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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100대 강
남한 제일의 낙동강 유역의 742개 지류중 30km 이상의 강들은 대부분 끝나고,이안천과 고립무원의 운곡천만 남겨두었다
나야 그렇지만, 작년 가을부터 시작한 추산 대장님의 5대강 낙동강. 영산강,섬진강,금강,그리고
한강 마지막 구간 진행하는 날이라 5대강 졸업 축하도 해 드려야 하겠기에 전날 서울로 상경하며 공릉천을 걸음해 보기로
한다.
한북정맥 도봉산 북쪽 계곡인 송추계곡에서 발원하는 공릉천은 이름부터 여타의 강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공릉천은 조선 세조때 수양대군을 도와 어린 단종을 폐위 시키고 수양을 왕위에 올리게 되는 일등공신 청주 한씨 한명회를
알아야 하니,한명회는 조선개국 당시 명나라로 가서 조선(朝鮮)이란 국호를 얻어 가지고 돌아온 개국공신
한상질의 손자이며 태어났을때 칠삭둥이로 태어나 몸이 허악해 곧 죽을줄 알고 버려 두었는데 늙은 몸종이 거두어 키우게 된다.
이후 계유정난(수양이 단종의 세력인 김종서,황보인.등 살해하고 제거한 사건)을 계기로 한명회는 승승장구 하며
사육신(死六臣 박팽년,유성원,유응부.하위지.성삼문,이개)의 단종 복위사건까지 적발하여 모두 죽이게 되지만
백팽년의 후손(박비)은 몸종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건진다.
수양대군의 장자방으로 하늘을 날으는 새도 떨어 뜨렸던 그도 73세에 세상을 떠났으나 살았을때 보다 죽어 더 불편 했으니
1504년 연산군 10년 갑자사화(연산군 생모인 폐비 윤씨 복위)가 일어났을때 정창손등과 함께 지목되어 시체가 무덤에서
꺼내져 부관참시 되어 한양 거리에 효수되는 일이 일어난다.
중국 삼국시대때 천하를 삼분지계(三分之計)한 제갈공명과
세조의 왕위 찬탈있기 100년전 중국 춘추 전국시대때 원나라를 멸망 시키고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의 일등 책사 유백온
유백온은 제갈공명과 더불어 주군을 도와 왕위에 오르게 한 인물로 유명하다.
제갈공명이나 유백온과는 실적으로 너무 다르지만 조선의 어린 임금을 폐위시킨 수양대군의 장자방 한명회
계유정난과 단종복위 사건과 관련하여 그의 이미지는 교활하고 나쁜 이미지로 굳어져 내려 왔으며
부관참시(죽은후 시체를 꺼내 다시 목을 치는것)의 대명사로 알려지게 된다.
한명회가 살아 있을때 자매지간이던 두 딸을 왕후로 삼게되니 조선 제8대 예종의 비 장순 왕후와 9대 성종의 비 공혜왕후다.
예종의 비였던 장순왕후는 예종이 왕위에 오르기전 인성대군을 낳고 17세에 세상을 떠났으며
성종의 비였던 공혜왕후도 12세에 혼인하여 14세에 왕후가 되었으나 슬하에 자식은 없었고 19세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나는 새도 떨어 뜨렸던 천하의 한명회도 딸들을 먼저 저 세상을 보내는 불운을 격는다.
단종 임금이 영월에서 유배되어 17세때 세상을 떠났으니 한명회의 딸들도 비슷한 나이에 모두 저세상으로 가고 만다.
공릉천은 한명회의 딸이자 조선 제 8대 왕이던 예종의 비 장순왕후의 릉(공릉)에서 따온 강 이름이니
원(源)발원지로는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 한북정맥의 첼봉 남쪽에서 발원 하지만, 최장 발원지는 도봉산과 오봉산 중간
지점인 송추계곡 상류이니 원발원지와 최장 발원지와의 거리는 약 200-300m로 송추계곡 상류인 도봉산 북쪽 계곡이
조금 더 길다.
두곳에서 흘러온 물은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 교현고 위에서 만나 양주시,고양시,파주시를 거처 53km를 흘러 한강에 합류한
다.참고로 강이나 하천의 최장 발원지는 하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곳을 기준으로 한다.
