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귀한 자 야베스의 기도
역대상 4 : 9 – 10
역대상 1장에서 9장까지 아담의 자손들의 족보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계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심 부분 4장에 유다 자손을 말씀하시다가 끝맺음도 하지 않고 다른 족보를 말씀하기 전에 야베스를 말씀하셨습니다.
유다 자손을 말씀하시다가 야베스에 대한 말씀을 짧게(4:9,10) 삽입하여 말씀하신 것은 야베스가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그만큼 특별했다는 것을 강조해 줍니다.
아담부터 ‘누가 누구를 낳고’라는 족보를 말씀하시다가 야베스를 낳은 부모가 누군지, 야베스가 낳은 아들은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족보는 장자를 중심으로 기록하였기 때문에 야베스의 조상은 차자이었거나 막내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야베스의 조상이 누구인가를 말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 자손 중간에 갑자기 야베스 이야기를 삽입한 것은 야베스가 그만큼 중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어머니가 수고로이 낳았다고 ‘고통’이란 말로 ‘야베스’라고 불렀지만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9)
야베스가 존귀한 자가 된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께 기도하여 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야베스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야베스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을 별것도 아닌 것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조상 아담에서부터 다윗 왕까지 족보를 말씀하시다가 ‘유다의 맏아들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죽이셨다’(2:3)는 말씀 외에 다른 말씀이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담 이후 그의 조상들이 야베스처럼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야베스의 계보인 유다 자손들까지도 하나님께 기도한 사람이 없습니다. 마땅히 기도하고 섬겨야 할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과 이방신들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야베스의 부모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야베스에게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지도 않았습니다. 야베스의 형제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때에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기도했다는 것은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로는 야베스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을 이스라엘 자손으로 당연하다고 할 것입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 그가 구한 것을 허락하셨다는 것이 뭐가 그렇게 큰 일이냐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족보를 말씀하시다가 야베스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복을 받았다는 것을 삽입하여 말씀할 만큼 그 시대에 있어서 대단한 사건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 대대로 우상 섬기고 조상 섬기던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죽은 조상들이 복을 준다고 믿고 섬기던 사람이 어느 날 자신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섬기던 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복을 받았다면 놀라워할 만큼 대단한 사건이 될 것입니다.
야베스의 부모나 형제는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야베스는 하나님이 복 주시는 분이심을 알고 섬겼습니다. 지금까지 섬겨온 우상과 신들을 다 버리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분이심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복 주시는 분이심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분이심을 알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성도가 어려운 일을 당해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복 주시는 분이심을 믿지 못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야베스는 이스라엘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부모와 형제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지만 야베스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는 야베스처럼 하나님이 복 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간단하지만 간절했습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시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넗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했습니다.(10)
개역성경에는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데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넗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야베스의 기도의 특징은 애절하면서 여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란 말씀은 이스라엘 자손과 하나님의 언약 맺은 관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우주적인 하나님이시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는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내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41:8-10)
야베스는 이사야가 말씀하신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알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언약 맺은 관계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택하신 자라는 것을 알 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도와주시고 함께 하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야베스는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어떤 관계인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오른손으로 붙들어 주시는 관계라는 것을 알면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야베스는 자신이 하나님께 기도하면 반드시 들어주시고 도와주시는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기도한 것입니다.
‘아뢰어’란 고질적인 곤궁에 빠진 애절한 기도임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의 바로 왕의 학대로 여호와께 부르짖었던 것과 같은 애절한 기도였습니다.
에서가 온다는 말을 듣고 아내들과 종들을 강건너 앞서 보내고 혼자 얍복강가에서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하며 기도했던 야곱의 간절한 기도와 같은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나에게 복을 주시려거든’이라고 기도한 것이 주의 뜻이면 주시고, 뜻이 아니면 주시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로, 예수님의 기도와 닮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눅22:42)
그리고 개역성경에서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란 말씀은 이미 복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베스가 하나님께 기도하게 된 동기는 가난과 여러 가지 환난으로 근심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베스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감사하며 그 위에 복을 더하여 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알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많은 복을 받고 살면서 자신은 복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무시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을 찾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기도해야 합니다. 감사가 없는 기도는 하나님을 우롱하는 기도가 됩니다.
우리는 야베스에게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받았음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달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와 같은 기도는 아무리 부르짖고 구해도 얻을 수 없습니다.
야베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했습니다. 먼저 ‘나의 지역을 넗히시고’라고 기도했습니다. 가난을 호소하는 기도입니다. 부모와 형제들이 함께 먹고 살기에 넉넉한 복을 구했습니다.
가난은 모두가 싫어합니다. 야베스도 가난하기 때문에 ‘나의 지역(지경)을 넗히시고’라고 기도했습니다. 부모와 형제들이 살기에 적당한 지역을 원했습니다. 우리도 가난을 벗어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야베스는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환난’은 ‘압박하다’ ‘억누르다’ ‘도리개질하다’라는 의미로 마음을 근심하게 하는 고통입니다.
야베스가 어떤 환난으로 근심하였는지 분명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부모와 형제를 비롯한 모두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고 이방신들에게 제사 지내는 사람들과 함께 살았던 야베스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적인 환난과 핍박이라고 생각합니다.
야베스는 자신이 당하는 환난을 ‘주의 손으로 도우사 벗어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환난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믿음을 방해하는 악한 사탄 마귀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야베스는 주의 손으로 도와주셔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에게도 믿음을 방해하는 환난이 많이 있습니다. 환난은 믿음과 비례합니다. 믿음이 적은 자에게는 환난도 없지만 믿음이 큰 자에게는 환난도 큽니다.
야베스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기도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놀라운 축복입니다. 야베스는 이스라엘 하나님께 구한 것을 다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역을 넓혀 주셨습니다.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도 없게 되었습니다. 야베스가 구한 것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도 지경을 넗히시고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소서라고 기도합시다. 야베스가 하나님께 구한 것을 허락하셨던 하나님께서 우리도 구한 것을 허락하시는 복을 받고 존귀한 자가 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우기 기도를 들으시고 복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고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세상을 사는 동안 하나님께 기도하여 구한 모든 것을 허락하여 주시는 복을 받읍시다. 그리고 주님 오시는 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서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며 복락을 누립시다.
출처: ╋예수님좋다오 글쓴이: 허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