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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의 사생활
김희선
1.
문 밖에서 트럭을 세우는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남색 작업복을 입은 두 명의 남자가 뛰어 들어와 외친다. “어디에 내려놓을까요?”
그들은 제약회사에서 나온 배송직원들이고, 박카스 상자를 쌓아 둘 장소에 대하여 묻고 있다. 내가 약국 앞 한구석을 가리키자 두 남자는 빠르게 박스를 쌓아올린다. 개수를 확인한 뒤 거래명세서에 도장을 찍어 주자, 그들이 나간다. 약사는 여전히 처방전을 보며 약을 짓고 있다. 어쩌면 조제실 유리 너머로 흘낏 내다봤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스물일곱 살의 전형적인 북방몽골계 남자다. 그러니까, 길에서 마주친 나의 얼굴을 기억할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얘기. 이 빌어먹을 거리엔 온통 북방몽골계 남자들이 우글거린다. 여긴 동아시아 한구석에 우두커니 자리 잡은 한국, 거기에서도 수도 서울이니까.
그러나 만약 누군가가 나를 자세히 본다면, 내 눈이 약간 사시라서 양쪽 눈동자가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릴 것이다. 그리고 턱 아래 난 세 줄의 상처. 얼마 전 약사는 나에게 상처에 대해 물었다.
“제니랑 놀다가 그랬어요.”
나는 배송되어 온 약 상자를 뜯으며 대답했다. “제니는 우리 집 강아지 이름이에요. 귀엽죠?” 애완견을 키우는 젊은 남자는 어디서든 일단 먹고 들어간다. 제니를 안고 산책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중엔 눈이 번쩍 뜨일 만한 미인도 있었다. 난 그녀들에게 개를 만져 보라고 하고, 그러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까지 했었다. 예상대로 약사 역시 내게 미소를 보냈다. 하긴, 나는 개를 사랑하는 착한 남자니, 그런 반응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약국에서 일한 지는 석 달 됐다. 내가 구인광고란에서 혼자 찾아냈고, 전화도 직접 걸었다. 약사는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나는 거울을 보며 몇 번이나 연습했다. 안녕하세요? 어제 전화 드린 ㄱ입니다.
ㄱ은 좀 굼뜨지만 유순하고 성실하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그것 때문에 이렇게 덜떨어진 인간이 됐다. 그때 ㄱ은 반년이나 종합병원에 누워 지냈고, 대학도 그래서 포기했다. 그러나 일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힘주어 말할 생각이었다. 내가 실제로는 지방에 있는 4년제 대학 생물학과를 다니다 말았다든가 사소한(정말 별것 아닌) 법을 위반하여 약식 재판을 받고 벌금을 낸 적 있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절대로 털어놓지 않을 작정이었다.
약사는 바로 출근하라고 했다. 아침 여덟 시에 와서 무인 경비시스템을 해제하는 법도 알려줬다. 그런 다음 셔터를 올리고 들어와 청소를 하는 게 내 일이었다. 청소를 다 마치면, 여덟 시 반에 약사가 나오고, 그런 다음엔 낮 내내 허드렛일을 하면 된다. 주로 노인이 약국 문을 밀고 들어올 때 부축해 주는 일, 그리고 갑자기 약 재고가 바닥났을 때 가까운 도매상에 뛰어가서 사오는 일. 나는 달리기를 잘한다. 그래서 약을 사올 일이 좀 더 자주 일어나길 바란다. 아무 생각 없이 달릴 때 나는 진짜 ㄱ이 된 기분이다. 그럴 때 간혹 개들이 지나간다. 그럼 나도 모르게 돌아보게 되지만, 당분간은 개 곁에 다가가지 않는 것이 좋다는 걸 ㄱ은 잘 알고 있다. 어쨌든, 약국 일은 힘들지 않고, 무엇보다도 제니의 주인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제니의 여주인(ㄱ의 엄마다)은 울었다. 내 벌금을 내주면서, 제니를 품에 안고. 그녀의 손톱은 부드럽고 연한 복숭아 색으로 칠해져 있다.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바빠서 올 수가 없었다. 그는 언제나 바빴다. 그리고 내겐 아버지가 오지 않는 편이 더 나았다.
그의 안경 너머로 보이는 차가운 눈초리.
저녁이면 어둑어둑해지는 군청색 하늘엔 항상 아버지의 얼굴이 둥둥 떠 있었다.
그는 나의 성적표를 보고,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제길, 겨우 두 개 틀렸다고. 그러나 ㄱ은 두 개나 틀린 머저리 같은 놈이었다. 아버지는 성적표를 내려놓고 한 마디 했다. “애 공부에 신경 좀 써.” 엄마는 알겠다고 했다. 신경질적인 목소리였다. 그런 다음 두 사람은, 그러니까 아버지와 엄마는 제니를 안고 산책을 갔다. 그때의 제니가 제1대 제니였다. 벌금을 내주는 여자의 품에 안긴 것은 제3대 제니다. 제니. 제니. 제니. 대를 이어 사랑받는 그놈의 제니.
동물보호법 위반. 이게 내 죄명이었다. 벌금은 삼백만 원.
판사가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숙이고 서 있었다. 내 계획을 아무도 알게 해선 안 되기에, 개를 학대한 악마 같은 놈으로 오해받아도 어쩔 수 없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손자라는 사람이 말했다. 나는 개를 알고 또한 나도 안다. 그러니 이제 앞으로 남은 건 백전백승뿐이다. 인류를 구하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요. 검사가 뭐라고 주절주절 떠들고, 판사가 또 무슨 이야기를 할 때, 몇 번이나 이 말이 튀어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이 젊은이는 현재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참고해 주십시오.”
