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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왕성한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여수룬
식물로 우리 몸을 사소서
설교일 : 2010년 06월 13일 제목 : 식물로 우리 몸을 사소서
성경본문 : 창세기 47:13-19 설교자 : 지용수 목사
어느 나라의 왕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어 세 왕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세상에서 제일 귀중히 여기는 것을 하나씩 갖고 오너라.”
첫째 왕자는 부채질을 하면 군사가 나오는 부채를 갖고 왔습니다. 둘째 왕자는 돈이 쏟아져 나오는 신비로운 맷돌을 가지고 왔습니다. 셋째 왕자는 책 한 권을 갖고 왔습니다. 첫째 왕자는 나라가 강하려면 강한 군대가 필요하다고, 둘째 왕자는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셋째 왕자는 나라를 바로 다스리고 사람답게 사는 길을 책을 통해 배워야 하니 책이 중하다고 했습니다. 왕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셋째 왕자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고 합니다.
힘도 있어야 하고 경제력도 있어야 하지만 사람답게 사는 삶이 더 귀한데 그것을 담고 있는 것이 책입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성경은 책 중의 책입니다.
쟁쟁한 한 법관이 실수를 해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는데도 성경을 갖고 들어갔습니다.
한 의사 장로님은 수천 권의 책을 갖고 있는데 죽음을 맞이하는 시간에, 병원에 입원할 때 그 많은 책을 다 두고 한 권만 가지고 갔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었습니다.
물론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Today a reader, tomorrow a leader. (오늘 책을 읽으면 내일 지도자가 된다.)’라는 말을 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을 때, 건강할 때 의학 사전도 필요하고 교양서적도 필요하지, 결국에는 영생의 책, 성경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귀히 여겨야 됩니다.
두 친구가 같은 회사에 입사 시험을 치러 갔습니다. 한 친구는 착실하게 공부해서 실력이 있었고, 한 친구는 대충 공부해 실력이 약했습니다. 마침 실력 있는 친구의 자리가 앞이고 대충 공부한 친구의 자리는 바로 그 뒤였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의 작품인가?’라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문제를 보자마자 앞자리에 앉은 친구는 ‘로댕’이라고 답을 썼습니다. 그때 뒤의 친구가 “답이 뭐야?”라고 속삭였습니다.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답안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눈이 나쁜 친구는 그것이 ‘오뎅’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오뎅’이라고 그대로 쓰려다 더 고급스러운 말로 쓰려고 ‘어묵’이라고 썼답니다.
웃기 위해 만든 이야기이지만 여기에는 공부해야 할 때 공부하지 않으면 창피를 당한다는 교훈이 들어 있습니다.
미국의 한 장로님 아들은 연봉이 52억인 변호사입니다. 법률회사에서 서로 데려 가려 합니다. 착실하게 공부한 사람에게는 환히 밝은 내일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부해야 될 때 공부하지 않는 학생은 길이 잘 열리지 않습니다.
세상 공부도 이렇게 열심히 해야 되는데 하물며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 말씀이겠습니까?
말씀을 받을 때는 귀를 쫑긋해야 됩니다.
교회는 대학이고 하나님께서는 총장님이시고 성령님은 교수이시고 저는 조교입니다. 그러니 정말 진지하게 말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사가 있어서 저는 늘 백화점 설교를 준비합니다. 백화점에는 모든 물건이 다 있듯이 설교 한 편 안에 성경 공부가, 제자 훈련이, 아버지 학교 어머니 학교가, 신혼부부 학교가, 직장인 학교가 포함되도록 기도하고 준비합니다. 그래서 제 설교를 꼬박꼬박 잘 듣고 설교대로 살면 가정이 행복하게 될 줄 믿습니다. 직장에서 성공할 줄 믿습니다. 사업에 실패하지 않고 성공할 줄 믿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성공하고 존귀한 대접을 받을 줄 믿습니다. 건강하게 살게 될 줄 믿습니다.
예배는 단순히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간일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받는 시간입니다. 예배를 잘 드리고 잘 받아 남은 생애가 빛이 나는 우리 양곡의 가족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년간 양식이 없어 걱정하고 고생했던 야곱의 집안이 총리가 된 아들 요셉 때문에 애굽에서 최고 좋은 땅, 고센에서 살게 됩니다. 그리고 왕의 명대로 음식이 계속해서 나오니 흉년이 5년간 계속되는데도 흉년을 모르고 부자처럼 삽니다.
