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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불타는 지옥의 고통 눅16:19-31
우리 인생에게는 생로병사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태어나고 늙어가며 병들어 죽는다'는 인생 살아가는 과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사자성어라고 볼 수 있다. 인생이 이 말처럼 생로병사의 길을 간다면 그런 사람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은 것 같아도 많지 않을 것이다. 매일 매일 일어나는 사건 사고는 생로병사라는 말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매일 지구 곳곳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너무나 다들 잘 알고 있다.
어제 뉴스를 보니 13일 미국 시애틀 중심부 한 교차로에서 임신부가 총을 맞고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사고로 태아도 숨졌다는 말이다. 이런 경우는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사망했다는 것은 뭐라고 할 수 있나?시애틀타임스는 임신 32주 차 한국인 여성 A(34) 씨와 남편 B(37)씨가 함께 정차한 차 안에서 이같은 변을 당했다고 14일 보도했다. 시애틀 경찰은 현장 인근에서 피의자를 검거하는데 체포 당시 피의자는 "내가 했다 내가 그랬다"고 말했다. 이런 유색인종에 대한 묻지마 살인 사건이 어디 시애틀 뿐일까?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면서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에 걸리면 예기치 않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누구나 한번쯤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인가? 한번 쯤은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하면서 그래도 나는 선하게 살겠다고 다짐하면서 뭔가 착한일도 하고 남을 위해 봉사도 하지만 그런 것만으로 죽음을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확언하건데 인류역사상 죽음을 이겼던 사람은 예수그리스도 한분 밖에는 없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어 무덤에 장사지냈다가 죽은지 삼일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역사가들은 그를 인류의 구세주라고 부르면서 그분이 태어난 해를 기준으로 BC(BeforeChrist)와 AD(AnnoDomini)로 나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기야 대부분 사람들은 그것이 뭐 중요한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나의 생년월일도 인간들이 살아가는 일정도 다 정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면 그분을 무심코 넘어갈 수는 없다는 것이 아닌가. 죽음을 이긴 주 예수그리스도를 알면서 부터는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땅에서의 신앙생활을 통해 바른 가치관과 내세관을 갖고 주어진 삶을 바르게 살고자 오늘도 묵상을 하면서 말씀을 생각해 본다. 김은중 감독이 이끄는 한국 U-20 축구대표팀이 12일 아르헨티나 라플라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이스라엘과 2023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3-4위전에서 이스라엘에 1-3으로 패했다. 이스라엘은 이번 U-20 월드컵에 처음으로 출전하여 3위를 했다는 것인데 이스라엘은 잘 알다시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을 택했다는 것이다. 성경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읽다보면 하나님께서 택한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이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보여 주셨으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관계를 통해 하나님의 은총을 누릴 수 있는 인생을 디자인 할 수 있다고 본다. 아브라함을 통해 선택된 이스라엘 자손들은(창15:13-14)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대로 이집트에서 노예로 고난을 당하면서도 그들은 선택된 자로서 이미 구원이 계획되어 있었지만 이를 모른 채 아무런 꿈도 비전도 없이 멸시를 받으며 살았갔지만 약속하신 때가 되니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들을 출애굽하여 약속된 땅 가나안을 향해 갈 때 홍해바다를 건넜고 광야를 지나면서 이방 족속들의 침략을 받았을 때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인도하셨건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운 일만 당하면 하나님과 모세에게 원망을 늘어놓았던 것은 그들이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잊어버리고 불신앙가운데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받은 백성들(엡1:4)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지도 못한 채 불행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유사하기도 하다. 우리들도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천국을 향해 갈 때 하나님의 동행하여 주심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기쁨과 감사함 대신 불안과 염려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옛날 이스라엘백성들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된 가나안의 땅을 보여주시고자 각지파의 대표들로 하여금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모세는 12명의 정탐꾼을 40일 동안 그 땅을 꼼꼼하게 정탐을 하도록 부탁하였다. 정탐을 해야 할 것들은 첫째 그 길들과 산들이 어떻게 연결이 되어 있는가를 꼼꼼하게 정탐해야 한다. 