변호사가 말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나는 정상이 아니었다. 증인인 엄마도 그렇게 말했는데, 변호사가 적어 준 내용 그대로였다. 어린 시절, 자전거를 타고 가던 나는 언덕을 내려오는 택시와 부딪쳤다. 그리고 어느 날부턴가 ㄱ은 말하는 게 어눌해졌고, 아주 잠깐씩 정신을 잃었다. 지금은 몇 년째 신경과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게 엄마의 증언이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증거 서류들을 내밀었다. 물론 변호사가 어딘가에서 급히 구해 온 것들이었다.
박카스 상자는 무겁다. 여긴 잘 되는 약국이라서 일주일마다 오는 배송 차량이 박카스를 보통 열 박스씩, 그러니까 천 병씩 약국 앞에 내려놓는다. 그걸 안으로 옮겨 와서 조제실 뒤편 창고에 쌓아 두는 것도 나의 일이다. 그리고 한 상자는 이렇게 커터로 뜯어서 이십 병씩 선물용 케이스에 담은 뒤 진열해 둔다. 도대체 박카스를 선물로 사가는 사람들은 뭐 하는 이들일까? 나는 포장을 하며 그런 궁금증을 가진다. 타우린과 비타민이 들어 있어서 피로가 금방 풀린다는 이 노란색 음료. 약사는 자주 박카스를 마시고, 때론 나에게도 준다. ㄱ은 공손하게 받아 마신다.
그런 다음엔 조제실로 들어가 약서랍을 하나씩 열어 보고 빈 곳이 있으면 채운다. 약사는 바쁠 때 조제약 서랍이 비어 있는 걸 가장 싫어한다. 약을 채우며 곁눈으로 보니, 약사가 손에 바리움 병을 들고 있다.
바리움. 원래는 Valium?이라는 상표로 등록되어 있는 이 작고 동그란 알약은, 스위스에 본사를 둔 다국적 제약기업 로슈의 스테디셀러 항불안제다. 성분명은 디아제팜(Diazepam). 저건 그중에서도 상대적으로 함량이 높은, 5mg짜리 노란색 정제다. 만약 당신이 불면증에 시달린다면, 병원에 가서 바리움을 처방받으면 된다. 밤에, 이 노란 알약 하나를 삼킨 뒤 가만히 누워 있으면 곧 꿈도 없는 깊은 잠으로 빠져들 테니 말이다. 어쨌든, 약을 다 지은 약사가 조제실 밖으로 나간다. 저 중년의 약사는 정말 친절하고, 그래서 환자에게 약 먹는 법을 엄청나게 자세히 설명한다. 그동안 나는 조제대를 가린 유리 바깥을 기웃대며 재빨리 두 알의 바리움을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그러고는 발로 조용히 밀어 약장 밑의 좁은 틈에 숨긴다.
사이코패스.
이게 당시 나에 대하여 사람들이 떠들어댄 말이었다.
신문기사와 텔레비전 뉴스에 모자이크 처리된 사진으로 등장한 ㄱ에게 그랬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아니 ㄱ은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외로운 연구자이며 오히려 희생자일 뿐이다. 그 일이 꼬리가 밟힌 것은 순전히 운이 나빠서였다. 내가 조심성이 부족했던 이유도 있다. 원래는 그것들을 종량제 봉투에 담아 내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날은 종량제 봉투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렇다고 방에 그것들을 둘 순 없었다. 분명 지독한 냄새가 날 테고, 이웃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길 게 확실했다.
2.
프리온이라는 기이한 단백질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한 건 벌써 삼 년도 더 전의 일이다.
프리온(prion).
이렇게 말하면 열에 아홉은 전혀 모른다고 고개를 젓지만, 그게 광우병이나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말하면 열에 여덟은 알겠다고 다시 머리를 끄덕인다. “아, 그거요. 알다마다요.” 그러나 사실 그들이 알고 있는 건 뉴스나 신문에 나오는 표면적인 이야기 정도일 뿐, 그 무서운 병의 진짜 의미를 알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이 괴상한 단백질 덩어리가 인간의 삶에 슬그머니 끼어든 건, 1970년대 영국에서였다. 형질개량을 통해 만들어진 서퍽(Suffolk) 품종의 양들이 갑자기 주저앉으며 죽어갈 때만 해도 지금까지 자연계에 존재한 적 없는 단백질이 나타날 거라곤 아무도 믿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쉬운 일이다. 그 양들을 지키던 몇 마리의 보더콜리종 개를 눈여겨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그때까지만 해도 양이 왜 그런 식으로 죽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한 미국인 의사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 병, 그러니까 양들이 미친 듯이 행동하다가 천천히 힘이 빠진 끝에 털썩 주저앉아 죽어버리는 이 괴상한 질병을 어디선가 본 적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건 쿠루병이었다. 그리고 그에겐, 오래전 그러니까 1950년대 즈음 쿠루병이 만연하던 파푸아뉴기니의 한 섬에서 의료 봉사 활동을 한 경험이 있었다.
파푸아뉴기니의 그 섬에서 쿠루병에 걸려 죽어간 이들은 모두 여자 아니면 어린애들이었다. 그들도 마치 서퍽 품종의 양들처럼 그렇게 죽었다. 처음엔 말이 어눌해지고 광기어린 행동을 한다. 그러다가 쓸데없이 웃어댄다. 미쳐버린 거다. 마지막에 죽음이 찾아온다. 영국의 농장에서 죽어간 양들처럼 그렇게, 다리에 힘이 빠져 털썩 주저앉고 그게 끝이다. 땡. 마침표처럼 종이 울리는 거다. 의사들은 장시간에 걸친 광범위한 역학 조사 끝에, 쿠루병의 이유를 알아냈다. 그건 바로 인육을 먹는 관습 때문이었다.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은, 친척이나 지인이 죽으면 모여서 그 고기를 먹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죽은 이를 자기 안에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고 믿었던 거다.
