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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설교(38)
-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다 -
마태복음 6장 19-21절/ 19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20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21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구제’와 ‘기도’에 이어서 ‘금식’에 대해서 가르치심으로써 제자들이 기도에 있는 관심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있어야 할 것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구제’와 ‘기도’와 ‘금식’ 이 세 가지는 유대교에서 그들의 종교적 의를 받쳐 주는 경건의 행위인 ‘기둥들'입니다. 이 세 가지 기둥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자기 의를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행위를 한 대로 사람들에게서 인정을 받으며 존경을 받음으로써 사람들에게서 받을 상을 이미 받은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행하는 이 세 가지 기둥들을 들어서 제자들에게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자기 의를 행하는 것에서 이러한 일을 행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구제‘, ’기도‘, ’금식‘을 할 때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가난한 자들을 돕는 구제를 하거나 자신이 기도의 경건에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거나 의도적으로 자신들이 금식에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행위들은 하나님과 관련 없는 위선적인 경건의 행위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러한 행위들은 결코 천국의 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는 정죄가 되므로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는 “너희는 그들과 같이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또한 “너희들은 이렇게 하라”는 것에서 “은밀한 중에 계시는 아버지께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고자 하시는 것에 있을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그들과 함께 하여 그들의 천국의 의가 되심으로 이 천국의 의에 의해서 나오는 유대교의 세 가지 경건의 기둥에 있었던 자들은 할 수 없었던 하나님과의 교통에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구하게 하신 것을 구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에 따라서 예수께서는 본문에서 제자들의 마음이 늘 무엇에 있어야 할 것인지를 알게 하는 가르침을 주십니다. 그것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이처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함에 있는 것은,
첫째,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이 땅 위에가 아닌 하늘에 쌓는 보물에 그의 마음이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6:19-21).
둘째, 제자들의 마음이 그처럼 하늘에 있는 보물에 있는 것을 몸의 등불로 있는 눈(eye)의 성함 - 밝음 - 으로 설명합니다(6:22-23).
셋째,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을 들어서 제자들의 마음이 하늘에 있는 보물에 있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오직 한 주인을 섬김에 있다는 것을 말씀해 줍니다(6:24).
넷째,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름에 있는 제자들은 관심이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함에 있다는 것을 말씀해 줍니다(6:25-34).
이제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내용에 대하여 하나씩 설명을 드리도록 하는데, 여기서는 그 첫 번째인 마태복음 6:19-21 부분의 내용에 대하여 합니다.
즉,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에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며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다” 라고 하신 말씀에 대하여 보겠습니다.
6:19-21.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 구절을 설명하는데 크게 오해하여 엉뚱하게 잘못 말하는 것을 봅니다. 여기에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땋아 두라”고 하신 ‘보물’(재물)을 이렇게 번역한 한글의 문자로만 이해하여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보물(재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셨다면서, 이 말씀대로 우리가 소유한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며 살아야 할 것이며, 그렇게 하늘에 쌓아둔 보물이라야 없어지지 않고 영구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늘에 보물을 쌓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것을 위해서 재물을 씀으로 해서 헛되게 쓰지 말고 하나님께 바치며 하나님을 위해서 쓰라고 말합니다.
재물을 하나님께 바치며 하나님을 위해서 쓰는 선한 일에 있으라고 하기 때문에 잘못 말하는 것 같지 않고 말을 잘하는 것 같아 보이니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좇습니다. 그래서 하는 것이 헌금하며 교회 이런 저런 일에 가진 재물을 씁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그러한 의도에서 예수께서 과연 그렇게 재물을 쓰라고 가르치는 것에서 하신 말씀이겠는지요. 이에 그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심으로 이 땅에 보물처럼 생각하는 재물을 쌓아 두는 것보다는 하늘에 보물<재물>을 쌓아 두는 것이 더 나으니 그렇게 하라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는 그러한 것에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의도는 지금 자신이 함께 하고 있는 제자들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천국의 의에 있음으로 인해서 그들의 마음이 보물을 땅에 쌓아 두는 것에 있지 않고 하늘에 쌓아두는데 있을 것임을 알게 해주고자 하는데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제자들은 이 일로 인해서 자신들에게서 마음에 일어나는 관심은 이 땅 위에 보물을 쌓아두는 것에 있지 않고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것에 있게 됩니다. 따라서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함께 하고 있음으로 그들에게 그들의 마음이 어디에 있으며 또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 것인지를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너희는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신 그 일이 그들에게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둘 것을 말씀하신 것에서 하늘에 쌓게 될 ‘보물’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용되고 있는 단어는 저장되거나 보관된 것인 ‘보물’, 또는 ‘저장소’, ‘금고’, ‘보물창고’, ‘보물상자’를 의미하는데, 이곳에는 헌물과 세금 등으로 보관되어 있는 헌물과 돈이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한글성경은 ‘보물’, ‘보화’로 뿐만 아니라 ‘재물’로도 번역하였습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보물’(재물)을 이 세상에 있는 것의 개념으로 생각하여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보물’(재물)을 위하여 이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게 하셨다며, 그렇게 