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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최상국 ⓒ월간축구 |
대표팀에서의 최상국
K-리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최상국은 대표팀에서도 자신의 입지를 다졌다. 청소년대표팀 경력이 전혀 없었던 최상국은 포철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1983년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를 앞두고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다.
“처음 대표팀에 들어갔을 때가 만 22세였어요. 국가대표는 처음이었는데, 꿈이 실현되었다는 느낌이었죠.(웃음) 사실 모든 축구 선수들의 꿈이 대표팀에 들어가는 거잖아요. 그 때는 포철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는데, 국가대표까지 가니까 정말 영광스러웠죠.”
“당시 박창선, 허정무, 조영증, 박성화, 이강조, 조광래 등의 대선배님들이 계셨고, 저는 막내뻘이었죠. 그래도 성격상 주눅이 들지는 않았었고, 선배들도 모두 좋아서 힘든 점은 없었어요.”
그리고 1984년 10월 4일, 최상국은 카메룬과의 잠실 올림픽 스타디움 개장기념 경기를 통해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주목을 받았다. 당시 한국은 최상국의 해트트릭과 박창선, 변병주의 골로 카메룬을 5-0으로 대파했다.
“대표 선수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인데, 카메룬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죠.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일 겁니다. 이후 월드컵 예선도 뛰고, 올림픽도 뛰었지만 해트트릭을 기록하지는 못했죠. 2골은 넣은 경기가 있었지만 말입니다.”
이후에도 대표팀에 꾸준히 승선했던 최상국이지만, 선배들의 그늘에 가려 크게 빛을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86 멕시코 월드컵이 끝난 뒤, 대표팀이 본격적인 세대교체를 시작하면서 최상국에게도 많은 기회가 찾아왔다. 포철에서와 같이 오른쪽 윙으로 활약한 그는 김주성, 변병주, 최순호 등과 전방에서 호흡을 맞추며 대표팀에서도 전성기를 구가했다.
“아무래도 86 멕시코 월드컵이 끝난 뒤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젊은 세대들이 주축으로 올라섰죠. 저보다 2살 많은 이태호, 정해원 선배가 최고참이었으니까요.”
“대표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도 그 무렵에 나왔어요. 86년인지 87년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대통령배 대회 미국전이었어요. 상대가 공격을 하면서 수비지역으로 넘어가려던 찰나에 정용환 선수가 인터셉트를 했고, 볼이 공중으로 붕 떴어요. 그것을 보고 돌아서면서 바로 슛으로 연결했죠. 40m 정도 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대로 골이 되버렸어요.(웃음) 가장 기억에 남는 골이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