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수당
정 근 영
연말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 두툼했던 열두달 달력도 거의 뜯겨나갔다.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이 창밖에서 불어오는 가벼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요즘은 거의가 열두 장짜리 월력이다. 그것도 여기저기서 주는 달력이 많아 벽에 걸어보지도 않고 내버린 달력이 많다. 내 어릴 적을 그때를 돌아보면 그때는 달력이 참 귀하였다. 그것도 지금과 같은 화려한 달력은 보기 힘들었다. 딸랑 한 장짜리 달력에 일년치가 다 들어있었다. 그때 국회의원이 집집마다 나누어 주는 일년이 한 장에 들어있는 달력을 기억한다. 그 달력엔 국회의사당(지금의 서울시의회관) 사진을 배경으로 동그라미 안에 국회의원 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 달력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1조가 적혀 있었다. 그 글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모르면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때로부터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당의 원내 총무가 헌법 1조를 내걸고 대통령에게 대드는 일이 얼마 전에 있었다. 그 일로 밉보여 공천에서 탈락하여 고전을 당하긴 했지만 국민에겐 할말은 하는 선량으로 국민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60여년전의 전의 그 국회의원이 무슨 까닭으로 헌법 1조를 달력에다 담은지는 모를 일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혹시 그 달력을 나누어 준 사람이 국회의원이 아니라 국회의원에 나서고자 한 후보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지난 60여년 동안 우리나라는 많이도 바뀌었다. 우리나라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룬 세계에서 몇 안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도 이 시점에서 여당 원내 총무가 헌법 1조를 읊조려야만 했던 것일까. 경제적으로는 눈부신 발전을 했지만 젊은이들은 헬조선이라고 하여 희망을 잃고 있다. OECD국가 가운데서 자살률이 가장 높다고 하니 이 무순 변괴람.
사람이 불만을 갖게 되는 것은 이웃과 비교할 때부터가 아닐까 싶다. 굶주리고 있는 사람에게 무를 주면 무척 고마워한다. 그렇지만 이웃에서 인삼을 먹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때는 고마움은 사라진다. 또 다른 곳을 살펴보고는 거기서는 동삼뿌리를 먹는 것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들까. 그때는 당국을 원망하거나 심지어는 대들기까지 하는 것이 아닐까.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이 역시 헌법 1조다. 민주 공화국이란 도대체 어떤 나라를 일컫는 것일까. 공화국이란 독재국과 맞서는 말이다. 여러 사람이 회의를 통헤서 의견을 교환하고 결정하는 정치 체제다. 국민이 주인되는 나라다. 세상에 독재국가를 표방하는 나라는 없다. 삼대에 걸쳐 권력을 세습하는 북한도 나라 이름을 조선 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이라 하지 않는가. 백성이 주인되는 나라, 공화국이 좋긴 좋은가 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공산 독재국인 북한을 마냥 비웃을 수만은 없는 처지는 아닌 것 같다. 박정희가 그 딸인 박근혜가 한 행태를 보면 국민을 생각하기 보다 자신의 평안과 안녕을 위해서 권력을 남용한 흔적이 구석구석 남아 있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는 박근혜 대통령이 그 중심에 서 있고 또 그 속을 뒤집고 들어가보면 박정희를 보게 된다. 최태민과 영애 박근혜가 밀착되어 구국봉사단을 만들어 부정의 성을 쌓아가는 것을 눈감아 준 자가 박정희가 아닌가.
박정희와 그 딸 박근혜가 대통령을 있었던 대한민국은 공화국이라 하기도 힘들다. 이른바 청와대에는 문고리 삼인방이니 십상시가 있어서 백성의 소리에 귀 막고 있지 않았던가. 박정희가 농민들 속에서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에서 백성을 어엿비 여겨 자식처럼 사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연출된 연극일 뿐이다. 박정희의 최후의 만찬에는 막걸리 병이 아닌 양주병이 있었고 농민이나 산업일꾼이 아닌 미녀들이 있었다. 이런 만찬을 소연회니 대연회니 해서 계속한 것이 밝혀져 그가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정치를 해 온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박정희와 박정희의 딸 박근혜의 삶을 이어보면 이 부녀 대통령의 안중에 국민은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박정희나 박정희 딸 박근혜는 헌법엔 관심이 없었다. 아니 법을 제맘대로 농단하지 않았던가. 총칼로 민간정부에서 권력을 빼앗았고 삼선개헌에서 유신헌법으로 제맘대로 법을 허물고 부수지 않았던가. 우리는 이렇게 헌법을 제맘대로 파괴하는 독재자를 숭배하는 못난 국민이다.
헌법은 ‘국가의 통치조직과 통치작용의 기본원리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 규범’이라고 한다. 헌법은 한 나라를 조직하고 유지하는 근본이 된다. 이렇게 중요한 법이 헌법이다.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국민 앞에 손을 들어 헌법을 지키겠다고 선서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국민 앞에 보여주는 연극임이 탄로가 난 대통령이 여럿 있다. 아니 헌정을 농단하지 않은 대통령이 몇 안된다. 오죽하면 여당 총무가 대통령에게 헌법 1조를 상기하도록 일깨워 주랴. 지금 온 나라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논단으로 세상이 시끄럽다.
봉건시대는 왕이 나라의 주인이었다. 백성은 왕의 종이거나 아예 왕의 재산이었다. 백성은 왕을 위해서 존재했고 왕을 섬겨야 했다. 반면에 왕은 백성위에 군림하면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몇몇 대통령은 자신을 봉건국가의 왕으로 착각한듯 국가 조직을 사유화해서 헌법을 유린하고 국정을 농단하였지 않았던가. 헌법 1조를 아는지 모르는지 무시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일로 여당 원내총무의 질책을 받지 않았던가.
민주 공화국은 우리의 이상이다. 그것이 이상에 그치지 않고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주권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다고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의 소리를 경청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주권자의 소리는 선거를 통해서 한꺼번에 들을 수 밖에 없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주권자에게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주권자 즉 국민이 바라는 제상을 차려놓고 국민의 선택을 기다려야 한다. 정치인은 국민이 원하지도 않는 음식으로 잔뜩 상을 차려 놓고서 선택을 하라고 하는 것은 아닌가 돌아봐야 한다.
정치계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성스럽게 투표에 임하도록 할 수 있는 온갖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국민으로서는 선거가 주권을 행사하는 권리이자 주권자로서 국가의 통치조직을 만드는 의무다. 권리를 행사하면 그에 따른 보상이 따라야 하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만 주권자의 의사에 반하는 밥상을 차려 놓은 것은 정치인의 책임이니 벌을 줄수는 없다. 따라서 주권행사를 하도록 적절한 보상을 할 필요가 있다.
투표율을 높이는 것이 국민 주권의 원리를 높이는 길이다. 정치인에겐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내놓을 의무가 있다. 그렇지만 선거 관리위원회나 과거 정치인들이 해 온 방법으로는 큰 효과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투표율을 놓이기 위해서 투표 수당을 신설해서 우선적으로 대통령 선거부터 투표를 끝낸 유권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할 것을 제언해 본다. 대략 10만원 정도만 주어도 주권을 포기한 많은 유권자의 발길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호주와 같은 일부 나라에서는 투표를 하면 돈을 주는 나라도 있다고 듣고는 있다.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10만원 정도의 수당만 주어도 투표율이 확 올라갈 것이란 반응을 보였다.
정근영/진주교육대학 국어과,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수업. 새교실 지우문예 3달계속 산문 추천, 교육평론 신인상, 시와 시론에서 수필 추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