둘째는 그 땅의 거민이 약한지 강한지를 정탐하게 하였다. 셋째는 그 땅이 좋은 지 나쁜 지이다. 넷째는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를 조사하게 했고, 다섯째는 그 땅이 비옥한지 메마른 땅인지를 조사하게 했고 올 때에는 그 땅의 열매를 가지고 오도록 하였다. 그때가 마침 포도가 처음 익을 때이기 때문에 포도 열매를 보면 그 땅이 비옥한지 메마른 땅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그 땅을 있는 그대로 세밀하게 정탐을 하고 오도록 한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 약속하신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지를 확인하고, 백성들에게 그것을 확인시켜 주는 열매만 가져오면 된다. 이 정탐한 시험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게 될까? 궁금하다. 그들이 40일 동안 정탐한 후 갈렙과 여호수아는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가나안 탐사보고를 하면서 증거로 그 땅의 열매를 보여 주며 모세에게 고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우리가 간즉 참으로 그 땅에는 젖과 꿀이 흐르고 이 포도와 무화과들은 그 땅의 열매이니이다(민13:27). 그들의 증언함과 그들이 가져온 포도송이와 석류와 무화과를 보았을 때는 그들이 얼마나 기뻐하며 환호하였겠는가!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이번에는 나머지 10명의 사람들의 탐사보고를 들었는데 그들은 악평하기를 가나안에 있는 그들의 성은 무너뜨릴 수 없는 견고한 성이며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장대같이 큰 아낙자손들이며 우리들은 그들보기에 메뚜기 같으며 그들의 밥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은 탄식의 늪에 빠져버리면서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며 하나님의 주시겠다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믿지 못하면서 스스로 절망의 늪에 빠져버렸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들도 예수그리스도안에서 천국에서 영생함을 약속받았는데도 세상에서 부딪치는 어려운 상황과 자신들 부족함만을 보고 낙심에 빠져 약속된 축복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고 영생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똑같은 삶의 패턴속에서 행복을 잃고 불안과 염려속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만이라도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정말 사람들은 무엇을 가지고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가? 지금 내가 행복하다는 그 느낌이 정말 행복이라고 할 수 있는가? 수많은 사람들은 외적으로 행복해 보이면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행복이 곧 깨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돈이 있으면 행복하다고 하지만 돈 때문에 불행하게 된 사람들은 수없이 많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는 그런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 아니기에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과 남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보면서 불행해 빠지기도 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자신의 존재에 대해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행복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바르게 알 때 시작됩니다. 거울을 보지 않고는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것처럼 나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알아야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모든 것들을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마음으로도 생각할 수도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왜냐하면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채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것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죄로 고통당하는 인생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님을 구세주로 보내주셨으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하나님은 성령님을 우리 마음속에 보내서 성경말씀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우리가 행복해 질 수 도 없고 풍성한 삶을 누릴 수도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잠시나마 행복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영원하고 진정한 행복은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행복은 소유가 아니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로서 나옵니다. 