그러나 그곳의 백성들은 자기 집에 쌓아 놓았던 양식이 다 떨어졌을 때는 돈으로 양식을 샀는데 이제 그 돈마저도 다 떨어졌습니다. 그러니 요셉에게 와서 말합니다.
“총리 각하, 돈이 바닥났습니다. 우리를 굶어 죽게 그냥 두시렵니까?”
“가축들을 갖고 오라.”
애굽에서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가축은 말입니다. 백성들이 그 말과 소, 낙타, 양, 염소 등 가축들을 다 가져 왔습니다. 요셉은 그것들을 다 받아 왕께 돌리고 그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선한 요셉은 가축을 많이 가져 왔든 적게 가져 왔든 그 한 해 동안 먹을 만큼 양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해가 바뀌니 또 양식이 떨어졌습니다. 백성들이 몰려왔습니다.
“총리 각하, 우리가 숨김없이 말합니다. 돈도 바닥났고 아시다시피 짐승도 없어졌고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곤 우리 몸과 토지뿐입니다. 어찌 우리가 토지와 함께 이렇게 굶어죽겠습니까? 식물로 우리 몸과 토지를 사십시오. 우리가 다 굶어 죽으면 이 넓은 애굽 땅도 황폐하게 될 것이니 우리 몸과 땅을 사셔서 우리를 살게 해 주세요.”
요셉이 그들의 청대로 그들의 몸과 토지를 사고 양식을 주어 먹고 살게 했습니다. 흉년이 끝날 때까지 먹고 살 양식을 준 것입니다.
양식이 얼마나 중한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양식을 우습게 알지 모르지만 북한에는 쌀 한 톨이 생명같이 귀합니다.
열왕기하 6장에 보면 사마리아 성이 아람 군대에 포위당해 양식이 끊어지자 평소에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나귀 머리 하나를 사려면 은 80세겔을 주어야 했습니다. 창세기 33장 19절에 보면 야곱의 식구들이 세겜 성 앞의 넓은 땅을 사서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데 그 넓은 땅을 은 100개로 삽니다. 그런데 세상에! 나귀 머리 하나에 은 80 세겔이니 그 값이 금값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먹지를 못해 정신이 이상하게 되어 아들을 삶아 먹은 여인까지 있습니다. 그리고 열왕기하 7장에 보면 네 나병환자가 배고파 죽게 되니 “환자인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빵 하나라도 주면 먹고 살고 아니면 죽으리라.” 하며 적진으로 갑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이판사판으로 가는 것입니다.
소도 삼 일을 굶겨 놓으면 담을 넘는다고 합니다. 배가 고프면 도둑질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도둑질을 하면 구속되고 감옥에 가게 될 것을 알면서도 배가 고프니 우선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30장 7절에서 9절에 보면 하나님 앞에서 이런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배가 고프면 도둑질하게 되고, 하나님 믿는 사람이 도둑질하면 하나님 영광을 가리게 될 것이니 하나님 영광을 위해 굶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양식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양식 때문에 자기 몸을 팔고 아들딸을 종으로 팝니다. 가족에게 생명 같은 터전인 땅을 내놓게 됩니다. 내 몸은 우주보다 귀하지만 내 몸을 내놓고 음식을 받아 먹는 것입니다. 에서가 배고프니 팥죽 한 그릇과 장자권을 바꾸는 것입니다.
일생 동안 저와 여러분은 배가 고파서 집을 팔고, 배가 고파서 땅을 팔고, 배가 고파서 몸을 파는 일이 없기를 축원합니다.
먹는 것이 얼마나 중한지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도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하나님께 대한 기도를 한 다음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죄 사함 받는 기도보다 먼저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어야 죄 사함을 받지, 죽은 다음에는 죄 사함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양식이 이렇게 귀한 것임을 알고 하루 세 끼를 먹을 때마다 감사하면서, 기뻐하면서 드시기 바랍니다. 북한에는 배가 고파서 팔려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8절에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만족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만족하며 하나님을 찬양해야 될 줄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천당에 갈 때까지 양식 때문에 집을 팔고 땅을 팔고 몸을 파는 일이 없이 배불리 먹고 풍성하게 사는 길이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흉년을 만나니 애굽의 백성들은 돈이 바닥나고 짐승이 바닥나 토지와 몸까지 팔아서 먹고 살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야곱과 그의 가족 70명은 흉년을 모르고 귀족처럼 먹고 삽니다.
