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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 놀라운 능력
성경본문 : 잠언 18: 21
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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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수 목사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아주 특별한 선물 가운데 하나가 “말”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말은 의사전달의 수단일 뿐입니다. 생각과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때 사용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다른 동물들도 수준이 낮기는 해도 인간처럼 저마다 의사전달 수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리를 지른다든지, 특별한 표정 짓거나 의도적인 행동을 해서 나름대로의 의사를 전달합니다.
그러나 말은 이런 의사전달 기능을 뛰어넘어서 창조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단 누군가의 입에서 말이 나옵니다. 그 말은 그 사람에게서 분리됩니다.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없던 것으로 할 수 없습니다. 이제 그 사람이 어쩔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이제 그 말은 떠돌아다니게 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평가를 받게 됩니다. 쓸 데 없는 말들은 연기처럼 사라집니다. 그러나 가치 있는 말들은 살아남게 되고 돋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킵니다.
그 중에 의미 있는 말들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들이 보태집니다. 커지고 변형됩니다. 여론이 됩니다. 그래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기도 하고 때론 나쁜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질서와 환경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때론 잘못된 풍토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얼마 전 교계 어른 한 분을 만났습니다. 이 분이 근자에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과로에 몸이 불편해서 병원에 가 보니 의사 선생님 말씀이 치질이 상태가 심하니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급히 스케줄을 조정해서 수술을 받으셨답니다. 그런데 치질 수술이라서 남들에게 알리기도 좀 쑥스럽고 사람들이 병원에 찾아오는 것도 불편하고 해서 가족들과 지인들 그리고 교회에도 장로님들에게만 알렸답니다.
두 주나 예배 참석 못하고 설교도 못했고, 말하자면 잠적하게 된 것이니 얼마나 말이 많이 생겼겠습니까? 어떻게 해서 몸이 불편해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리가 떠돌기 시작했고, 상태가 위중하다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랍니다. 급기야 어디서 죽었다는 소리까지 들리더랍니다. 미국서 가까운 친구 목사님이 죽은 줄 알고 달려왔더랍니다.
그렇습니다. 말에는 우리 현실을 창조해 가는 힘이 있습니다. 말 한 마디가 상황을 뒤 바꿔놓기도 합니다. 역사의 흐름을 돌려놓기도 합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적으로 변화시켜놓기도 합니다.
약 3:6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 세계라” 야고보 사도께서 이 말의 능력을 아시고 말을 불과 같다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조그만 성냥 불 하나는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때로 건조한 날씨에 바람까지 부는 날 메마른 가시덤불에 던져진 성냥불 하나는 대형 산불이 되기도 합니다. 온 산 전체를 태우고 수많은 인명피해를 낼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이 작은 성냥 불 하나가 거대한 용광로를 가동시킵니다. 엄청난 쇳물을 만들어냅니다. 수많은 산업 시설을 돌려 국가 경제를 일으킵니다.
그렇습니다. 말은 힘이 있습니다. 상황과 환경만 맞으면 그 힘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합니다. 특별히 요즘처럼 매스컴이 발달한 시대에는 더 합니다. 인터넷 문화의 발달로 그 힘은 이제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커졌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말의 힘 때문에 죽는 일이 생기기도 하고 사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말은 죽일 힘도 있고 살릴 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살릴 능력
때로는 말이 긍정적으로 그 능력을 발휘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 말의 긍정적인 능력의 원형은 하나님이십니다. 창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특히 창 1:3을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이 저 혼돈된 태초의 초기 우주에 나타나면서 창조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말씀의 능력으로 사물과 생명체들이 생겨나고, 그 안에 질서가 생기고, 하나의 생명의 세계가 작동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요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타락하고 패역한 세상을 재창조하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 1:14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로 성육화하여 이 세상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 분이 오셔서 이 세상에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말씀의 능력으로 회개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믿음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시 세워지고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들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 그들로부터 말은 긍정적인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발명왕 에디슨은 놀랍게도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습니다. 학교에서 하도 엉뚱한 짓을 많이 해서 골머리를 앓던 담임 선생님이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아이는 저능아라서 학교에서는 도저히 못 가르치겠어요. 엄마가 집에서 가르치는 것이 좋겠어요.”
그 말을 들은 엄마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에디슨에게 한 번도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늘 긍정적인 말을 하고 격려했습니다. “너는 호기심이 아주 많은 아이란다. 너는 그 호기심 때문에 훌륭한 발명가가 될 수 있을 거야. 엄마는 너를 사랑한다. 네가 자랑스럽다.” 그러면서 항상 꼭 껴안아 주었습니다.
엄마의 이 한 마디 말이 에디슨이 발명왕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긍정적인 말 그 말이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그로써 이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킵니다.
작년 평양을 갔을 때 평양 신학원의 한 신학생을 만났습니다. 자기 스스로 선택해서 신학교에 왔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인재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공산치하에서 신학교에 오려고 했을까 여간 궁금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용히 그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신학교에 오게 됐습니까?”
그 학생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몇 년 전에 할머니께서 별세하셨습니다. 할머니께서 제게 이해하기 힘든 유언을 하셨습니다. “너는 목회를 해야 한다...” 늘 그 말씀이 마음을 맴돌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취직했다가 어떻게 하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말은 생명을 구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한 생명이 구원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으로 세움을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은 이렇게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에 이런 살리는 능력이 나타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죽일 능력
때로는 말이 부정적인 능력을 발휘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 말의 부정적인 능력의 원형은 사탄입니다. 창 3장을 보면 인류의 타락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창 3:1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이 말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만들어주신 에덴동산에서 복된 삶을 살던 하와의 마음을 뒤 흔들기 시작합니다. 창 3:4-5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과 하와의 관계를 이간했습니다.