하나님은 행복을 소유나 지위나 우열에 두지 않고 우리를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와 자신과 이웃과의 성숙한 사랑의 관계 속에 행복을 누리도록 디자인 하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세상에서 무엇을 소유하고 얻을 때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이웃에게 줄 때 비로소 누리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성령님이 내 속에 계시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며 세상에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자기를 사랑하시는 자들을 위해 천국을 예비하여 놓으신 것을 믿는다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이 땅의 것으로만 으로는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사후의 세계까지 연결되어야 진정한 행복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한 번 왔다 가는 인생에 대해 히브리서 9장 27절에서는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이며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하였는데 인생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죽음이후 또 다른 세계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음은 예상치 못하게 오기 때문에 두려워한다. 이를테면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는 사람에게 앞에 가는 큰 화물차에서 갑자기 줄이 끊어지면서 장대같은 나무들이 당신의 차 유리창에 날아 들어와 당신을 가하였다고 하면 당신의 생명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사고처럼 죽음은 예기치 않게 갑자기 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끔찍한 예가 아니더라도 통계청이 발표한 사망원인통계'를 보면 작년 사망한 사람들 둘 중 한 명은 암, 심장·뇌혈관 등인데 사망원인 부동의 1위인 암이 아니더라도 교통사고나 코로나로 인한 사망이니 또는 작년 자살자 만 하더라도 하루 평균 38명 정도라 하니 이런 것은 당신이 오늘 죽을 수 있는 수천가지 경우 수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지진 같은 자연 재해이든 전쟁으로부터 오는 죽음은 사람들에게 가장 두렵고 무서운 고통일 것입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죽음을 피해 숨을 수는 없지만 죽음이 세상에 나온 순서대로 가는 것이 아니고 예고 없이 갑자기 오는 경우가 너무 많으므로 인간은 늘 불안합니다.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 다음의 이야기를 통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약 15년 전에 국제심장질환의 전문가인 모리스롤링스 박사가 지은 책 ‘죽음의 문 저편’ 이라는 책이 발간되어서 세상사람들에게 사후의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갖게 했다. 롤링스 박사는 임상학적으로 죽어 있는 많은 사람들을 소생시켰던 심장전문의사로서 철저한 무신론자였던 롤링스박사는 평소 생각이 종교는 속임수이고 죽음은 단지 고통없는 소멸이라고 생각했으나 1977년 그의 인생을 변화시키는 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자기에게 온 환자 중 한명이 지옥 불꽃속으로 내려가면서 공포에 떨며 소리쳤던 한 남자의 심장박동과 호흡이 다시 시작되었을 때 그 남자는 비명을 지르면서 나는 지옥에 있었다면서 공포에 떨며 자기를 도와달라고 자신에게 간청했는데 그는 지옥을 믿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에서 진짜로 두려움에 찬 지옥공포의 모습을 보았다고 하였다. 이 사건으로 무신론자인 롤링스 박사는 기독교인이 되어서 죽음의 문 저편 이라는 책을 썼는데 죽음의 문 저편이라는 곳은 인간들이 말하는 지옥을 말하는 곳이다. 성경에서 지옥에 대한 경고는 162번이나 기록되었는데 70번은 예수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을 보기로 하자.
(마13:42) 그들을 불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마23:33) 뱀들아, 독사들의 세대야, 어찌 너희가 지옥의 정죄를 피하겠느냐?
(마25:41)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영원한 불속으로 들어가라.
(막9:48) 거기에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눅16:24) 내가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고 있나이다.
(계14:11) 그 고통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가리라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계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는 자는 불못에 던져지리라.
위의 말씀을 본다면 지옥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못이며 이 불못에서 마귀들에게 고통받는 곳이 지옥이라는 말이다.
지옥을 온전히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지옥을 70회 정도 말씀하셨는데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지옥 가게 되었을 때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가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하셨다는 것은 지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곳이라면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한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고통스러운 곳을 말할 때는 생지옥같다고 하는데 이 세상 누구도 살아서는 지옥을 갔다 올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정말로 지옥이 어디에 있으며 불타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곳이 민16:32-33에서 볼 수 있는데 모세를 대적하다가 산채로 지옥에 떨어진 레위지파 고라와 르우벤지파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나온다.
(민16:31-33) 31 그가 이 모든 말을 마치매 그들 밑의 땅이 갈라지니라. 32 땅이 자기 입을 벌려 그들과 그들의 집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모든 물건을 삼키매 33 그들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이 산채로 구덩이에 빠지며 땅이 그들 위에 닫히니 그들이 회중가운데서 끊어져 멸망하느니라.
