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사업 실패’ 수치심에 극단 선택 |
美 부동산 거물-투자회사 CEO도 목숨끊어 독일의 억만장자 아돌프 메르클레(74·사진) 씨가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자금난에 시달리다 자살했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등 독일 언론에 따르면 부호 메르클레 씨는 5일 밤 회사 인근에서 열차에 몸을 던졌다. 가족은 6일 짧은 성명을 통해 “금융위기로 초래된 회사의 경제난과 지난 몇 주간 계속된 불확실성, 그로 인해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열정적인 기업가를 궁지로 몰았고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밝혔다. 독일 검찰은 메르클레 씨가 가족에게 쓴 유서를 발견했다고 했으나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메르클레 씨는 그의 가족 지주회사 VEM을 통해 제약회사 라치오파름부터 시멘트 회사 하이델베르크체멘트에 이르는 다양한 사업체를 경영하며 직원 10만여 명을 고용해 2007년 미국 경제주간 포브스 조사에서 독일 5위 부자로 기록됐다. 그는 지난해 자동차회사 포르셰가 폴크스바겐 지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주가가 요동쳐 10억 유로에 이르는 막대한 손실을 보는 바람에 유동성 위기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40여 개 은행과 접촉하며 돈을 구하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한편 미국 부동산계의 거물 스티븐 굿(52) 씨가 5일 오전 시카고 인근 수목원에 주차된 자신의 재규어 승용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미국 언론들이 7일 보도했다. 굿 씨는 아버지가 창업한 미국 굴지의 부동산 경매업체인 ‘셸던 굿 & 컴퍼니 옥션스 인터내셔널’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로 활동했다. 보안관 측은 “총으로 자살한 것으로 보이며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업계 소식지에 “시장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 어려움이 아주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힌 바 있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앞서 프랑스계 투자회사인 액세스 인터내셔널 어드바이저스의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인 르네티에리 마공 드 라 빌위셰(65) 씨가 지난달 23일 뉴욕 맨해튼 소재 자신의 사무실에서 자살했다. 드 라 빌위셰 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가 버나드 매도프 사기사건과 관련해 14억 달러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이헌진 기자 mungchii@donga.com
‘富의 태양’으로 날아간 ‘버블 이카로스’의 추락세계 부호들의 자살“거품은 수많은 이카로스를 탄생시켰다. 그들은 거침없이 욕망을 좇다가 버블 붕괴의 제물이 됐다.” 경제학계의 거목이었던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1954년 미국 의회 금융 청문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1907년 공황과 1929년 대공황에 대해 증언하던 중 말한 대목이다. 이카로스는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태양을 향해 날다 추락한 그리스 신화 속 인물. 끝 모를 욕망의 허무한 결말을 상징한다. 월가에선 거품 경제 때 허황된 부를 좇는 이들을 일컬어 ‘버블 이카로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요즘 그 이카로스들이 잇따라 출현하고있다.
머니 게임의 값비싼 대가 금융위기는 메르클 외에도 3명의 희생자를 냈다. 메르클이 숨진 날 대서양 건너편인 미국 시카고의 부동산 중개업자인 스티븐 L 굿(52)이 주택 가격 급락으로 빚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자살을 선택했다.
지난해 9월에는 영국 사모펀드 올리번트 회장인 커크 스티븐슨(47)이 리먼브러더스 파산 등으로 빚어진 금융 패닉 와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경제 거품이 한창일 때 싼값에 자금을 끌어들여 고수익을 올린 사람들이다. 한때 그들 세계에서 유능한 사람이었다. 전문가들은 부자들의 자살을 ‘버블 후유증’이라고 진단했다. 미 뉴욕대 뱃설 태커 (심리학) 교수는 최근 영국 인디펜던트지와의 인터뷰에서 “거품 시대엔 물질적 부를 통해 자기 존재감를 드러내는 성향이 더욱 커진다”며 “거품을 등에 업고 부를 거머쥐어 존경과 부러움을 샀던 사람일수록 위기를 맞으면 쉽게 살 의욕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물질적 부를 개인 인격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극단적으로 커지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대공황은 ‘성냥 왕’을 제물로 메르클처럼 위험한 게임을 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은 금융위기 때마다 되풀이됐다. 존 C 박스터가 그랬다. 숨지기 직전까지 그는 2001년 파산한 에너지 기업 엔론의 최고재무책임자(CFO)였다. 회계장부를 조작해 엔론을 신경영의 상징으로 만든 주역이었다. 미 정부의 조사가 본격화하자 2002년 1월 텍사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00년대 초 니커보커신탁은행의 몸집을 키우다 끝내 파멸한 찰스 T 바니는 20세기 최초의 버블 이카로스로 불린다. 그는 구리광산업체 유나이티드코퍼를 적대적으로 인수하려는 세력에 자금을 댔다. 하지만 광산회사 배후에는 JP모건 등이 버티고 있었다. 양쪽이 막대한 자금을 퍼부으며 유나이티드코퍼 주식을 마구 사들였다. 매집 경쟁이 달아오르면서 바니의 니커보커는 자금난에 빠졌다. 그는 JP모건 등에 타협안을 제시하며 급전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을 택했다. 그 결과가 1907년 공황이었다. 니커보커 예금인출 사태는 그의 자살을 계기로 월스트리트 은행 전체로 번졌다. 전문가들이 꼽는 버블 이카로스 넘버원은 대공황 때 몰락한 ‘성냥왕’ 이바르 크루거다. 스웨덴 출신인 그는 가업인 성냥 공장을 1910~20년대 목재와 은행 등 200개 회사를 지배하는 거대한 그룹으로 키웠다. 대공황 직전 그는 세계 최대 자본가로 꼽혔다. 당시 그의 재산은 2000년 가치로 환산해 1000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350억 달러를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에 빌려줄 정도였다. 그런 그의 방만한 자금 운용이 그 자신을 옥죄었다. 대공황 시기인 1931년이 되자 채권 은행들의 빚 독촉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결국 1932년 3월 프랑스 파리의 한 호텔에서 자신에게 총을 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버블 이카로스’들의 전형적 행동 패턴이 엿보인다. “내가 이 혼란을 자초했다. 이 길만이 나와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만족할 만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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