새벽3시 넘어 서울역에 도착하니 알프스 운영자님,노성임 대장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알프스님 차로 송추계곡으로 가니 빗방울은 뚝뚝 떨어지고 두분이 송추 입구에서 기다리시는 동안 렌턴을 의지해
여성봉으로 오르니 시골 사람은 입이 저절로 벌어질듯하다.햐!~ 이런곳도 다있군요
빗물 머금은 바위는 올라 오지마라!며 참기름 바른듯 미끌미끌 하니 이도령을 향한 춘향이도 이런 미끄러운 마음이었을
까?
돌아가니 위로 오르는 길이 있어 한장 더 담아두고
고것참!~~
여성봉에서 본 오봉
오봉산 정상에서 본 오봉
비는 소강 상태지만 옅은 안개로 뿌옇게 보인다.
서울사는 까마귀란 녀석들이 바위에 걸터 앉아 여유로운 아침을 보내고
야들아!~~밥은 먹고 댕기나!~
오봉에서 본 가야할 능선
공릉천 지나간 경로
강길 60번째 누적거리 5,886km
공릉천과 주변 산군들
오봉과 자운봉 중간 지점인 송추계곡
이쯤에서 계곡으로 내려가게 된다.
온통 바위산인 도봉산 계곡은 물 한방울 흐르지 않고
소나무 산림이 우거진곳으로 지날때는 소나기가 내려도 조용한데
참나무는 자기잎 위에 뭐가 떨어지는걸 허락질 않으니 시끄러운 소리로 주위를 소란스럽게 하는듯하다.
계곡이지만 계곡이 아닌듯 하고
몇굽이 내려오니
바위틈으로 아주 맑은 물이 흘러 내린다.
바위속으로 흘러온 물이 모여 아래로 흐르니 물따라 내려 가보는 재미가 솔솔할것 같은 길이다.
서울의 강(江)과 지방의 강(江)들
서울의 강은 뭔가 조금 특별할것 같은 분위기지만 조금 더 내려 가봐야 특별한지 아닌지 알것 같다.
강길을 지날때 여름과 겨울철은 사뭇 다르다.
그길을 걸으며 길이 끊어져 횡단하는 가로 질러가는 경우는 많으나 종단으로 물 첨벙거리며 갈곳은 흔하지 않다.
낙동강 분천에서 명호로 가는길에 종단으로 내려가며 물을 몇번 건너야 하고
요즘 같은때는 오지도 그런 오지는 없을듯 발아래가 보이지 않으니 ...
겨울철에 강길 진행하기는 여름철 보다 한결 수월하나 물을 건너야하는 불편함도 있고
송추폭포는 비슷한 크기에 서로 닮은듯 3개가 연이어 나타난다.
가장 위에 있는 송추폭포
폭포 아래로 조금 더 내려오면
가운데 폭포 상단에서 닮은 사진
두번째와 세번째 송추폭포
두번째 송추 폭포
폭포에 흐르는 물이라고는 어린애 오줌줄기보다 못하게 흐른다.
세번째 송추 폭포
비슷하게 닮은 송추 폭포는 수량이 없어 생동감 잃은 모습이었으나
여름 장마철에 오면 아주 그럴듯한 폭포 일것이라 생각하고
송추 폭포를 내려온 물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화강암지대를 내려온 물은 아주 깨끗하다.
어지간한 국립공원의 물은 10리를 못가서 더러워지는데
이곳 국립공원 자락의 송추에서 흘러온 물은 어디서 더러워질까
송추계곡 입구부터 송암사 인근으로 많던 노점상과 식당은 모두 철거되어 자연 그대로 복구중이고
송추계곡을 건강하게
북한산 국립공원 송추 계곡 입구에서
알프스님과 노대장님을 만나
알프스님과 노성임 대장님
알프스님은 개인 일 때문에 어디로 가시고
노성임 대장님과 함께 진행 하기로 한다.
송추마을을 지나
한북정맥 첼봉에서 흘러온 물이 사패산과 울대고개에서 흘러온 물과 만나는곳
진행해야 할 공릉천
강가로는 길이 없어 잠시 도로따라 진행하니 도로갓길에 고라니란 녀석이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가 모두 부러졌는지
살려 달라며 처량스런 소리로 도움을 요청한다.
배낭에서 수건을 꺼내 고라니 두눈을 가리고
119에 신고를 해두고 잠시 앉아 고라니 등을 쓰다듬어 주니 사람의 손길이 싫지 않은지 얌전해진다.