남자들은 주로 근육을 먹었다. 일종의 살코기였다. 여자와 애들이 뇌와 척수, 내장을 먹었다. 아마 찌꺼기였을 것이다. 쿠루병에 걸려 죽은 사람들은 바로 그들, 뇌와 내장을 먹은 여자와 애들이었다. 죽은 자의 시체를 먹어치우는 관습은 법으로 금지돼 있었지만, 섬 주민들은 몰래 그들의 풍속을 이어 갔다. 어쨌든 그 역학조사를 통해 쿠루병이라는 괴이하고 끔찍한 질병의 원인이 어쩌면 뇌와 내장, 그리고 척수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됐다. 미쳐서 비틀거리다 죽어버린 서퍽 품종의 양들 역시 뇌와 내장을 갈아 넣은 사료를 먹었다는 게 나중에 밝혀졌다. 하지만 쿠루병을 조사한 의사들도 그 부족들 주위를 맴도는 음험한 개들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개들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당신 옆에도 있고
지금 내 옆에도 있다.
개들은.
또 다른 인간광우병의 일종인 게르스트만-스트라우슬러-샤인커병은 어떤 유대인들에게서 발견됐다. 역시 기형적으로 변형된 프리온 단백 때문에 생기는 병이었다. 크로이츠펠트-야콥병과 조금 달랐던 건, 그저 병의 진행속도가 조금 느리다는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결국엔 어눌해지고, 웃고, 급기야 털썩 주저앉아, 끝. 이런 말로를 피할 순 없었다.
그 유대인들은 리비아에서 건너왔고, 이스라엘의 한 키부츠에 정착했다. 알고 보니, 리비아에서 살 때 그들은 양의 뇌를 특별히 즐겨 먹었다. 그들 가계의 전통적인 식습관이었다. “야훼여, 양의 뇌를 즐겨먹은 대가가 너무 큽니다.” 그들 부족의 랍비는 가슴을 치며 외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서서히 무너졌고, 결국 죽었다. 그런데 그 유대인들이 정착했던 키부츠에 있던 개들은? 누가 그 개들에게 관심이나 가졌을까? 어쩌면 인간이 먹다 버린 양의 뇌와 내장을 포식했을지도 모르는 그 동물에게?
여하튼, 영국 정부는 당황했다. 이젠 이 기이한 질병이 서퍽 품종의 양들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사실이 점점 드러났으니까. 국가의 낙농 및 육우 산업이 존폐의 기로에 서 있었다. 결국 소들도 하나둘, 그렇게 털썩 주저앉아 죽어가기 시작했다. 그 다음엔 다른 동물들도 죽어갔다. 사슴도, 원숭이도, 그저 미친 듯이 돌아다니며 웃었고(만약 동물들도 웃을 수 있다면 말이다) 마지막엔 그 자리에 앉아서 죽었다. 모두 다 사료 때문이었다. 늙은 양의 뇌와 내장을 갈아 넣어 영양가를 높인 그 사료들. 그 짧은 시기에, 영국에서 그런 사료를 먹은 동물들은 모두 같은 질병을 앓았다. 그리고 그런 동물을 먹었던 사람들 역시 뇌에 이상한 단백질이 덕지덕지 쌓이는 크로이츠펠트-야콥병에 걸려 죽어갔다. 오직 개들만 빼고. 알려진 바에 의하면, 지금까지 세상의 그 어떤 개들도 이 병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사실과 사실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내는 데엔, 천재적인 직관 같은 게 필요하다. 유명한 생화학자나 의학자들은 나보다 훨씬 똑똑하겠지만, 나열된 사실들 뒤에 감춰진 본질을 직시할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개들에게 주목할 생각을 못 했던 걸 보면 말이다. 오직 나만이 그 둘, 그러니까 개와 프리온 사이의 관계를 간파했다. 그리고 이게 바로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외로운 실험과 연구를 계속해 오고 있는 이유다.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줄 의무가 나에겐 있는 것이다.
1982년, 드디어 프리온이 발견됐다.
미국의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의 스탠리 프루시너라는 유전학자가 프리온이라는 낯선 단백질의 존재를 알아냈고, 바로 학계에 보고했다. 참고로 말하자면,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는 원래 인간 우생학 연구를 위해 1940년대에 정부 주도로 세워진 곳이다. 물론 나중엔 전 세계 생화학과 유전학 연구의 중심이 되었지만 말이다. 사실 나는, 그런 좋은 기관이 한낱 생화학 연구소 따위로 추락하고 만 것이 안타깝다. 아마 그런 곳에서 제대로 된 우생학을 연구하고 전 인류에게 실행했다면, 지금쯤 지구는 낙원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우월한 인자들로만 똘똘 뭉친 사람들이 우글대는. 내 생각을 들은 ㄱ이 말한다. 그럼 너도 태어나지 못했을 거야. 넌 열성인자로만 이루어져 있으니까. 그럼 나는 대답한다. 상관없어.
잠깐. 이야기가 딴 데로 흘렀다.
어디까지 얘기했지?
그렇다.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의 스탠리 프루시너.
그는, 기이한 모양으로 변형된 채 자기 복제를 거듭하며 서서히 신경계를 파괴하는 괴상한 단백질을 찾아냈고 프리온이란 이름을 붙였다. 프리온은 죽은 서퍽 품종 양의 뇌에서, 광우병에 걸려 죽어간 소의 뇌에서, 동물원에서 사료를 먹고 죽은 각종 네 발 달린 짐승들과 원숭이들에게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쿠루병 혹은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이나 게르스트만-스트라우슬러-샤인커병에 걸려 죽은 인간의 뇌에서 발견됐다.
더 놀라운 일은 그 얼마 뒤에 일어났다.
