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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철학자, 음식 르네상스의 식탁을 말한다
음식은 오늘날 개인의 고유한 취향은 물론 최신 소비문화 트렌드를 잘 보여 주는 가장 강력한 기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하루 종일 미디어와 SNS를 통해 전시되고 쏟아지는 음식에 대한 욕망과 찬탄은 현재를‘음식 르네상스’의 시대로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식탁은 유행, 상식, 주워들은 의견, 편견, 합리화된 욕망이 뒤범벅된 채 음식과 맺어야 할 관계에 대한 성찰이 빠져 있다.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는 가장 사소하고도 일상적인 행위인 동시에 관계와 윤리, 실천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책은 유기농, 친환경, 동물 복지, 지역 생산 재료 등 음식을 둘러싼 논의를 근원부터 들추어 꼼꼼히 살펴보고, 개인이 좋은 삶을 위해 갖추어야 할 품성과 습관을 먹는다는 측면에서 논하고 그것을 어떻게 일상에 적용할 수 있는지 모색한다.
◈ 지금 가장 뜨거운 키워드, 음식에 대한 철학적이고 실용적인 안내서
음식을 다룬 프로그램만으로 24시간을 보낼 수 있을 만큼 음식은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키워드 가운데 하나다. 그럼에도 정작 우리 식탁과 이를 둘러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빠져 있고 음식은 그저 유행으로만 소비되고 있다. 영국의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Julian Baggini는 먹는다는 것과 관련된 사회적, 정치적, 철학적 논의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더 나은 삶을 위해 우리가 갖추어야 할 품성과 윤리를 살펴본다.
저자는 철학자답게 먹는다는 것과 관련된 윤리적 덕목과 품성을 두루 다루는 것은 물론이고,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은 논의를 위해 유명 요리사, 환경·유기농·공정 무역 등의 관련 단체, 음식 산업 종사자 등을 심도 있게 인터뷰한다. 또한 직접 요리를 해서 먹는 생활인으로서 일상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해 실천해야 할 품성과 습관을 말한다. 이 책이 식생활과 관련된 제안-이를 위한 실천적, 윤리적 덕목-실용적 레시피로 구성(예를 들어 18장은‘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알기-객관성-와인’이다)된 것도 이러한 저자의 다양한 관점을 반영한 것이다.
◈ 가장 사소하지만 가장 거대한 실천이 이루어지는 장소, 식탁
저자가 제기하는 음식 관련 담론에 대한 문제 제기는 자못 도발적이다. 우리가 다소 교조적으로 받아들이던 지역 생산 식재료, 식량 자급자족, 채식주의 등에 대한 무조건적 옹호는 저자의 치밀한 논리 앞에서 여지없이 반박된다. 예를 들어, 지역 생산에 드는 비용과 식재료 수입에 드는 비용을 실제로 비교하면 교역에 의존하는 것이 여전히 효율적이다. 효율성 외에도 맛에 있어서도 무리해서 자급자족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2장‘타급자족’참조). 물론 무차별적인 식재료 종속을 막고 지역 생산자 보호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책에서 기존의 논리에 가장 충격을 주는 부분은 채식과 육식, 도축을 다룬 부분이다(5장‘배려 있는 도살’참조).‘연민은 이해를 요한다’는 말처럼, 채식/육식을 둘러싼 감정적인 전제에서 벗어나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필요하다. 저자에 따르면 많은 이들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자연 방목은 실제로는 동물에게 매우 불리한 환경을 제공하는 사육 방식이며, 단지 육식을 피하기 위해 하는 채식이라면 환경이나 동물 복지의 차원에서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자는 여러 정보와 도덕적 입장이 뒤엉킨 현실에서 우선 도덕적 회의를 품는 게 중요하며 식탁에 오르는 음식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 먹는 법을 아는 것이 사는 법을 아는 것이다
타인, 동물(자연)과의 관계를 둘러싼 도덕성과 기존 담론에 대한 논의는 이제 개인, 일상의 차원에서 어떻게 적용될 것인가의 문제로 넘어간다. 저자는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인간을‘영혼-육체적 존재’라고 규정하고 이 규정에 바탕을 두어 논의를 전개한다. 누구나 한번쯤은 시도해 보았을 저염식이나 전통 식생활 등 이른바 건강식, 체중 감량과 유지, 단식 등을 생각해 보자. 저자는 이를 위해 갖가지 정보나 요령, 무조건적인 억제, 일상의 즐거움을 앗아 가는 혹독한 통제에 의존하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을 가져오며, 쾌락적 존재로서 인간의 본성에도 맞지 않다고 말한다.