비록 고라에 대해 기록한 말씀이지만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 이들은 모세를 대적하다가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들의 집들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모든 물건들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땅이 갈라지면서 불이 나오더니 그들이 그 불속에 빠져들면서 다시 갈라진 땅이 덮이니 그들이 지옥불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기록한 것이다. 지옥이 어디냐고 하면 땅속입니다. 그들이 땅이 갈라져 불속으로 빨려 들어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지옥은 내가 들어가고 싶지 않아도 땅이 입벌리고 들어갈 자들을 빨아 들이는 곳입니다. 세상에 한 번 왔다가는 인생들 누구나 심사숙고해야 할 것은 당신이 천국에서 영원을 보내야할지, 지옥에서 영원을 보내야할지 이땅에서 사는 동안 깊이 상고해야 한다. 만약 아무 대책도 없이 살다가 죽어 지옥에 떨어져 대성통곡한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지옥으로 가지 않을 기회는 살아있을 때만 딱~한번 뿐인데 사랑의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사 죄지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게 하셨던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야 한다. 정말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는 자에겐 엄중한 지옥심판이 있을 뿐이다. 지옥은 영원히 타는 유황 불속에서 영원토록 고통당하는 장소라고 하니 견딜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죄를 회개하지 못하고 살았다면 지옥에 간다는 것이다. 살아있을 때는 어떤 큰 죄도 회개만 하면 용서받을 수 있으나 죽은 후에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다. 사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는 자만이 그 지옥심판을 면할 수가 있다. 설마하지 마라. 천국과 지옥은 진짜 있다. 바로 이 순간에도 구원받지 못한 수억만명의 영혼들이 지옥불속에서 울부짖고 있다. 문제는 그들이 부르짖는 지옥의 고통과 비교할 만한 것이 세상에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로 하여금 지옥고통을 알도록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지옥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받는 곳인데 이 세상에서는 어떤 악몽도, 어떤 공포영화도 지옥의 두려움을 그려낼 수 없다. 시뻘건 선지피가 뒤범벅이 된 끔찍한 범죄현장도 지옥의 공포에는 비교될 수 없는 곳이 지옥이다. 이런 지옥에 대해 예수님은 마가복음에서 이렇게 자극적인 경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막8: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자기 목숨을 잃는다는 것은 지옥을 간다는 말인데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렸어도 지옥으로 간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다. 70억이 살아가고 있는 지구촌에는 매일 240,000명이 죽어 가고 있다고 한다. 오늘은 당신이 그 속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당신도 곧 포함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오늘 지옥으로 보내시지는 않을까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당신은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오늘이 당신에게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이 언제 죽을지는 당신이 결정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당신이 오늘 죽어도 될 만큼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죽음에 대해 준비가 안 되었다면 그런 사람들이 전원 지옥으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준비는 예수님은 당신의 죄를 위해 십자가위에서 피흘려 죽으셨다는 것을 믿고 죄사함 받는 것입니다. 당신이 예수님의 죽으심을 무시한다면 당신의 탐욕적인 육체는 세상에서 한 순간 살지만 당신이 지옥에서 받는 고통은 영원할 것입니다. 영원에 비하면 이세상의 삶은 1초 보다도 짧은 것인데도 당신은 세상의 쾌락을 즐기거나 세상 것을 포기하지 못해서 지옥으로 갈 것입니다.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셨습니까? 죽음이후 지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주님의 말씀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마7:13-14)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십시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넓어 그곳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아서 그 길을 찾는 자가 적습니다.
눈에 보기에 좋은 것만 따라 다니고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 살아가는 세속적 태도로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질 수 없습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주를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주님을 볼 수 없는 지옥은 사탄 마귀와 그의 졸개들이 지옥에 온 사람들에게 영원한 형벌을 주지만 지옥에 온 사람들은 그 고통을 면하고자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그러면 지옥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봅시다.
1. 누가 지옥에 가는가?
창세기 3장에는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마귀미혹에 빠져 죄를 지었습니다. 아담의 후손인 전 인류는 이런 원죄도 있지만 살아가면서 짓는 자범죄도 있으므로 죄없는 인생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죄를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당신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진리를 경멸한 사람들이 지옥에 갑니다. 한마디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불신자라면 누구도 지옥의 신음과 고통 소리에 예외는 없을 것입니다. 살아있을 때 당신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분께 순종하지 않는 것이 바로 불신앙의 죄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사랑의 징표인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를 값싸게 취급하며 경멸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경멸하는 자들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10: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이 있으리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하신 손에 빠져드는 것은 두렵고 무서운 일입니다.