양이나 소의 뇌와 내장을 전혀 먹은 적 없고 가족 중에 관련 질병의 유전력도 없던, 그야말로 정상인 사람들도 이 병에 걸린 것이다. 단지 그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같은 병원에서 뇌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알고 보니 그들을 수술한 도구가 문제였다. 그 도구들은 바로 얼마 전 크로이츠펠트-야콥병에 걸린 환자의 뇌를 수술하는 데 썼던 것들이었고, 그들은 바로 그것을 통해 프리온에 감염된 게 확실했다.
모두 당황했다.
수술 도구들은 완벽하게 살균 소독된 것들이었으니 말이다.
결국 이 사건으로 명백해진 건, 프리온이란 단백질은 일반적인 살균 방법 같은 걸 써서는 절대 없애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포르말린이나 끓는 물에도 끄떡없었다). 그건, 지금까지 알려졌던 자연계의 룰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자기 복제를 해나가는 불멸의 단백질이었던 것이다. 네 발 달린 모든 짐승과 인간까지도 그 감염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오직 개들에게만은 결코 전염되지 않는 기이한 단백질 덩어리. 안타까운 건, 프리온에 대한 지식이 여기서 더 이상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탠리 프루시너가 프리온을 발견해서 노벨상을 탄 이후로 어떤 진전도 없었다는 얘긴데, 하긴, 당연한 결과다. 왜냐하면, 개를 주목하지 않는다면 결코 영원히 알아낼 수 없을 테니까. 프리온의 진짜 의미 같은 건.
“그러므로, 이 병의 배후에 존재하는 음모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라고 나는 썼다. 처음에 내가 편지를 보낸 곳은 당연히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였다. 그러나 아무 답장도 받지 못했다. 답장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나는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프루시너가 프리온을 발견했을 때도 연구소 안팎에서 얼마나 많은 비웃음을 샀던가. 수많은 과학자들이 대놓고 그를 비난했다. “말도 안 됩니다. 지구상의 모든 단백질은 똑같은 방식에 의해 복제됩니다. 그런데, DNA나 RNA 없이 자기 복제가 가능한 단백질이라뇨? 그런 것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존재해서도 안 되고요.” 이게 그들, 뛰어난 과학자들의 말이었다.
프루시너 같은 사람도 새로운 학설을 발표하고 십 년 동안 비웃음의 대상이 됐는데, 하물며 오직 천재적인 직관에만 의존해서 연구하는 나 같은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3.
저녁이다.
군청색의 어둑한 시간.
약사는 퇴근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 하루 들어온 처방전을 정리하는 것이다.
ㄱ은 청소를 한다. 최대한 꼼꼼하게 구석구석 쓸고 닦는다. 그는 앞으로도 될 수 있는 한 오래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 적어도 바리움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질 때까지만이라도.
그런데, 당신은 궁금하겠지? 내가 바리움이란 약에 대해서 잘 아는 이유 말이야.
그건 간단해. 난 아주 오랫동안 그 약을 먹어 왔거든.
의사들은 그 노란 알약 몇 개를 처방해 주며 나를 무시했지.
끝없는 질문들 속에서 허우적대게 만들었다고.
“아직도 악몽을 꾸니?”
“아직도 누군가가 널 해칠 것 같아?”
“폭식에 대한 충동을 멈추기가 힘들어?”
“갑자기 기분이 급격하게 변하기도 하지?”
그러면서 그들은 곁눈질로 힐끗 본다.
ㄱ이 손톱을 문지르거나 물어뜯는 모습을.
불쌍한 ㄱ.
오래전, 의사 앞에 앉아 있을 때마다 ㄱ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그는 땀을 흘렸다. 제니의 여주인, ㄱ의 엄마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그녀의 길고 말끔하게 다듬어진 복숭아 색 손톱이 하얗게 변하고 있었으니까.
의사들은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어.
“지금, 초조하니?”
ㄱ은 아니라고 말했다.
“괜찮아, 이분들에겐 사실대로 말해. 널 도와줄 분들이야.”
복숭아 색 손톱의 여자가 ㄱ에게 말하는 것이 꿈결인 듯 웅웅대며 들려왔다. 지금은 물론 다르다. ㄱ은 다 컸고, 180센티미터에 가까운 큰 키에 건장한 체격을 가졌다. 살도 뺐고, 배엔 군살 하나 없는 그는 더 이상 겁에 질린 어린 남자애가 아니다. 학교에서 갑자기 사라졌다가 어디선가 발견되어 질질 끌려오기나 하는 그런 덜떨어진 애가 아니란 말이다. 어려서부터 노란 알약이나 삼켜야 했던 그런 등신도 이젠 아니다. 어두운 저녁, 거실 창밖으로 군청색 하늘이 보일 때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당신, 제니의 주인 중 나머지 한쪽, 그러니까 ㄱ의 아버지, 그가 위아래로 훑어보며 내뱉던 말. “개만도 못한 놈.” 그런 말을 듣고 가만히 있던 어린 ㄱ이 아니란 말이야, 알겠어?
중요한 건 의사들이 마지막으로 하는 질문이 언제나 똑같았다는 사실이다.
난 그걸 똑같이 외워서 따라할 수도 있었어.
“누군가에게서 거절당하거나 무시당할까 봐 두렵니? 그게 공포로 다가오지?”
그런 다음 의사들은 ㄱ의 차트에 이렇게 휘갈겨 썼다.
“전형적인 경계선 인격장애. 호전의 기미-없음.”
그러니까 그 빌어먹을 의사들은 내가 어린 시절 부모에게 거부당하고 무시당한 끝에 도저히 회복불가능하리만치 너덜너덜해진 영혼을 가지게 됐다고 말하는 거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나중에 학교 도서관에서 알게 됐다. 무시. 거부. 거절. 이런 게 일상이었던 사람들의 영혼(이 있기나 하다면)에게 내려지는 판정은, 너무 간단한 나머지 허무하기까지 한 일곱 개의 글자에 불과했다. ‘경계선 인격장애.’ 국제질병분류기호로는 F60.3. 이유도 없고 설명도 없고 미래 혹은 과거조차 없는, 글자와 숫자들의 조합.