하는 것으로는 이 땅에 있는 것에 ‘보물’(재물)을 씀으로 해서 땅에 쌓는 것이 되어 보물을 헛되게 쓰는 것이 되므로 보물을 헛되게 없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쌓는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보물을 가치 있게 써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위한 선한 일에 써야 한다는 식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의도는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앞서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자신이 세상에 와 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 부름을 받은 자들과 함께 하시는 것에서 그들에게 천국의 의가 되어 천국이 그들의 것임을 가르치신 후, 제자들에게 그 천국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나은 의임을 율법의 해석을 통한 바른 이해를 통해서 알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종교의 의를 받쳐주는 세 가지 기둥으로 삼고 행해온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들어서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자기 의를 행하지 말고 그러한 것을 행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주실 것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그로 인한 의존에 있을 것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서는 본문이 말씀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에서의 중심되는 요지는, 즉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뜻은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에 그들의 마음이 있으며, 그래서 그들의 마음이 가 있는 그것을 구함에 있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말씀하시는 시작이 되는 것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하신 후에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땋아 두라”고 하신 것에서 ‘보물’은 보배로 여기는 가치 있는 물건이나 돈을 뜻하는 것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가 아니라, 이러한 단어를 사용하여서 제자들이 하나님께서 구하게 하신 그 구함에 있는 것이 참으로 가치 있는 보배로운 것임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이죠. 그들이 구함에 있는 보물이 되는 가치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말이죠. 제자들이 자신을 위하여 땅에 쌓아 둘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앞서에서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자기 의를 행한 자는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사람들에게서 칭찬을 받아 이 땅에서 이미 상을 받았기 때문에 하늘에서는 받을 상이 없다고 하신 말씀에서 그 이유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본문에서는 이 땅에 쌓은 보물은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 한다는 말씀으로 하셨습니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는 것에 있다는 것이며, 이것을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는 것에 하나님을 주로 섬기는 - 하나님을 사랑하는 - 것이 있지를 않고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자기 의를 행하는 것에서, 다시 말해서 사람들에게서 칭찬을 들으며 자기들이 어떻게 경건의 열심에 있는지를 인정받아 존귀히 대우를 받는 것에 가치를 두고서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행한다면 이는 이 땅에 보물을 쌓는 것에 불과하여서 그 결과는 참으로 헛되어 덧없을 것을 말씀합니다. 좀이 먹거나 녹이 슬어서 없어지거나 도둑이 들어 가산을 훔쳐가듯이 하여 그가 사람에게서 받은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은 이 세상에 있을 때 뿐이어서 그 후에는 전혀 볼 수 없는 것에 불과합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는 “너희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시고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통해서 제자들이 구함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지닌 가치를 잃어버리거나 빼앗기는 일이 없을 것임을 말씀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가 지닌 영구함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자신들이 예수님을 주로 섬겨 따름에 있어서 관심을 갖는 마음은 이와 같이 예수께서 자신들에게 구하게 하여 주실 영구한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에 있습니다.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는 그러한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에 마음이 있는 의로운 사람들은 다 이 영구한 나라를 바라봄으로, 하나님을 바라봄과 그 의지<의존>에 있어왔습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에 있지 않다는 것은, 그리고 자기의 의에 마음을 두고 거기에 힘을 쏟는 것 - 땅에 보물을 쌓음에 있는 것 - 은 좀과 동록<녹>과 도둑에 빼앗김을 당할 날을 맞이하게 되는 자신을 보는 것 외엔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에 있어서 마음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에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박해를 받아 이렇게 저렇게 목숨을 잃었다고 해서 그 누구도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빼앗긴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히브리서에서 말씀되고 있는 율법과 선지서 모두에서 예언해 주시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에 마음이 있었던 믿음의 선진들을 따르는 그리스도의 교회, 곧 그리스도인들이 그렇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성문 밖에서 받으신 고난의 현장으로 부름을 받고 있었으며,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흔적을 자신의 육체에 그대로 지니고 갔습니다. 그러한 그들은 말입니다. 한결같이 자신들이 바라본 영구한 나라에 주님과 함께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구하는 생명 없는 ‘자기 의’에 자신을 따름에 있게 한 제자들을 두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있는 참생명에 영원히 있게 하는 ‘내(예수님)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했으며, 그 나라의 출처가 하나님이 계신 위로부터 온 것임을 말씀했는데,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보냄으로써 자신을 따름에 있는 제자들을 참생명에 영원히 있게 하는 자신의 나라에 두시고서 그들 중 그 누구도, 즉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보낸 자들 중에서 단 한 사람도 빼앗기지 않을 것을 말씀하신 대로 빼앗김을 당하지 않고 있음을 확증해 주고 있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죽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말이죠. 이들은 자신들의 죽음에서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죽음 너머에 있는 영원한 도성<나라>를 내다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여주시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의 부활이요, 그 부활에서 또한 예수님과 함께 죽으면 반드시 예수님과 함께 부활할 자신들의 부활을 보고 있는 믿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