건강이나 적정 체중 유지 등의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우선 이에 필요한 실천적 지혜phronesis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며,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가릴 수 있는 판단력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는 쾌락에의 권리를 모두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 체중 감량을 마음먹었다면 충동을 통제할 의지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요령이나 보조적 수단(약물, 수술 등)이 보다 쉽고 일반적이지만, 저자는 무엇보다 의지력의 작동 원리를 이해할 것을 강조한다(14장‘감량’, 15장‘체중 유지’참조). 예컨대 생각에 대한 생각(내 앞에 케이크가 있지만 다른 생각을 해 본다), 중독 치료에서 한계를 정해 놓은‘밝은 선’(지금 내가 고른 담배가 마지막 담배다), 희열을 얻는 시기를 미루기(매일 먹는 케이크보다 일주일에 한 번 먹는 케이크가 더 맛있다), 욕구의 파도타기(지금 허기를 참으면 그대로 지나간다)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덕목과 실천적 지혜는 식생활뿐만 아니라 다른 일상에도 그대로 적용할 만하다. 따라서 전설적 요리사 오귀스트 에스코피에(Auguste Escoffier)가 말한 대로“먹는 법을 아는 게 사는 법을 아는 것이다.”
◈ 철학자의 식탁, 미식가의 식탁―좋은 삶을 위해 먹는다는 것을 고민하다
지금 우리의 식탁은 어떤가.‘음식 포르노’라 할 만큼 음식을 먹고 만드는 콘텐츠가 우리의 시각과 청각을 지배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저 구경꾼에 머무르는 데 만족하고 있지는 않은가. 시간에 쫓겨 끼니를 때우거나 가장 손쉽고 싸게 먹히는 식재료만 냉장고에 채우고 있지는 않은가. 먹는다는 것에 결부된 즐거움과 책임감을 깨닫지 못한 채 유행에 휩쓸린 선택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책은 잘 살기 위해서는 좋은 습관과 미덕을 갖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러한 측면에서 먹는 법과 관련된 도덕성과 윤리적 덕목, 실천적 지혜를 보여 준다. 음식을 둘러싼 여러 대안 운동에 대한 논의와 이후 개인의 윤리적 덕목에 대한 접근에서 살펴볼 수 있듯 저자는 실제 생활에서 지키기 어려운 엄격하고 금욕적인 태도를 비판하고 실용적이고 유연한 자세를 지니고 있다. 또한 먹는 일에 있어 신념, 절제, 취향(“취향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등이 최우선의 미덕으로 여겨지는 경직된 관점에서 벗어나 제대로 알고 배우고 즐기는 것이 지금 우리의 식탁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더없이 사소하고도 현실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철학적이고 실천적이며 심미적이고 쾌락 추구적인 행위, 바로 먹는다는 것에 좀 더 마음을 써야 하지 않을까를 묻고 있다.
추천사
먹기와 생각하기, 둘 다 필수적이다. 놀라운 책이다. -퍼거스 헨더슨(Fergus Henderson, 셰프)
바지니는 음식을 둘러싼 복잡한 윤리적 딜레마들을 지나면서 춤춘다. …… 주말 농장과 슈퍼마켓, 저녁 식탁을 넘나들면서 철학을 우리 가까이로 가져온다. 모든 이의 부엌에 요리책과 함께 나란히 꽂아 두어야 할 책. -해리엇 램(Harriet Lamb, 공정무역 인터내셔널 최고 경영자)
저자는 특유의 명료하고 읽기 쉬운 문체로 문화적·과학적·철학적 복합성을 고려하여 음식과 음료에 대해 훌륭한 글을 썼다. …… 먹고 마시는 일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책에 빨려 들 것이다. -팀 크레인(Tim Crane, 케임브리지 대학 철학 교수)
저자는 대규모 산업과 체인 레스토랑의 폐해는 물론이고 유기농과 지역 생산 재료로 만든 음식의 우월함에 대해서도 자기만족적인 가정을 철저하게 해체한다. -스티븐 풀(Steven Poole, 저널리스트)
[교보문고 제공]
이 책의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는 정신과 육체, 마음과 그리고 한마디로 영혼을 가진 완전한 주체로서 삶의 방법을 모색하자는 도전이다. 음식은 정신과 육체, 마음과 영혼이 하나의 개체를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유일한 단서는 아니지만 감각, 사회, 창조, 감정, 그리고 내가 이 책이 보여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지적 능력까지 인간성의 모든 본질적 측면과 얽혀 있으므로 특히 잘 맞는 열쇠다. 음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려면 자연, 동물은 물론 우리 인간끼리 관계, 그리고 정신과 육체의 통합 또한 감안해야 한다. 더군다나 철학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뜬구름을 잡기 십상이지만, 음식은 우리의 현실 감각을 지켜 준다. 먹고 마셔야 하는 필요보다 더 기본적인 건 없으니, 음식과 철학을 한데 아우르더라도“철학을 하더라도 사람이 되어라”라는 데이비드 흄의 충고를 잊을 위험이 없다. _10쪽「머리말」