“김 군, 못 들었구나?”
약사가 내 앞으로 다가온다.
순간 나는 당황한다.
아니, 당황하는 것은 ㄱ이다. 나는 태연하게 아까 약장 밑으로 밀어 넣은 바리움을 주워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있다. “아, 죄송합니다, 약사님, 잠깐 딴생각 하느라 못 들었어요.” “내일 공휴일이니까, 오늘은 좀 일찍 퇴근하라고 했어.” 그러면서 약사는 웃는다. 참 선량한 사람이다. “그런데 김 군은 쉬는 날 뭐 해? 여자 친구라도 만나나?” 그러고 보니 내일은 공휴일이다. ㄱ도 미소 짓는다. “제니 데리고 산책이라도 해야죠. 정말 귀여운 녀석이거든요.”
나는 그것들을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는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 넣었다.
이게 내가 위반한 동물보호법의 실체다.
정말 별것 아니었다.
개의 뇌에 숨어 있을 어떤 조직을 찾아내기 위해 난 연구를 해야 했고, 그러려면 실험이 필요했다.
실험에 쓸 개를 구하는 건 힘들었다. 처음엔 마트에서 산 개 껌을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나 알려진 것과 달리, 의외로 개들은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 그들은 교활하게 나를 노려봤다. 자기를 실험 도구로 쓰려고 한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린 표정이었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제니, 이리 와봐. 착하지, 제니?” 1대, 2대, 3대 제니들 덕분에 내가 아는 개의 이름은 제니뿐이다. 그런데 제니들은 오지 않았다. 그들은 잔뜩 경계하며 털을 곤두세우고 으르렁거렸다. 그럴 때면 십중팔구, 멀리서 핫팬츠를 입은 젊은 여자가 뛰어오곤 했다. 조깅하다가 줄을 놓친 개 주인들이었다. 아니 사실은 개가 주인이지만, 그들은 모른다. 어쨌든, 그 개 주인들은 귀여워 못 견디겠다는 듯 그 동물을 안고 다시 뛰어간다. 나는 실망했다. 어디서 개를 구하지?
그건 촌각을 다투는 일이었다.
개들은 자신들의 대뇌 전두엽에서 나오는 텔레파시 신호를 통해 인간을 조종한다.
지금도, 즉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도 말이다.
이게 내가 알아낸 개들의 비밀, 숨겨진 사생활이었다.
내게 이런 통찰이 혜성처럼 떠오른 건 어떤 신문기사를 읽었을 때였다. 그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 “미래엔 인간의 뇌에 이식한 칩 통해 텔레파시 가능해질 것.”
나는 그 신문기사를 오렸다.
머릿속에선, 그 즈음 한창 관심 있던 단어들이 모여들어 하나의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제니. 주인들. 우생학. 열성인자. 개만도 못한 놈.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 스탠리 프루시너. 프리온. 자연계엔 없는 기이한 단백질. 신경계 파괴. 지금까지 개들은 결코 걸리지 않았던 질병. 그리고 개들. 그 병이 나타난 곳엔 언제나 개들이 있었어. 그것들이 문제였던 거야.
유레카.
신이시여.
나는 게르스트만-스트라우슬러-샤인커병에 걸렸다던 유대의 랍비처럼 하늘을 향해 기도할 뻔했다. 아무도 모르는 것을 혼자만 알고 있는 존재의 외로움이라니. 그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독이었다. 세상엔 나와 ㄱ, 단 둘뿐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도와야 하고, 서로에게 의지해야 한다. 적어도 그 비밀이 완전히 밝혀지고 모두가 우리의 말을 이해해 줄 때까지.
개들과 늑대들은, 지금은 사라진 공통의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
갈라져 나온 후로 늑대는 황야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살아 왔고 결국 지금은 몇 마리 남지도 않았다. 하지만 개들은 달랐다. 진화의 엄청난 힘이 개들의 머릿속에 뭔가를 심어 줬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건 일종의 생물학적 칩이었을 것이다.
내가 찾으려고 그렇게도 노력했던 그 기관.
개들이 대뇌 전두엽 어딘가에 가지고 있을 그 기관은 바로 텔레파시를 만들어내는 곳이었다. 그게 전두엽에 있을 거라 생각한 이유는 간단하고도 과학적이었다. 포유류 뇌에서 가장 나중에 발달한 부분이 바로 대뇌 전두엽이니까. 그곳을 통해 우리는 ‘생각’이라는 이성적이고도 지적인 행위를 수행한다. 그건 개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만약 우리를 조종한다면, 그 텔레파시 신호를 만들어낼 곳은 대뇌 전두엽뿐이었다.
프리온 단백질 역시 인간 뇌에 이식된 일종의 생체 칩이었다. 개들이 처음에 어떤 식으로 인간의 뇌에 프리온을 설치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이것도 앞으로 연구해서 명확하게 밝혀내야 할 부분이다) 그게 머릿속에 들어오자, 인간은 개를 위해 헌신하게 됐다. 개를 사랑하라. 이게 바로 개들이 프리온을 통해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개를 인간처럼 사랑하라. 이건 좀 더 나중에 만들어진 신호, 그러니까 조금 더 진화한 신호였던 것 같다.
개를 인간보다 더 사랑하라.
결국 이것이 궁극의 신호였다. 가장 진화된 신호. 프리온을 통해 전해지는. 그리고 나는 이 신호들이 이미 개들에게서 발산되어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들이 뿜어내는 텔레파시 신호들이 마치 마르코니의 무선전신기기, 아니 통신사의 기지국에서 쏟아지는 전파들처럼 공간을 꽉 채우고 있다는 말이다. 믿어지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지금 당장 컴퓨터를 켜고 그저 한번 쭉 훑어보기만 하면 된다. 거기에서 당신은, 개들의 사악한 음모 때문에 결국 개만도 못한 삶을 살게 된 인간들이 도처에 널린 걸 볼 수 있을 테니까. 지구 곳곳에서 그들은, 비쩍 말라 배가 툭 튀어나온 채 텅 빈 눈초리로 허공을 응시한다.