그래서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게 됐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됐습니다. 저주가 찾아왔습니다. 결국 죽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탄의 말은 죽일 능력을 발휘합니다. 그 말이 던져지는 곳에 영적 어둠이 뒤덮입니다. 많은 생명들이 죽음의 그림자 속에 신음하게 됩니다. 공동체가 파괴됩니다. 역사가 파멸로 치닫습니다.
사탄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 사탄을 닮은 사람들 그들의 말에도 이런 죽일 능력이 나타납니다.
한 고3 여학생의 자살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모의고사를 못 봐서 죽고 싶었습니다. 공부가 안 돼서 TV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엄마가 들어왔습니다. TV보는 딸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네가 정신이 있는 년이냐 시험을 그 따위로 보고도 TV 볼 생각이 나 아이고 너 때문에 내가 속이 터져 죽겠다. 차라리 너하고 나하고 죽자”
너무 속이 상한 이 여학생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래 죽으면 될 것 아니야 나도 살고 싶지 않다고!” 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가 문을 닫고 순간적으로 아파트 자기 방문을 열고 뛰어내렸다는 것입니다.
엄마의 말 한 마디가 딸을 죽인 것입니다. 그 때 엄마가 위로와 격려의 말을 했더라면... 아니 최소한 그 말을 참았더라면... 아이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말 한 마디가 한 사람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광수 생각]이라는 연재 만화로 유명해 진 만화작가 박광수라는 분이 절대로 교회는 가지 않겠다고 선언 아닌 선언을 했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중학생 때 3년 동안 어느 교회를 다녔답니다. 어느 주일 날 자기 옷 중에 가장 멋있다고 생각되는 츄리닝(미즈노 상표)을 입고 교회를 갔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 심하게 꾸중을 들었답니다 “어떻게 츄리닝을 입고 교회에 올 수가 있냐!”
그 때 너무 상처를 심하게 받았답니다. “이런 곳이 교회인가?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인가?” 그 후론 다시는 교회를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말 한 마디가 한 영혼을 영영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영혼을 저 영원한 저주의 길로 내 몰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말의 능력 발휘
말이 이렇게 살릴 능력도 있고, 죽일 능력도 있다면 우리에게 한 가지 정말 큰 고민이 있습니다. “어떻게 죽일 능력을 제어하고 살릴 능력을 발휘하게 할 것인가?”라는 고민입니다.
이 고민을 잘 표현해 놓은 시가 있습니다. 이해인 수녀의 [말을 위한 기도]라는 시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수없이 뿌려 놓은 말의 씨들이 어디서 어떻게 열매를 맺었을까 조용히 헤아려 볼 때가 있습니다.
무심코 뿌린 말의 씨라도 그 어디선가 뿌리를 내렸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왠지 두렵습니다....
날마다 내가 말을 하고 살도록 허락하신 주여
하나의 말을 잘 탄생시키기 위하여
먼저 잘 침묵하는 지혜를 깨우치게 하소서
헤프지 않으면서 풍부하고 경박하지 않으면서 유쾌하고
과장하지 않으면서 품위 있는 한 마디의 말을 위해
때로는 진통 겪는 어둠의 순간을 이겨 내게 하소서.
참으로 아름다운 언어의 집을 짓기 위해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道를 닦는 마음으로 말을 하게 하소서
언제나 진실하고 언제나 때에 맞고
언제나 책임 있는 말을 갈고 닦게 하소서
내가 이웃에게 말을 할 때에는
하찮은 농담이라도 함부로 지껄이지 않게 도와주시어
좀 더 겸허하고 좀 더 인내롭고 좀 더 분별있는 사랑의 말을 하게 하소서
내가 어려서부터 말로 저지른 모든 잘못
특히 사랑을 거스른 비방과 오해의 말들을
경솔한 속단과 편견과 위선의 말들을 주여 용서하소서
나날이 새로운 마음, 깨어 있는 마음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내 언어의 집을 짓게 하시어
해처럼 환히 빛나는 삶을 노래처럼 즐거움을
당신의 은총 속에 이어가게 하소서
그렇습니다. 우리의 말이 죽일 능력을 버리고 살릴 능력을 발휘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 일은 우리 삶에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말의 능력을 올바로 발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의 말씀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약 3: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이 점을 철저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말의 문제는 곧 마음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 15:1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 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우리가 하는 말들은 다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우리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 할까요?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시 119:1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그리고 잠 4:4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이르기를 내 말을 네 마음에 두라 내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 속에 채워지면 우리 마음이 변하게 됩니다. 우리 마음이 변하게 되면 우리 말이 달리지게 됩니다. 우리 말에 살리는 능력이 실리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말의 실수를 줄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약 3:2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몸도 굴레 씌우리라” 우리가 말에 실수를 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의 실수를 줄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우선 잘못된 언어 습관을 고쳐야 합니다. 대개 말의 문제는 실수를 반복합니다. 그래서 잘못된 습관을 고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신중한 언어 습관을 길들여야 합니다. 생각하고 말하고, 잘 살펴보고 말하는 습관을 키워야 합니다.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대로 말수를 줄여야 합니다. 말 많은 곳에 실수가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