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생협을 아십니까?
경기도 안산의 한 병원.
대기실에는 큼직한 '환자 권리 장전'이 걸려 있고.
<녹취> 간호사 :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환자는 직접 쪄 온 옥수수를 간호사에게 건넵니다.
<녹취> 김정옥(안산의료생협 조합원) : "다른 병원에도 가기는 가는데 특별한 큰 일이 있어야 가지. 소소한 건 다 여기와 여기 간호사들이 너무 친절하고 그래서..."
<녹취> 간호사 : "다음에 주세요. 오늘 갖다주지 말고, 더우니까 다음에 갖다주세요."
다른 병원과 사뭇 분위기가 다른 이 곳은 지역 주민들이 출자해 세운 병원인 '의료생활협동조합'즉 '의료생협'입니다.
<앵커 멘트>
1시간을 기다렸는데, 단 몇 분만에 진료가 끝났거나 과연 꼭 필요해서 병원이 이런 검사를 하는 걸까, 의심해 본 경험 한 번씩 있으실 겁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기존 병의원에 대한 불만이 많은 것이 현실인데요.
앞서 보신 것처럼, 환자들이 직접 생활협동조합을 만들어 의료 주권을 찾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의료계에 불고있는 작지만 의미있는 '의료 생협' 바람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다리가 아파 제대로 걷기 힘든 이우임 할머니.
관절염이 있는데다 혈압까지 높아 병원을 자주 찾습니다.
<녹취> "(약 드시고는 좀 괜찮으셨어요?) 네. (속은 좀 괜찮으시고요?) 속은 괜찮지..."
증상을 꼼꼼히 묻고, 기록하길 10여 분.
하지만 약은 최소한으로 처방합니다.
<녹취> 이우임(안산의료생협 조합원) : "약을 조금씩 지으니까, 3일치, 5일치 지으니까. 바로 먹잖아요. 그러니까 오늘도 떨어져서 왔어요."
김청자 할머니도 남편과 함께 병원을 찾았습니다.
꼭 아파서라기보다 조금이라도 몸이 이상하다 싶으면 의사를 찾아와 상담합니다.
<녹취> 김청자(안산의료생협 조합원) : "주치의 선생님 하나 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죠. 그러니까 내가 감기만 꼭 들어서 오는 게 아니라 다른 거 좀 이상한 거 같으면 와서 말씀 드리고 의논도 하고..."
이 의료생협에는 내과와 외과, 한의원 외에 치과도 있습니다.
조합원들이 최소 만 원 이상 씩 출자한 돈으로 병원을 세우고 운영하는데, 탈퇴할 경우 출자금은 모두 돌려받습니다. 의사는 의료생협에 고용되는 형탭니다.
<녹취> 이선웅(의사) : "저 환자들이 나를 신뢰하고, 또 나도 조합에서 신뢰를 받고, 그런 신뢰 속에서 처방이나 이런 걸 한다라는 그런 느낌?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특히 치과의 인기가 좋습니다.
개업한 지 2년 만에 하루 40명 가까운 환자가 찾을 정도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녹취> 박장락(안산의료생협 조합원) : "우리 어머니 같은 경우는 임플란트 2개를 해야 하는데 ‘우리가 너무 비용 부담이 된다’그러니까 하나만 하고, 보철로 해도 된다는 거예요."
<녹취> 김미경(안산의료생협 조합원) : "다른데 가면 막말로 진짜 바가지 많이 씌우잖아요. 치과 같은 경우는 보험도 안되고 하니까. 근데 여기는 믿음이 있어서..."
실제 이 곳의 임플란트 수술 비용은 120만 원 정도로 다른 치과보다 저렴한 편입니다.
치과 원장과 조합원 대표 등이 경영위원회를 열어 재료비 등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녹취> 권영국(치과 의사) : "임플란트 비용을 좀 높게 잡았었는데 운영해보니까 그 비용이 생각보다 좀 높은 것 같아서 비용을 낮추고 차액을 환자분들한테 돌려드린 적도 있습니다."
한의사인 강성안 씨는 매주 화요일마다 거동이 불편한 조합원 집에 왕진을 갑니다.
<녹취> "여기 당기는 게 좀 심했어요?"
뜸 치료를 통해 환자의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침도 놓아 줍니다.
<녹취> "좋아요. 낫는 것 같아서 좋아, 침 놓아주면..."