4.
인간에게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이나 게르스트만-스트라우슬러-샤인커병, 쿠루병을 일으키고 소나 양의 뇌를 완전히 망가뜨리는 것은, 사실 정상적인 상태의 프리온이 아니었다. 정상일 때 프리온은 아무런 병도 일으키지 않는다. 모두의 뇌에 존재하며 그저 개들이 보내는 텔레파시 신호를 수신하는 일만을 할 뿐이다. 그런데 운 나쁘게도 프리온을 만드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날 때가 있다. 그럼 곧바로 기형적 구조를 가진 프리온이 생성되고, 바로 그게 병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어쨌든,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의 스탠리 프루시너가 더 이상 연구를 진척시키지 못한 건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프리온이 인간의 뇌에 왜 존재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평상시엔 아무 기능도 수행하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변형되어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이라니. 이건 진화적 측면으로 봐도 어불성설이라고, 프루시너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나에겐 명징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정상의 프리온은 우리 뇌에서 개들의 텔레파시 신호를 감지하는 안테나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그것도 때론 망가진다. 우리가 쓰는 칩들이 어쩌다 망가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망가진 칩, 그러니까 돌연변이가 일어나 버린 프리온만이 생물체의 뇌에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것이다.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된 컴퓨터가 안에서부터 와르르 무너져 내리듯, 그렇게.
실험용 개를 구할 수 있는 길은, 갑자기 나타났다.
유기견 보호소. 나는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다가 그런 곳이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됐다. 보호소 책임자는 상냥했다. 하긴, ㄱ이 워낙 단정한 차림에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진 청년이었으니, 호감을 가질 법도 했다.
“잘 생각하셨어요. 이런 광고도 있잖아요. 강아지 분양받지 말고 입양하세요, 라는.”
그러면서 그 책임자는 나에게 어떤 여자 연예인이 커다란 흰 개를 끌어안고 있는 사진을 보여줬다.
나는 마음이 아팠다.
그렇다면 그 여자 연예인의 머릿속 프리온도 이미 개들의 신호에 점령당했다는 얘기 아닌가. 어쨌든 나는 따뜻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그 다음 세 마리의 개를 골랐다. 하얀 말티즈와 아직 덜 자란 갈색 미니어처푸들, 그리고 품종을 알 수 없는 누르스름하고 작은 새끼 개 한 마리. 모두 제니라고 이름붙일 생각이었다.
제니. 제니. 제니.
책임자에게서 개들을 건네받을 때, 그중 한 마리가 내 턱을 할퀴었다.
세 줄의 상처. 거기서 피가 흘렀다.
보호소 책임자는 마치 자기가 상처를 내기라도 한 듯 미안해했다. “어머나, 얘가 왜 이러지? 원래는 아주 얌전한 아이거든요.” 나는 다시 한 번 따뜻하게 웃었고, 그 조그만 푸들을 품에 꼭 안았다.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낯선 사람에게 가는 게 겁나서 그러는 걸 거예요.”
집에 와서, 개들을 잠재웠다.
바리움을 곱게 갈아서 그것들이 환장하고 핥아먹는 우유에 잘 녹였다.
(적어도 너희들에게 큰 고통을 주고 싶진 않아. 그때 이렇게 중얼거렸던가?)
그것들의 머리를 베어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먼저 커터로 목둘레의 가죽을 동그랗게 베어냈고, 독일제 부엌칼로 그 선을 따라 조심스럽게 잘랐다. 피가 흘러내렸지만, 바닥엔 미리 김장용 비닐을 빼곡하게 깔아 뒀으니 문제없었다.
작고 따뜻한 제니들의 머리.
공구상자 안에 들어 있던 톱으로 두개골을 열자, 훅 하고 비린내가 끼쳤다. 여기 어딘가에 그 기관이 있으리라. 텔레파시 신호를 만들어내 우리를 조종하는 그 칩.
나는 일회용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두부처럼 부드러운 개들의 뇌를 뒤적였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하긴, 당연하다. 개들이 그렇게 쉽게 자신들의 비밀을 내놓진 않을 테니 말이다.
곤히 잠든 두 번째 제니의 머리를 잘라냈다.
그 다음엔 세 번째 제니의 머리도.
그러나 아무데도 없었다. 혹시 그런 기관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 걸까? 그저 개들은 뇌 전체로, 어쩌면 털로 뒤덮인 몸 전체로 우리 머릿속의 프리온에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걸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ㄱ은 크게 당황한다. 비린내로 가득한 방에서 피 묻은 비닐장갑을 낀 ㄱ이 거울에 비쳤다. 그는 미리 준비해 둔 비닐봉투에 아직도 지근한 제니들을 담고 끝을 봉한다. 몸집이 작은 개들로 고르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여행용 가방 하나엔 세 마리의 제니들이 다 들어간다.
그는 가방을 끌고 길을 건넌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미리 봐둔 곳이 있었다.
개들이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을 것이다.
진화라는 게 원래 그렇다. 우연히 얻은 어떤 기관, 혹은 어떤 능력. 그것이 생물의 생존에 유리하다면, 바로 채택된다. 그렇게 선택된 그 무언가는, 개들의 두뇌 어딘가에 본능으로 자리 잡았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이 개들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그리고 인간 역시 우연한 진화과정을 거친 끝에, 거기에 반응하는 프리온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을 겁니다.” 내가 콜드 스프링 하버 연구소에 보낸 편지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나는 똑같은 편지를 영국의 생거 연구소에도 보냈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 연구소의 이름은 20세기 최고의 생화학자인 프레더릭 생거를 기려 명명됐다. 물론, 어디에서도 답장은 없었다.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그들이 이 문제를 진지하게 인식하기까진 꽤 많은 시간이 걸릴 테니까.