약 20분가량 기다리니 119차량이 오고 대원 몇분이 내리더니 다친 고라니 녀석을 케이지에 싣고 떠난다.
설마 잡아먹지는 않겠죠
신흥 레저터운 앞에서 차량 이동이 뜸하니 빠르게 진행하면서도 지도를 수 없이 보게되고'
공릉천 물은 화강 암반으로 흘러 왔지만 아래로 내려올수록 진흙뻘이 생겨 물이 아주 흐리게 보인다.
온릉교에서 본 공릉천
장흥면 삼상리
일영 유원지로 가는 나무테크 다리
일영 유원지
여름철에 저곳에서도 수영을 하는지 모르겠다.
더러운데...
세상밖으로 떠나보지 않으면 언제나 우물안 개구리가 된다.
세상밖은 내것이 아니지만 내것으로 만들 수 있을때 떠나야 하고
혼자 떠날 수 없으면 함께 떠나야 한다.
산은 개발되어 허리가 짤리고 물은 하루가 멀다하고 더러워진다.
강길을 걸으며 아쉬운 순간이 많았던건 물의 더러움보다 그더러운 물을 우리가 매일 마신다는 거다.
위에 동네에서 흘러온 물은 내가 마시고 내가 버린물은 아랫 동네 사람들이 마시고
한북정맥 노고산을 배경으로
공릉천 좌측의 한북정맥 첼봉 이후로 장명산까지 흘러온 물이 공릉천이 되니
한북정맥길을 지날때 물의 흐름을 생각한다면 좀더 즐거운 정맥길이 될것 같다.
한북정맥 노고산이 보이는곳
비가 오락 가락하니 시원해서 좋고
이곳 공릉천의 물은 모래나 자갈이 아닌 뻘층이 두터운 강이다 보니 물빛이 흐리고 부유물이 많이 보인다.
양주시 장흥면 삼상리 야구장과 노고산
깨끗하게 꾸며진 남경 수목원을 지나
양주시를 벗어나 고양시로 들어와
고양시 세원산 공릉천을 건너는 노대장님
공릉천은 북한산 국립공원에 자리하는 도봉산과 송추계곡을 빼면 그렇게 볼거리가 없는 강이다.
오늘 날씨를 닮은듯한 공릉천의 물빛도 그렇고
공릉천과 교외천 철교
고양시 덕양구 관산동
강건너 6,25전쟁 참전국 필리핀 참전비가 보여 가본다.
공릉천 징검다리 건너 고양시 관산동에 도착하니
조선 제 5대왕인 문종의 딸인 경혜공주의 무덤이 인근 심리산 자락에 있다
경혜공주는 단종(이 홍휘)임금의 누이이며 계유정난(1453년 수양대군이 단종과 신하들을 살해하고 정권을 잡은 사건)과
단종 복위 운동 실패후 남편 정종(참판 정충경의 아들)과 함께 전라도 광주로 유배되었으나 남편 정종은 사형되고
이후에 순천부 관노가 되었다가 성종때 세상을 떠난 불운한 공주다.
그리고 심리산 옆의 매조산 자락에는 고려말 충신으로 잘 알려진 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시던 최영 장군의 무덤도 있었으나
경혜공주나 최영장군의 묘소는 시간 관계상 가보지 못하고 글로 대신한다.
필리핀 참전비
1950년 6,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필리핀군은 8월 19일 병력 1,496명이 한국전에 참전하게 되어
낙동강 방어 지역인 왜관,김천.대구.임진강,철원지역에 많은 전과를 내었으며
전사자 448명 (사망 92명.부상 299명 실종 57명)이를 기리기 위해 비를 세웠다고 한다.
타국에서 숨진 필리핀 전사자분들께 잠시 묵념하고
강길에 갈대는 보이지 않고 부드러운 물풀이 초록빛으로 반기는 공릉천
이제 수양의 장자방이던 한명회의 딸을 만나러 가야 하는데 아직 한참 더 가야 할듯하다.
오락가락 하던 비도 그치고 날씨가 후덥지근하다.
수중보 영향으로 물이 고여 있으니 가끔 팔뚝많한 잉어가 물위로 뛰어 오르는 모습이 들어 온다.
고양시 덕양구 내유동 지양교 아래로 시멘트 기둥 수천개가 가로로 약 1km정도 자리하니
이 기둥은 북한군의 탱크가 지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만든건이라 한다.
