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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
기업을 보존하라
오늘 말씀은 요셉 자손 중 므낫세 지파가 얻은 기업을 설명하는 내용 중에서 기업을 이을 아들이 없는 슬로브핫의 가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딸들을 통해 기업을 잇게 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슬로브핫은 아들이 없이 딸만 다섯을 낳았습니다(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 그 당시 이스라엘은 고대 근동의 상속법을 따랐기 때문에 여자들은 남편이나 아버지에게서 어떤 재산도 상속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므낫세 자손이 가나안 땅의 기업을 분배받을 때, 상속권을 가진 아들이 없었던 슬로브핫의 가문은 기업을 할당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때, 슬로브핫의 딸들은 아주 대담하게 제사장 엘르아살과 여호수아와 방백들에게 나와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라"고 강력하게 요청하였습니다.
민수기 27장 1절부터 11절까지가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상속권을 주도록 명기한 대목이 있습니다.
3절과 4절을 보면 아들이 없이 죽은 슬로브핫의 딸들이 모세에게 나아와서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 가족 중에서 삭제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
그러자 그들의 호소를 들은 모세가 하나님께 그 문제를 놓고 기도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고 그들에게 상속권을 주도록 했던 것입니다. 당시 사회적인 관습이나 정통에 따르면 슬로브핫의 가문은 가나안 땅의 기업을 하나도 상속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슬로브핫의 딸들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기업을 얻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는 것은 단순히 땅을 소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가나안 땅을 소유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백성으로 인정을 받는 최대의 축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슬로브핫의 딸들이 가나안의 기업을 요구하는 행위는 자신들이 비록 여자의 몸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백성으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간절함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여인들의 모습을 통해 은혜 나누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1. 믿음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믿음의 사람들이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믿음으로 구하고 바라는 자들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제3세기에 살았던 유대교의 랍비 심라이(Rabbi Simlai)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모세는 365개의 금계와 248개의 긍정적인 계명을 우리에게 주었다. 시편 15편에서 다윗은 이 많은 율례를 열 한 개로 줄였다. 그리고 이사야는 이것을 여섯 개로 만들었다(사33:14015). 그런데 미가는 이것을 세 개로 줄였으며(미가6:8) 하박국은 결국 한 개로 줄였으니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박국2:4)'는 오직 한 마디였다. 인간의 참다운 방비는 믿음뿐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의 믿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은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믿음의 용량이 커야 합니다.
믿음의 그릇만큼 그 축복이 담기는 것입니다.
요즘 컴퓨터시대 아닙니까?
그런데 제가 가지고 있는 3층에 있는 컴퓨터는 구입한지가 벌써 5년이 다 되갑니다. 그 때 당시에는 넉넉한 용량을 갖추었던 것입니다. 하드웨어나 렘의 용량이 그 당시 수준으로는 넉넉했고, 모뎀의 속도도 가장 빠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림도 없습니다. 요즘 나오는 프로그램은 잘 쓰지도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용량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을 저장하고 편리하게 사용해야 하는데, 용량이 부족해서 안 된다는 말입니다. 만약에 용량 보다 많은 내용을 집어넣고 가동시키려하면 컴퓨터가 데모를 합니다. 그냥 서버려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백성들이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것으로 누리기를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마태복음 7장 7절 이하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에서 믿음의 증거가 많은 축복으로 나타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이 받은 축복을 바라보며 부러워하거나 혼자만의 욕심으로 끝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분량만큼 여러분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축복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열왕기하 4:1-에 보면 엘리사 선지자에게 선지자의 생도가 빚을 지고 일찍 죽은 후에 그 빚 독촉에 시달리던 부인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집니다.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그의 집에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를 물었습니다. 그 여인은 "집에 남아 있는 거라고는 한 병의 기름밖에는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그 여인에게 "이웃집에 가서 빈 그릇을 빌려오되 조금 빌려오지 말고 많이 빌려와서 네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고 들어가서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고 말했습니다.