어쨌든, 나는 그 편지들 속에 개들의 사진도 첨부했다. 그 칩, 그러니까 인간을 조종하는 텔레파시를 발산하는 바로 그 기관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위치에 빨간 매직으로 커다란 화살표를 그린 사진들이었다.
하지만 제니들을 음식물 수거함에 버린 건 정말 멍청한 짓이었다.
아침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던 한 젊은 여자가 엄청난 비명을 질러댔기 때문이다.
개의 몸통과 머리들(하필 그것들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있었다)이 생선뼈와 돼지 등뼈, 닭발, 배춧잎, 이런 것들 속에 둥둥 떠 있었다. 게다가 운 나쁘게도 여자는 동물애호가이기까지 했다. 자기 자신도 그 좁은 원룸에서 개를 두 마리나 키우고 있었다. 그녀는 부들부들 떨며 동물보호단체에 연락했고, 곧이어 사람들이 현장에 달려왔다.
음식물과 뒤섞인 세 개의 몸통과 세 개의 머리.
그들은 여러 방향에서 사진을 찍었다. 동네 주민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구경을 나왔고, 혀를 차며 개들을 동정했다.
경찰은 골목길 전봇대 위에 달려 있던 감시 카메라를 분석했고, 거기서 전형적인 북방몽골계의 얼굴 골격을 가진 한 남자가 슬리퍼를 신고 여행용 가방을 질질 끌며 걸어오는 모습을 찾아냈다. 그는 음식물 쓰레기 수거용 플라스틱 통 앞에 서더니, 검은 비닐로 싼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툭하면 쓰레기를 몰래 버리고 달아나는 사람들 때문에 동사무소에서 설치한 카메라의 성능은, 심하게 좋았다. 선명하게 보이는 개의 머리와 몸통, 그리고 내 얼굴. 그러고 보면 세상엔 온통 개들뿐이고 그 다음으로 많은 게 감시 카메라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화면 속에서 난 너무 당당하게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거 완전 미친놈이네.” 경찰들 중 누군가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난 정말로 괜찮다. 그런 말엔 상처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개들의 비밀을 모두 밝혀낼 때까진 오해 속에 살 수밖에 없고, 원래 이런 길은 고독한 법이니까.
내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악마.
사이코패스.
이런 것들이 익명인 나의 이름이 됐다.
하지만 역시 나는 개의치 않는다.
모든 것이 밝혀지면 난 영웅이 될 테니까. 개들로부터 인류를 구한 외로운 선지자.
5.
내가 약식재판을 받은 건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별일 없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엄마가 고용한 변호사가 귀띔해 줬다. 하긴, 어차피 내가 죽인 건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몇 마리의 개였을 뿐이다.
재판은 지루했다.
판사의 갖가지 질문에 난 변호사가 시킨 대로만 대답했다. 거기서 내가 한 말은 이런 것들이었다. 사고를 당한 게 사실입니다. 그 후로 머리가 자주 멍해졌던 것 같아요. 결국 생물학과를 중퇴했습니다. 아니오. 아버지의 권유로 입학했습니다.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었지요(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라는 말은 뺐다). 네, 더 이상 학업을 계속하긴 어려웠습니다(여기서 슬프고도 멍한 표정 짓기).
정상이 참작되어 동물학대에 대한 법정최고형(그래 봤자 벌금 오백만 원이었지만)을 면했고, ‘사연’이 알려지자 이번엔 동정을 받았다.
악마, 사이코패스. 이런 말도 없어졌다. 이제 난 그저 예전에 머리를 다친 덜떨어진 인간에 불과했다.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개의 머리를 자른 남자. 그게 나였다.
엄마가 와서 벌금을 내줬을 때, ㄱ은 수치스러웠다.
그녀가 우는 모습을 보았을 땐, 약간의 미안함을 느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울고 있는 엄마와 그 품에 안긴 제3대 제니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 동안, 혜성처럼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건 일종의 역발상이었다. 완전히 처음부터 거꾸로 생각하기.
나는 앞으로 걱정을 끼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오랜만에 우리는 함께 밥을 먹었다. 그때 ㄱ은 평이한 어조로 질문했다. “엄마, 요즘 체중이 얼마나 나가?”
실험을 위하여, ㄱ은 차근차근 준비했다. 먼저 56킬로그램의 생물체를 거의 완전히 잠재울 수 있을 만큼의 바리움을 모았는데, 체중 1킬로그램당 어느 정도의 디아제팜이 필요한지는 약병에 들어 있던 약품사용설명서를 통해 알아냈다. 온라인으로 수술도구 세트를 주문했고, 그 다음엔 『인체해부학』(ㄱ이 아직 어릴 때 아버지의 서재에서 들고 나온 책이었다)을 다시 한 번 복습했는데, 특히 두뇌와 두개골의 형태 및 기능에 집중했다. 위험할 거란 생각은 없었다. 그럴 거면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연구 끝에, 성공의 관건은 소요되는 시간에 달려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최대한 빠르게 시술할 것.” 나는 노트에 이렇게 메모했다. 그간의 모든 실험과정과 구상을 기록해 둔 녹색 표지의 공책이었다.
돌연변이가 일어나 비정상적으로 변형된 프리온 단백은 사람의 뇌를 스펀지처럼 만든다. 말 그대로, 구멍이 숭숭 뚫리는 거다. 내가 주목한 건, 그런 식의 해면체 조직이 가장 많이 발견되는 부위가 바로 대뇌 측두엽이라는 의학자들의 보고서였다.