기둥 크기는 2km정도 될듯
고양시를 지나 파주시로 들어와 공릉천의 물빛은 어떤지
3-4급수 정도의 물빛이며 연한 간장색을 하고 수중보 아래로 흐른다.
수중보를 설치해서 흐르는 물을 막아두니 물은 고여 있다가 더러워지고
더러움은 오래 참고있지 못하고, 또 다른곳에서 물이 유입되니 이물 저물과 함께 더러워진다.
물구경 했으니 이제 공릉천의 전설을 찾아 삼릉(三陵:공릉,순릉,영릉)에 가야겠다.
삼릉은 예종의 첫번째 왕비였던 한명회의 딸 장순왕후가 왕세자빈이였을때 세상을 떠나자 묘가 조성되었다가 성종때
공릉이라 하였고, 후에 성종의 왕비였던 한명회의 딸 공혜왕후의 순릉이 조성 되었고,영조때 영조의 맏아들 효장세자가
세상을 떠나자 묘가 조성되어 영릉이 되어 삼릉이라 한다.
강길에서 약 800m를 벗어나 삼릉이 자리한다.
왕복 1km가 조금 넘지만 이곳에 왔으니 공릉은 봐야할것 같아 도로따라 올라온다.
공릉과 사당
조선 제8대 예종의 첫번째 왕비 장순왕후
한명회의 세째딸로 태어나 세조 6년에 왕세자빈이 되었으나 이듬해 인성 대군을 낳고 산후병으로 17세에 세상을 떠난다.
세조는 왕세자빈에게 장순(章順) 이라는 시호를 내렸고 이후에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후로 추존된다.
묘 주위로 울타리가 크게 둘러 처져있어 가까이 가보지 못하고 먼발치서 까치발로 서서 한장 담아본다.
묘는 보일듯 말듯하고 주위로 병풍석,난간석 무인석 같은 석물이 전혀 보이지 않으니
아마도 예종이 왕위에 오르기전에 세상을 떠나 묘가 봉분만 있고 단출한것 같다.
조선국 장순왕후 공릉
이곳 공릉에 오니 왕위 찬탈의 일등 공신이였던 한명회의 여식들 무덤이여서 그럴까
그렇게 곱지 않은 시선을 뒤로하고 걸어 나오니,지난날 걸었던 강원도 영월 서강변에 곱게 자리하는 단종 임금이
잠들어 계시던 장릉이 생각난다.
영월 호장이던 엄홍도가 "단종의 시신을 건드린자는 3족을 멸한다"는 세조의 명(命)에도 어린 단종의 시신을 염습하여
영월 엄씨 문중산(장릉)에 모시게 된다.조선왕조 1-25대와 대한제국까지 이씨 왕조의 무덤이 대부분 경기도와 서울에
있으나 단종 임금의 장릉만 강원도에 홀로 떨어져 있다.
잠시 강원도 영월의 장릉 소개
강원도 영월의 단종임금의 장릉
조선왕조 제6대 임금인 단종 대왕의 능이다.
세조2년(1456년) 6월 집현전 학사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 등이 상왕(단종)복위사건으로 참형을
당하였으며 다음해 6월21일 단종은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그 다음날 영월 청령포로 유배 되었으며 그곳에서
2개월간 기거하시던중 홍수로 인하여 관풍현으로 옮기셨다.
세조3년 여섯째 삼촌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계책이 발각 되면서 노산군은 폐서인이 되었고, 그해 10월 24일 사사(賜死)되었
는데 그때 춘추(春秋) 17세였다.
단종의 유해가 동강으로 흘렀을때 영월호장 엄흥도가"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것은 달게 받겠다"는 충정으로
옥체를 수습하여 이곳에 밀장(密藏)하였다.
국역 연려실 기술: 조선 후기 학자 이긍익이 쓴 조선시대 야사에는 단종 죽음에 대한 그날의 기록이 남아있다.
금부도사 왕방연이 사약을 받들고 영월에 이르러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잇으니
나장이 시각이 늦어진다고 제촉하였다.
도사가 하는 수 없이 들어가 뜰 앞에 엎드려 있으니 단종께서 익선관과 곤룡포를 갖추고 나와서 여기에 온 까닭을 물으니
도사가 대답을 못하였다.
