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봉 목사
1.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오늘까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 온 과제입니다.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① 만물(萬物)의 영장(靈長),
② 사회적(社會的) 동물,
③ 사유(思惟)의 존재,
④ 소우주(小宇宙),
⑤ 허무주의자들은 무(無)라고까지 했습니다.
사실 따져보면 인간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은 하나님 앞에 서 보지 않고는 대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들 속에서는 인간이 무엇이냐? 는 대답은 이렇게 다양한 말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처럼 명쾌한 대답을 한 곳이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지은 피조물(被造物)이란 것입니다.
스스로 있는 존재가 아니고, 조물주(造物主)가 만든 존재란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시편 139:15절에 "내가 은밀한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으심의 오묘막측함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참으로 인간의 생성과정을 가만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머리에서부터 시작하여 몸의 하나 하나의 지체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오묘막측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사실 인간처럼 복잡하고 기이한 존재도 없습니다.
요즘 아무리 컴퓨터가 다양한 기능을 한다고 해도, 바로 그 컴퓨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두뇌입니다.
인간이 이룩해 놓은 과학기술과 문화사회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거대한 도시를 건설한 인간, 하늘 높이 솟은 빌딩들, 모두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산물들입니다.
그러나 인간처럼 역시 나약한 존재들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인간은 <질그릇 조각 같은 존재>들이라고 하였습니다.
토기장이 손에서 지음 받고 구워낸 존재들이란 말입니다.
저는 자랄 때 옹기를 구워내는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우리가 살던 고향은 평남 순천군 은산이란 곳이었습니다.
옹기들이 되어 나오는 과정을 보면 처음부터 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옹기를 빚을 수 있는 진흙을 잘 파와야 합니다.
그런 흙은 어디에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논바닥에서 파오던 기억이 납니다.
흙을 먼저 발로 밟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떡메로 치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놓은 흙덩이들을 독에다 간수해 둡니다.
그리고는 도공이 필요할 때마다 한 덩어리씩 끄집어내어 물레에다 걸어놓고 빚
기 시작합니다.
<예화> 하루는 진흙덩이가 이렇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도공의 손에서 최고의 작품이 되어, 왕궁의 식탁이나 부잣집 장식장에 올라가는 것이 최고의 꿈이었습니다.
드디어 어느날 도공은 자기를 반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진흙은 부푼 꿈을 안고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기뻐하였습니다.
부푼 가슴으로 기대하고 있는데, 좀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토기장이가 자기를 빚는 모습은 예전과는 달랐습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주둥이며, 유난히도 넓은 손잡이며...
자기를 지켜보는 다른 흙들의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진흙은 너무나 속이 상하여 눈물이 날것 같았습니다.
자기를 이렇게 흉측한 모습으로 지은 도공이 밉고 또 미웠습니다.
진흙은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로 절망스러웠습니다.
토기장이가 날 왜 이런 모습으로 지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토기장이는 가마에서 나오자마자 자기를 품에 않고 어디론가 갔습니다.
그가 도착한 곳은 어느 가난한 농부의 집이었습니다.
아무리 나를 이런 가난한 농부에게 팔려고 해도 나를 이런 모습으로 짓다니... 자기를 이렇게 만든 토기장이를 미워하였습니다.
차라리 바닥에 떨어져 깨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밖으로 나오는 농부의 모습을 보는 순간, 질그릇은 너무나 놀랐습니다.
그 농부는 농사일을 하다가 두 손이 잘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평범하게 생긴 그릇을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토기장이는 이 농부를 위해 특별히 만든 그릇이었습니다.
자기를 붙잡고 눈물을 글썽이는 농부에게 토기장이는 말했습니다.
"고마운 것은 나요, 내가 질그릇을 만들면서 이렇게 기뻤던 일은 처음이요, 이 그릇은 나의 최고의 작품이요" 라고...
비로소 질그릇은 토기장이가 만든 최고의 작품이 자기라는 것을 알고 그제야 토기장이에게 감사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 인간은 절대자의 손 안에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부인하려고 해도, 아무리 하나님을 떠나 살려고 해도, 그를 떠나 살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본문 9절에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자로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를 대하여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할 수 있겠으며 너의 만든 것이 너를 가리켜 그는 손이 없다 할 수 있겠느뇨" 라고 하였습니다.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대들 수 있겠느냐! 입니다.
아무리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주인의 작품들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하찮은 존재들인 것 같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모두 의미 있는 존재들입니다.
이것을 믿고 사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예화> 그런데 요즘 보면, 하나님이 특징 있게 만든 자신의 얼굴을 성형수술로 망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자연 그대로가 가치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자연을 훼손하지 말자고 하면서 자신의 자연산을 허물어 버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자랄 때 별명이 있었습니다. 가오리 또는 넙죽이 라고 했습니다.