배불리 먹고 잘 사는 것은 열심히 사업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안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는 자를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출애굽기 20장 3절에서 6절에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할렐루야! 이 말씀은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시편 33편 12절에도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만 하나님으로 섬기는 나라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세계 지도를 펴놓고 보면 선진국, 잘 사는 나라는 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가난하고 비참하게 사는 나라는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1917년 레닌이 혁명 일으키기 전까지는 러시아가 미국과 견줄 만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레닌이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켜 예수님의 십자가를 떼고 공산주의 깃발을 달고 부자들을 죽였습니다. 스탈린은 공산당 중앙위원 139명 중 98명을 즉결 재판해서 숙청했습니다. 당 대표 1,956명 중 1,108명을 무조건 숙청해버렸습니다. 스탈린이 숙청하고 죽인 사람들이 천만 명입니다. 서울 시민을 다 죽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공산당은 사람도 쉽게 죽입니다. 그 부강하던 러시아가 무너져 의사 월급이, 대학교수 월급이 7만 원도 안 되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문을 열고 대학마다 성경을 가르치고 교회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러시아를 따라 하나님을 등지고 교회 문을 닫은 북한은 지금도 어렵습니다. 몇 달 전, 제가 잘 아는 목사님께서 중국에 가셨다가 한국 식당이 있어서 들어갔더니 북한 식당이더랍니다. 주문을 받는 예쁜 종업원의 이름이 ‘김은혜’이어서 “아이고, 반가워라. 은혜 씨, 할아버지 할머니가 예수님을 잘 믿으셨어요? 아니면 부모님이 잘 믿으셨어요?”라고 물었답니다. 그 아가씨가 무슨 말씀을 하느냐고, 자기는 오로지 김일성 수령님의 은혜로 산다고 하더랍니다. 김일성이 죽은 지가 언제인데, 그 김일성의 은혜로 산다고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자리에 김일성이 들어가 있는 나라가 잘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북한을 아무리 도와주어도 안 됩니다. 북한이 하나님을 받아들여야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북한보다 더 가난한 나라가 티베트입니다. 제가 몇 년 전에 다녀왔는데 40몇 개국을 다니면서 그렇게 비참한 나라는 처음 보았습니다. 지금도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자식이 죽으면 그 시신을 칼로 생선처럼 토막 내어 산에 던집니다. 아내가 죽어도 칼로 토막 내어 강에 던집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집이 없었습니다. 빵과 우유를 사서 고아원을 방문했는데 그 아이들의 모습이 한 마디로 거지였습니다. 그런데도 그 직원이 그 아이들은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보통 아이들은 하루 한 끼 먹는 것도 어려운데 고아원의 아이들은 바싹 마른 빵이지만 하루에 두 번 먹는다는 것입니다. 티베트는 우상 종교의 근원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가서 요가도 배우고, 도도 닦습니다. 거기에서는 예수를 믿으면 죽입니다. 전도해도 죽입니다. 그곳에 6년째 계시는 선교사님이 아직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하고 방에서 사모님과 둘이서만 예배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그 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비참한 나라인 것입니다. 그런 나라가 잘될 수 없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시편 16:2) 할렐루야! 이는 다윗이 ‘왕이, 왕궁 창고의 보물이 나의 복이 아니라 하나님만 나의 복이라.’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시편 16:5)
‘하나님께서 나의 산업이고, 나의 잔을 채워주시는 분이시고, 내 양식이고 물이고 생명이다.’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시편 16편 4절에는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괴로움을 당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만 섬기면 하나님께서 다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막에서 40년간 살아도 굶어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주셨습니다.
빈들에서 먹을 사람은 5천 명이고 떡은 다섯 개뿐이지만 예수님께서 배불리 먹여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우리 잔이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다른 것을 다 잃어도 하나님만, 예수님만 붙잡고 가면 배불리 먹으며 사는 것입니다.