통인 하나가 항상 단종을 모시고 있었는데 스스로 할 것을 자청하고,활줄에 긴 노끈을 이어서 단종의 목에 걸고 앉은 좌석
뒤의 창문으로 그 끈을 잡아 당기니 아홉구멍에서 피가 흘러 즉사 하였다.
시녀와 시종들이 다투어 강에 몸을 던져 죽어서 강가에 시체가 가득하였고, 이날 뇌우가 크게 일어나 지척에서도
사람과 물건을 구별할 수 없었다고 한다.
단종의 비였던 정순왕후는 궁궐에서 쫓겨난뒤 동대문 인근 지금의 숭인동 산기슭에 초가삼간을 짓고
따라나온 시녀의 동냥으로 살다가 이후로는 인근 아낙네의 적선으로 살았다
나중에는 염색 들이는 일을하며 근근히 연명 하면서도 죽을때까지 세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았으며
조석으로 인근 봉우리에 올라 단종의 무사를 기원했고 단종의 죽음을 알고 평생을 통곡하며 명복을 빌었다
정순왕후는 사뭇치는 그리움과 가슴깊이 한을 묻으며 82세까지 사셨다고 한다.
한명회의 딸들중 장순왕후와 자매였던 공혜왕후인 순릉은 가지 않고
영조의 아들인 진종과 효순왕후의 영릉으로 가본다.
진종은 영조의 아들로 경의군에 봉해졌다가 1725년에 왕세자로 책봉된다.그러나 10살때 세상을 떠나게 되니 영조는 왕세자에게 효장세자라는 시호를 내린다.
효순왕후는 영조 3년(1727년)에 왕세자빈으로 책봉되나 이듬해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왕비가 되지 못하다가 37세때 세상을 떠난다
경기도 조선왕조 왕릉은 가까이 가지 못하게 울타리가 멀리서 처져있어 눈으로 보고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고
이곳에 비하면 단종 임금의 릉은 가까이에서 구경할 수 있게 해두었다.
파주시 고산천이 흘러 오지만 이건 하수구에서 흘러온 물로 보인다.
파주시가 보이고
멀리 한북정맥 끝인 장명산인듯 보이는데 좀더 가봐야 할것 같다.
파주시 모습
물은 더럽지만 낚시꾼들이 많이 보이고
대부분 붕어 삼매경에 빠진분들
좌측에 보이는 산넘머 한북 정맥끝자락인 장명산이 자리한다
택배하러 와주신 정명 대장님
날씨가 더우니 양산 대용으로 하나 장만해서 쓰시고
어째 수박한통 들고 오시지..빈손으로 오시다니
노대장님은 날씨가 더워 이곳에서 정명 대장님 자가용타고 한강이 보이는 자유로까지 쉽게 이동 합니다.
저는 인증 담고 다시 남은길 따라
같이 걸어주신 노대장님과 같이
정명대장님과 노대장님은 공롱천 하구에서 기다리기로 하시고
공릉천 옆에 자리하는 한북정맥 끝인 장명산에 쓰레기 매립장이 들어와 산이 엉망이 되어간다.
1대간 9정맥길 한강을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은 예전에 비해 개발이 많이되어 있다. 특히 한강 남쪽 정맥이 더욱 그러하고
공릉천 하구둑을 지나면서
조수간만의 차로 인해 바닷물이 들어 오는곳
갈대만 무성하다.
장명산 방향과 공릉천
공릉천 군 철책이 가로 막고있는 곳
지난날 해안길을 걸으며 저곳을 지나 임진각까지 졸며 졸며 걸어간 기억이 난다.
군철책 사이로 본 자유로와 한강 그넘어로 김포시 하성면 방향
신한북정맥 끝자락인 오두산 전망대가 보이고
저넘어 어딘가 서해 용왕이 산다는 바다가 있을것이다.
물이 더럽게 흘러 바다의 품에 안기지만 바다가 썩지 않은건 바로 3%의 소금이 있기 때문이며
우리몸에는 약 70%의 물과 0,9%의 염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소금 없이는 못 살게된다.
더 이상 갈곳없는 자유로 다리까지 와서
공릉천이 한강에 합류하는 모습을 보고 공릉천을 마무리하게 된다.
공릉천은 한명회의 여식인 장순왕후의 공릉에서 따온 천이름이다.
