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2부 장강의 영웅들 (315)
제10권 오월춘추
제 39장 미인 서시(西施) (10)
며칠 후 자공(子貢)은 제나라 수도 임치로 갔다.
진상(陳常)은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왔다는 말에 빙그레 웃으며 중얼거렸다.
"자공이 임치로 온 것은 나를 설득하기 위해서로구나."
진상(陳常)은 자공을 자신의 집무실로 불러들였다.
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대는 노나라를 위해 세객(說客)으로 오셨소이까?“
자공(子貢)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재상께서는 틀리셨습니다.
저는 노(魯)나라를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제(齊)나라를 위해 왔습니다."
진상(陳常)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제나라를 위해 오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본래 노나라는 치기 어려운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재상께서 노(魯)나라를 치려 하시니, 저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그대는 노나라를 치는 것이 어찌 어렵다고 말하는 게요?"
"우선 노(魯)나라는 성벽이 낮고 성을 둘러싼 해자(垓字)는 얕으며, 임금은 어리석고 신하들은 위선적이어서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또한 군사와 백성들은 싸우기를 겁내고 싫어하니, 이런 나라는 치기가 어렵습니다.
재상께서 지난날의 일을 앙갚음할 생각이시라면 우리 노(魯)나라보다 오(吳)나라를 치는 게 나을 것입니다.
오나라로 말할 것 같으면, 우선 그 성이 튼튼하고 성지(城池)가 깊으며, 군사는 강하고 무기는 날카롭습니다.
또한 신하들도 용맹스럽고 지혜가 넘치니, 오나라야말로 무찌르기 쉬운 상대입니다."
진상(陳常)은 자공이 자신을 조롱한다고 생각했다.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대가 어렵다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쉽고, 그대가 쉽다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오.
그대가 이렇듯 어지러운 말로 나를 현혹시키려는 까닭이 무엇이오?
그런 말을 하려거든 당장 돌아가시오."
그러나 자공(子貢)은 여전히 태연자약한 표정이었다.
"제가 사실대로 말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좌우에 있는 사람들을 내보내십시오.
제가 재상에게만 그 뜻을 상세히 풀어드리겠습니다."
진상(陳常)은 궁금함을 어쩌지 못하여 좌우 사람을 밖으로 내보냈다.
방 안에는 두 사람만이 남았다.
자공(子貢)이 다시 입을 열었다.
"모름지기 나라 안에 근심이 있을 때엔 강한 적을 공격해야 하며, 나라 밖에 근심이 있을 땐 약한 자를 공격해야 합니다.
제가 보건대 재상께서는 지금 나라 안의 일로 근심이 가득합니다.
다른 대신들을 제어하고 싶어도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이럴 경우 국력이 약한 노(魯)나라를 쳐 무찌르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노나라를 친 대신들이 모든 공로를 차지하고 재상께선 그들의 세력이 커지는 것만 구경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다른 대신들은 입지가 강화되고, 재상은 오히려 위태로움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
"그러나 이와 반대로 오(吳)나라를 친다고 가정해보십시오.
모든 대신들은 강한 오나라를 무찌르기 위해 온 힘을 쏟아부을 것이요, 그러면 그들의 국내에서의 힘은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곧 재상의 독주를 의미하는 것이요, 큰 이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 이제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재상께서는 노(魯)나라를 치는 것이 유리하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오(吳)나라를 치는 것이 유리하다고 보십니까?"
자공의 말에 진상(陳常)은 지금까지의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이었나를 깨달았다.
그는 안색을 부드럽게 바꾸며 거듭 물었다.
"좋은 가르침이오. 그대의 말로 인해 나의 걱정이 일시에 씻어지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미 우리 군대는 노(魯)나라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갑자기 오(吳)나라로 방향을 바꾸라고 하면 모든 대신들이 나를 의심할 터인데, 이 일을 어찌 처리하면 좋겠소?"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재상께서는 일단 제(齊)나라 군사를 문수가 일대에 주둔시키고 움직이지 않게 명하십시오.
그러면 저는 이 길로 오(吳)나라로 가서 오왕에게 '제나라를 쳐서 노(魯)나라를 구원해주십시오' 라고 요청하겠습니다.
오나라가 제나라를 치면 자연스럽게 군대를 돌릴 수 있으니, 누가 재상을 의심하겠습니까?"
진상(陳常)은 기뻐하며 국서에게 사람을 보내어 명했다.
- 세작의 보고에 의하면 오(吳)나라 군대가 우리 국경 지역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하오.
장군은 문수가에 주둔하되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여차하면 남쪽으로 달려갈 채비를 갖추시오.
진상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자공(子貢)은 그 길로 남쪽 오(吳)나라로 내려갔다.
오왕 부차에게 알현을 청한 후 말했다.
"제(齊)나라는 일찍부터 만승지국(萬乘之國)으로서 언제나 천하 패업에 대한 야욕을 불태워왔습니다.
지금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그 야욕을 이루기 위한 첫보입니다.
제군(齊軍)은 노(魯)나라를 무찌르고 나면 반드시 오(吳)나라를 칠 것입니다.
이는 진실로 노나라나 오나라를 위해 불행한 일입니다.
왕께서는 어찌하여 그들의 수도가 비었을 때 군사를 몰아 쳐들어가지 않으십니까.
만승의 나라인 제나라를 쳐서 제, 노나라를 속국으로 거느리면, 오나라의 위세는 진(晉)나라보다 더 커집니다.
왕께서는 천하 패권을 잡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렇지 않아도 북방을 노리고 있던 오왕 부차(夫差)는 자공의 권유를 듣자 귀가 솔깃했다.
그러면서도 어쩐지 선뜻 승낙하기가 께름칙했다.
자공의 변설에 속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일었던 것이다.
그는 슬며시 발을 뺐다.
"그대의 말이 옳소. 하지만 우리나라 남쪽에는 월(越)나라가 있소이다.
내가 일찍이 월왕을 회계산으로 몰아넣어 핍박한 적이 있는데,
듣자하니 그 일로 인해 월왕이 절치부심(切齒腐心)하며 내게 보복할 기회만을 기다리는 중이라 하오.
나는 먼저 월나라를 쳐 정벌한 후 그대의 계책에 따라 제(齊)나라를 칠까 하오. 그때까지만 기다려주시오."
자공(子貢)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안됩니다. 그렇게 하면 오(吳)나라는 천하 패업을 다툴 수 없습니다.
월나라는 약하고 제나라는 강합니다.
약한 월(越)나라를 쳐봤자 아무 이득이 없으며, 강한 제나라를 내버려두면 큰 불행이 닥칩니다.
오(吳)나라가 월나라를 치는 사이 제(齊)나라도 노나라를 쳐 북방을 도모하면 그때는 북쪽으로 나와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
조그만 이익을 위해 커다란 손실을 감수하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이 취할 바가 아닙니다.
어찌 월나라와 제나라를 비교하십니까?
만일 왕께서 정히 월(越)나라가 근심이 되신다면, 제가 월왕을 만나 월나라에서도 응원군을 보내도록 설득하겠습니다.
그리되면 월나라는 텅 비게 되고, 왕께서는 아무런 걱정없이 제(齊)나라 정벌에 전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자공의 말이야말로 부차(夫差)가 노리던 바가 아니던가.
그는 의자가 들썩거릴 정도로 기뻐하며 자공의 두 손을 잡았다.
"진실로 그렇게만 되면 내 그대와 함께 기쁨을 나누겠소!"
이렇게 해서 자공(子貢)은 또 남쪽 월(越)나라를 향해 떠나갔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