오늘 새벽 미국에 있는 제 아내가 전화를 해서 베란다에 있는 냉장고를 열어 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열어 보았더니 냉장고가 꽉 차 있었습니다. 쑥떡, 인절미, 뭐 별것이 다 있었습니다. 방에 들어와서 장을 열어 보니 옷이 꽉 차 있었습니다. 저와 제 아내가 결혼반지까지 주님께 다 맡기고, 1초의 시간이라도 주님만 위해 살자고, 한 방울의 땀도 주님만 위해 흘리자고 맹세하며 목회를 출발했는데 마치 부엉이 굴처럼 냉장고도 꽉 차 있고 옷장도 꽉 차 있습니다. 부엉이 굴에 가면 부엉이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갖다 두어서 없는 것이 없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The Lord is my shepherd, I have everything I need.)』 하나님만 의지하면 내게 필요한 것이 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입니다. 하나님이 양식입니다. 하나님이 물입니다. 하나님이 힘입니다.
아무리 토지를 많이 갖고 있어도 하나님께서 비를 주지 않으시니 먹지 못합니다. 아무리 큰 회사를 갖고 있어도 그 날로 망할 수 있는 것이 인생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기업을, 산업을 채워 주십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예수님만 붙잡으면 양식 걱정을 할 것 없습니다. 우리 미래에 대해 불안해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는 주님께서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우리 생활도 하나님께 부끄럽지 않게 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부끄럽게 하면 안 됩니다. 교회에서 기도는 거룩하게 하고 교회 밖에 나가서는 하나님을 부끄럽게 하는 생활을 하면 복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열 받으시게 살면 안 됩니다. 양다리 걸치고 살면 안 됩니다.
빌립보서 1장 20절에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 합시다.
“아무 일에도 부끄럽지 아니하고.”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됩니다.
제가 매일 새벽에 드리는 기도 제목 중 하나가 ‘저희 가족과 저희 친척이 조나단 에드워드 가문처럼 되게 해 주세요.’입니다. 세계 최고의 가문이 조나단 에드워드 가문입니다. 그 후손이 다 별처럼 귀한데, 조나단 에드워드의 삶의 수칙 다섯 개가 있습니다.
‘첫째,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자. 둘째,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오는 기회를 놓치지 말자. 셋째,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시키지 말자. 넷째, 복수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자. (복수는 하나님께서 해 주시는 것이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다.) 다섯째, 양심에 거리끼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자.’
조나단 에드워드는 일생 양심에 거리끼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후손이 대대로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정직해야 됩니다. 신실해야 됩니다. 거룩해야 됩니다.
레위기 11장 45절에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품성인데 우리에게 거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는 위대함이 주어졌습니다. 위대함의 씨가, 하나님의 위대함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에게 있고, 에베소서 2장 8절 말씀대로 하나님의 선물로 믿음이 우리에게 있고, 하나님의 위대한 영인 성령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위대함의 씨를 우리에게 심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위대하게 살 수 있고 거룩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인데 하나님 비슷하게 거룩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12절에서 14절에 말씀하십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빛의 옷을 입으라는 것은 예수님으로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흰 옷을 입으면 희게 보이는 것처럼 예수님처럼 보이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의 거룩을 깨는 것은 음란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성령을 받아 새사람이 되었지만 우리의 육신에는 음욕이 있습니다. 그래서 음란한 영화를 보면 그쪽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음란한 비디오를 보면 그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거룩한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에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제일 잘 넘어지는 죄가 음란입니다.
욥은 의인입니다. 욥의 자녀 10남매가 다 출가했으니 욥의 아내는 할머니가 되었을 것입니다. 할머니가 아름답습니까? 아름다운 할머니도 계십니다. 그러나 보통 할머니는 아름답지 않습니다. 욥이 자기 아내를 보면 아름답지 않은데 하녀들을 보면 아름답습니다. 그러니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욥에게 ‘이놈!’이라고 하셨나 봅니다. 욥이 깨닫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내 눈과 서약을 했다. 내가 어찌 처녀를 주목하겠느냐? 그러면 하늘의 하나님께서 내게 무슨 복을 주시겠나?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재앙이고 환난이 임하지 않겠나? 하나님께서 나를 다 감찰하시고 내 걸음을 세시는데 내가 어찌 처녀를 주목하겠나?”
주목은 잠깐 보는 것이 아니고 한참 보는 것입니다. 한참 보면 시험에 듭니다.
다윗이 나신으로 목욕하는 여인 밧세바를 주목했습니다. 밧세바가 화장실 옆에서 목욕을 한 것이 아니라 꽃밭에서 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옥상에서 거닐던 다윗이 한참 동안 보았지 않겠습니까? 한참 보고는 그 여인을 불러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 남편까지 죽였다가 하나님께 매를 맞습니다.