그 여인은 엘리사가 시키는 대로 두 아들과 함께 빌려온 그릇에 한 병 남은 기름을 붓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기름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래서 빌려온 모든 그릇마다 가득 채워졌던 것입니다. 결국 이 이적으로 그의 부인은 빚을 다 갚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이 여인의 무조건적인 믿음과 순종이 하나님의 능력이 일어나는 씨앗이 된 것입니다. 미련한 듯 보이지만 하나님을 진심으로 신뢰하고 순종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능력을 베푸시는 것입니다(삽교천교회 권사님의 고백). 이러한 간증이 여러분의 것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소유한 사람들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 것, 태가 끊어진 사라가 이삭을 낳을 수 있었던 것,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드린 것, 모세의 부모들이 바로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고 석 달 동안 모세를 숨겨두고 키운 일, 기생 라합이 정탐꾼들을 숨겨준 행위......,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고 누렸습니다. 여러분들의 믿음에도 이러한 축복의 증거가 많아지시기를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은혜는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의 분깃을 요구하는 슬로브핫의 딸들의 요청을 합당하게 여기시고 그들에게도 상속권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그 당시 사회적인 관습이나 전통에 절대적으로 위배되는 행동이었습니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들은 남편이나 아버지의 소유물에 불과했고 어떤 때에는 물건처럼 매매 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여자가 유산을 상속받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파격적인 일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는 나라나 민족들, 아직도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또 인권이 유린을 당하는 나라들은 대개가 계층간에 차별이 남아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들(불교권, 회교권)에서는 신분제도가 엄격하게 남아 있어서 아무리 노력하고 열심히 일을 해도 정해진 신분 때문에 더 이상 소망이 없이 늘 비참한 삶을 영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우리 나라도 이러한 차별이 있었지만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복음의 수혜자가 되어 신분의 고리를 끊어버렸기 때문에 오늘의 축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복음의 특징은 하나님의 차별이 없으신 은혜와 사랑입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여기에는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없습니다. 어른과 아이의 차이가 없습니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어떤 인격이든지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에 보면 "율법 외에 한 의가 나타났으니....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3:21-22)"고 했습니다.
차별이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자신을 의롭다고 할 자가 없습니다. 남녀노소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모두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누리고 있는 축복이나 은혜들은 자신의 힘이나 능으로 되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이 세상에서 자기의 의를 스스로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기만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물질문명이 만들어낸 가장 추악한 작품이 바로 인본주의입니다. 인간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교만함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에베소서 2:8 "너희가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선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심이니라".
어느 누구도 자신의 힘으로 이 세상을 살 수 없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복음은 바로 이것을 가르쳐줍니다. 의인은 없다 하나도 없다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서만 의로워질 수 있으며, 그 은혜가 오늘 우리의 삶의 소망이요 기쁨이요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복음은 바로 우리같이 연약하고 부족하고 죄 많은 인생들에게 언제나 가능성을 열어주십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임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입니다. 남녀노소,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하나님은 공평하게 사랑하시고 공평하게 축복하시고 공평하게 은혜 베푸시는 분인 것입니다. 누구를 더 사랑하고 누구를 덜 사랑하고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신실하심은 세상 모든 만민을 향해 동일하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소망이 됩니까? 세상에서 실패한 사람도 문제가 있는 사람도 나와 같이 대대로 하나님을 전혀 모르던 사람들에게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구원을 얻게 하신다는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으니 이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없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사지를 뒤틀면서 온 몸에 땀을 흘리며 어눌한 입술로 공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던 한 여인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뇌성마비 1급 장애인으로 제 스스로는 걷지도 일어서지도 못하고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 사지를 비틀어 짜내야 하는 참으로 힘겨운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보면서 "참으로 안됐다. 어쩌다가 그렇게 됐느냐"고 걱정하고 동정하지만 그는 자신 있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남들이 갖지 못한 놀라운 축복을 주셨다고 그래서 그 하나님은 공평하시다"고...... 바로 뇌성마비 시인 송명희씨 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남들과 비교된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가만히 우리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묵상해보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은 결코 절대로 다른 사람에 비해 불공평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만 있는 특별한 은혜를 주심으로 이 세상에서 공평하게 살도록 축복하십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에게는 상속권이 없었습니다. 당시 사회적인 관습과 전통으로는 도저히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도 상속의 권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편애가 없습니다. 공평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차별 없으신 은혜와 축복이 오늘도 우리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항상 감사함으로 지금 여러분들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영원히 보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상속권을 주신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기업을 빼앗기지 말고 보존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딸들에게 상속권을 주지 않았던 것은 딸들이 다른 지파의 남성과 결혼을 하게 되면, 그가 속하게 된 지파나 가문에 그가 상속받은 기업이 속하게 되므로 하나님께서 각 지파에게 배정하신 기업에 혼란이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들에게는 상속권을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가문의 기업을 소중하게 여겼는지에 대한 기사가 열왕기상 21장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왕 아합이 통치할 때의 일인데, 아합이 자신의 별장 옆에서 포도원을 경작하는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어 그 땅을 자신에게 팔기를 원합니다. 