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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예술가의 초상
-제임스 조이스. 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 1882~1941-
[제1장]
옛날에, 아주 살기 좋던 시절, 음매 하고 우는 암소 한 마리가 길을 걸어오고 있었단다. 길을 걸어오던 이 음매 암소는 턱쿠 아기라는 이름을 가진 예쁜 사내아이를 만났단다.....
아버지가 그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었다. 단안경을 낀 아버지가 그를 보고 있었는데 얼굴에는 수염이 텁수룩했다. 그가 바로 턱구 아기였다. 그 음매 하고 우는 암소는 베티 번이 살고 있던 길에서 오고 있었거든. 그 애는 레몬 냄새가 나는 보리꽈배기를 팔고 있었지.
오, 그 작은 풀밭에
들장미 곱게 피고
그는 혀가 짧은 소리로 그 노래를 불렀다. 그것은 그가 좋아하는 노래였다.
오, 그 파얀 잔니꼬 피고
찰스 아저씨와 단티가 손뼉을 쳤다. 두 분은 아버지나 어머니 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찰스 아저씨는 단티보다 나이가 더 많았다. 단티의 옷장 속에는 솔이 두 개 있었는데, 밤색 벨벳으로 등을 싼 솔은 마이클 대비트(아일랜드 정치가)를 기리기 위한 것이었고 녹색 벨벳으로 등을 싼 솔은 찰스 스튜어트 파넬(아일랜드 정치가. 대비트의 동지였지만 훗날 두 사람은 대립한다)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반스네는 7번지에 살고 있었다. 그 애들에게는 그의 부모와는 다른 부모가 있었다. 그들은 아일린의 아버지요 어머니였다. 어른이 되면 그는 아일린과 결혼할 작정이었다. 그는 식탁 아래 숨었다. 어머니가 말했다. 오, 스티븐은 잘못을 빌 거예요. 단티가 말했다. 오, 만약에 빌지 않으면, 독수리들이 와서 눈알을 빼버릴걸.
그 넓은 운동장에서 소년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모두들 함성을 올렸고 생도감들은 힘을 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네 이름이 뭐니?
스티븐이 대답했다. 스티븐 디덜러스 야
어머니는 학교에서 말씨가 거친 애들과는 얘기를 하지 말라고 그에게 타일렀다. 착한 어머니였다. 처음 입학하던 날, 이 고성의 현관에서 어머니와 작별 인사를 할 때 어머니는 쓰고 있던 베일을 코까지 접어 올리고 그에게 키스를 해주었다.
아버지 어머니를 실은 마차는 떠나버렸다. 차 속에서 그들은 손을 저으면서 그에게 소리쳤다. 잘 있거나. 스티븐, 잘 있어!
추울 때는 운동장에 있는 것보다 학습실에 있는 편이 한결 나을 것이다. 하늘은 파리한 빛을 띤 채 싸늘했으며 성에는 이미 불이 켜져 있었다.
어느 날 그가 성으로 불려갔을 때 집사는 그에게 나무문에 병사들이 쏜 탄환의 흔적을 보여주었고 예수회 성직자들이 먹는 쿠키 한 조각을 맛보인 적이 있었다. 성에 켜진 등불을 보면 멋지고 흐뭇했다. 그것은 책에나 나올 법한 광경이었다. ~~~콘웰 박사가 지은 철자법 교과서에는 멋진 문장들이 있었다. 그 문장들은 시 같았지만 오직 철자법을 배우기 위한 문장에 불과했다.
울시는 레스터 승원에서 죽었고
원장은 그를 거기에 매장했다.
<캔거(근류병)는 식물의 병이요
<캔서(암)는 동물의 병이다.
웰스가 어깨로 밀어 그를 변소의 하수구에 빠뜨린 짓은 비열했다. 웰스가 밤 치기 놀이에서 마흔 개나 되는 상대의 밤을 깼다는 그 길이 잘 든 밤을 내어놓고 스티븐의 예쁜 코담뱃갑과 바꾸자고 했을 때 싫다고 했더니 그런 짓을 했었다.
어머니는 단티와 벽난로 앞에 앉아서 차를 들고 들어올 브리지드를 기다리고 있겠지. 어머니는 발을 난로 망위에 얹어 놓으면 그 구술이 박힌 슬리퍼는 너무 뜨거워져서 향기로운 냄새를 훈훈히 피우고 있으리라. 단티는 아는 것이 너무 많아. 그녀는 모잠비크 해엽은 어디에 있고, 미국에서 가장 긴 강은 이름이 무엇인지, 달에서 가장 높은 산의 이름은 또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으니까. 아놀 신부는 성직자였기 때문에 단티 보다는 아는 것이 많지만, 아버지와 찰스 아저씨는 입을 모아 단티는 영리한 여자요 박식한 여자라고 했어.
초급과정에서 수석을 차지할 학생이 잭 로튼과 스티븐 중 어느 쪽일까를 놓고 주위의 학생들이 내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웰스가 스티븐에게 찾아와서 말을 걸었다. 말해 봐, 디덜러스, 너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어머니에게 키스를 하니? 스티븐이 대답했다. 키스해. 웰스가 다른 녀석들을 향해 말했다. 얘들아,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어머니에게 키스를 한다는 녀석이 여기 있단다. 다른 녀석들이 게임을 중단하고 돌아와서 웃었다. 스티븐은 그들의 눈총에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키스 안 해. 웰스가 말했다. 얘들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어머니에게 키스를 하지 않는다는 녀석이 여기 있구나, 그들은 모두 다시 한 번 웃었다.
저녁 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그는 다른 애들의 뒤를 따라 학습실을 나와서 계단을 내려간 후 복도를 따라 채플로 갔다.
그의 머리맡에서 채플 담당 생도감이 기도를 올렸고, 그는 이에 응답하는 기도문을 외웠다.
오, 주여, 우리의 입을 열어 주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당신을 찬미케 하소서.
오, 하나님, 우리를 구원해 주소서!
오, 주여, 어서 우리를 도와주소서!
기숙사에서 옷을 벗고 있을 때 그의 손가락이 떨렸다. 그는 자기 손가락이 좀 서둘러 움직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스등 불빛이 낮아지기 전에 옷을 벗고 꿇어앉아 기도를 드리고 자리에 들어야 했다.
온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방학했구나. 스티븐! 수선을 떨며 반겼다. 어머니가 그에게 키스했다. 이런 키스는 해도 괜찮을까? 아버지는 이제 원수(元帥)였다. 치안판사보다도 높았다. 어서 오너라 스티븐!
사랑하는 어머니.
저는 지금 아파요. 집에 가고 싶다고요. 제발 오셔서 저 좀 데리고 가주셔요. 저는 지금 진료소에 있답니다. -어머니의 귀여운 아들. 스티븐 올림
벽난로 속에는 수북이 쌓인 장작이 시뻘겋게 타오르고 있었고 가지마다 담쟁이덩굴이 휘감긴 샹들리에 아래 크리스마스 식탁이 차려졌다. ~~~~찰스 아저씨는 유리창 아래 그늘진 곳에 멀찍이 앉아 있었고 단티와 케이시 씨는 벽난로 양편에 놓인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스티븐은 자기 자리에서 일어서서 식전 감사 기도를 드렸다. 주여,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우리에게 강복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모두들 성호를 그었고 디덜러스 씨는 즐거운 듯 한숨을 지으며 가장자리에 진주 같은 물방울이 반짝이며 매달린 무거운 뚜껑을 쟁반에서 벗겼다.
디덜러스 부인이 나이프와 포크를 놓고 말했다. 제발, 적선하는 셈치고, 오늘만은 정치적 토론을 좀 삼갑시다. 그건 옳은 말이야. 찰스 아저씨가 나섰다.
오, 저애도 자라면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단티가 열기를 띤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 자기 집에서 하나님과 천주교와 성직자들이 모욕당하던 일을 잊지 않을 거예요.
개자식들 같으니라고! 디덜러스 씨가 고함을 질렀다. 파넬이 실각하자 모두들 덤벼들어 그분을 배반했고, 마치 하수구 속의 쥐새끼들처럼 그분을 갈기갈기 찢어놓지 않았느냔 말이야! 못난 개 같으니라고, 꼭 못난 개꼴을 하고 있단 말이야! 정말이지 꼭 그 꼴이라고. 그분들의 행동은 옳았어요. 단티가 언성을 높였다. 그들은 주교님들과 신부님들께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예요. 그분들에게는 명예를 돌려야 한다고요. 참 진저리가 나는군요. 일 년 중에서 오늘 하루만이라도 좋으니 이 진저리나는 논쟁을 좀 그만둘 수 없나요? 디덜러스 부인이 말했다.
찰스 아저씨가 온화하게 두 손을 쳐들고 말했다. “그만, 그만, 그만들 하라구요. 이렇게 화를 낸다든지 야비한 말을 쓰지 않고도 우리가 자유로이 무슨 견해건 가질 수는 있지 않나요? 정말 너무 심하군요”
디덜러스 씨는 시골 가수처럼 고개를 앞뒤로 흔들며 작은 소리로 노래를 흥얼대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두지만, 나는 개신교도가 아닐세, 케이지 씨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여전히 머리를 흔들며 흥얼대던 디덜러스 씨가 불평조의 콧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자, 여러분 이리 와 내 말씀 들어보오.
미사에 가지 않는 가톨릭 신자 여러분
그는 다시 나이프와 포크를 기분 좋게 집어 들고 먹기 시작하더니 케이시 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얘기나 들어보세, 존. 그런 얘기는 소화에 도움이 될 거야.
그렇다면 저분이 무슨 이유로 성직자들에게 반대를 하고 있는 걸까? 단티의 말이 옳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아버지가 말해 준 바에 의하면 그녀는 수녀가 되려다가 그만두고 나온 여자라는 것이었다. 그녀의 오라버니가 장신구니 흠이 있는 도자기니 한 것들을 토인들에게 주고 돈을 벌던 시절에 그녀는 알리게니 산맥 속에 있던 수도원으로부터 뛰쳐나왔던 것이다. 어쩌면 그런 일이 있었기에 그녀가 파넬을 혹평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가 아일린하고 놀지 못하게 했는데, 그 이유는 아일린이 개신교도였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에 그녀는 개신교도 애들과 놀던 애들을 알고 있었는데 개신교도 애들은 늘 성모 호칭 기도를 우롱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여자가 상아탑이나 황금 궁전이 될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그런데 도대체 어느 편이 옳단 말인가?
