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왕궁리 유적(사적 제408호)
백제 30대 무왕이 천도하여 건립한 왕궁터다 (유물11,000여점의 유물 발굴) 석축을 쌓아 평탄한 대지를 조성하여 정무공간 생활공간 후원공간을 배치한 궁성 유적지 이다 궁성으로서의 역할이 끝난 후에는 5층 석탑을 중심으로 1탑1금당식 사찰로 성격이 변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왕궁리 오층석탑(국보 제289호)
왕궁리의 중심부에 위치한 왕궁리 오층석탑은 관련 문헌자료가 없어서 조성 내력이 정확하지 않다 발굴 조사 당시 탑 주변에서 관궁사 왕궁사등의 명문 기와가 출토 되었고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궁성으로 쓰였다가 의자왕대를 전후하여 사찰로 변했을 것이라 보고 있다
정원석
출토기와
왕궁리 유적 전시관
왕궁리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여 교육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유적의 전체 축소 모형 화장실 유적 정원의 축소 모형등 중요유물 3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목판찍기 도장찍기 발굴체험도 할수있다
익산 제석사지(사적 제45호)
백제 무왕 시대의 절터로 무왕이 익산으로 천도 하면서 지은 왕실 사찰로 추정 된다 가까운 곳에 제석사 화재 당시의 잔존물을 버렸던 폐기장 유적이 있다 ‘관세음응험기’에는 ‘백제무광왕이 지모밀지로 천도하고 새롭게 제석 정사를 지었다’ 정관 13년(639년)에 큰 벼락으로 법당과 7층탑 회랑등이 모두 불탔으나 심초석에 넣어 두었던 채색사리병 등은 무사했다~다시 절을 짓고 사리를 모셨다고 전한다 제석사는 궁궐의 근처에 지어져 제석천을 주존으로 하여 왕실의 번창과 국가의 안녕을 기원 하였다
익산 고도리석조여래입상(보물 제46호)
고려시대 불상으로 200m의 거리를 두고 마주 서있는 2구의 석조 입상이다 속칭 인석 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