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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의 추억 #61, 우리집의 보물
이환스님이 부산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그의 절에 들렀을때 부산 올 일이 있으면 우리집에 한번 들르라고 초청을 했었는데 어느날 아침에 작은 아들이 전화를 받더니 “아버지, 어떤 사람이 아버지를 찾아요”하는 것이다. 받아보니 이환스님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어디냐고 하니 부산이라고 한다. 부산 어디냐고 하니 우리동네라고 한다.
그러면 옆에 간판이 뭐가 보이냐고 물으니 대답하는데 우리집에서 불과 100여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 아닌가. 깜짝 놀랐다. 마침 부산에 살고 있는 그의 절에 다니는 신도 한 사람이 집을 이사했는데 스님이 와서 자기 가족과 함께 하루밤을 유하면서 지신(地神)을 한번 밟아 달라는 부탁과 함께 비행기표를 보내와서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신(地神) 밟아주러 온 그집도 내가 아는 집이 아닌가, 이런 우연이 또 있겠는가, 나는 이환스님과 그집 안주인(남편은 외항선원으로 출타중)을 같이 우리집으로 초대해서 아내가 집에서 점심을 차려 잘 대접했다. 같이 초대받아 온 우리동네의 그 여신도는 이환스님 자랑이 대단했다. 십수년을 모시고 있는데 무슨 일이든지 스님 시키는 대로만 하면 만사가 무탈하다는 것이다.
점심을 먹고 거실 쇼파에 앉아 이런저런 환담을 나누면서 이환스님이 말했다. “허어! 풍수로 보면 이집 양택이 상지상(上之上)이로고” 하는 것이었다. 음택은 죽은 사람이 가는 무덤이고 양택은 살아있는 사람이 머무는 장소라, 상지상(上之上)으로부터 하지하(下之下)까지 아홉등급으로 나누는데 우리집이 상지상(上之上)이라는 것이다.
우리집은 한 마리의 학이 창공을 날아 오를듯이 뻗어있는 산줄기의 능선을 타고 앉아있고 앞으로는 자그마한 공원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우리집을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라, 평지에 불쑥 솟아있는 동산같은 이 자그마한 공원은 우리집 거실 창문을 통해 바라보면 생긴 모양이 마치 호랑이가 길게 누워서 동남방을 향해 앞발을 땅으로 내어밀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자그마한 동산같은 이 공원의 서북쪽, 나무들로 가려진 곳에 어렴풋이 보이는 두 개의 바위가 한쌍으로 나란히 붙어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옛날부터 이것을 ‘호랑이 젖바위’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너머 멀리 낙동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우리집 창가에 앉아 내다보면 강건너 기름진 평야가 훤하게 눈앞에 들어온다. 그 하늘위에는 몇 분 간격으로 끊이없이 항공기가 국제공항에 이착륙을 계속하면서 인간사를 실어 나르고 있다.
십수년 전 대단지 아파트를 건축하기 전에는 우리집에서 하구의 섬 넘어 바다풍경도 한눈에 들어왔다. 날아오르는 학의 날개 자락에 타고앉아 눈 아래 노니는 호랑이를 벗하면서 바다가 있고 산이 보이고 강물이 있고 들판이 보이고 하늘에는 온갖 철새와 비행기가 넘나드는 천혜의 장소라, 그야말로 육해공군이 노니는 장소다.
풍수입담가들은 낙동강을 한 마리의 용으로 본다. 낙동강이 긴 여정을 마무리하는 그 끝자락 강진(江盡), 칠백리를 흘러내린 용트림의 마지막 물길질을 이곳에서 마무리하고 거대한 용은 더 넓은 남해바다를 향해 깊은 자맥질을 시작하는 곳이다. 이곳 강변 갈대숲에 한 마리의 호랑이가 길게 엎드려 깊은 휴식의 숨길을 가다듬고 있는데 비상을 꿈꾸는 학은 긴 날개를 힘차게 내저으며 하늘로의 첫 날개짓을 시작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집 거실 서향(西向)한 대형 유리창에 노을이 물들어 가는 해거름, 붉은 해는 낙동강 너머 서산으로 걸음을 재촉하는데 마치 거대한 고래 한 마리가 심해에서 소리도 없이 헤엄쳐 앞으로 나아가는듯이 착륙 바퀴를 내린 비행기가 공항쪽으로 소리없이 활강하는 모습은 늘 경이롭다. 해질녘 어느 한 순간,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추어 가는 비행기가 붉게 이글거리는 태양을 향하여 기수를 들이밀고 항공기의 동체가 붉은 태양을 통과하는, 손에 잡힐듯한 그 모습은 가히 황홀경을 연출한다.
시공을 움직이는 모든 운동 에너지의 작동을 찰나(刹那)에 정지시키고 순간에서 영원으로 몰입하고 싶은 순간이기도 하다. 또 밤은 어떠한가, 하루의 피곤을 풀어주는 잠자리에 들면 남창(南窓)으로 수줍게 고개를 들이밀고 인사하던 달님은 어느듯 삼경(三更)즈음 서창(西窓)으로 깊숙이 방안에 들어와 나를 깨운다. 달빛 채근에 못이겨 일어나 서창(西窓)을 내다보면 달님은 호랑이등을 타고 앉아 출렁이는 은빛 비늘을 자랑하는 한 마리의 용과 신화(神話)를 속삭이고 있다.