이야기는 아주 짧고 재미있다고, 케이시 씨가 말했다. 어느 날 아클로에서 있었던 일이야. 몹시 추운 날이었는데 그분께서 돌아가시기 전이었지. 오, 하나님, 그분께 자비를 베푸소서. 그는 지친 듯이 눈을 감고 말을 멈췄다. 디들러스 씨는 접시에 놓인 뼈 하나를 집어 들고서 거기 붙은 살을 이로 뜯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분께서 죽음을 당하시기 전이란 말씀이지?
어느 날 아클로에서 있었던 일이라네. 우리는 어떤 집회에 참석하러 거기로 내려갔었어. 그 집회가 끝나자 우리는 군중들을 헤치고 기차 정거장으로 가야만 했어. 세상에서 그처럼 우우 하고 야유 하는 소리를 듣기는 쉽지 않을 거야. 그들은 온갖 욕을 다 퍼부었거든. 그중에는 어떤 노파가 하나 있었는데, 술에 취한 듯한 심술쟁이 노파가 사뭇 나만 노려보고 있는 게 아니었겠나? 그녀는 진창 속에서도 춤을 추듯이 내 곁에 붙어 서서 얼굴을 향해 고함과 비명이 섞인 말을 이렇게 하더라고. <성직자를 못 살게 하는 놈! 파리의 신탁 자금! 미스터 폭스! 키티 옷P이!> 그래서 자낸 어떡했나, 존? 디덜러스가 물었다. 그녀가 계속 고함을 지르기에 내버려두었지. 케이시 씨가 말했다. 마침 날씨가 추웠기에 기운을 내기 위해 나는 입에다, 부인, 부인 앞에선 실례되는 말씀입니다만, 입에다 탈라모어 산 씹는담배를 넣고 있었다네. 내 입에 담배 씹은 물이 가득했으니 한 마디도 대꾸를 할 수 없었던 거야.
~~~그래서 그녀가 실컷 고함을 지르게 내버려두었지.~~~그는 말을 멈췄다. 디덜러스 씨는 뼈를 뜯어먹고 있던 머리를 치켜들고 이렇게 물었다. 그래서 어떡했느냐고, 존? 어떡하긴! 케이시 씨가 말했다. 그녀가 욕을 하며 흉하게 늙은 얼굴을 내게 들이밀고 있었지 뭐야. 마침 내 입에는 담배 씹는 물이 가득했거든 그래서 그녀의 얼굴 쪽으로 고개를 숙이며 퉤!하고 뱉었지 뭐야. ~~~~그는 한 손으로 자기 눈을 찰싹 때리며 거친 고통의 비명을 냈다. 오, 예수님, 성모 마리아, 요셉이시여라고 말하더군. 저는 눈이 멀었답니다. 물에 빠졌답니다!
케이시 씨는 아일랜드의 독립과 파넬을 지지하고 있었고 아버지 또한 그러했다. 단티 또한 아일랜드의 독립을 원한다는 데 있어서는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밤 광장에서 악대가 마지막으로 신이여, 여왕을 도우소서를 연주하고 잇을 때, 한 신사가 모자를 벗으니까 단티는 들고 있던 우산으로 그의 머리를 갈긴 적이 있었으니까.
단티가 화를 내며 말을 가로챘다. 우리가 만약 성직자들에게 얽매여 산다면 우리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그들은 야훼의 눈동자 같은 분들이지요. 그리스도께선 말씀하셨어요. <그들을 범하지 말라, 그들은 내 눈동자니라>라고요.
케이시 씨가 주먹을 불끈 쥐더니 식탁을 꽝 내리쳤다. ~~~~아일랜드엔 하나님은 필요 없소! 그는 소리쳤다. 아일랜드는 그간 하나님 때문에 신물이 났단 말이오. 하나님 같은 건 없어졌으면 좋겠단 말이오. 신을 모독하는 자! 악마! 단티는 비명을 올리며 벌떡 일어서더니 그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을 듯했다. ~~~~스티븐이 겁에 질린 얼굴을 치켜들자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히 고여 있었다.
아놀 신부가 화를 낸다는 것은 죄가 될까? 아니면 애들이 게으름을 피울 때 화를 내서라도 공부를 더 잘하게 할 수만 있다면 화를 내는 것쯤이야 허용될 수 있는 걸까? 아니면 화를 내는 척하지만 실은 화를 내지 않고 있는 걸까? 그는 화를 내도 괜찮기에 화를 내고 있을 것이다. 성직자니까 무엇이 죄가 되는지를 알고 잇을 것이고, 또 죄가 되는 짓은 하지 않을 테니까~~
예수회 신부가 되지 않았던들 그들은 모두 세상에서 지위 높은 분들이 되엇을 것이라고 했다. 아놀 신부나 패디 배리트 같은 분들, 그리고 맥글레이드 선생이나 글리슨 선생 같은 분들이 예수회의 구성원이 되지 않았더라면 어떤 사람들이 되었을 것인지 스티븐은 궁금했다.
식당은 여전히 비었고 애들은 여전히 줄을 지어 나가고 있었다. 식당 문 바깥에는 성직자나 생도감이 서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계단을 올라가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갈 수 없었다. 교장은 어차피 학감과 한편이 되어 그의 변명을 학생들이 흔히 쓰는 속ㅇ미수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학감은 여전히 날마다 찾아올 것이고 자기를 고자질 하러 교장을 찾아간 학생에 대해서는 무섭게 화를 낼 것이므로 사정은 더욱 악화될 것 같았다. 애들은 그를 보고 교장실로 가라고 했지만 정작 그들 자신은 감히 교장실에 가지 않을 것이다.
아무 응답이 없었다. 그는 다시 더 큰 소리가 나게 두드렸고, 방 안에서 무엇으로 감싸인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을 때 그의 심장은 뛰었다. 들어오시오. 그는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고는 그 안에 있던 초록색 베이즈천으로 된 문의 손잡이를 찾아 더듬었다. 그는 손잡이를 찾아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교장이 책상에서 무엇인가 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책상 위에는 두개골이 하나 놓여 있었고 방에서는 낡은 가죽의자가 풍기는 것 같은 그런 기이하고 근엄한 냄새가 났다.
자기가 들어선 방이 아주 엄숙한 곳이었고 또 아주 고요했기 때문에 그의 심장은 몹시 빨리 쿵쿵거리고 있었다. 그는 두개골과 교장의 다정해 보이는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거, 어린 학생이군. 교장이 말했다. 무슨 일이냐? 스티븐은 목이 꽉 메는 것을 꾹 삼키고 말했다. 전 안경을 깼다고요, 교장 선생님. 교장이 입을 열더니 말했다. 오, 그러니! 그러고 나서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누구든 안경을 깨면 집에 편지를 써서 새 안경을 보내달라고 해야지. 교장 선생님 전 편지를 썼어요. 스티븐이 말했다. 그리고 아놀 신부님께선 안경이 올 때까지 제가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야 당연하지 교장이 말했다. 스티븐은 다시 목이 매는 것을 꾹 삼키면서 다리와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다. 그렇지만 교장 선생님... 왜 그러니? 돌란 신부님이 오늘 들어오셔서 제가 작문을 베끼지 않는다고 손을 때렸습니다. 교장은 말없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얼굴에 피가 솟구치고 눈물이 고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교장이 말했다. 네 이름이 디덜러스지, 안 그러니?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안경은 어디서 깼니? 토탄 재가 깔린 길에서 깼습니다. 자전거 창고에서 나오는 애와 부딪쳐서 넘어졌거든요. 그래서 깼습니다. 그 애의 이름은 모릅니다. 교장은 말없이 다시 그를 쳐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오, 알겠다. 뭔가 잘못되었구나. 돌란 신부님이 정말 잘 모르고 그러셨을 게다. 하지만 저는 돌란 신부님께 안경을 깼다고 말씀을 드렸거든요. 그래도 저를 때렸습니다. 새 안경을 보내라는 편지를 집으로 썼다는 말씀도 드렸니? 교장이 물었다. 안Pdy. 오, 그러면 그렇지 교장이 말했다. 돌란 신부님이 잘 모르셨던 거야. 내가 며칠 동안 공부를 하지 않아도 좋다는 허락을 내렸다는 말씀을 드리도록 해라.
스티븐은 자기의 몸이 너무 떨려 말문이 막힐까 봐 얼른 말했다. 알겠어요. 교장 선생님. 하지만 돌란 신부님께선 내일도 오셔서 다시 매질을 하시겠다고 하셨는걸요. 알았다. 교장이 말했다. 잘못 알고 그러시는 거니까, 내가 돌란 신부님께 직접 말하도록 하지. 이제 되었니? 스티븐은 눈물이 눈을 적시는 것을 느끼며 중얼댔다. 네, 교장 선생님, 감사합니다. 교장은 두개골이 놓여 있는 책상의 가장자리 너머로 손을 내밀었다. 스티븐은 잠시 동안 자기 손을 교장의 손에 넣고 그 싸늘하고 습한 손바닥을 느끼고 있었다. 자아, 잘 가거라. 교장이 손을 빼고 고개를 조금 숙이며 말했다. 안녕히 계십시오, 교장 선생님. 스티븐이 말했다.
만세! 애들은 내려오는 모자를 잡고 다시 뱅글뱅글 하늘 높이 던지며 다시 한번 환성을 올렸다. 만세! 만세! 애들은 서로 손을 맞잡고 손가마를 만들더니 그를 높이 태우고 돌아다녔다.
잿빛 공기는 부드럽고 온화했다. 저녁이 찾아오고 있었다. 공기 속에는 저녁 냄새가 섞여 있었다.
[2장]
찰스 아저씨가 검은색 노끈처럼 꼰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웠기 때문에 견디다 못한 조카는 아저씨에게 정원 끝에 있는 작은 별채에서 아침 담배를 피우도록 권했다. 좋ㄹ다, 사이먼. 그렇게 하지. 노인이 조용히 말했다. 어디든 원하는 데 가서 피우도록 하마. 별채면 담배 피우기에 알맞은 곳이지. 건강에도 훨씬 더 좋을 거고. 정말 알 수가 없군요. 디덜러스 씨가 솔직한 심경을 말했다. 그런 지독하고 고약한 담배를 어떻게 피우십니까? 꼭 화약 같다고요. 맛이 아주 좋지, 사이먼 노인이 대답했다. 아주 시원하게 속을 녹여준단다.
그는 그 냄새 나는 별채를 자기의 정자라고 불렀는데, 정원에서 쓰는 연장을 보관하고 고양이가 살던 이 별채가 그에게는 마치 악기의 공명상자와 같은 구실을 하기도 했다. 그는 매일 아침 거기서 오, 내게 정자를 지어다오라든가 파란 눈과 금발이라든가 블라니의 숲과 같은 그의 애창곡 중의 하나를 흥얼대며 흐믓 해했는데, 그때마다 그의 파이프에서는 회색이 감도는 파르스름한 연기가 꼬불꼬불 솟아올라 공기 속으로 사라지곤 했다.