세속적인 삶인 음란과 쾌락과 돈과 술취함을 좋아하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멸하는 사람들이 지옥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잠시 육적인 즐거움에 빠져 살다가 영원한 지옥에 갈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당신이 정말 어리석다면 처절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온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하시면서 사람들 앞에 높이 인정받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 앞에는 부끄러운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물질이 많아서 사람들 앞에 인정을 받았어도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으면 그는 죽어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다고 하시면서 지옥에서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한 부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눅16:19-31)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요즘말로 번역하면 부자는 최고의 값비싼 자주색 패션의 옷과 임금들이 입었던 아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친구들을 초대하여 파티를 열면서 하루를 보내는데 모든 사람들이 정말 그를 부러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과연 이 부자처럼 좋은 옷 입고 날마다 친구들 불러서 잔치하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그런 삶을 어리석은 삶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부자는 재물이 많고 인정도 있었지만 하나님에 대하여는 죽음에 대하여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그저 친구들과 먹고 마시는 즐거움이나 쾌락적인 일에 자신의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부자처럼 어리석은 인생이 지혜롭지 못한 자라고 합니다.
20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21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오늘의 주인공은 부자와 그 집 문간에서 거지로 살아가는 나사로라는 사람입니다. 나사로라는 사람은 비록 거지로 살았지만 이름에서 보듯 하나님 믿고 살면서도 그 부자집 문간에서 그 부자집 상에서 나오는 부스러기를 먹는 것만으로도 감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도 어느 날 사망이 찾아왔습니다. 그 이후의 세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 하나이다. 이처럼 사후의 세계는 살았을 때와 전혀 다르게 존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 성도여러분 이 세상에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고 계속하여 부자는 지옥에서 엄청난 괴로움을 받고 있으면서 그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24.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 하나이다 하면서 도움을 청합니다. 과연 도움이 허락될까요? no입니다 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한마디로 부자는 자신을 위해서 호위호식한 것 밖에는 없으니 지옥에서 고통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입니다.
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천국과 지옥사이는 서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는 손가락에 찍어서 물 한방울도 허락이 안되었지만
두 번째 요청을 하는데 세상에 남아 있는 5형제들에게 제발 누군가를 보내 지옥의 실상을 알려달라는 것입니다.
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나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라. 31.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부자의 두 번째 요청인 죽은 자가 나가서 지옥의 고통을 알려달라는 것도 거절되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는 각자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신앙생활을 하여야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아무리 죽은 자가 살아나서 지옥을 얘기하여도 그것을 믿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 중 몇 가지 중요한 사실들이 있는데 그 중 첫 번째는
(1) 사람은 다 죽는다.
진리중의 진리는 죽음에는 빈부귀천이나 남녀노소에 차별이 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온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보아도 사망이 보통 때는 우리에게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 보이지도 않다가 어떤 때는 사망이 보일 듯 말듯 하다가 또 시간이 얼마쯤 지나면 바깥마당까지 와 있다가 그 다음에는 안마당 가까이 와서 어슬렁거리다 어느 날은 창문에서 앉아서 우리를 내려 보고 있다가 마지막 순간에는 목을 조이며 지옥으로 끌고 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자연사이건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나간 장례식장에 가면 누구나 마음이 숙연해지고 참 애석하게 생각하면서 돌아오지만 그 장례식이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나도 그 자리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기 바랍니다. 태어난 이상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온다는 것입니다. 그저 조금 먼저 가고 조금 나중 갈 뿐이지 나도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할 시간이 온다는 것입니다. 죽는 데는 예수를 믿던 안믿던 모든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은 정말 공평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관련하여 사람들이 지나치는 몇 가지 있습니다.
(2) 떠날 시간을 모른다.
