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두 아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올해 쉰 살이 된 영희(가명) 씨는 어쩌면 두 번 다시는 미국에 남겨둔 두 아들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희 씨는 결혼 후 남편의 계속되는 사업실패로 생활고를 겪다가 2004년 미국 이민을 결심하게 됩니다. 별다른 기술이 없었던 영희 씨의 남편은 건축현장 일을 했고 네 명의 식구는 풍족하지는 않지만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2009년 7월 영희 씨는 한국에 있는 노모를 만나기 위해 혼자 귀국을 하고 이튿날 영희 씨는 갑자기 머리가 아프고 눈이 잘 안보이기 시작하게 됩니다. 가까운 안과에서 진료를 받았지만 원인을 모르겠다며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대학병원에 가서도 바로 진료는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영희 씨는 이민자로 한국 주민등록이 말소가 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 찾았던 병원에서는 영희 씨가 귀국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종플루를 의심하며 보건소로 가보라고 안내를 했다고 합니다.
신종플루 검사를 하고 돌아온 날 밤 영희 씨는 밤새 거품을 물고 의식을 잃기를 수십 번도 더 하게 됩니다. 119를 불러 응급실로 갔으나 영희 씨가 외국 국적이라 진료가 쉽지 않았고 겨우 한 대학병원에 입원을 하여 치료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이 병원에서도 '원인 불명'이란 말만 할 뿐 하루 입원·치료비 40만 원의 비용만 눈덩이처럼 쌓이게 되었습니다. 병원비 800만 원이 청구되던 날 노모는 눈앞이 깜깜해집니다. 미국에 있는 영희 씨의 남편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고 있는 처지라 조금씩 모아둔 돈을 장모에게 보내 병원비에 보탤 뿐 비행기삯 때문에 한국에 들어올 엄두조차 낼 수가 없어 병원비 해결은 대부분 노모의 몫입니다.
지난해 노모 만나려 혼자 귀국 원인불명 병 얻어 치료비 '깜깜'
영희 씨는 갑자기 찾아온 원인불명의 병으로 인해 7세 아이의 지능을 가지게 되었고 치료를 받지 못 해 시각도 거의 상실한 상태이며 지금은 병원비 부담으로 인해 요양병원에서 간신히 호스로 영양제만 투여 받고 있습니다.
미국으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의료혜택은 받을 수 있지만 현재 영희 씨의 상태는 혼자서도 물 한 잔 마실 수 없어 비행기 탑승도 곤란한 상태입니다. 휠체어만 타고 혼자서 물이라도 마실 수만 있는 상태라면 탑승하게 해주겠다는 항공사의 약속이 있는데도 말이죠.
노모는 딸 영희 씨만 생각하면 눈물이 마를 날이 없습니다. 병원비가 없어 지금 받고 있는 치료마저 끊어진다면 노모는 죽어도 눈을 못 감을 것 같다고 하시며 오늘도 눈물짓고 있습니다. 영희 씨 어머니의 눈물을 닦아주실 따뜻한 후원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김지혜·금정구 장전2동사무소 사회복지사(051-519-5306)
△계좌번호 부산은행 315-13-000016-3 사랑의 열매 051-441-9423-4.
△지난달 27일자 진호 군 이야기 59명의 후원자 303만 원.
↓ 이렇게 됐습니다 - 지난달 13일 자 김철수 씨
김철수 씨 사연에 관심 가져 주시고 후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안타까운 사연을 전하게 됐습니다. 철수 씨는 주위 사람들의 관심과 보살핌, 의료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병이 깊어 결국 사망했습니다.
철수 씨 이웃에 살고 있는 고향 동생 및 그 가족과 그동안 이웃과 사회를 위한 봉사한 인연으로 맺어진 지인들이 힘을 합하여 병원비는 물론이고 장례식까지 책임지고 도맡아 했습니다.
생전 철수 씨는 자신의 사연이 소개되어 후원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많은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게 되어 미안해하고 자신이 꼭 회복되어 우리 사회를 위해 봉사를 더 열심히 하겠다는 의욕을 보였습니다.
비록 자신의 젊은 시절 잘못으로 인해 가족과 만나지는 못 했지만 주위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감사하게 여기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모금된 192만5천600원은 가족을 대신해 그동안 간병 및 병원비 부담, 장례식까지 모든 일을 도맡아 해준 고향 동생에게 전달했습니다. 철수 씨의 사연에 많은 관심 보여준 모든 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