블랙록에서 보낸 그해 여름의 처음 얼마 동안 찰스 아저씨와 스티븐은 늘 함께 지냈다. ~~~그는 포도와 톱밥사탕을 한 줌씩 쥐거나 미국산 사과를 서너 개씩 움켲바고 증손자에게 너그럽게 들이밀곤 했는데, 그때마다 가게 주인은 불안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스티븐이 차마 받기 어렵다는 듯이 주저하고 있으면 찰스 아저씨는 상을 찌푸리며 이렇게 말했다. 받아둬, 내 말이 들리지 않니? 먹어두면 창자에 좋을걸. 주문서의 장부 기입이 끝나면 두 사람은 공원으로 갔다. 거기에서는 마이크 플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스티븐 부친의 옛 친구가 으레 벤치에 앉아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찰스 아저씨는 대개 교회에 들렀다. 스티븐의 손이 성수반에 닿지 않았으므로 노인은 자기 손을 적시어 스티븐의 옷과 교회 출입구 바닥에 휙휙 뿌리며 성호를 그었다. ~~~그는 종조부께서 무엇을 그리 진지하게 기도하고 계실까 궁금하게 여겼다.
일요일이면 스티븐은 아버지랑 증조부와 함께 건강 산책을 나갔다. 노인은 발에 티눈이 박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날쌔게 걸었고 10마일이나 12마일쯤 되는 길을 산책하는 날이 자주 있었다. 스틸오건이라는 작은 마을에는 갈림길이 있었다. 그들은 거기서 왼편으로 돌아 더블린 산맥을 향해 가거나, 아니면 고츠타운으로 가는 길을 따라 던드림으로 가서 샌디포드를 거쳐 집으로 돌아오거나 하였다.
아일랜드의 정치라든가 먼스터, 집안에 내려오는 옛날 얘기; 등이 화제가 되었는데, 스티븐은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더러 그가 이해할 수 없는 낱말들도 있었지만, 마음속으로 여러 번 되외어봄으로써 결국은 그런 낱말들마저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낱말들을 통해 그는 주변의 현실세계를 조금씩이나마 볼 수 있었다. 자기 자신 또한 자라나서 그 세계의 삶에 참여하게 될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e아장은 그 내용을 잘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성장을 기다리고 있다고 여겨지던 커다란 자기 몫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그는 남몰래 준비하기 시작했다.
저녁 시간은 그의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조잡하게 번역된 몽테 크리스토 백작을 탐독했다. 그 침울한 복수자는 그가 어린 시절에 기이하고 무시무시한 일에 관해 들은 바 있거나 상상한 적이 있었던 것들을 모조리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오브리 밀스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과 한편이 되어 함께 거리의 모험자 단체를 만들었다. 오브리는 단추 구멍에 호각 한 개를 대롱대롱 달고 다녔고, 허리띠에는 자전거 램프를 매었다. 한편 다른 애들은 짤막한 막대기를 마치 단도처럼 허리띠에 차고 다녔다.
모험단원들은 노처녀들이 사는 집의 정원을 공격하거나 성으로 가서 거친 잡초가 무성한 바위 위에서 전투를 벌였다.
그해는 방학이 끝나도 그가 클롱고우스 학교로 돌아가지 않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9월이 되어도 걱정할 일이 없었다. 마이크 플린이 입원하게 되자 공원에서의 달리기 연습도 끝장나고 말았다. ~~~모험자 단체도 해산했고 밤에 바위 위에서 공격과 전투를 벌이는 놀이도 더 이상 하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는 곤경에 처해 있었으며, 또 바로 그런 이유에서 그해는 그가 콜롱고우스 학교로 되돌아갈 수 없었다는 사실을 막연하게나마 이해하고 있었다. 한동안 그는 집에서 일어나는 미미한 변화들을 감지하고 있었다.
두 대의 노란 포장마차가 어느 날 아침 문 앞에 멈춰 서더니 사람들이 집 안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와 가재도구를 내가기 시작했다. ~~~울어서 눈이 벌겋게 된 어머니와 함께 타고 있던 객차의 창을 통해서 스티븐은 그 마차들이 메리온 로를 따라 무겁게 덜컥거리며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스티븐은 아버지 옆에 놓인 발판 위에 앉아 그 긴 요령부득의 독백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처음에 그는 무슨 소린지 종잡을 수 없었지만, 차츰 아버지에겐 원수들이 있었으며 곧 싸움이 벌어질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또한 자신이 그 싸움에 동원될 예정이며 그의 어깨에도 모종의 임무가 부과될 것임을 느꼈다. 블랙홀에서의 안락하고 꿈결 같은 생활로부터 갑작스럽게 쫓겨난 일이라든가, 음침하게 안게 낀 도시를 지나쳐 오던 일이라든가, 결국 그들이 와서 살게 된 그 헐벗고 침울한 집에 대한 생각 따위가 그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얘 스티븐, 아직도 내겐 힘이 남아 있단다. 디덜러스 씨는 잘 타지 않는 불을 푹푹 쑤시면서 말했다. 얘야, 우린 아직 죽지 않았어, 안 죽었고말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거니와, 하나님, 당신의 이름을 들먹여서 죄송합니다. 우리는 아직 다 죽은 것이 아니란 말이다.
더블린은 신기하고도 복잡한 느낌을 주는 도시였다. 찰스 아저씨는 이제 정신이 맑지 않아서 더 이상 심부름을 보낼 수 없게 되었고, 새로 이사 온 집에 정착하는 데 따르는 혼란 덕분에 스티븐은 블랙홀 시절보다도 더 자유로웠다.
이번에도 그는 시를 쓰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지난밤에 있었던 일을 곰곰이 생각해 봄으로써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자아, 스티븐 그가 말했다. 너도 이젠 단단히 힘을 내도록 해야 한다. 오랫동안 실컷 놀기만 했지. 오, 스티븐은 이제 열심히 공부할 거예요. 디덜러스 부인이 말했다.
성신강림절 기념 연극을 공연하는 밤이 되었다. 스티븐은 분장실 창을 통해 중국식 등불이 줄지어 늘어져 잇는 작은 풀밭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는 손님들이 건물 계단을 내려와 극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스티븐은 글쓰기에 이름을 날린 덕분에 체육관의 총무로 뽑히긴 했지만, 그날 행사의 제1부에서는 아무 역할도 담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2부 행사였던 연극에서는 주역을 맡았는데, 우스꽝스러운 교육자 역이었다. 그가 그 역을 맡은 것은 키가 큰 데다가 태도가 진지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그는 벨비디어 학교에서 두 번 째 학년을 마치고 있는 중이었고 중급반에 속해 있었다.
난 방금 내 친구 월리스에게 말하고 있던 참이야. 네가 오늘 저녁에 학교 선생님 역할을 할 때 우리 교장 선생의 흉내를 낸다면 얼마나 재미있을 것인가고 말이야. 정말 모두들 포복ㅈ러도할 농담이 될걸. 헤론은 친구에게 들려주기 위해 굦아 선생의 그 현학적인 베이스 음조의 목소리를 흉내내려 했지만 결과는 변변치 못했다.
스티븐은 머리를 저었고, 새 부리를 연상시키는 상대방 얼굴이 상기해서 움직이고 잇는 것을 보고 미소지었다. 그는 빈센트 헤론(왜가리류의 새 이름)이란 애가 새의 이름을 가진 데다 얼굴마저 새를 닮은 것이야말로 참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의 파리한 머리털은 곡식 가리처럼 이마에 드리워져 있었는데, 꼭 새의 구겨진 볏 같았다. 이마는 좁고 뼈가 튀어나와 있었으며, 서로 가까이 붙어 있어 두드러져 보이는 엷은 색의 무표정한 눈 사이로 얇은 매부리코가 솟아 있었다.
상급반 애들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은 멍청이들이었으므로 그해에는 스티븐과 헤론이 사실상 학교에서 학생 대표 자리를 차지하다시피 했다.
그는 그녀가 연극 구경을 올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생각도 하루 종일 하고 있었다.
오 디덜러스 그는 소리쳤다. 너 때문에 도일이 몹시 화를 내고 있다고, 당장 들어가서 분장하도록 해. 서두르는 게 좋겠어. 이제 간다고. 헤론이 거만을 떨며 느린 어조로 심부름 온 아이에게 말했다. 가고 싶을 때 가는 거야. 소년은 헤론을 향해 되풀이해서 말했다. 하지만 도일이 몹시 화를 내고 있다고.
그가 계단으로 나오자 첫 번째 등이 켜져 잇는 곳에서 가족들이 그를 기다리고 잇는 것이 보였다. ~~~~그는 어디를 걷고 있는지도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 가슴속에서는 오만이니 희망이니 욕망이니 하는 것들이 마치 짓이겨놓은 약초처럼 맹렬한 향기를 그의 마음의 눈앞에 뿜어 올리고 있었다.
스티븐은 킹스브릿지에서 객차에 올라 다시 한 번 아버지 옆에 앉아 있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야간 우편열차 편으로 코크에 가고 있는 중이었다. ~~~메어리버리에서 그는 잠이 들었다. 그가 잠이 깨었을 때 기차는 멜로를 벗어나고 있었고 아버지는 다른 자리에서 몸을 쭉 펴고 잠들어 있었다. 싸늘한 새벽빛이 시골 풍경과, 사람의 자취가 보이지 않는 들판과, 문이 닫힌 오두막들을 비치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스티븐, 네가 혼자 힘으로 세상살이를 하게 되거든, 너야 곧 그렇게 될 테니까 말이다 만. 무슨 일을 하든 신사들과 어울리도록 해라. 젊었을 때 나는 정말 즐겁게 살았단다. ~~~아버지는 웃음을 터뜨렸는데 스티븐이 듣기에 그것은 흐느낌에 가까웠다. ~~~아버지가 흐느낌을 목구멍 너머로 꿀꺽 삼키는 소리를 듣고 그는 신경질적으로 충격을 받으며 눈을 떴다. 그의 시야에서 갑자기 부서지는 햇살로 인해 하늘과 구름은 호수 같은 어두운 장밋빛 공간이 잇는 암울한 덩어리들로 구성된 환상적인 세계로 바뀌었다.