100세 인생이라는 가요가 있으며 보험종류에도 100세 보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100세는 당연히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100년을 살건 1000년을 살아도 마지막 종착역이 지옥이라면 오래사는 것이 결코 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백년도 살기 어려운데 자신만은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고 살기 때문에 때로는 이웃과 싸우고 미워하고 소송걸어 법정에 세우고 치열하게 사는 것 같지만 이는 마치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아이들이 땅뺏기 놀이를 하면서 서로 땅을 많이 뺏기 위해 다투다가 해가 지고 부모가 얘들아 집에 돌아가자 하면 그 많이 빼앗은 땅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것을 잊고서 인간은 조금이라도 더 차지 하고자 이웃과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는 것은 아직 떠날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겠지요. 그러나 만일 의사로부터 앞으로 3개월밖에 살 시간이 없다는 사망경고를 들었다면 그런 사람은 이제 이웃과 다투던 것들을 중단하고 오히려 마지막 남은 삶을 정리하기 위해 누구에게 빚진 것이 있나? 화해하지 못한 것이 있나? 등을 정리하고 이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할 것이다. 이렇게 마지막을 아름답게 정리하고 죽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렇게 준비하고 가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 사람들은 죽을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움켜잡고 놓지 않으려고 애쓰다 갑자기 떠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여기 나오는 부자도 자기집 문간에서 거지로 살던 나사로가 죽은 것을 알았지만 자신은 죽음이 올 것을 준비안했다가 어느 날 죽음이 갑자기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출생과 동시 ,ㅏ사망에 대한 초정장도 받았다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3) 죽음 이후 신자와 불신자의 삶은 전혀 다르다
눅16:22-24 이 땅에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 두 사람의 삶은 너무 달랐지만 죽어서도 너무나 차이가 났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살았을 때 나사로는 부자집 대문에서 주는 것을 먹었고 피부에 진물이 날 정도로 헐어서 개들이 헌데를 핥을 정도로 비참하게 살면서도 그의 이름에서 보듯이 하나님이 도우신다라는 말처럼 하나님에 대한 신앙만은 변함없이 주님을 섬기고 지냈던 나사로도 일생을 마감할 시간이 다 되니 싸늘한 시체로 생을 마치게 되었다.
나사로가 죽은지 얼마 안 있다가 부자에게도 사망권세가 찾아왔습니다. 그도 죽어서 양지바른 곳에 잘 묻었고 이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였지만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거지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하늘나라 즉 아브라함의 품안에서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부자가 있는 곳은 음부라고 하였는데 음부는 낙원과 대조되는 말로 광명이 없는 캄캄한 음부는 뜨거운 불꽃으로 가득찬 곳입니다. 그 불꽃이 풀무불보다 더 뜨거운 불인데 풀무불은 철을 녹일 수 있는 아주 뜨거운 불입니다. 이 불에 대하여 막9장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영원히 불타는 곳으로 고통만을 주는 뜨거운 지옥불입니다.
(막9:48-49) 4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함을 받으리라
불타는 지옥에서는 누구든지 고민안할 수 없습니다. 왜 내가 이런 지옥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지 않았을 텐데 아무리 후회하여도 소용이 없습니다. 지옥불꽃 속에서 고통받던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간청도 해보지만 다 거절당합니다. 그 부자는 물 한방울 만이라도 손 끝에 찍어 달라고 애원하였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며 한마디로 지옥은 자비와 긍휼이라는 것이 없는 절망 그자체가 바로 지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4) 모든 사람은 죽은 후 천국과 지옥 중 어느 한 곳으로 간다
죽은 후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안으로 갔고 부자는 지옥에 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천국과 지옥의 중간지대인 완충지대는 없다는 것이다. 천주교는 연옥이라 하여 죽은 자를 위해 살아 있는 가족이 선을 행하면 지옥에서 연옥으로 간다는 것인데 예수 믿고 죽으면 천국 가는 것이고 안 믿고 죽으면 지옥 가는 것이다. 이제 부자가 고통을 당하고 있는 지옥의 실상을 알아보겠습니다.
2. 지옥의 실상
(1) 지옥은 불타는 곳이다.
인간이 참기 어려운 고통중 하나가 살이 불에 태워졌을 때 느끼는 화상고통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을 떠난 부자는 지금 불꽃가운데서 있다고 하니 그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불꽃가운데서 고통받는 자들이 누구인가?.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21:8).