제가 깨달은 것은 예쁜 여자는 3초 이상 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남자들만, 따라 합시다.
“3초가 한계다.”
3초는 주목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설교하다가도 예쁜 사람이 보이면 얼굴을 돌립니다. 제가 오늘까지 살얼음판을 걷듯이 살아왔는데 그런 일로 망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 장로님이 이렇게 귀한 명예를 쌓아 놓았는데 그런 일로 넘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 모두 조심해야 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 『그러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어 성경에는 굳게 섰다고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조심해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됩니다. 십일조는 헌금이 아닙니다. 감사헌금, 건축헌금, 선교헌금, 방송헌금은 헌금이라도 십일조는 헌금이 아닙니다.
다음 시간에 나오는 말씀인데, 요셉이 백성들에게 모든 땅을 주고 ‘생산의 오분의 일을 내라.’라고 합니다. 그것은 ‘이 땅이 너희의 것이 아니다. 왕의 것이다.’라는 증거를 보여 주기 위한 것입니다.
십의 일조는 ‘내 모든 것이 주의 것입니다.’ 하는 증거로 바치는 것입니다. 그 일에 거리끼는 일이 있으면 안 됩니다.
말라기 3장 7,8절에 말씀하십니다.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해야 내 품에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물질이나 사람이나 모든 일에 그렇게 나가면 절대로 우리 삶을 황충이 먹지 않고 기한 전에 열매가 떨어지지 않고 우리 삶이 너무 아름답고 기업이 복 되어서 세상이 부러워하는 복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받은 복을 어떻게 쓰느냐를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입니다. 대를 잇는 복을 받으려면 선을 행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십일조하고 건축헌금하고 방송헌금하면 됐지, 뭐 또?’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아닙니다. 선을 행해야 됩니다. 이것은 선택이 아니고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장래가 더 좋아집니다.
디모데전서 6장 18,19절에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기업도 선을 행하면 미래가 점점 밝아집니다. 교회도 선을 많이 행하면 점점 부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보다 앞으로 더 좋아지는 것입니다. 가정도 선을 행하면 지금보다 앞으로 더 좋아지는 것입니다.
잠언 11장 25절에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잠언 19장 17절에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구두쇠가 되면 안 됩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구두쇠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잠이 오지 않아 수면제를 사 갖고 와서는 돈이 아까워 먹지 않고 자는 사람이랍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평생 남을 도와주지 않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큰 복을 받을 그릇이 아닙니다. 사촌이든 육촌이든 팔촌이든 가정이 어려우면 대학 공부를 시켜주면 좋습니다. 처갓집이든 친가든 또 친구 아들이든 어려우면 내 힘이 닿는 대로 도와주면 좋습니다.
따라 합시다.
“인생은 아름다운 하루 소풍이다.”
어느 시인이 한 말입니다.
아이들이 내일 소풍을 가게 되면 좋아합니다. 어머니가 김밥도 싸 주시고 과자도 사 주시고, 공부도 하지 않고,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소풍 날, 설레는 마음으로 일어나서 소풍을 갑니다. 그러나 금방 집으로 돌아옵니다. 엄마가 “재미있었니? 뭐했니?” 하고 물으면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요…….” 하고 보고합니다.
우리 인생은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하루 소풍입니다. 우리가 천당에 가면 하나님께서 “너, 어떻게 일생을 살다 왔냐?”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그때 “예, 명품 옷 입고, 명품 가방 들고, 명품 시계 차고, 고급 식당으로, 백화점으로 누비다가 왔나이다.”라고 대답하면 하나님께서 “네게 줄 상은 없구나. 어찌 너는 내 자녀같이 살지 않고 데려온 자식처럼 이상하게 살았냐?”라고 하실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눠주시는 분이십니다. 세계 만인에게 햇볕을 주시고 물을 주시고 산소를 주십니다. 요셉 때문에 가족 70명이 살았듯이 여러분과 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살게 되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일 때문에, 미래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은 믿음이 적은 사람입니다.
“왜 두려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나님만 붙잡고 섬기며, 그 앞에서 부끄럼 없이 살고, 이웃을 생각하고 살면 앞으로 50년을 살든 70년을 살든 아무 걱정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풍성한 복을 누리게 하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