재산이 매각되던 날 저녁에 스티븐은 시내의 술집들을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아버지를 순순히 따라다녔다. 장터의 장사꾼들이랑, 술집 주인과 색시들이랑, 한푼 줍쇼 하고 귀찮게 구는 거지들에게까지 디덜러스 씨는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자기는 코크 출신이라든지, 더블린으로 가서 30년간이나 살며 코크 지방의 액센트를 떨쳐 버리려고 애를 썼다든지, 옆에 따라다니는 못난이는 자기의 장남이지만 아주 뻔뻔스런 더블린 사람일 뿐이라는 내용의 말이었다.
그들은 이른 아침에 뉴콤의 커피하우스에서 하루를 시작했는데 디덜러스 씨의 찻잔은 잔받이 위에서 요란스럽게 떨그럭거리고 있었다. 스티븐은 자기의 의자를 움직인다든지 헛기침을 함으로써 간밤에 아버지가 과음했음을 알리는 이 수치스러운 증거를 은폐하려 했다. 모욕적인 일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장터 장사꾼들의 거짓 미소라든가, 아버지가 희롱한 tfn집 색시들이 던진 농담과 추파라든가, 아버지 친구들의 찬사와 격려의 말 따위가 모두 모욕적이었다. 친구들이 그에게 어쩌면 스티븐이 조부를 그렇게나 닮았느냐고 하면 그는 닮아도 흉하게만 닮았다고 맞장구쳤다.
네 아버지 말이다. 작은 몸집의 노인이 스티븐에게 말했다. 한창 시절엔 코크 시내에서도 가장 대담한 바람둥이였어. 그걸 알고 있니? ~~~이 애의 머릿속에 부질없는 생각을 넣지 말게나. 디덜러스 씨가 말했다. 이 애가 창조주의 뜻대로 살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좋겠어.
스티븐의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사촌들 중의 하나가 조용한 포스터 플레이스의 모퉁이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 그는 아버지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서 하일랜드의 보초가 격식을 갖춰 오락가락하고 있는 주랑으로 갔다.
그는 자신의 무익한 고립 상태도 빤히 보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접근해 보려고 했던 종류의 삶에 한걸음도 가까워지지 못했고, 어머니와 남동생 및 여동생들로부터 그 자신을 갈라놓고 있던 그 걷잡을 수 없는 수치와 원한의 감정을 건널 다리를 놓지도 못했다. 그는 자신이야말로 그들과 한 혈육이라 할 수 없으며 양자나 양형제같은 정체불명의 양육 관계를 맺고 잇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다시 헤매고 다니기 시작했다. 베일에 싸인 듯한 가을 저녁은 여러 해 전에도 그로 하여금 블랙록의 조용한 길거리를 쏘다니게 한 적이 있거니와, 지금 다시 그를 이 elf 저 길 헤매고 다니게 했다.
이런 순간들은 사라지고 심신을 소모하는 욕정의 불길이 다시 솟구쳤다. 시구가 그의 입술에서 사라졌고, 분명치 않은 부르짖음과 발언되지 않은 야수적 언어가 그의 두뇌를 밀치고 나왔다. 그의 피는 반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제3장]
교장이 들어와서 교단 위의 자리에 앉았다. 뒷자리에 앉아 있던 키다리가 스티븐을 발로 가만히 차면서 어서 어려운 질문을 던져보라고 재촉했다.
스티븐은 채플의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놀 신부는 제대의 왼쪽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는 어깨에 무거운 외투를 걸치고 있었는데 창백한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고 목소리는 코감기로 인해 뚜렷하지 못했다. 이상하게도 이렇게 다시 나타난 옛 스승의 모습이 스티븐의 마음속에 클롱고우스 시절의 생활을 불러일으켰다.
스티븐이 말이 없는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짙은 안개가 그의 마음을 감싸는 듯했다.
설교자의 칼날이 그의 병든 양심을 깊이 파헤치고 있었고 그래서 그는 자신의 영혼이 죄악 속에서 곪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렇다 설교자의 말이 옳았다. 하나님의 시간이 되었다. 그간 그의 영혼은 마치 소굴 속에 숨어 있는 짐승처럼 그 자신의 오물 속에 묻혀 있었지만, 이제 천사의 나팔 소리가 그를 죄악의 암흑으로부터 광명 속으로 몰아냈던 것이다. ~~~그의 상상이 빚은 보석 눈의 창녀 같은 그의 죄악은 그 강풍 앞에서 겁에 질린 생쥐처럼 갈기 아래로 몸을 웅크리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그가 빠져 있던 방탕한 생활의 더러운 면들이 바로 그의 코 아래서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스티븐과 애머, 손을 맞잡아라. 지금 하늘엔 저녁 빛이 아름답구나. 너희가 잘못을 저질렀지만, 언제나 나의 아들들이다. 한쪽 마음이 다른 쪽 마음을 사랑하는 거야. 내 귀여운 아이들아, 손을 잡아라. 그러면 너희는 함께 행복해질 것이고 너희 마음은 서로 사랑하게 되리라.
나지막하게 쳐놓은 블라인드를 뚫고 들어온 탁한 주홍빛 빛이 채플을 물들이고 있었다. 블라인드의 끝자락과 창틀 사이의 벌어진 틈으로 한 가닥의 파리한 빛이 창처럼 뚫고 들어와서, 천사들이 입고 있는 역전(歷戰)의 사슬 갑옷처럼 번쩍이고 있던 제대 위의 양각 놋촛대들을 비추고 있었다.
내 귀여운 소년들, 여러분도 알다시피, 아담과 이브는 우리의 첫 조상이었어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창조하신 것은, 루시퍼와 그의 반역적 천사들이 하늘에서 쫓겨난 후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였음은 기억하고 잇을 거예요. 우리가 듣기로 루시퍼는 새벽 여신의 아들 샛별로서 밝고 굳센 천사였지요. 그런데-도 그는 하늘에서 떨어졌고 그와 함께 하늘나라 군대의 3분의 1이 떨어지고 말았던 거예요. 그는 쫓겨나서 그와 한편이었던 반역적 천사들과 함께 지옥으로 떨어졌지요. 그의 죄가 무엇인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어요. 신학자들은 그것이 교만의 죄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답니다. 어느 한 순간 그는 non serviam 즉<나는 섬기지 않겠노라>는 사악한 생각을 품게 되었답니다. 바로 그 순간에 그는 파멸했지요. 그는 한 순간의 사악한 생각으로 하나님의 존엄성을 범했고 하나님께선 그를 영원히 하늘나라에서 지옥으로 추방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선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여 다마스쿠스 평원의 에덴동산에서 살게 했어요. 그곳은 햇빛과 색채가 눈부신 아름다운 정원으로 화려한 식물이 우거져 있었지요. 비옥한 땅은 그들에게 먹을 것을 풍성히 대주었고, 짐승들과 새들은 그들에게 고분고분한 종이었답니다. 우리의 육신은 훗날 질병이니 빈곤이니 죽음이니 하는 병폐를 물려받았습니다만 그들은 그런 것을 모르고 있었답니다.
슬픈 일이었습니다. 내 귀엽고 어린 소년들, 그들 또한 하늘나라에서 쫓겨나고 말았으니까요(선악과 사건 이후). 한때 빛나는 천사였고 아침의 아들이었다가 이제는 추잡한 악마로 전락해 버린 사탄이 들판의 짐승들 중에서도 가장 엉큼한 뱀의 꼴을 하고 찾아왔던 거예요. 그는 그들을 시기했던 거지요. 한때 위대한 존재였다가 지금은 전락해버린 그는 스스로 죄를 지어 영원히 포기해야 했던 유산을 흙으로 빚은 인간이 소유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 참을 수 없었던 거예요. ~~~독을 품은 사탄의 혀는 성공을 거두었고, 그들은 추방되고 말았어요.
그때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창조물인 인간에게 책임을 묻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늘의 군사들을 지휘하던 미카엘이 손에 불 칼을 들고 나타나서 이 죄 많은 두 사람을 에덴동산에서 이 세상으로 몰아냈습니다.
저녁이 되자 그는 집을 나섰다. 습하고 어두운 공기의 첫 감촉과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기도와 눈물을 통해 진정되었던 그의 양심을 다시 아프게 했다. 고백해야 한다! 눈물과 기도를 가지고서 양심을 진정시키는 것으로는 모자랐다. 그는 성령의 대리자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그 동안 감춰 온 죄악을 진심으로 회개하며 고백해야 했다. 그를 맞이하기 위해 집의 출입문이 열리면서 문의 발판이 문지방 너머로 끌리는 소리가 다시 그의 귀에 들리기 전에, 부엌 식탁에 저녁밥이 차려져 있는 것을 다시 보기 전에, 그는 무릎을 꿇고 고백하고 싶었다.
자기 죄를 고해 신부 앞에서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해야지, 해야지. 신부에게 설명하고 나면 수치스러워 죽을 지경이 되지 않을까? 부끄럼도 없이 그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그녀에게 몸을 굽히며 근처에 성당이 있느냐고 물었다. 성당 말씀이십니까? 처치 가의 성당이 있지요. 처치라고요? 그녀는 들고 있던 깡통을 다른 손에 옮겨 쥐고 성당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그녀가 숄 자락 아래로 그 냄새나고 쭈굴쭈굴한 오른손을 쳐들었을 때, 그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슬픔과 위안을 느끼며 그녀 쪽으로 더 나직이 몸을 굽혔다.
미닫이가 닫히고 고해실 측면에서 참회자가 나타났다. 건너편 쪽 미닫이가 열렸다. 어떤 여인이 첫 번째 참회자가 무릎을 꿇었던 자리로 조용히 그러나 익숙하게 들어갔다. 희미한 중얼거림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는 아직도 성당을 떠날 수 있었다. 그는 일어나서 한 발씩 앞으로 내밀며 살며시 빠져나와, 어두운 거리를 재빨리 달리고 달려 도망칠 수 있었다. 아직도 그 창피를 면할 수 있었다. 바로 그 죄만 아니라면 무슨 죄라도 괜찮았을 텐데! 차라리 살인죄였더라면! 창피스러운 생각, 창피스러운 말, 창피스러운 행동이 작은 불덩어리처럼 떨어져서는 사방에서 그를 건드렸다. 끊임없이 떨어지고 있는 이글거리는 고운 재처럼 창피가 온통 그를 뒤덮었다. 그걸 말로 표현해야 하다니! 그의 영혼은 숨이 막혀 어찌할 줄 몰라 죽어버릴 지도 모를 일이었다.