제 얼굴이 넙죽 하다고 붙인 별명입니다.
그래서 사춘기 시절에는 그것이 제일 싫었습니다.
왜 나는 얼굴이 넙죽이가 되었는가 하고...
그러나, 오늘에 와서 보니 이렇게 만들었기에 강단에서 서서도 잘 보이는 얼굴이 되지 않았겠느냐! 생각해 봅니다.
만일 하나님이 나를 도끼처럼 만들었다면, 요즘 성형으로도 못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감사할 것 뿐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의미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항상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상대적인 우월감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그래서 저들은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갑니다.
그러다 남들이 가는 넓은 길로 가다가 끝장이 납니다.
또 어떤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지옥도 사람이 가는 곳이겠지, 나 혼자 아니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가는 곳이라면 별 문제 없을 것이라
고... 뜨거우면 같이 뜨거울 것이고, 추우면 같이 함께 추울 것이지 나 혼자만 뜨겁고 나 혼자만 추울 것이 아니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말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바르게 경외하는 신앙의 사람들은 그 단계에서 넘어섭니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의의를 깨닫고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내 삶의 조각들을 맞추어, 내 모습을 이루어간다고 생각합니다.
태에서 지을 때부터 나를 위해 갖고 계신 귀한 계획, 바로 그 뜻을 따라 아름답게 이루어 가심을 믿고 살아갑니다.
인생의 후반전을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지난 세월을 뒤돌아보면 모두 자기의 생각대로 살아온 사람이 몇 분이나 되십니까?
모두 자기 생각대로 오늘의 자기의 모습이 지어졌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의 모습을 보면서 운명(運命)이라고 할는지 모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섭리(攝理)라고 하고 있습니다.
토기장이가 왜 자기를 그렇게 지었는지를 비로소 깨달은 것을 사명(使命)을 깨닫는다고 합니다.
사명을 깨달아야 자신을 긍정할 수 있습니다.
사명을 깨달아야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사명을 깨닫지 못하는 일에서는 항상 좌절과 절망뿐입니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 올랐어도,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했어도, 사명을 깨닫지 한 삶에서는 허랑방탕만이 있을 뿐입니다.
낭비하는 생활만이 있을 뿐입니다.
가이드 포스트 2001년 10월호에 이런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내 인생 여정 길에서, 내 모든 일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 정녕 할 수 있는 말, 나 진정 복을 받았네..., As I look back over my life, and I think things over I can truly say that I have been blessed.
이것이 참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질그릇 조각 같은 하찮은 존재들이지만,그 질그릇이 도공의 손안에서 빚어져 성령의 불 도가니 속에서 구워져 나올 때 그는 분명히 새로운 존재로 변하게 됩니다.
질그릇은 반듯이 불 도가니 속에 들어갔다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물에 담가져도 풀어지지 않고, 불에 넣어도 터지지 않고, 주인의 사용대로 쓰임 받는 그릇이 됩니다.
된장 뚝배기 그릇을 상상해 보기를 바랍니다.
불에 구워진 그릇이기에 물에도 이겨내고, 불에도 이겨냅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담겨진 찌개를 잘 끓여낼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시각장애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한 손 없는 장애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뇌성마비로 육체적 활동이 부자유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그런 장애를 가졌지만 성령의 불 가마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새 소리가 나는 그릇으로 사용됨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인생의 성공이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느냐 보다, 어떤 그릇으로 쓰임을 받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3. 질그릇이 도공(陶工)의 작품으로 쓰임 받을 때 귀한 존재들이 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환경과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항상 불평불만으로 살아갑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살맛 나지 않는 세상이라고 비관합니다.
젊은이들 가운데 벌써 사회의 병든 유행에 자신을 오염시켜 돈의 노예가 되어 가는 것을 종종 봅니다.
앞길이 창창한 청년들인데 돈 몇 푼의 현실을 극복할 힘이 없어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모두 하나님을 향한 소망의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셉처럼 꿈을 꾸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양복 제단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내 삶의 조각들을 맞추어 내 모습을 이루어 가십니다.
태에서 지으실 때부터 나를 위해 갖고 계신 귀한 계획, 바로 그의 뜻을 따라 아름답게 이루어 가십니다.
그것을 깨닫고 바라보는 눈이 바로 신앙입니다.
그 신앙은 어리석은 바람이 아닙니다.
쇠해지고 낡아지고 없어질 소망이 아닙니다.
영원한 산 소망입니다.(Living Hope) 우리는 그런 신앙의 사람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