어린 임금을 영월에 유배 시키고 죽음에 이르게한 수양과 그의 세력들
공릉천을 걸으면서 멀리 계방산에서 발원하며 평창을 지나 영월로 흘러오는 청령포를 휘돌아가는 서강과
왕방연의 "천만리 머나먼 길해"라는 시조가 생각난다.
마지막으로 인증 담고
서울에 오면 꼭 만나고 싶은 대한민국 최고의 산꾼이신 신경수 선배님을 만나
막걸리와 밥 얻어 먹으러 가기로 한다.
공릉천길에 도움주신 알프스님.노성임 대장님,정명 대장님 감사 드리고
행신역에서 밥 사주신 신경수 선배님 고마웠구요 저녁에 도움주신 종환님. 솔별대장님. 송림지부장님.
대대로 대장님,삭개오님.랑탕님,고마웠습니다.
그리고 5대강 완주하신 추산대장님 축하 드리고 보다 훌륭한 산꾼으로 거듭 나시길 바래 봅니다.
다음강은 봉화 춘양의 운곡천 입니다.
첫댓글 서울로 가셨군요....
노대장님도 일부동행해주시고...
다음 강 봉화춘양 운곡천 기대됩니다
깨끗하고 투명한 물을 기대하면서
수고하셨습니다
신경수선배님은 요즘 어디를 산행하십니까?
아마 단맥,분맥도 다끝내신것 같던데요
공릉천. 수도권으로 근무지가 변경되어 올라오기 전에는 생소한 이름이었지만 고양시 덕양구에근무하는 지금은 아주 친숙한 이름입니다.
한북정맥길의 마지막 강가도 공릉천이었네요.
비가 내리는 강행길이 햇볕이 내리쬐는 강행길보다는 훨씬 수월했을것 같습니다.
여성봉 사진이 실제 보는것보다 좀 더 적나라한것 같아서 방장님의 사진찍는 감각도 최상인것 같습니다.
더운 날씨 건강 잘 챙기시고 무탈한 강행길 기원합니다.
설악산 남설악에 흔들바위로 가셔도 여성봉이...ㅎ
여성봉ㅋ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습니다^^~역사공부 잘하고 갑니다^^~
바닷물 먹어보면 무쟈게 짜서
물반 소금반 인줄 알았는데 겨우 3% 뿐이군요..ㅋ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역사공부 잘 배우고 있습니다.
5대강 졸업하신 추산대장님 수고 많으셨고
60번째 강길 걸으신 방장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무더운 여름 잘~이겨내시고 건강히 보내세요...^^
고것참~!
요상스럽게도 생겼네요
꼭 가보고 싶네요 ㅎ
한북정맥길을 2구간으로 밤낮으로 걷기만
했는데 ᆢ 다음에 또 갈 기회가 있다면 ᆢ
한북만큼은 짧게 가더라도 구석구석 구경하고
실컷즐기며 걷고십네요 또기회가 오겠죠~♡
울방장님 더뎌 한양 입성도 하시구...
공릉천의 사연이 한명회 딸래미 왕후의 역사가 있으시구나..
참으로 슬픈 역사의 현장.. 단종 세조 사육신 생육신 한명회 부관참시....
방장님 언제언제 밥한그럭 하입시더^^
노대장, 알프스운영자님, 정명대장님... 짱짱하십니다^^
저번달에 다녀온 여성봉이네요.
볼수록 신기합니다.
제가 갔을때는 국공이 상주해서 지키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던데
이날은 없었나보네요..
역사와 함께하는 공릉천 강행기 잘보고 갑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함께 걷고 싶었으나 체력이 방장님 따라갈 체력도 안되고 집안일이 있어 내려가시는것도 못보고 추산대장님 축하자리도 못가보고 죄송했습니다
보잘것 없는 천 하나에도
역사가 있고 그 지역의 인심과 환경이 다 다르네요
물지기 주변으로는 자전거 도로나 관광지로 개발은 하고있으나 대부분이 껫끗한 물 흐름을 연구하지도 개발하지도 않는것 같습니다
아무튼 만나서 반가웠구요
언제나 화이팅 입니다
한국의 산야의 역사를 쓰고 있군요.행운이
송추폭포가 물이 적어 별로 볼것이 없군요. 가끔씩 내려가기도 하고, 올라오기도 하는 코스리기도 하고....
모처럼 수도권에 올라오셨는데 시간이 안맞아 뵙지 못했습니다.
날이 더우니 건강관리 잘 하시면서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수고많이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