미닫이가 닫히고 다른 쪽에서 참회자가 나왔다. 가까운 쪽의 미닫이가 열렸다. 두 번째 참회자가 나온 자리로 다른 참회자가 들어갔다. 조용히 속삭이는 소리가 수증기 구름 조각처럼 고해소 밖으로 떠돌아 나오고 있었다. 여인의 목소리였다. 조용히 속삭이는 구름 조각, 조용히 속삭이는 수증기가 속삭이다 사라졌다.
그는 나무 팔걸이로 가리고 아무도 모르게 주먹으로 겸허하게 가슴을 쳤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하나가 되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싶었다. 그는 이웃을 사랑하고 싶었다. 그는 자기를 창조하여 사랑하고 있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꿇어앉아 기도하고 행복해지고 싶어했다.
미닫이가 갑자기 닫히고 참회자가 나왔다. 이제 그의 차례였다. 그는 겁을 먹고 일어서서 고해석으로 걸어가는데 눈이 캄캄했다. 기어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그는 고요한 어둠 속에 꿇어앉아 머리 위에 걸린 하양 십자가를 쳐다보았다. 하나님께서도 그가 참회하고 있는 것을 보고 계시리라. 모든 죄를 고백해야지. 긴 시간에 걸쳐 고백하면, 교회에 온 모든 고해자들이 그가 굉장한 죄인이었음을 알게 되겠지. 알게 되라지. 사실이 그러하니까. 하지만 진정으로 참회하면 용서한다고 하나님께선 약속을 하셨어. 그는 참회하고 있었다. 그는 두 손을 맞잡고 하얀 십자가를 향해 쳐들었다. 그는 어두워진 눈으로 온몸을 떨면서 기도하고 있었다. 길을 잃은 짐승처럼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흐느끼는 입술로 기도하고 있었다. 참회하나이다! 참회하나이다! 오, 참회하나이다.
미닫이가 덜컥 하고 열리자 그의 가슴속에서 심장은 쿵쿵 뛰었다. 창살에 늙은 신부의 얼굴이 보였다. 한 손으로 고이고 있는 그 얼굴이 그를 외면하고 있었다. 그는 십자가를 그리며 자기는 죄를 지었으니 축복을 내려달라고 신부에게 빌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겁에 질려 머리를 숙인 채 고백의 기도문을 외웠다. <저의 가장 무거운 허물>이라는 대목에 이르자 그는 숨이 차서 기도를 중단했다.
지금 몇 살이지요?
열여섯입니다. 신부님! ~~~
그렇게 하시오, 젊은이. 악마가 그대를 나쁜 길로 인도하고 있었다오. 악마가 그대를 유혹하여 그런 식으로 육체를 훼손케 하거든 그를 지옥으로 쫓도록 하시오. 악마란 우리의 주님을 미워하는 간악한 귀신이라오. 그 죄를 버리겠노라고 하나님께 맹세하시오. 그 비참하고 비참한 죄를 버리겠다고 말이오.
눈물과 하나님의 자비로움이 베푸는 빛으로 인해 앞을 보지 못하고 그는 머리를 숙인 채 사죄의 엄숙한 말씀을 들었고 신부가 사죄의 표시로 손을 그의 머리 위로 쳐든 것도 보았다.
진흙길이었지만 걷기에 즐거웠다. 그는 집을 향해 활보하면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은혜가 번지며 그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고 있는 것을 의식했다.
[제4장]
그의 모든 감각은 엄격히 규제되었다. 길에서도 시각의 고행을 위해 그는 시선을 아래로 던진 채 좌우나 뒤를 바라보지 않으려 했다. 그의 눈은 여인의 눈과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어떤 순간적인 생각에서 그가 단 한 번만 도의하면 그 동안 이루어놓은 것을 모두 허물어뜨릴 수 잇다는 것을 알게 되니까 자기에게는 힘이 있다는 강력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자기의 맨발을 향해 서서히 밀려오는 물을 느끼면서, 아무 소리 없이 소심하게 다가오는 힘없는 잔물결이 처음으로 자기의 열띤 피부에 와 닿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물결이 와서 닿을 무렵, 그리고 그것에 죄 많은 응낙을 하기 직전에, 그는 자기 의지의 갑작스러운 행위와 갑작스러운 화살기도를 통해 구원받고, 그 물결에서 멀리 떨어진 마른 기슭으로 안전하게 피하고 있었다. 그리고 먼 곳에서 생긴 한 줄의 은빛 파도가 다시 그의 발을 향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을 보노라면 자기는 아직 죄악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아직도 모든 것을 허물어뜨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새로운 힘과 만족감의 전율이 그의 영혼을 뒤흔들었다.
이렇게 유혹의 물결을 여러 차례 모면한 이후에 그는 점차 불안해졌고 자기가 그 동안 상실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하나님의 은혜가 조금씩 박탈되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신만은 죄를 면할 수 있다는 확신이 점차 흐려졌고 뒤이어 자기의 영혼이 부지불식간에 타락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생겨났다. 그는 자기가 유혹을 받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했으며 또 그가 기구한 은혜를 하나님께선 당연히 베풀게 되어 있으므로 자기가 그 은혜를 받았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고 다짐함으로써 자기가 은혜를 누리고 있다는 의식을 되찾고자 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기도 힘이 들었다. 유혹이 점점 빈번해지고 더욱 강렬해지자 성인들의 시련에 대해서 그가 들었던 이야기가 결국 그에게는 진실로 보였다. 빈번하고 강렬한 유혹이 있음은 곧 영혼의 성곽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으며 악마가 그것을 허물어뜨리기 위해 발악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것이었다.
교장이 부른다는 전갈을 받은 후 그는 그 전갈의 의미가 무엇일까 마음속으로 이리저리 생각해보고 있었다.
그 자신이 사제가 되어 천사들이나 성인들마저 경외하는 그 대담한 구너세를 조용히 겸허하게 휘두르고 있는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본 적이 얼마나 빈번했던가! 그 동안 그의 영혼은 이런 욕구를 남몰래 생각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또 컴컴한 성당의 그 수치스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고해소에서 아낙네들과 소녀들이 그의 귀에 입을 대고 소곤소곤 고백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죄악, 죄 많은 동경, 죄 많은 생각, 죄 많은 행동을 죄다 알게 될 것이다.
그는 무거운 홀 문을 열고 이미 신앙생활의 동료가 된 사람을 대하듯이 손을 내밀었다. 스티븐은 계단 위의 널찍한 공간으로 빠져나와 온화한 저녁 공기가 그를 어루만져 주고 있음을 의식했다. ~~~~예수회 소속 신부 스티븐 디덜러스.
[제5장]
명색이 대학생인데 너무 더러워서 어미가 씻겨주어야 하니 참 딱하기도 하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즐겁게 씻어주시면서 그러세요? 스티븐이 조용히 말했다.
프랑스 문학 시간에 출석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라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는 홀은 건너 왼쪽 복도를 따라 계단식 물리학 교실로 갔다. 복도는 어둡고 조용했으나 주군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당당한 사내> 훼일리의 시절에는 그곳에 비밀 계단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일까? ~~~그는 계단식 교실의 문을 열고 먼지 낀 창문으로 간신히 스며들어온 싸늘한 잿빛 광선을 받으며 걸음을 멈추었다. 큼직한 난로의 쇠살에 누군가 웅크리고 잇는 것이 보였는데 그 몸매가 마르고 머리가 잿빛인 것으로 보아 그게 학감 선생이며 불을 지피고 있는 중임을 알았다. 스티븐은 조용히 문을 닫고 벽난로로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학감 선생님 도와드릴까요? ~~~소박한 린넨으로 만든 레위인의 사제복처럼 그가 입고 있던 퇴색하고 낡은 수탄은 꿇어앉은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특정 행사를 위한 제의나 구약 시대 고위 성직자의 제의를 입혀도 거추장스럽게 여겨질 성 싶었다. 그의 육신은 하나님을 섬기는 저급한 일들, 가령 제대의 불을 돌보는 일, 은밀한 소식을 전하는 일, 속인들 시중들기, 시키는 일을 재깍 해치우기 등의 일을 하느라 늙어버렸다. 그런데도 그는 성인답다든가 고위 성직자다운 아름다움은 조금도 누리지 못한 채 살아왔다. 아니, 그의 영혼 자체가 그런 봉사를 하다가 늙어버리면서도 빛이나 아름다움을 지향하여 성장한다든지 영혼의 성스러움에서 나오는 아리따운 향기를 널리 풍기지 못했다.
학감은 웅크리고 앉아 장작이 불이 붙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스티븐이 침묵을 깨기 위해 말했다. 저는 불붙이는 일을 못해 낼 것 같은데요. 자네는 예술가가 아닌가? 디덜러스 군 학감이 그를 쳐다보며 파리한 눈을 끔벅였다. 예술가의 목표는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는 일이라고, 무엇이 아름다우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고.
우리들이 앞에 피워놓은 불도 보기에 즐거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불도 역시 아름다운가? 학감이 물었다. 시각으로, 즉 심미적 사유 작용으로, 그 불이 파악되는 한, 그 불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아퀴나스는(선은 욕구가 미치는 것 속에 있다)라고도 했습니다. 불이 따뜻함에 대한 동물적 욕구를 충족하는 한, 불은 선하지요, 그러나 지옥에서는 불이 악으로 됩니다. 그렇고말고, 학감이 말했다. 자네는 정곡을 찔렀어.
예술이 필연적으로 세 가지 형식으로 나누어지며 한 가지 형식에서 다른 형식으로 발전해 간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그 세 가지 형식이란 첫째 서정적 형식 즉 예술가가 자신의 이미지를 자기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해서 제시하는 형식. 둘째 서사적 형식 즉 예술가가 자신의 이미지를 자기 자신 및 다른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관련해서 제시하는 형식, 셋째 극적 형식 즉 예술가가 자신의 이미지를 다른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관련해서 제시하는 형식이야.
어떤 사람이 홧김에 나무토막을 난도질 하다가 암소의 상을 만들게 되었다면 그 상도 예술작품인가? 스티븐이 계속해서 말했다. 아니라면 그 이유는? 그 참 재미있는 물음이군. 린치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그 물음에는 진짜 스콜라 철학의 냄새가 나는데.
서정적 형식은 사실 한 정서의 순간을 가장 소박하게 언어로 옷입힌 것이고, 옛날에 노를 젓거나 비탈에서 바위를 끌어올리던 사람을 격려하던 율동적 외침 같은 것이기도 해. 이때 발화자는 정서를 느끼고 있는 자기 자신보다도 그 정서의 순간을 더 의식하고 있어. 가장 단순한 서사적 형식은 예술가가 서사적 사건의 중심체로서 자기 자신을 연장하고 심사숙고할 때 서정 문학으로부터 나타나는 것을 볼 수가 있지. 그리고 이 형식이 발전하면 결국 정서적 중심이 예술가 자신과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등거리를 이루는 곳에 놓이게 돼. 이렇게 되면 서술도 이제는 순수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야. 예술가의 개성은 서술 그 자체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마치 생명력 있는 바닷물처럼 인물과 행동의 주위를 돌고 돌며 흐르게 되지. 이런 발전을 우리는 영국의 옛날 담요(譚謠)인 <터핀 히어로>에서 쉽게 찾아볼 수가 있어.