지옥불은 계21:8에 불과 유황이 타는 불못이라고 밝혔는데 지진이 발생할 때는 유황가스가 분출하기도 합니다. 유황가스는 조금만 마셔도 목숨을 끊는 무서운 독가스입니다. 그런데 지옥은 유황가스가 계속 타는 불못이라니 뜨겁기도 하겠지만 불쾌한 유황가스를 맡는 곳이라면 그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리라고 봅니다. 그런 지옥불은 꺼지지 않는 불이라서 그곳에 있는 영혼들은 울며 소리치는 애처로움만이 들려오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지옥갈 인간을 구원하셔서 천국으로 보내고자 오셨습니다. 예수님이란 의미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말이므로 모든 인간은 예수님을 믿어야만 죄가 용서받는 것이므로 예수님을 인생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2) 둘째 사망을 당한 자들이 지옥에 간다
계시록 21장8에는 지옥가는 자들의 리스트가 나옵니다.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지옥에 간다는 것은 두 번째 사망을 당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지옥에 간 사람들은 두 번 사망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천국에 가는 사람은 이 땅에서 육신으로 한번 사망하면 둘째 사망이 없습니다. 둘째 사망을 당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아니하는 자들인데 그들 중에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살인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살인자나 자살할 사람들이 가는 곳이 아닙니다. 자살은 이유가 어떻든 모두가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살인자를 비롯해 행음자들, 즉 성적으로 타락하 자들도 갑니다. 성은 부부의 행복을 위해서 자녀를 생산하기 위해서 주신 것인데 무절제하게 사용하거나 쾌락으로만 사용한다면 천국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또 우상숭배자들, 술객들, 거짓말하는 자들은 한결같이 마귀에게 미혹당하는 자들도 다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2) 부자는 왜 지옥에 갔을까?
물질이 많은 것이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물질로 인생을 즐기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거나 향락에 빠져 하나님 섬기는 것을 소홀히 한 결과로 부자는 지옥에 간 것입니다. 소유한 물질이 많으면 오늘 본문의 부자처럼 세상일에 바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물질을 소유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단지 청지기로서의 물질관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물질관을 갖고 있으면 물질이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 믿는데 전혀 방해가 안되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청지기로서의 물질관이 없고 내가 물질의 주인으로 생각하면 하나님 섬길 시간도 없거니와 결국 물질에 노예가 되어 지옥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마19:23-24)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재능이나 물질이나 그 어느 것이라도 나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데 사용하여야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줄 압니다. 지옥에 간 사람치고 사실 지옥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모든 수단을 써서 지옥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부자도 사후에 세계에 있어서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오직 오늘만을 위해 향락에 빠지면서 인생을 살았던 자였다. 당신들이 부자가 아닌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수술 고통이 아무리 커도 시간이 지나면 나을 수 있다는 소망이 있지만 지옥 고통은 참아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영원한 고통이 계속되는 곳이므로 오직 절망만이 있는 곳이다.
3. 지옥에서도 의식이 있다.
병원 중환자실에 가보면 몇 년 째 식물인간으로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는 맥박만 멈추지 않았지 가족도 알아보지 못하고 주사를 찔러도 전혀 아픈 것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눈 한번 깜빡이지 않는다. 이처럼 식물인간은 살아있지만 고통을 못느끼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지옥에서는 유황불타는 지독한 유황냄새도 느낄 수 있고 그 뜨거운 열기며 갈증이며 모든 고통을 느끼며 쉬고도 싶지만 쉴 수 없는 곳이 바로 지옥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 세상에 있는 가족들까지도 생각 할 수 있는 곳이 지옥입니다. 여기 부자는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세상에 있는 자기 5형제를 생각하면서 그들이 자기처럼 이 지옥에 오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면서 아브라함에게 애원하는데
27 가로되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그러나 부자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부탁을 드립니다.
30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에 대해 아브라함은 분명히 말합니다.
부자는 지옥에 오지 않는 길은 회개하는 것을 지오에 와서 알았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외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회개하면 천국이고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입니다. 회개는 세상으로 향하던 방향을 예수 중심으로 사는 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부자는 만일 죽은 자가 저희에게 가서 지옥이 이렇게 고통스러우니 빨리 회개하고 지옥에 오면 안된다고 전해달라는 부탁이지만 아브라함의 대답은 안돼 라고 분명합니다.
