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1월 7일(수) 덕유산장 103호에서 자다
(R) 22세 전라북도 무주군 김태동군수 이야기 그리고 曺春玉선생 & 덕유산장
(무주구천동기행1) 22세 김태동 전북 무주군수 뒷날 보건사회부 장관이 되시다
(1)
무주에는 며칠째 하얀 눈이 계속 내렸다. 눈덮힌 산, 눈 덮힌 산촌마을,
세상 천지 모두가 하얗다.
덕유산을 찾은 나그네의 마음도 하얗게 변해 있었다.
(1997년 01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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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건사회부에서 일하던 한 때, 나는 장관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모셨다.
극성(?)스럽던 장관은 07시30분이면 집무실 책상에 앉으신다.
나는 그 시간에 10여 종의 조간신문을 챙겨다 올리는 것이 내 주된 임무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나는 늦어도 07시까지는 출근을 해야만 했다.
적어도 이 대목에서만은 그 누구도 나를 두고 '게으르다'는 말을 할 수는 없으리라.
나는 그 때,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 진관외리 175번지(속칭 기자촌)에서 살았다.
귀가하는 시간은 언제나 24시 직전이었고 12시 통금시간을 넘기고
집으로 돌아 오는 것도 다반사.
'진우엄마'가 "좀 일찍 들어 오면 안 되나요"고 하면 나는 어긋지게
"새벽 0시30분, 이 보다 더 빨리 어떻게 들어 오느냐"며
마누라한테 약을 올리던 철부지였다.
그 '철'은 아직도 들지 않았으니.. ㅉㅉ. '철 들 날'은 언제일지..
그런데도 동이 트기 전 새벽별을 보고 2km를 걸어 나가야만 버스를 탈 수가 있었다.
(2)
광화문 4거리에서 내려 서울특별시청 청사 뒤쪽에 있었던 사무실까지도 걸어 가야만 했다.
(당시 보건사회부는 대한건설공사의 건물에 세 들어 있었다)
속 모르던 동료 직원들에게는 '괴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 많은 10여 종의 조간신문을 순식간에 다 챙겨 '장관님께서 보시도록' 하였으니.
그러고는 나는 해장국집으로 간다.
어느 날이나 나는 다른 전체 직원들보다는 30분 정도 늦게,
09시 30분 쯤에 내 사무실에 내 모습을 들어내니
어떤 직원은 "짜식!! 장관직속이라고 건방지게 매일 늦게 출근한다" 며
못마땅해 하기도 했다.
보사부관련 조간신문 기사는 전 날 오후 7시 이후에
동아일보 남쪽 길가에 깔리는 가판을 챙겨 두고 귀가하기 때문에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 부분에 관한 한,
나는 내 스스로를 생각해도 '동물적인 감각'을 지녔었다고 생각했다.
장관께서는 07시30분 출근을 하시면 누구보다 맨 먼저 나와 대면하게 된다.
"뭐, 별일 없지" "네,그렇습니다" 가 대화의 전부였다.
서울대 법대 출신의 처남이 비서실장. 이 분은 언제나 장관보다 늦게 09:00에 출근,
10시쯤 우리방으로 '인터폰'으로 "오늘도 별일 없겠지요" 라며 자신의 업무를 챙기곤 했다.
매우 젊잖았던 분으로 지금도 가끔 그리워지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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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월4일, 새해 시무식이 있었던 오후 무주군청부터 방문했다.
'번지수 다르게' 총무과장을 만나 '역대군수명부' 보고 싶다고 했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취재오신 일하고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하고 묻는다.
"물론 없지요. 그런데 역대 군수중에는 나이 22세 군수가 있었다고요.
그 군수의 재직기간과 무주군수 이후의 부임지가 알고파서 부탁드리는 것입니다"고
했더니 나이 지긋한 그 총무과장은 깜짝 놀란다. 그 놀란 표정'이 재미 있었다.
그러면서 "그럴리가 없을텐데요. 혹 잘못 아신 것 아닙니까" 하면서
두꺼운 자료책자중의 역대군수 명단이 기재된 페이지를 펼친다.
1945년 해방직전의 군수이름을 찾아 보라고 했더니 "아 여기 있네요.
김태동(金泰東) 군수님, 맞네요".
"그럼, 그 군수님이 부임했던 해의 나이를 한번 계산해 보시라고요".
그 총무과장은 한번 더 놀란다. "어쩜, 이럴수가@&#$@
스무두살에 군수라@&#$@" 총무과장은 계속 놀랐지만 엄연한 사실인 것을.
(4)
전주~무주간에는 하루 한 차례 버스편이 있었다.
이른 아침에 무주를 떠난 버스가 오후에는 전주에서 무주로 돌아 오는 버스다.
그 버스를 타고 '22세 청년 한 사람'이 학생 때 입었던 교복차림으로
낯선 땅 무주정류소에서 내렸다.
정류소에는 나이 든 여러사람이 신임군수가 부임차 오신다는
연락을 받고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런데 기다리던 '신임군수'는 보이지 않고 낯선 청년이 보이기에
"혹.. 전주에서 신사 한 분이 함께 타시지 않았느냐"고 묻더라는 것이다.
청년은 "군청에서 나오신 분들이지요. 나를 군청까지 안내를 좀 해 주시요".
군청사람들이 놀라서 더 이상 말도 붙이지 못하고
정류소 바로 앞에 있는 군청으로 청년을 안내했다.
군청에 당도한 청년이 "군수방이 어디요"하고는 군청직원들의 안내로
군수실로 들어간 다음에 '겁없이' 군수의자에 앉으며
"내가 이번에 새로 부임한 '김태동군수' 올씨다"고 했다는 것이다.
위 이야기는 22세 군수였던 바로 같은 사람이 대한민국의 보건사회부
장관이 되어 출입기자단과 회식을 할 때 마다 빠뜨리지 않는 레파토리였다.
기자들이 "또 듣게 되네요" 라고 하면,
"아~ 여기 있는 아가씨들 처음 듣는 이야기 맞지요"라는 말로 기자단을 웃기곤 했던 이야기다.
물론, 아무리 통신수단이 발달되지 않았던 1940년대 초반이었지만
신임군수의 나이조차 몰랐을 리 없었을 것인데...
그 '멋쟁이 장관님'께서는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들어
주위를 즐겁도록 해 주셨다.
무주군수 다음으로 전라북도 고창군수로 영전(?)을 하셨고
해방후 대한민국의 공무원으로 승승장구를 하신 끝에
체신부장관을 역임하고 그 다음으로 보건사회부장관이 되셨다.
지금도 대학재학 중인 20대 초반에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고위 공무원의 길로 들어서는 사람들이 있는데,
김태동장관께서는 바로 이런 경우로 일제의 '고등문관'시험에 합격,
무주군수가 초임의 자리였던 것이었다.
첫댓글 1월7일이 결혼기념일. 묘하게도 이 날은 깊은 산속에서 머물게 되니..쯧쯧..
50주년이던 지난해에는 설악산 오색그린야드호텔에서 월간 山 취재팀과 보냈고
올해 51주년에는 덕유산 덕유산장에서 구천동 친구분들과 보내었습니다.
좋은글 감사함니다, 잘보았읍니다, 김태동 장관님이 아주 경륜이 높으신 분이네요 ? 1918년 충북 괴산 출신이시고 1940년 일본 메이지대 법학과 출신이고1939년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해서 무주군수를 시작으로 체신부장관 복지부 장관을 하시고 1982년 돌아가셨읍니다,65세에 일찍 가셨음니다,생전에 계시면 97세 이신데?
좋은글 잘보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