이 담요는 1인칭으로 시작하여 3인칭으로 끝나거든. 극적 형식은, 각 개인의 주변을 흐르며 소용돌이치던 생명력이 개개인의 활력으로 충만 한 결과 그 개인이 그 고유의 무형적인 미적 삶을 영위할 수 있을 때 달성된다고. 예술가의 개성이 처음에는 하나의 외침이요 선율이요 기분에 불과하지만, 다음 단계에는 유동적이고 부드럽게 빛을 내는 서술로 되었다가, 결국은 그 자체를 순환하여 사라지게 하니, 말하자면, 그 자체의 개성을 몰각하게 하는 거야. 이 극적 형식에 있어서의 미적 이미지는 인간의 상상력 속에서 순환되고 거기서 재투사된 삶이야. 이런 미적 창조의 신비는 물질적 창조의 신비처럼 완성되지. 예술가는 창조의 신처럼 자기가 만드는 작품의 내면이나 이면 혹은 그 위나 초월적인 곳에 남아서 남의 눈에 띄지 않은 채 스스로를 순화하여 사라지게 한 후 초연히 손톱이나 깎고 있는 거야.
비가 더 세차게 내렸다. 그들이 왕립 아일랜드 아카데미 옆으로 난 통로를 지나가고 있을 때 많은 학생들이 도서관의 아케이드 아래서 비를 피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린치는 스티븐에게 속삭였다. 네 애인이 여기 와 있군. 스티븐은 세차게- 내리는 비를 아랑곳하지 않고 일단의 학생들 아래쪽 계단에 말없이 서서 이따금 그녀에게 눈길을 던지고 있었다. 그녀 또한 친구들 사이에서 말없이 서 있었다. 지난번에 그녀를 보았던 일을 화상하면서 그는 의식적으로 반감을 느끼며 (저 애가 오늘은 시시덕거릴 신부(神父)가 없어서 심심하겠는걸)하고 생각했다.
갑자기 불어 닥친 가벼운 소나기는 끝나고 시커멓게 젖은 흙이 무럭무럭 김을 뿜는 네모 중정(中庭)의 계단에 말없이 즐겁게 서서 구름을 쳐다본다든지, 마지막 몇 방울의 비를 막기 위해 우산을 교묘한 각도로 받쳐 든다든지, 우산을 다시 접고 치마를 조심스럽게 잡고 있을 때, 그네들의 단정한 반장화에서는 보글보글 소리가 났다.
새벽 무렵에 그는 잠이 깼다. 어쩌면 그토록 아름다운 음악일까? 그의 영혼은 온통 이슬에 젖은 듯했다. 잠자던 그의 육신 위로 파리하고 시원한 빛의 물결이 지나갔다. 마치 그의 영혼이 시원한 물속에 누워 있듯이 그는 가만히 누워서 희미하게 들리는 아름다운 음악을 의식하고 있었다.
장막을 두른 듯 바람기 없던 시간이 지나갔고, 헐벗은 창살의 뒤쪽에서 아침의 빛이 모이고 있었던. 먼 곳에서 희미하게 종이 치고 있었다. 새 한 마리가 지저귀고 있었다. 두 마리, 세 마리의 새가 지저귀기 시작했다. 종소리와 새소리가 그쳤다. 그러자 탁하게 하얀빛이 동서로 번지며 온 세계를 덮었고, 그의 마음속에 있던 장미의 빛도 덮었다.
벽난로 선반에 기대고 있던 그녀에게 그는 엘리자베스 시대의 아름다운 노래랑, 슬프고도 달콤하게 이별을 원망하는 노래랑, 아쟁쿠르 개선가랑, 그린슬리브즈 부인에 대한 즐거운 노래 따위를 불러주었다. ~~~어떤 순간에는 그녀의 눈이 그를 신임하려는 듯이 보이기도 했지만, 그의 기다림은 헛되었다.
그런데 교회는 어떤가요, 모런 신부님?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우리에게 동조하고 있어요. 교회 쪽에서도 이 사업은 진전되고 있지요. 교회 때문에 걱정하진 마세요. 흥! 국어 강습회를 멸시하며 그 방을 떠나길 잘했지 뭐야. 도서관 계단에서 그녀에게 인사를 하지 않은 것도 잘한 것이었다. 그녀가 그 신부와 시시덕거리거나 말거나 또 기독교의 시녀라고나 할 교회를 상대로 장난을 치거나 말거나 내버려둔 것도 잘한 일이었지.
그는 거리를 혼자 걸으면서 혼자 마음 아프게 생각했다. 그녀야말로 자기 조국의 여인상이며, 어둠과 비밀과 고독 속에서 자아의 의식을 되찾은 박쥐 같은 영혼이며, 아무 애정이나 죄의식도 없이 자기의 다정한 애인과 잠시 머물다가 결국은 그를 버리고 고해소를 찾아가서 쇠살 너머로 고해 신부의 귀에 대고 철없는 탈선행위나 고백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녀에 대한 그의 분노는 그녀의 정부(情夫)에 대한 야비한 비난을 통해 발산되었고, 그 정부의 이름과 목소리와 모습은 그의 좌절된 자존심을 손상했다. 그는 농부 출신의 사제로서 형제 중의 하나는 더블린에서 순경으로 있었고 다른 하나는 모이컬렌에서 술집 급사로 있었다. 이런 사람에게 그녀는 자기 영혼의 부끄럼을 적나라하게 고백하고 있었다.
이미 날이 훤하게 밝아 있었다.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는 지난 10년이 지난 후 그녀를 위한 시를 다시 썼던 것이다. 10년 전에는 그녀가 숄을 두건처럼 머리에 두르고 있었고, 밤공기 속으로 따뜻한 숨결을 물보라처럼 뿜으며 유리처럼 반질거리는 길을 또닥또닥 걷고 있었지. 그것은 마지막 궤도마차였다. ~~~그들은 마차의 계단에서, 그는 윗간에 그녀는 아랫간에 서 있었어. 그녀는 말하는 틈틈이 여러 번 그의 계단으로 올라왔다가 내려가곤 했는데 한두 번은 내려갈 줄 모르고 서 있다가 이윽고 내려가지 않았던가. 그만두자, 그만둬.
그 어린 시절의 슬기에서 지금의 이 어리석음에 이르기까지 10년 이란 세월이 흘렀군. 만약에 그녀에게 그 시를 보낸다면? 조반 식탁에서 계란 껍질을 톡톡 깨는 소리와 뒤섞여 그 시가 읽혀질 것이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그녀의 오라버니들이 웃으면서 그 억세고 단단한 손가락으로 서로서로 그 시를 적은 종이를 빼앗으려 할 것이 아닌가. 그녀에게 숙부가 되는 그 상냥한 신부는 안락의자에 앉아서 종이를 잡은 손을 앞으로 쭉 내밀고는 웃으며 읽을 것이고 그 시의 문학적 형식이 제격이라는 점을 인정할 것이다.
공원의 수목들은 비에 젖어 무거웠고, 방패처럼 잿빛으로 누워 있던 호수에 비가 질기게 내리고 있었다. 한 떼의 백조들이 날고 있었고 그 아래의 호수 물과 기슭은 백조들의 녹백색 오물로 더럽혀져 있었다. 비에 젖은 회색 빛, 말없이 젖어 있는 수목들, 방패처럼 지켜보는 호수 그리고 백조 따위에 충동을 받고 그들은 조용히 포옹했다. 느는 누이의 목에 팔을 감고 있었으나 그들의 포옹에는 아무 환희도 열정도 없었다. 회색의 모직 외투가 어깨에서 허리까지 그녀를 비스듬히 감싸고 있었고, 그녀의 금발 머리는 수치심을 마다않으며 숙이고 있었다. 그의 적갈색 머리카락은 흩날렸고, 얼룩진 손은 부드럽고 잘생겼으나 힘이 있이 있었다. 얼굴은?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비에 젖어 향기로운 그녀의 금발머리 위로 오라비는 얼굴을 숙이고 있었다. 그 얼룩지고 강하고 잘생기고 무마적인 손는 테이빈의 손이었다.
그는 자기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데 대해, 그리고 그런 생각을 불러일으킨 그 위축된 난쟁이에 대해 화를 내며 상을 찌푸렸다. 밴트리 일당에 대한 아버지의 욕설이 기억 속에서 툭 튀어나왔다. 그는 그 욕설을 멀리한 채 다시 불안하게 자기 자신의 생각에 몰두했다. 어찌하여 그게 크랜리의 손이 아니란 말인가? 테이빈의 순박함과 순진함이 더 은밀히 그를 자극했던 것일까?
크랜리가 난쟁이에게 정성 들여 하직 인사를 하게 내버려둔 채 그는 딕슨과 함께 홀은 건넜다. ~~~그는 겁을 먹은 듯이 스티븐의 팔꿈치를 건드리며 정성스럽게 말했다. 너는 시인이니까 그 문장이 얼마나 심오한지를 알겠니? 크랜리는 기다란 집게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는 자기가 속한 민족의 사상과 욕망이 어두운 시골길이라든지 시냇가의 나무 아래라든지 여기저기 물이 고여 잇는 수렁 근처에서 박쥐처럼 날아다니고 있는 것을 느꼈다.
스티븐이 입을 열었다. 크랜리 나 오늘 저녁에 아주 기분 나쁜 말다툼을 했어. 가족들하고? 크랜리가 물었다. 어머니하고. 종교때문이었니? 그래 스티븐이 대답했다. 잠시 가만히 있다가 크랜리가 물었다. 네 어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니? 많지는 않아. 스티븐이 말했다. 너더러 부활절 성찬을 받으라는 거야. 그래 받기로 했니? 안 받을 거야. 스티븐이 말했다. 왜? 크랜리가 말했다. 나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겠어. 스티븐이 대답했다. 이전에도 그런 말을 했잖니? 크랜리가 침착하게 말했다. 뒤에 다시 한번 말해 두는 거지. 스티븐이 열띤 어조로 말했다.