<녹취> 이진순(안산의료생협 조합원) : "친절하고, 다른 병원에 가면 좀 서투르지. 아무래도 좀 덜덜 떨고 못하지. 우린 그런데 안 가고, 죽으나 사나 새안산(의료생협)이야."
방문 진료는 몸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지만, 수익성이 낮아 다른 병원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녹취> 강성안(안산의료생협 한의사) : "국가나 보건체계에서 돌봐드릴 수 있으면 좋은데 사실 그러지 못하고, 그런 부분을 저희 생협에서 그리고 제가 어느 정도 도와드릴 수 있다는 게 되게 감사하고 좋은 것 같아요."
의료생협이 일반 병원과 가장 다른 점은 치료보다 예방에 중점을 둔다는 점입니다.
병원 내에 있는 조합원실은 늘 건강 소모임 활동을 하는 사람들로 붐빕니다.
<녹취> 김영풍(안산의료생협 조합원) : "걷고 이런 운동과 비슷한 거거든요. 또 음악을 듣고 하니까 즐겁고 스트레스 같은 것이 많이 풀리고..."
병원 옥상에는 텃밭을 꾸며 조합원들끼리 작물을 심고, 서로 나눠 먹습니다.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 건강을 지키는 법을 배우는 겁니다.
<녹취> 한경순(안산의료생협 조합원) : "내가 내 밭에 물 주러 왔어도 다른 사람들 것도 다 나눠주게 되더라고요. 내 밭에만 물 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웃들도 다 근접해 있으니까 조합원이니까..."
요가 강사 김영림씨는 처음엔 단순히 출자만 했지만, 지금은 열성 조합원이 됐습니다.
특기를 살려 의료생협에 있는 노인 요양원에서 자원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녹취> 김영림(의료생협 조합원) : "크게 의미를 안 뒀었어요. 정말 이게 될까? 하는 그냥 그런 마음으로 시작을 한거거든요. 어쨌든 좋은 의미니까. 그런데 이렇게 운영을 해 나가시고 하는 거 보니까 발전 가능성도 있는 것 같고. 굉장히 좋다고 생각해요."
현재 안산의료생협에 가입한 조합원은 4천2백 가구.
조합원들의 참여가 늘면서, 병원 뿐 아니라 요양원과 집으로 찾아가는 노인돌보미 서비스 등으로 활동 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녹취> 안옥란(안산의료생협 재가요양센터장) : "유학원 선생님이 직접 가 청소해주고, 빨래도 해드리고 시장도 봐다가 반찬도 만들어 주고 이거는 사업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고요. 그냥 의료 생협 만의 그런 자체적으로 생협이 가고자 하는 그런 방향으로 가는거죠."
커피향과 함께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큼직한 고양이도 키우는 곳.
여느 카페와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이 곳 역시 병원입니다.
카페 한켠에 마련된 진료실로 환자 한 명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진료 시작 30분이 넘도록 나오질 않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걸까.
<녹취> 박재환(환자) : "누가 그러시더라고요. 수세미, 도라지, 몇 가지 끌여서 차를 드시라고..."
<녹취> 정혜진(제너럴닥터 의사) : "저 같은 경우도 왠만하면 버스나 지하철에서 에어컨 바람 안 쐬려고 피해요. 냉난방 심한곳에서는 옷 챙겨입고..."
<녹취> "난 환율이 700원일 때 갔었는데...(지금은 2배인데요.)"
평소 생활 습관부터, 여름 휴가 이야기까지.
꼭 아프지 않아도 정기적으로 찾아와 편하게 이야기하며 건강 상담을 합니다.
<녹취> 박재환(환자) : "대한민국에 이런 병원이 어디 있습니까? 솔직한 얘기로 이렇게 진료하고 이렇게 생활속에서 이렇게 진짜 친숙하게 할 수 있는...동네마다 있었으면 좋겠어요. 동네마다."
약 처방전 뿐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지켜야 할 ‘행동 처방전'도 함께 내 줍니다.
<인터뷰> 정혜진(제너럴닥터 의사) : "저는 환자한테 하고싶은 얘기 다 하거든요. 약을 안 주면서도 왜 안 주는지 얘기할 수 있고, 이 약은 왜 주는 지를 얘기할 수 있고, 주사를 주거나 안 주거나 뭔가 검사가 필요하다고 얘기할 때 모든 과정에서 충분히 설명하고 공감대가 이끌어지기 때문에 환자만 만족스러운게 아니라 사실은 의사 입장에서도 굉장히 만족스러운 진료를 할 수 있는 거죠."
