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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 래 식 ] 스크랩 Rimsky-Korsakov : March from `Tsar Saltan` Suite, Op.57
바우 추천 0 조회 14 14.04.07 12:2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March from 'Tsar Saltan' Suite, Op.57

림스키 코르샤코프 : 술탄황제의 이야기 중 `행진곡

 

 

 

 
Nikolai Rimsky-Korsakov 1844~1908

 

 

Tale of Tsar Saltan Suite, Op.57

술탄 황제 이야기의 줄거리

옛날 어느 나라에 술탄이란 황제가 살았습니다. 이 나라의 제일 가는 부자 상인에게는 세 딸이 있었어요. 설탄 황제는 세 딸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막내를 왕비로 맞아들였습니다. 두 언니들은 동생이 왕비가 된 것을 몹시 질투했어요. 어느 날 술탄 황제가 전쟁 때문에 궁궐을 비우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두 언니들은 왕비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트렸어요. 전쟁에서 돌아온 황제는 소문만 믿고 화가 나서 왕비와 어린 왕자를 나무통 속에 넣고 바다에 던져버렸지요. 불행 중 다행으로 왕비와 왕자가 들어있던 나무통은 마법에 쌓인 어느 섬에 닿았습니다.

간신히 살아남은 왕비는 왕자를 건강하게 잘 키웠어요.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왕비와 왕자는 지난날의 슬픔을 다 잊고 마법의 섬에서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왕비와 왕자는 해변을 거닐다가 백조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백조는 땅벌 떼들에게 마구 쏘여 다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깜짝 놀란 두 사람은 백조를 구해 주었습니다. 백조는 자신을 구해 준 왕비와 왕자에게 감사하며 그 보답으로 세 가지 선물을 했습니다. 첫 번째 선물은 다람쥐였어요. 이 다람쥐는 금과 초록색 보석으로 만든 열매를 따다 주었습니다. 두 번째는 서른 세 명의 무사들을 신하로 주었어요. 마지막으로 백조는 아름다운 공주로 변해서 왕자의 신부가 된 것입니다.

 

Saltan (술탄 ????????)

 

술탄(아랍어: ????????)은 이슬람 세계에서 세습 군주제로 통치하는 국가 또는 지역의 군주를 부르는 말이다. 술탄은 아랍어로 "권위", "권력"을 뜻한다. 아랍 제국의 경우에는 왕으로 취급되었고, 오스만 제국의 경우에는 황제로 취급되지만 실은 술탄은 황족을 지칭하는 칭호이다. 

 

쿠란에서는 술탄을 "알라에서 유래된 권위"를 의미하는 말로 정의하였으며 11세기에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의 비호자로서 세력을 늘린 셀주크 왕조의 투그릴은 칼리파로부터 술탄의 칭호를 수여받았다. 셀주크 왕조가 쇠퇴한 후에는 룸술탄국이나 호라즘 왕국 등 셀주크 왕조로부터 자립한 이슬람 왕조들이 군주의 칭호로서 채용하여 이슬람 세계에서 일반적인 칭호로 정착한다. 이후, 아이유브 왕조, 맘루크 왕조 등의 나라들은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의 승인 아래에서 군주를 술탄이라고 칭해, 스스로의 권위 부여에 이용하였지만, 자주 비교되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로마 교황에 의해 즉위하는 것처럼 반드시 칼리파의 임명을 필요로 한 것은 아니다.

 

오스만 왕조에 술탄의 칭호를 최초로 자칭한 것은 2대째인 오르한이다.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하기 전까지는 서양의 프린스(Prince)에 해당하는 술탄으로 지칭되었고, 메흐메트 2세 이후로는 황제라는 의미의 파디샤(Padishah), 샤한샤(Shahanshah), 술탄 에스 셀라틴{Sultan-es-selatin(술탄 중의 술탄)} 및 로마 황제 등의 칭호를 사용했다. 제정(帝政)이 된 메흐메트 2세 이후 기존 술탄, 여술탄의 칭호는 황자, 황녀를 지칭하는 칭호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오스만 제국의 역대 군주를 가리켜 술탄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관용적으로 용납되고는 있으나 엄밀히 말하면 잘못된 것이다. 19세기에 술탄-칼리파제가 등장하면서 오스만 제국의 군주는 세속적 권력인 왕권과 종교적 권위인 칼리파권을 겸비하게 되었다.

 

술탄국은 술탄이 통치하는 나라 또는 지역을 뜻한다. 현재 오만과 브루나이, 말레이시아의 군주들이 술탄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에서도 술탄직이 명예직으로 계승되고 있다. 대부분의 술탄직이 세습직인 데 비해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의 술탄직은 선출직이다.

 

Nikolai Rimsky-Korsakov (1844-1908)
 

1844년 3월 18일 노브고로트 근처 티흐빈에서 출생하였다. 유년시절부터 음악적 재질을 보였으나, 정식 음악교육은 받지 않고 1856년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졸업 후 해군사관이 되었다. 이 무렵 발라키레프와 사귐으로써 ‘5인조(발라키레프, 큐이, 무소르크스키, 보로딘, 림스키코르사코프)’의 한 멤버가 되었으며, 그때부터 작곡지도도 받았다. 1871년 페테르부르크음악원 교수로 초빙되고 또 해군군악대의 지휘자로서 내외의 명곡을 편곡하는 한편 궁정성가대지휘자도 지냈다.


1881년 무소르크스키가 사망하여 ‘5인조’가 해산되자, 악보 출판업자인 벨라예프의 도움으로 ‘벨라예프그룹’을 결성, 후진인 글라즈노프, 랴도프 등을 지도하였다.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이 계기가 된 혁명소동 때는, 스트라이크를 일으킨 학생측에 서서 학원에의 권력개입을 거절한 탓으로 페테르부르크의 교수직에서 쫓겨났으며, 그의 작품은 연주 금지처분을 당했다. 그후 복직이 되었으나 퇴직하고, 심장병으로 급서할 때까지 자택에서 작곡과 후진양성에 힘썼다.

 


그의 작풍은 대체로 색채적이고 묘사적이며 명쾌하고 이해하기 쉬운 화성적인 표현에 차 있다. 관현악의 묘사성 등은 러시아의 오페라, 표제교향시, 가곡 분야에 큰 영향을 끼치고 라벨, 레스피기 등 근대 작곡가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주요 작품에는 《스페인기상곡》(1887) 《세헤라자데》(1888)와 같은 표제음악과, 《사드코》(1898) 《설희(雪姬)》(1882) 《금계(金鷄)》(1909) 등의 오페라가 많으며, 이들의 소재로는 러시아의 민요와 권력에 대한 저항, 그리고 이교적인 세계를 다룬 것이 대부분이다. 이 밖에 합창곡 ·가곡 ·피아노곡 ·관현악곡 등도 많다. 저서에는 《러시아민요 100곡》(1877) 《화성학 실습》(1884), 《관현악법 원리》(1913) 자서전인 《나의 음악 연지(年誌)》(1909) 등이 있다.

 

Tsar Saltan Suite - March (Rimsky-Korsakov/arr. O'Bry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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