
그외에는 모두 광동 중학교로 진학을 했었네.
꿈이 많던 시절이었을 테지 그때는..
허나 그당시에 나는 치이는게 많았던것 같네
좀더 활달하고 생기 넘치는 아름다운 학창 생활로 꾸려갈수도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했던 부분들이 내게는 늘 아쉬움으로 남아있다오 지금까지도...
좁은 골통에 소문새가 안좋게 나기 십상이니 늘 행동거지에 신경을 써야 하느니 하시던 울엄마의
걱정과 염려를 덜기 위해 한눈 한번 팔아본 적이 없는 모범답안 보다 더 모범스러운 모습으로
중.고 6년을 다니고 나니 내게 남은건,
광릉의 사계와 숲의 웅장함
눈이 시리도록 파아란 하늘
한겨울 능안의 아름드리 전나무가 눈보라에 넘어가던 무섭던 추위
눈 쌓인 사슴이 고개의 등교길은 또 얼마나 힘들었던지
통신대 앞개울 징검다리는 날마다 얼어붙어 미끄러지는 날이면 물젖은 발이 시리다 못해 아리곤 했느니.
학우들과의 관계보다 늘 자연과의 관계가 먼저였었네
그생각도 나는군
봄이되면 노천강당이라 일컬어 지던 숲속에서 전교생이 모인 가운데 웅변 대회가 열리곤 했었지
그때 친구의 인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른다는 말 밖엔 다른 표현이 없을듯 싶으이.
그럴때면 난 은근히 친구가 자랑스러웠었지
내촌 국민학교 출신이라는 것 만으로도....
친구 방송반 활동도 같이 하지 않았나 생각이든다.
쓰다보니 새록새록 기억이 넘쳐나네..
각본 없는 드라마가 따로 없군
깊은 생각없이 추억따라 가다보니 얘기가 너무 지루해진것 같아 미안하이.
세월이 가는걸 무상타 하지 않을 정신력으로 이가을을 살아내 보자우요
어느곳에서나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는 같을터 중년의 미덕이 빛을 발하는 귀한 날들이 되길...
그곳에서 늦게 피운 꿈들이 열매를 맺고 그더운 곳에서의 수고가 친구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할 것이라 믿으며
두서없는 글 접으려니 깔끔하지 못한 부분들 이해 하시오.
더많은 얘기들은 앞으로 친구가 들려줄것으로 믿고 나는 이밤을 쉬려네 .
친구!
건강 조심하구 잘 있으오.
추신 ; 정일이의 여식 현주의 결혼식때 많은 친구들이 함께 했음을 알려 드리오.
2010. 9. 17
연욱 씀
첫댓글 강영이 오늘 밤에 잠 못자게 생겼네....
연욱이 말대로 세상 참 별 것도 아닌데 잠깐 생각하다보면 가는 길이 달라진단 말이지.
그래도 이만큼 살았으면 어찌 살았던 행복일 테다. 추억을 지게로 지고가도 모자랄 넘침이 있어 좋구나...
추억을 지게로 지고가도 모자랄 넘침은 태호에게도 있지..
부러우면 말씀하시게,
좋지않은 기억력이지만 쥐어 짜서라도 한장의 추억을 풀어놔 보겠네.
정일이의 여식 현주의 결혼식에는 억수 같은 비에도 불구하고 많은 친구들이 참석해 축하를 해 주었다오. 직접 참석하지 못한 여러 친구들도 많이 축하해 주었고... 이 고마움을 어찌 표현할 방법이 없구랴. 멀리서 마음으로 축하해준 강영에게도 고맙소.
광동학교에 진학한 친구들은 참 추억도 많구려. 열 세살 나이에 식구 많은 고모네집에서 눈치밥 먹고 학교 다니며 고향을 그리워 하고 지낸날들을 어찌 헤아릴수 있겠는가. 당신들 같은 아름다운 추억도 물론 간직하지 못하고 말이요.
아름다운 추억 언제까지나 되새김하며 소중히들 간직하시게나. 부럽소.
그러게 누가 서울로 오리야?
시골에서 살메 나랑 광동이나 다니지 그렸어
그럼 눈치밥 안먹어도 되얐을거구..ㅋㅋ
하지만 친구야 그런 세월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네가 있는게 아니겠나
서울에서 수돗물만 먹고 살아 자네는 때깔도 좋잖여
갑용이 말대로 자네는 어쨌거나 부르조아인겨
허니 엉구럭 떨지말고 얌전히 계시구려 이진명 면장님의 자제분 !!
웅변 노래 글짓기 그림 뿐 아니라 공부도 잘 했던 강영이에 대한 추억은 나도 연욱이랑 다르지 않소.
우리들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그 시절 추억은 아쉬움도 있지만...
그래두 언제나 정겹고도 애잔한 감동이 있는것 같구료.
그려 수환 !!
나를 슬프게하는 추억에 글이다...!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에 못간다고 나머지 공부까지 했고...!
시험보던 날 난 누구보다 먼저 광동학교 2층 시험장에 도착했지...!
나머지 공부을 열심히 해서일까 그날따라 왜 그리도 시험 문재가 쉽게 풀리던지...!
합격자 발표가있던 날 나는 아침 일찍 학교로 달려갔고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좌측 벽에 붙어있는 내 수험 번호를 확인할수있었지 합격이다 합격이야~~
하지만 난 친구들과 함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지 못했다.?? 서울로 상경을 했으니까.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난 내촌 초등학교 34회 추억만으로 도 울 친구들이 보고싶고 그립다.!!!
그랬었군!.
우리네 시골 생활이란게 다거기서 거기였었지
가난하고 어렵고 심하게는 먹을것도 부족했고 어린나이에 소 꼴베고 풀뜯기고
그가난의 멍에가 있었기에 지금 같은 풍요의 시대도 열린걸거요.
우리네 부모님들의 억척스러운 수고와 노력이 없었던들 ,
그리고 그 진저리 쳐지는 가난의 늪에서 민족을 구하고자 전 인생여정과 생명 마져도 담보로한
진정한 리더쉽의 지도자가 없었던들 어찌 지금의 우리가 있겠는가.
헌디 ,희영 똘똘한 친구가 어쩌다 나머지 공부꺼정 했디야?
그와중에 눈물겨운 합격 축하혀,늦었지만...
진심이여!!
똘똘한거랑 똑똑한거의 차이라고나 할까.?ㅎㅎ
초딩시절 울친구 연욱기는 정말 귀엽고 예뻐지 물론 지금도 예쁘지만!!
친구야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간직하고있던 옛추억을 떠올리게하는 좋은 글 올려주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