31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부자의 마지막 요청도 아브라함의 대답은 불가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을 때는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중에서 살아서 가서 전한다 하더라도 절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살아있는 동안에는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면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야 지옥에 오지 않는 것이지 혹시 죽었던 자가 나가서 지옥 이야기를 열 번 백번 한다 하여도 불신자들은 그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지옥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고통스러운 지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하시면서 멸망으로 가는 문과 길은 넓어서 많은 사람이 그리로 간다는 것입니다. 영생으로 가는 문은 좁고 길은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으므로 적은 수가 영생으로 가고 대다수는 지옥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4.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향해 가고 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 심판이 있으리라는 말씀은 사람은 살았을 때 보다 사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후세계는 살았을 때 행한 대로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2천년전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으며,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신다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육체로 죽임 당하시고 영으로 살리심 받아 승천하셨으며 때가 이르면 다시 오셔서 흰 보좌(계20:11-15)에 앉으실 때 지금까지 죽은 자들이 자기의 행위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며(히9:27), 각 사람도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지옥 불못에 던지우며,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둘째 사망 곧 불못에 던지운다(계21:8)는 말씀은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눅20:38)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살아 있는 자에겐 신이 존재’하지만 ‘죽은 자’에겐 신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 할 수도 없습니다.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라는 말은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했을지라도 당신을 죽지 않게 할 수는 없습니다.
본래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할 때부터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로 만드셨기에 짐승이나 다른 피조물들처럼 죽음으로 그냥 끝나 없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영혼이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사느냐, 아니면 지옥에 떨어져 영원한 고통을 당하느냐? 그래서 우리 인간에겐 본성적으로 나를 만드신 창조주를 그리워하고 찾고자 하는 '선한 양심'이란 것이 있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들려오는 하나님의 구원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선 지금도 그 분을 대신할 '목자'를 세워서 참 진리의 소리를 듣게 하고 많은 사람이 구원으로 나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알아두어야 할 것은 우리의 첫 조상 아담을 속여서 죄를 짓게 하고 모든 인간을 지옥으로 끌고 가고자 했던 저 악한 마귀는 지금도 이 땅에 거짓 목자들을 세워서 하나님의 참 진리를 듣지 못하게 사람들을 미혹해서 저들이 파놓은 함정(거짓 교리와 인간의 계명, 사상)에 빠뜨려 온갖 궤계와 술책으로 사람들을 멸망으로 몰아가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열고 양심에서 들려오는 하나님 부르심의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지금 공중권세를 잡고 인간세계를 이끌어가는 자는 어둠의 세력자요 흑암의 왕인 '마귀' 입니다. 예수를 믿으신다구요? 예수 믿고 교회를 다니므로 구원을 이미 받으셨다구요? 그래서 천국은 당연히 가게 되어 있고 미래는 이제 아무런 걱정이 없으시다구요? 그것이 참말인가요? 아닙니다요!! 절대 구원은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믿기만 하면 가는 천국, 누구나 다 들어갈 수 있는 천국. 구원의 문은 그렇게 넓지 않습니다. 천국문은 좁은 문이므로 천국을 침노하는 자들만 들어가는 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성경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십시오. 성경은 우리에게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우리 죄와 사망을 멸하시고 승리하신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해졌고 그의 부활하심이 우리에게는 의가 되는 것이기에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믿음이어어야 합니다. 여러분께서 어떻게 믿든 믿는 것은 진리를 믿느냐. 거짓을 믿느냐에 따라 영생의 천국이냐. 아니면 영벌의 지옥이냐가 주어지는데 결과는 극과 극으로 갈라지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진리이지만 죽음 이후에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심판하십니다. 마음에 죄가 있는지 없는지, 그리스도 예수를 주인으로 모셨는지 아닌지 심판하심으로 의인은 영생에 죄인은 영벌에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선악간에 주님앞에 심판을 받게 되는데 믿는 자에게는 상급이 있을 것이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영벌이 있을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 다니니까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것은 교회를 다니는 것과 다릅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은 교인이지만, 예수님을 믿는 것은 마음으로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믿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고 주님과 함께 살아났다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주님오시는 날까지 주님과 동행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