너 성찬을 믿니? 크랜리가 물었다. 안 믿어. 스티븐이 말했다. 그럼 믿음을 버리겠다는 거니? 난 믿지도 않고 믿지 않는 것도 아냐. 스티븐이 대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의혹을 품고 있어. 심지어는 종교인들까지도 의혹을 품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그 의혹을 극복하거나 제쳐두고 있지. 크랜리가 말했다. 그 점에 대한 너릐 의혹이 너무 강한 거니? 나는 그 의혹을 극복하고 싶지 않아. 스티븐이 대답했다.
네가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는 성체를 믿었니? 믿었겠지? 믿었어. 스티븐이 대답했다. 그때가 너는 더 행복했었니? 크랜리가 조용히 물었다. 가령 지금보다 더 행복했었느냐고. 더러는 행복했고. 더러는 불행하기도 했어. 스티븐이 말했다. 그때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으니까.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의 내가 아니었고, 마땅히 변해서 되어야 했던 나도 아니었다는 뜻이야. 스티븐이 말했다.
하나님을 사랑해보려고 했었지.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 노력에서는 실패 했던 것 같아. 어려운 일이야. 나는 순간순간마다 나의 의지와 하나님의 의지를 결합시키려고 했었어. 그 점에서는 내가 늘 실패만 하지는 않았어. 어쩌면 아직도 그런 것은 할 수 있을지도.... 크랜리가 말을 가로채며 물었다. 너의 어머니는 그동안 행복하게 살아오셨니? 내가 어떻게 알겠니? 스티븐이 말했다.
스티븐은 아버지의 됨됨이를 낱낱이 유창하게 열거했다. 의학도였고, 조정 선수였고, 태너 가수였고, 아마추어 배우였고, 고함이나 지르는 정객이었고, 소지주였고, 소 투자가였고, 술꾼이었고, 호인이었고, 이야기꾼이었고, 누군가의 비서였고, 어떤 양조장의 무슨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고, 세금징수관이었다가, 파산자가 되어 지금은 자기의 과거나 찬미하며 사는 분이지. ~~~너는 사치의 치맛자락에 싸여 태어난 셈이구나.
모친이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라고. 그게 네게 어려운 일이겠니? 믿지 않ㅅ아도 괜찮아. 그건 하나의 형식일 뿐 그 밖의 아무것도 아냐. 하지만 그렇게 해서 모친의 마음을 평하게 해드릴 수 있지 않겠니?
그렇다면 말이야. 크랜리가 말했다. 너는 신교도가 될 용의는 없군. 나는 신앙을 상실했다고 했어. 스티븐이 대답했다.
아나도 나는 떠날 거야 그가 말했다. 어디로? 크랜리가 물었다. 어디든지 갈 수 잇는 곳으로. 스티븐이 말했다. 그래. 크랜리가 말했다. 네가 여기 살기는 힘들지도 몰라. 하지만 힘이 들어서 떠나려는 거니? 나는 떠나야 해. 스티븐이 대답했다. 가기 싫다면 굳이 네 자신이 쫓겨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고 또 네 자신을 이단자나 무법자로 여길 필요도 없기 때문에 하는 얘기야. 크랜리가 계속 말했다. 세상에는 훌륭한 신자이면서도 너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단다. 그게 너에게 놀라우냐? 교회는 단순히 돌로 지은 건물이 아니고 심지어는 성직자나 그들의 도그마도 아냐. 교회란 그 속에 있도록 태어난 모든 것들의 총집합체이거든, 나는 네가 일생 동안 무엇을 하려는 건지 몰라. 우리가 하코트스트리트 정거장 밖에서 서 있던 날 밤 네가 내게 말했던 것이 너의 포부냐?
그래. 스티븐은 크랜리가 장소와 관련지어서 생각들을 기억해내는 데 대해 미소를 짓고 싶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날 저녁에 너는 샐리갭에서 라라스로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을 놓고 도허티와 30분 동안이나 언쟁을 벌였지. 바보 자식! 크랜리가 조용히 경멸을 표하며 말했다. 샐리갭에서 라라스로 가는 길에 대해서 그 애가 뭘 알겠니? 말이 났으니 말인데, 그 애가 도대체 무얼 아니? 넋두리 같은 소리나 하는 바보 자식이니까. 그는 큰 소리로 길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스티븐이 말했다. 너 그 나머지 것도 기억하니? 그날 네가 얘기했던 것 말이니? 크랜리가 물었다. 그래, 기억 하고말고. 너는 네 정신이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그 자체를 표현할 수 있게 해줄 삶 혹은 예술의 양식을 찾아야겠다고 했었지. 스티븐은 그것을 시인하는 몸짓 삼아 모자를 벗어들었다.
자유라고 했지? 크랜리가 되풀이했다. 하지만 아직도 너는 신을 모독하는 짓을 범할 정도로 자유롭지는 못할걸. 말해 봐. 도적질은 할 수 있겠니? 도적질을 하느니 차라리 빌어먹겠다. 스티븐이 말했다. 그런데 빌어먹을 수도 없게 되면 도적질을 하겠니? 너는 내가 재산권이란 임시적인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도적질도 불법이 아니라고 말하기를 바라겠지. 스티븐이 대답했다. 누구나 그런 신념으로 행동할 게다. 그러므로 나는 네게 그런 대답은 하지 않겠어. 예수회 신학자였던 후안 마리아나 데 탈라베라의 책을 펴 봐(1536~1623. 스페인 신학자. 경우에 따라서는 왕을 시해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임금을 합법적으로 시해할 수 있는지, 또는 독약을 술잔에 타서 임금에게 먹이는 것이 좋은지를 설명해 줄 테니까. 내게 물어보려거든, 다른 사람이 나에게 도적질을 하게 내버려둘 것이냐 아니면 도적질을 당했을 때 내가 그 도적에게 이른바 세속적인 응징을 내리도록 요구 하겠느냐 따위나 물어보라고. 그래 어떻게 하겠니? 내 생각으로는 말이야. 스티븐이 말했다. 도적에게 응징을 가하는 것도 도적질을 당하는 것만큼이나 괴로울 것 같아. 알겠다. 크랜리가 말했다.
이봐, 크랜리. 그가 말했다. 너는 내게 내가 무엇을 할 것이며,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이냐만 물어봤어. 내가 무엇을 할 것이며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를 말해 주마. 내가 믿지 않게 된 것은, 그것이 나의 가정이든 나의 조국이든 나의 교회든, 결코 섬기지 않겠어. 그리고 나는 어떤 삶이나 예술 양식을 빌려 내 자신을 가능한 한 자유로이, 가능한 한 완전하게, 표현하고자 노력할 것이며, 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내가 스스로에게 허용할 수 있는 무기인 침묵, 유배(流配) 및 간계를 이용하도록 하겠어.
크랜리는 그의 팔을 움켜잡고 레슨 파크 쪽으로 가기 위해 그를 돌려세웠다. 그는 거의 교활해 보일 정도로 웃으며 연장자가 연소자에게 베푸는 듯한 애정을 가지고 스티븐의 팔을 꾹 눌렀다. 간계를 쓰겠다고 했겠다! 그가 말했다.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가난한 시인인 네가!! 네가 나에게 그런 고백을 하게 만들었어. 스티븐은 자기 팔을 누르는 힘에 전율을 느끼며 말했다. 과거에도 나는 너에게 다른 많은 것들을 고백했잖니? 그래, 이 녀석아, 크랜리는 여전히 기분 좋게 말했다.
너는 나에게 내 두려움을 고백하게 했어. 하지만 나는 너에게 내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들도 말해 주마. 나는 외로이 지내는 것,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쫓겨나는 것, 그리고 내가 버려야 할 것이 있으면 무엇이나 버리는 것, 이런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어떤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이 설사 큰 잘못이고 평생에 걸쳐, 어쩌면 영원히 계속될 잘못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크랜리는 다시 심각해져서 걸음을 늦추며 말했다. 외로운 것, 아주 외로운 것, 너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그런데 너는 그 말의 뜻이라도 아니? 그것은 다른 모든 사람들로부터 떨어져서 살아야 한다는 것뿐만 아니라 친구가 하나도 없음을 의미한다고. 그런 위험 정도야 감수할 용의가 있어. 스티븐이 말했다. 친구 이상이 되어줄 사람, 가장 귀하고 가장 진실 된 친구 이상이 되어줄 사람을 단 한 사람도 갖지 못하는데요? 크랜리가 말했다. 그의 말은 그 자신의 천성 속에 숨어 있는 깊은 심금을 울린 것처럼 들렸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 즉 있는 그대로의 자신 혹은 되고자 하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던가? 스티븐은 얼마 동안 묵묵히 그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싸늘한 슬픔이 그 얼굴에 드러나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즉 자기가 두려워하는 자신의 고독에 대해서 말했던 것이다. 너는 누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니? 드디어 스티븐이 물었다. 크랜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3월 20일 - 나의 반항을 화제로 크랜리와 오랫동안 얘기하다. 그는 의연한 태도를 취했고, 나는 유연하고 상냥하게 굴었다. 그는 어머니를 사랑해야 한다는 근거로 나를 공격했다. 그의 모친은 어떻게 생긴 분이었을까? 상상해 보았지만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언젠가 무심코 얘기하다가 그는 부친이 예순 하나 때 자기를 낳았다고 했다. 그분은 상상할 수 있다. 억센 농부형의 인간, 쑥색의 희끗희끗한 천으로 만든 양복, 널찍한 발, 단정치 못한 잿빛 턱수염, 어쩌면 사냥개를 거느리고 토끼사냥 시합에도 참가하리라. 라라스의 드와이어 신부에게 규칙적으로 헌금을 하되 많이 하지는 않으리라. 땅거미가 내린 후에 이따금 소녀들에게 말을 걸기도 했겠지. 하지만 그의 모친은? 아주 젊었을까 아주 늙었을까? 아주 젊을리야 만무하지. 그렇다면 크랜리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렇다면 늙었으리라. 십중팔구 그러하리라. 그래서 남편에게 무시당하고 있겠지. 그러므로 크랜리의 영혼이 절망하고 있는 것도 이해된다. 지쳐빠진 허리에서 나온 자식.
3월30일 - 오늘 저녁 크랜디는 도서관의 현관에서 딕슨과 그녀의 오라버니에게 어떤 문제를 내고 있었다. 한 어머니가 자식을 나일 강에 빠뜨렸다는 거였다. 아직도 어머니 타령이었다. 항 악어가 그 애를 붙들었는데 어머니가 애를 돌려달라고 하니까, 악어는 자기가 그 애를 잡아먹을 것인지 먹지 않을 것인지를 어머니가 알아맞히면 돌려주겠다고 했다는 거였다. 레피더스라면 말할 것이다. 이런 정신 상태야말로 당신에 나라의 태양이 작용해서 당신네 진흙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세익스피어의 엔토니와 클레오파트라 2막 7장) 그런데 나의 정신 상태는? 나의 정신 상태 또한 그렇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런 정신 상태는 나일강에 빠뜨려야지!
