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30] 장영창(張泳暢) - 하늘 길은 슬프다 1. 북한산 예술학원에서의 영적경험 - 7
61 여하튼 나는 이 무렵부터 진지한 종교적인 고민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계속적으로 또 하나의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내가 볼 일이 있어 부산에 갔다가 상경했을 때였다. 상경하자마자 신문사에 들렀더니, 인사발령의 종이가 벽에 붙어 있었다.
62 당시 나는 조사부장 서리의 자리에 있었는데, 인사발령을 보니 비서실 근무로 새로 발령이 나 있었다. 그것을 본 나는 즉시로 그러한 인사발령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63 나는 과거에 잠시 비서실에 있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비서실에서 일을 하게 되면 일요일에 자리를 비우고 교회 같은 데에는 나갈 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발령은 나에게 신문사냐 아니면 교회냐! 하는 문제를 놓고 소위 양자택일을 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64 나는 즉시로 편집실에서 사장실로 내려갔다. 장기영 사장은 석천 오종식 선생님과 함께 무엇인가를 얘기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 가서 “신문사를 그만두겠습니다”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65 당시 나에게는 내가 그러한 인사발령에 대해서 불만을 품거나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그것은 내가 이미 어느 때에 가서는, 내가 진실로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살려고 한다면, 응당 신문사를 그만두어야 하겠다고 결심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66 장 사장과 함께 앉아 있던 오종식 선생은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왜 신문사를 그만두려고 하느냐?”라고 하면서 그대로 신문사에 머물러 있도록 하라고 권고했으나, 나는 조용히 하는 수없이 “그만두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한 결단이 내릴 때에는 나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는 것을 느꼈다.
67 장기영 사장도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나의 불변한 표정을 보면서 “장 선생은 나에게 저금한 것이 많소. 그것을 어떻게 갚아야 할지……” 하면서,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린 후에 조용히 다시 눈을 감고 있었다. 나도 슬펐다. 그러나 하는 수 없는 일이었다.
68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놓으시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하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나는 수년 동안 피땀을 흘리면서 봉사했던 한국일보사를 떠나게 되고 말았다.
69 나는 신문사에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자아, 이제는 나 혼자다. 이제부터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하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70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믿는 것이, 나에게 남겨진 단 하나의 정신적인 무기였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