뉴질랜드는 세계 어느 지역과도 몇 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어, 이곳의 세계 무역은 새로운 지역주의 숭배로부터 위협받는다. 그래서 링컨 대학의 연구팀이“영국에서는 유고형분 1톤당 2912킬로그램의 이산화탄소를 발산하는 데 반해 뉴질랜드에서는 (영국까지 수송을 위한 것을 포함해도) 1423킬로그램밖에 발산하지 않는다”고 하니 마음이 놓인다. 뉴질랜드의 방목 여건은 사철 완벽하고, 이는 버터와 양고기를 상대적으로 적은 탄소 발자국으로 생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더구나 컨테이너선은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운송 수단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중국에서 유럽까지 컨테이너 하나를 운송할 때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유럽의 장거리 트럭 운송 200킬로미터분에 이른다”고 한다. 따라서 마르세유에서 뉴욕으로 보내는 프랑스 와인 한 병의 탄소 발자국이 같은 레스토랑에 트럭으로 운송되는 캘리포니아 와인 한 병보다 적으며, 뉴질랜드 버터 한 조각이 아마도 영국에서 저어 만든 것보다 적은 탄소 발자국을 지닐 것이다.
따라서 지역 생산 자체는 그 자체로 맛이 더 낫다거나 지속 가능성이 더 높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_30~31쪽 「2장 타급자족」
개발 도상국의 공급자를 대하는 유일하게 합리적인 방식은 도덕적인 수치이며, 우리 모두가 손을 보태고 있다. 우리의 현실은 경제의 핵심에 대다수 사람이 못 보는 도덕의 결여가 존재하므로 노예 제도를 유지했던 사회와 같다. 19세기의 노예 제도처럼 공정 무역은 오랜 시간 소수 또는 선의의 괴짜라고 종종 취급당한 이들이, 엄청난 대다수가 일상의 핵심이라 숙명적으로 받아들인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결과다. 인류가 줄이기 위한 절차를 밟아 온 다른 심각한 부당함――인종 차별이나 여성 비하――과 더불어, 개발 도상국 노동자들을 다른 이들과 다르게 대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으므로 이 또한 잘못된 처사라고 보게 될 것이다. 또한 노예 제도나 인종 차별, 성차별처럼 따져 보면 논리가 없는 ‘상식’을 정당화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처럼 명확하게 부당한 혐의를 받아 노예 소유주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희생자는 멀리 떨어져 있고 우리의 무관심에 의해 간접 피해만을 입기 때문에 그렇게 엄청난 부당함에 얽히는 게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현 상태가 아주 자연스러워 보이고 커피를 마시는 데 아무런 잘못도 느끼지 못하므로, 우리처럼 이렇게 선하고 멀쩡한 사람이 체계적으로 그다지 악하게 행동할 리가 없다고 확신한다. 따라서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이 논리의 순서는 잘못되었다. 죄가 있는지 바로 따져 보아야 하는 상황에서 무고함부터 가정하고 거슬러 올라간다. _105쪽「6장 제값을 치르자」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은 정확하게 인생을 즐기는 유형은 아니었고, 음식에 대해서는 특히 소탈했던 것으로 보인다. 걸작인『철학적 탐구Philosophische Untersuchungen』에서 그가 든 음식에 대한 세 가지 예에서도 드러난다. 하나는 풀을 뜯는 소에 대한 것이었고 나머지 둘은 알맞은 식사 시기에 대한 것이었다. “아침 식사에 대해서, 오늘은 늦게 먹게 될 것인지 생각했다”와 “자, 내가 누군가에게 정확히 한 시에 시작한다는 것을 안다면 ‘저녁 식사 시간에 잘 맞춰 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진짜로 정확함의 문제인 것일까?”다.
이는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가 그린 비트겐슈타인과 매우 흡사하다. 1929년 새로운 지인에게 쓴 편지에서 “내 아내가 그에게 스위스 치즈와 호밀빵을 점심으로 주었더니 좋아하더군. 그러고는 모든 끼니에 호밀빵과 스위스 치즈만을 고집스레 먹고 아내가 준비한 다른 요리는 거의 무시하는 게 아닌가. 비트겐슈타인은 같은 걸 먹을 수만 있다면 뭘 먹는지 크게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