아합은 그 땅을 사서 채소를 심으려 했던 것입니다. 아합은 나봇에게 호감이 갈만한 좋은 조건을 총 동원합니다. 아합은 "당신이 소유한 포도원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대신 줄 터이니 바꾸자. 만일 합의만 되다면 돈을 많이 줄 터이니 내게 양보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봇은 "왕이 내게 어떤 좋은 조건을 내세워도 나는 조상의 유업인 포도원만은 양보해 줄 수가 없습니다"고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나봇에게는 그 포도원이 조상의 유업이었습니다. 즉 그의 신앙이요, 양심이요, 믿음이었습니다. 아합이 더 좋은 것을 보여주며, 돈 뭉치를 갖다주며, 명예와 권세를 주며, 출세의 길을 열어주며 그를 유혹했지만 나봇은 단호히 거절했던 것입니다. 결국 그 일로 인하여 나봇은 죽임을 당하고 포도원도 빼앗겼습니다. 이처럼 미련해 보일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조상들의 유업은 귀중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봇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이 누리는 땅은 대대로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조상들의 유업이기 때문에 목숨보다도 귀하게 여기고 그 기업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상속자가 없이 죽은 슬로브핫의 이름을 지파 내에서 영원히 보존코자 하는 딸들의 진심을 헤아리시고 그들에게 상속권을 주시되 한가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민수기 36:6∼9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대한 여호와의 명이 이러하니라 이르시되 슬로브핫의 딸들은 마음대로 시집가려니와 오직 그 조상 지파의 가족에게로만 시집갈지니 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의 기업이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이 다 각기 조상 지파의 기업을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니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중 무릇 그 기업을 이은 딸들은 자기 조상 지파 가족 되는 사람에게로 시집갈 것이라 그리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조상의 기업을 보존하게 되어서 그 기업으로 이 지파에서 저 지파로 옮기게 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 지파가 각각 자기 기업을 지키리라"
분배받은 땅을 같은 지파 내에서 계속 보존하도록 하기 위해 슬로브핫의 딸들은 반드시 자신의 지파의 사람들과만 결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조상의 기업을 지키겠다는 전제하에 딸들에게 기업을 상속할 수 있는 권리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허락하신 기업을 소중히 여기고 반드시 보존하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유산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입니다. 바로 그 믿음의 유산, 믿음의 기업을 우리는 놓치지 않도록 힘써서 지켜야 할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축복을 빼앗기기 않도록 우리 세대가 근신하여야 할 것입니다.
열왕기상, 하를 새벽마다 읽으면서 참으로 많은 교훈을 깨닫습니다. 그 중에 핵심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한 시대만 누리고 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영원히 계속되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그 축복을 붙잡고 보존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작업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 양심은 어떤지, 나의 신앙지조는 어떤지 살펴보는 일입니다. 우리들의 삶은 평안하지만은 않습니다. 때론 불같은 시험과 환난의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평안할 때는 사탄이 간사한 유혹으로, 어떤 때는 무서운 박해로, 우리의 신앙의 지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초대교회 당시 로마의 박해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짐승의 먹이로, 불에 태워지고, 돌에 맞고, 눈을 뽑히고, 재산을 몰수당하고, 추방되는 등 온갖 악형을 받았으나 주님이 주신 유일한 유산인 믿음만은 굳게 지켰습니다. 사도들도 교부들도 일반 평신도들도 순교를 각오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렇게 피를 흘리며 지킨 그분들의 믿음은 오늘날 우리에게 축복의 유산이 되었던 것입니다(요한계시록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
아들이 없었던 슬로브핫의 가문은 당시의 사회적 관습이나 전통에 따라 기업을 하나도 받을 수 없었지만 그 딸들의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로 기업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본래 외인이요, 이방인이었지만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늘 나라의 놀라운 영적인 축복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받은 것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그 기업을 영원히 보존하라고 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축복을 영원히 붙잡아 여러분의 시대뿐만이 아니라 다음세대에까지 잃어버리거나 빼앗기지 않고 그 은혜와 축복을 영원히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언젠가도 말씀을 드렸듯이 하나님의 역사는 반드시 어떤 정해진 틀, 예를 들어서 혈통이라든지, 장자의 권리라든지, 사회적인 통념과 전통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외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장자의 권리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이지 않습니까? 장자로 태어났다고 다 장자의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장자로 태어났어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그 축복을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의 예가 오늘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상속권이 주어진 것입니다. 성경에는 여성들이 그것도 우리가 보았을 때에는 전혀 소망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의 한 축을 이어가는 놀라운 축복을 받은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예가 바로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는 다섯 여인들입니다(다말은 남편이 죽자 혈통을 잇기 위해 시아버지와 동침하였던 여인이었다. 라합은 가나안 땅 여리고 성의 기생이었으며, 다윗의 증조모가 된 룻은 모압 여인으로 남편과 사별한 후 보아스와 재혼한 여인이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는 다윗과 간통죄를 지은 여인으로 솔로몬의 어미가 되었으며, 예수님의 모친이 된 마리아는 정숙한 여인이었지만 세상적으로 지탄을 받을 수 있는 위치, 즉 처녀의 몸으로 잉태해야 하는 수모를 겪은 여인이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어느 누구에게든지 또 언제든지 열려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의 핵심 내용은 환난과 핍박, 모짐 박해 가운데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거룩한 성도로 부름 받을 것을 권고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펼쳐서 2장부터 보겠습니다.
2:1-7 /에베소교회- 7절/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2:8-11/서머나교회- 11절/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2:12-17/버가모교회-17절/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돌을 둘 터인데 2:18-29/두아디라교회-26절/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3:1-6 /사데교회- 5절/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3:7-13/빌라델비아교회- 11-12절/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의 성전 기둥이 되게 하리니 3:14-22/라오디게아교회- 21절/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