이러다보니 하루에 진료할 수 있는 환자는 20명 남짓.
진료비도 다른 병원과 똑같습니다.
지난 4년 간은 카페 수익 등으로 병원을 꾸려왔지만, 이 곳도 최근 의료생협으로 전환했습니다.
좀 더 안정된 기반에서 많은 사람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섭니다.
의료 생협을 만드려면 최소 300명이 모여 3천만 원 이상을 출자해야 하는데 불과 열흘밖에 안 걸렸을 정도로 회원들의 호응도 뜨거웠습니다.
<인터뷰> 정혜진(제너럴닥터 의사) : "살면서 의료인과 법률가를 한 명씩은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하잖아요. 누구든 나를 잘아는 의사가 한 명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게 저희 생각이고, 그거를 저희 나름의 방법으로 풀어보고 있는거죠."
현재 전국의 의료생협은 120여 개, 최근 들어 증가세가 뚜렷합니다.
지난해 3월, 생협법이 개정되면서 전체 이용 환자의 50%까지는 비조합원도 진료할 수 있게 됐고, 비영리기관으로 규정되면서 다양한 사업을 할 수 있게 된 영향도 큽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의료생협 설립을 대행하는 브로커가 생길 정도로 가짜 의료생협도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인터뷰> 박봉희(의료생협연대 사무총장) : "협동조합 방식이 아닌 단지 수익을 창출하는 의료기관을 운영하려는 그룹들이 있어서 그런 부분들이 어느 정도인지 전국적으로 실태조사를 해야할 시점에 있다."
일부 신생 의료생협들은 전문성 부족 등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지난 2007년에 만들어진 이 곳은 벌써 3번이나 병원 문을 열었다 닫았습니다.
<녹취> 이현숙(청주아올의료생협 이사) : "이건 환자분들이 익숙치 않는거예요. 그니까 와서 약을 팔면 약 받고 주사맞고 빨리 빨리 나아서 가셔야 되는데 오시면 선생님이 이건 이러니까 이렇게 한 번 잘 해보자. 상담위주로 진료를 하시니까. 이건 약도 안 주고 주사도 안 주고..."
우리나라의 당뇨로 인한 사망자 수 증가율은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았습니다.
반면 일부 국가들은 환자 수가 늘었는데도, 사망자는 오히려 줄었습니다.
전문가들은 국내에 치료 목적의 병원은 많지만, 정작 만성 질환을 꾸준히 관리할 수 있는 1차 의료기관, 즉 동네 병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라고 지적합니다.
<인터뷰> 이진석(서울대 의대 교수) : "그런 역할을 제한적이기도 하지만 의료생협이나 도시 보건지소, 보건소 등과 같은 기관들이 하고 있는 거고요. 이런 기관들을 어떻게 더 확대시켜 나갈거냐, 그리고 일반적인 민간 의료기관도 이런 역할을 부담 없이 담당할 수 있는 그런 길을 어떻게 만들거냐 이런 것들이 대단히 중요한 과제죠."
10년 뒤엔 16조 원, 20년 뒤엔 48조 원의 적자를 낼 것으로 예상되는 건강보험의 재정 건전성을 위해서라도 의료생협 같은 1차 의료기관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지역 주민들과 의사들이 '인간적인 의료'를 꿈꾸며 만들어 가고 있는 의료생협.
척박한 국내 의료 환경에서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지, 또 상업화와 신뢰 상실이라는 위기를 맞고 있는 국내 의료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입력시간 2011.09.05 (07:11) 김시원 기자
첫댓글 한스님의 [시청소감]과 무영님의 댓글을 보고 kbs에서 검색해서 퍼 올렸 습니다.
건강의 권리 즉 의료주권은 호혜적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찾아서 쟁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권리를 말할 때 의무도 함께 동반되는 것이지요.
사회적 의료사업은 지역사회의 기여가 요체입니다.
지역사회의 기여만이 인간관계의 보증과 신뢰을 가져옵니다.그것이 신용이라 봅니다.
신용을 얻으면 모든 것을 얻은 것입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방송을 보시고... '정말 좋은 일을 하고 있구나' 하셔서.. 어깨가 으쓱했답니다..^^
인간적인 의료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