하긴, 텔레파시나 신(神)의 목소리 같은 것들이 측두엽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논문을, 나는 이전에도 꽤 여러 편 읽었었다. 텔레파시가 느껴진다거나 혹은 하늘에서 신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사람들의 뇌를 관찰하면, 그들의 측두엽 부위에 강한 전기적 흥분이 일어나 있더라는 게 그 논문들의 내용이었다. 어쨌든, 이 모든 사실들을 고려한 끝에 나는 바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즉, 어떤 사람의 대뇌 측두엽을 적절하게 건드려 주면, 그가 앞으로는 그 어떤 텔레파시에도 반응하지 않게 될 거라는 사실. 심지어는 개들의 텔레파시에도 말이다.
이제 눈치 챘는가? 나의 아이디어가 뭔지?
그렇다. 난, 신호를 받아들이는 칩에 해당하는 프리온 단백이 다량 분포돼 있을 인간의 대뇌 측두엽에 간단한 시술을 행한 뒤, 그가 개들의 텔레파시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펴볼 생각이다. 모든 실험과정과 결과는 꼼꼼히 기록할 것이며, 그게 완성되면 나중에 콜드 스프링 하버와 생거 연구소에 다시 한 번 보낼 계획도 세우고 있다. 그때 그들은 드디어 내 노트의 위대함을 알아볼 테고, 그럼 나는 더 이상 외로운 연구자의 길을 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내겐 수많은 동료들이 생길 테니까.
나는 제니의 주인을 아프지 않게 시술할 자신이 있다.
책에서 본 대로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난 측두엽이 어디 있는지도 몇 번이고 봐뒀다. 눈을 감고도 정확하게 떠올릴 수 있을 만큼. 그 모든 처치가 이루어지는 동안 제니의 주인은 곤히 잠들어 있을 것이다. 나에겐 충분한 양의 바리움이 이미 준비돼 있다.
오늘 엄마는 내가 따로 나와 살고 있는 이 집을 방문할 예정이다. 제니도 데리고 오겠지. 며칠 전 나는 그녀에게 전화했다. 다음 주 화요일이 내 생일이라고 말하자, 엄마는 당황하며 그러나 마치 언제나 기억하고 있었다는 듯 반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레스토랑 예약할 생각이었는데…… 그래? 네 집으로 오라고? 그럼, 당연히 가야지. 케이크도 사갈게.” 간만의 밝은 분위기 속에서 우린 서로 즐거워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녀의 측두엽을 아주 조금 건드리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잠에서 깨어난 엄마에겐 가장 먼저 제니를 보여줄 생각이다. 제3대―빌어먹을―제니. 내 가설이 옳다면(당연히 옳겠지만), 엄마는 더 이상 제니를 사랑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나를 더 사랑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건 정중히 거절할 생각이다. 이제 ㄱ은 다 컸고 지금으로선 더 이상 ‘엄마’를 필요로 하지도 않으니까.
드디어 모든 준비가 끝났다.
마지막으로 방바닥에 깔아 둔 비닐의 귀퉁이를 반듯하게 잘 편 뒤, 조용히 방문을 닫는다.
시계는 6시 55분을 가리키고 있다.
밖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제니의 주인, 엄마가 오고 있다.
6.
□ 사건 개요
피의자 김범식(남, 27세 약국종업원)은 절도 및 마약류관리법위반(향정)으로 거주지인 서울시 송파구 방이동 123-○○번지 다가구주택에서 2013년 ○월 ○일 저녁 6시 55분에 검거되었음. 현장에서 32정의 바리움 5mg(성분명 Diazepam, 향정신성의약품. 항불안제) 정제를 수거했으며, 주방 싱크대 위에서 이미 가루 상태로 분쇄되어 있는 약 20정 분량의 동(同)약품 추가로 발견 후 수거 조치함. 이는 김범식이 ○○약국에서 3개월간 근무하며 틈틈이 절도한 것들로 확인됨.
□ 사건 경위 및 현 상황
김범식이 약국에서 일하게 된 이후로 매일 몇 정씩의 바리움이 사라지는 걸 수상하게 여긴 약사 박 씨는, 고심 끝에 조제실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다. 다음은 약사의 증언. “설마 김 군이 그러랴 싶었어요. 워낙 성실하게 일했으니까요. 그래도 매일 약이 없어지니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이게 마약류로 분류된 약이라―정확히는 향정신성의약품이지만 어차피 그게 그거고 관리 기준은 마약류와 똑같으니까요―이렇게 된 이상 범인을 잡지 않으면 약사인 내가 다 책임져야 할 상황이었거든요.”
카메라가 설치된 줄도 모르고 평소와 똑같이 바리움을 훔친 피고가 집으로 돌아가자, 약사 박 씨는 곧바로 112에 신고했으며, 이에 경찰은 신속하게 대처하여 마약사범인 김범식을 현장에서 검거할 수 있었다.
김범식은 경찰이 벨을 누르자 마침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문을 열었다. 이는 보통의 마약 사범들이 창문 등을 통하여 도주를 시도하는 것과는 매우 상이한 행동이었으며, 따라서 검거는 매우 빠르고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김범식의 부모에겐 겨우 연락이 닿았는데, 그들은 지난 금요일부터 9박 10일 일정의 해외여행을 떠난 상태이기에 바로 귀국하긴 힘들다고 답해 왔다. 다만 김범식과 관련된 모든 법적인 문제는 법무법인 ○○의 오윤석 변호사에게 일임할 것임을 알려왔다.
오윤석 변호사는 김범식의 정신감정을 의뢰한 상태다. 그는 김범식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강변하였으며, 의뢰인의 집에서 찾아낸 한 권의 노트를 증거물로 제출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걸 읽어 보십시오. 이 청년의 심신미약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제목을 보시면…… 김범식 군의 지적 수준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도 금방 아시게 될 거라 믿습니다.” 그러면서 변호사가 내민 노트의 녹색 표지엔 다음과 같은 제목이 검은 매직으로 적혀 있었다. 「개들의 死生活」.
첫댓글 음
감당하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