4월 3일 - 핀들레이터 교회의 건너편 담배 가게에서 데이빈을 만났다. 그는 검정 쉬웨터를 입고 헐리 경기용 막대기를 들고 있었다. 내가 떠나려고 한다는 소문이 사실이냐고 하면서 그 이유를 물었다. 그에게 타라로 가는 첩경은 홀리해드를 거치는 것(타라는 고대 아일랜드 민족의 왕도이고 홀리해드는 웨일스의 항구로서 아일랜드와 영국 간의 연락선이 입출항하는 곳이므로, 아일랜드인이 옛 영광을 되찾는 첩경은 아일랜에 머무는 것이 아니고 해외로 나가는 데 있다는 뜻을 강하게 암시하는 말이다)이라고 말해 주었다.
4월 15일 - 오늘 그라프튼 가에서 덜컥 그녀와 마주쳤다. 군중들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우리 둘은 걸음을 멈추었다. ~~~내게 시를 쓰느냐고 물었다. 누구에 관한 시를 쓰겠느냐고 그녀에게 되물었다. 이 물음은 그녀를 더욱 혼란케 했으며 그래서 나는 미안했고 야비한 짓을 했구나 싶었다.
4월 16일 - 가자! 가자!
4월 26일 - 어머니는 내가 새로 구한 중고 옷가지들을 정돈하고 있다. 내가 고향과 친구들을 떠나 내 자신의 삶을 살면서 심정이란 무엇이며 심정으로 느끼는 바는 또 어떤 것인지를 배우게 되도록 어머니는 기도하겠다고 말한다. 아멘. 그렇게 되어야지. 다가오라. 삶이여! 나는 체험의 현실을 몇 백만 번이고 부닥쳐보기 위해, 그리고 내 영혼의 대장간 속에서 아직 창조되지 않은 내 민족의 양심을 벼리어내기 위해 떠난다.
4월 27일 - 그 옛날의 아버지여, 그 옛날의 장인이여, 지금 그리고 앞으로 영원히, 나에게 큰 도움이 되어주소서.
더블린, 1904년,
트리에스테, 1914년. (조이스는 1904년에 노라 바나클이라는 여인과 만나 함께 더블린을 떠나 사실상의 자기 유배의 길에 나서면서 10년 후에는 기필코 화제가 될ㄹ 만한 책을 쓰겠다고 선언했으며, 1914년에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에서 이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완성하여 잡지 연재를 시작했다).
[Review]
이 책<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주인공 ‘스티븐’은 아직 대학을 다니는 청년의 나이로 예술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이별하고 조국인 아일랜드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나는 외로이 지내는 것,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쫓겨나는 것, 그리고 내가 버려야 할 것이 있으면 무엇이나 버리는 것, 이런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어떤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이 설사 큰 잘못이고 평생에 걸쳐, 어쩌면 영원히 계속될 잘못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본문)
미국의 내러티브 논픽션 분야 최고 권위자 ‘잭 하트’는 그의 저서 <퓰리처 글쓰기 수업>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학적 주제는 작가 개인의 가치관, 즉 인간사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지극히 사적인 이해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작가가 어떤 소설을 쓸 때는 자신의 경험이나 들은 이야기 등과 같은 소재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지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처음부터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이 책<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저자, ‘제임스 조이스 1882~1941’는 아일랜드 태생으로 ‘유니버시티 칼리지 더블린’에서 문학학사 학위를 받은 후, 1904년(22살)에 ‘노라 바나클’이라는 여인과 함께 고국을 떠나 사실상 유배의 길에 올랐다. 그리고 그는 10년 후에는 기필코 화제가 될 만한 책을 쓰겠다고 선언한 약속대로 1914년, 이 책을 잡지에 연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책은 동 시기에 출판된 그의 소설<더블린 사람들>과 함께 큰 반향을 일으켰다.
더블린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조이스’는 유년 시절을 보내고, 부친이 경제적 파산 선고를 받은 후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버지의 음주와 폭력과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혼란한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작가가 활동하던 시기인 1910년대, 아일랜드는 영국의 속국으로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갈등, 독립을 원하는 아일랜드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 등으로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가 고국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된 시기에 쓴, 첫 작품<더블린 사람들>은 대부분 그곳 사람의 무기력하고, 어둡고 타락한 모습들이 담겨 있는 열다섯 편의 단편으로, 이 소설을 연재하는 내내 중단과 소송의 위협을 받으며, 출판이 지연되었고, 조이스는 이 일로 아일랜드를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스티븐이라는 주인공 역시, 아동기에 부친이 경제적 파산을 받고 가세가 기울면서 가족이 변두리 도시로 이사를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어머니의 사랑과 갈등, 배움의 성장 과정에서 예술과 문학, 철학, 종교적 갈등과 인간의 도덕률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통하여 예술가의 길을 가기로 결단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작가의 반자전적 소설로 평가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계기로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고 후작인 <율리시스>, <피네건의 경야>등의 저술을 남기고 58세의 나이로 스위스에서 사망하여 그곳에 묻혔다.
오래된 책이지만 ‘제임스 조이스’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는 그의 독특한 유머 감각,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해학적 언어를 접하게 되는 책이다. 특히 평범한 스토리를 흥미롭게 이어가는 작가의 풍부한 소재에 감탄하게 된다. 성장기의 청소년들에게 유익하다고 본다.
(본문)
“어머니는 학교에서 말씨가 거친 애들과는 얘기를 하지 말라고 그에게 타일렀다. 착한 어머니였다. 처음 입학하던 날, 이 고성의 현관에서 어머니와 작별 인사를 할 때 어머니는 쓰고 있던 베일을 코까지 접어 올리고 그에게 키스를 해주었다.”
“사랑하는 어머니.
저는 지금 아파요. 집에 가고 싶다고요. 제발 오셔서 저 좀 데리고 가주셔요. 저는 지금 진료소에 있답니다. -어머니의 귀여운 아들. 스티븐 올림.“
“케이시 씨는 아일랜드의 독립과 파넬을 지지하고 있었고 아버지 또한 그러했다. 단티 또한 아일랜드의 독립을 원한다는 데 있어서는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밤 광장에서 악대가 마지막으로 신이여, 여왕을 도우소서를 연주하고 있을 때, 한 신사가 모자를 벗으니까 단티는 들고 있던 우산으로 그의 머리를 갈긴 적이 있었으니까.”
“디덜러스 씨는 시골 가수처럼 고개를 앞뒤로 흔들며 작은 소리로 노래를 흥얼대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두지만, 나는 개신교도가 아닐세, 케이지 씨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얘 스티븐, 아직도 내겐 힘이 남아 있단다. 디덜러스 씨는 잘 타지 않는 불을 푹푹 쑤시면서 말했다. 얘야, 우린 아직 죽지 않았어, 안 죽었고말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거니와, 하나님, 당신의 이름을 들먹여서 죄송합니다. 우리는 아직 다 죽은 것이 아니란 말이다.”
“설교자의 칼날이 그의 병든 양심을 깊이 파헤치고 있었고 그래서 그는 자신의 영혼이 죄악 속에서 곪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렇다 설교자의 말이 옳았다. 하나님의 시간이 되었다. 그간 그의 영혼은 마치 소굴 속에 숨어 있는 짐승처럼 그 자신의 오물 속에 묻혀 있었지만, 이제 천사의 나팔 소리가 그를 죄악의 암흑으로부터 광명 속으로 몰아냈던 것이다.”
“나지막하게 쳐놓은 블라인드를 뚫고 들어온 탁한 주홍빛 빛이 채플을 물들이고 있었다. 블라인드의 끝자락과 창틀 사이의 벌어진 틈으로 한 가닥의 파리한 빛이 창처럼 뚫고 들어와서, 천사들이 입고 있는 역전(歷戰)의 사슬 갑옷처럼 번쩍이고 있던 제대 위의 양각 놋촛대들을 비추고 있었다. ”
“저녁이 되자 그는 집을 나섰다. 습하고 어두운 공기의 첫 감촉과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기도와 눈물을 통해 진정되었던 그의 양심을 다시 아프게 했다. 고백해야 한다! 눈물과 기도를 가지고서 양심을 진정시키는 것으로는 모자랐다. 그는 성령의 대리자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그 동안 감춰 온 죄악을 진심으로 회개하며 고백해야 했다. 그를 맞이하기 위해 집의 출입문이 열리면서 문의 발판이 문지방 너머로 끌리는 소리가 다시 그의 귀에 들리기 전에, 부엌 식탁에 저녁밥이 차려져 있는 것을 다시 보기 전에, 그는 무릎을 꿇고 고백하고 싶었다.”
“미닫이가 덜컥 하고 열리자 그의 가슴속에서 심장은 쿵쿵 뛰었다. 창살에 늙은 신부의 얼굴이 보였다. 한 손으로 고이고 있는 그 얼굴이 그를 외면하고 있었다. 그는 십자가를 그리며 자기는 죄를 지었으니 축복을 내려달라고 신부에게 빌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겁에 질려 머리를 숙인 채 고백의 기도문을 외웠다. <저의 가장 무거운 허물>이라는 대목에 이르자 그는 숨이 차서 기도를 중단했다. ~~~지금 몇 살이지요? 열여섯입니다. 신부님! “
“내가 무엇을 할 것이며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를 말해 주마. 내가 믿지 않게 된 것은, 그것이 나의 가정이든 나의 조국이든 나의 교회든, 결코 섬기지 않겠어. 그리고 나는 어떤 삶이나 예술 양식을 빌려 내 자신을 가능한 한 자유로이, 가능한 한 완전하게, 표현하고자 노력할 것이며, 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내가 스스로에게 허용할 수 있는 무기인 침묵, 유배(流配) 및 간계를 이용하도록 하겠어.”
“어머니는 내가 새로 구한 중고 옷가지들을 정돈하고 있다. 내가 고향과 친구들을 떠나 내 자신의 삶을 살면서 심정이란 무엇이며 심정으로 느끼는 바는 또 어떤 것인지를 배우게 되도록 어머니는 기도하겠다고 말한다. 아멘. 그렇게 되어야지. 다가오라. 삶이여! 나는 체험의 현실을 몇 백만 번이고 부닥쳐보기 위해, 그리고 내 영혼의 대장간 속에서 아직 창조되지 않은 내 민족의 양심을 벼리어내기 위해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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