아. . . , 그 누가 말했던가, 태양에 시들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바래면 신화가 된다고.
해마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과 추분이 다가오는 어느날이 되면 태양은 어김없이 우리집 거실에서 바라보는 어느 건물의 굴뚝속으로 떨어지는 절묘한 위치를 구성하게 된다. 일년에 두 번 이때가 되면 나는 어김없이 깊은 우주적 상념에 빠져들곤 한다.
천천히 회전하는 하늘의 맷돌, 우리의 덧없는 이 행성, 지구는 흔들리면서 회전하고 공전궤도를 따라 돌고있는데 거친 하늘의 춤은 날고 뛰고 돌진하면서 영원히 계속된다. 또한 거기에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존재하고 있다. 한쪽은 태양을 향해서 뛰어들려고 하고 다른 한쪽은 바깥의 암흑세계로 도망치려고 한다.
춘분과 추분에 태양이 떠오르고 떨어지는 자리, 사실은 태양은 요지부동인데 떠오르고 떨어진다는 엄청난 착각을 안고 살아가는 나는 지축의 세차운동 주기속에서 지금 황도대의 어느 별자리를 지나가고 있을까, 나를 품에 안고 무한허공을 떠도는 지구행성의 역사는 지금이 어느때쯤 되었을까, 지구의 공전속도는 초속 30Km에 가까워 탄환보다 빠른 속도로 태양계를 회전한다.
더구나 혼자가 아니다, 화수목금토성을 위시하여 천왕성,해왕성,명왕성까지. . . , 요지부동이라고 여기는 태양도 사실은 요지부동이 아니라 또 다른 수많은 항성들과 더불어 은하계의 중심둘레를 자전, 공전하고 그 은하계도 또 다른 수많은 성운과 함께 우주를 회전한다는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볼륨에 압도당하는 상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우주와 영원으로 뻗어 나가는 것이다.
무한대 그 어딘가에는 분명코 있어야 하는 우주의 경계, 그 한발자국 너머의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나의 실존(實存)을 시공(時空)이 스쳐 지나가는가, 시공(時空)은 항존(恒存)이로되 내가 그 시공(時空)을 뚫고 지나가는 한줄기 섬광이었나, 색즉시공(色卽是空)이요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3:11)
다시 이환스님은 말했다. “그런데 지하의 수맥파 때문에 상지상(上之上)의 양택이 중지상(中之上)의 역할밖에 못하는 구만” 하는 것이었다. 우리집 밑으로는 엄청난 양의 지하수가 흐르는것 같았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이집을 건축하기전에 먼저 150m까지 지하공을 뚫어 지하수를 확보해놓고 그위에 건물을 지어올렸다.
지하 34m를 파 내려가니 암반을 만났고 110m를 내려가니 지하수가 터졌고 150m까지 파고 내려가니 암반사이로 흐르는 지하수가 풍부해서 하루 70톤 정도 뽑아올려도 문제가 없을 정도의 양으로 목욕탕을 해도 충분하다는 설명을 들었다. 옆에는 건물을 지을때 지하공을 몇 개나 뚫어도 지하수가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는데 우리집의 한쪽에 뚫은 지하공에서는 단번에 지하수가 터져 나왔던 것이다.
내가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이환스님은 우리집 밑에 지하수가 흐르고 있다는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바랭이에서 스물스물 검침봉을 꺼내더니(스님 바랭이에 그런것이 들어있는 줄은 몰랐다) 거실을 이리저리 다니다가 검침봉이 서로 딱 붙는곳이 있었다. 이곳이 지하수가 흘러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내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그러면 무슨 방법이 없는가”하고 물었다. 방법이 없는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수맥파를 잠재울 수 있는 강력한 자장을 가진 보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가만히 주위를 관찰하더니 “이 집안에 그 보물이 있네” 라고 하는 것이다. 이쪽에 있다고 하면서 남쪽방의 미닫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더니 서랍장위에 놓아둔 까만 도자기 하나를 가리키는것이 아닌가.
이 도자기에 관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겠다. 내가 30대 초반이었을때 옛 세칭 동방교의 후배, 동방교의 명명(세칭 동방교에서 지성(헌금)을 바치고 받는 새 이름)이 ‘사이로스’라는 아가씨가 시집을 가서 자기 남편이 도자기를 굽는 도공인데 전시회를 한다고 초청을 해서 간 일이 있었다. 구경만 하고 그냥 나오기가 뭣해서 도자기 하나를 샀는데 새까만 바탕에 작은 학의 날개 같은 문양이 많이 그려져 있는 입구가 좁고 몸체는 둥그런 형태의 도자기였다.
당시 내 월급 한달치의 거금(30만원 정도라고 기억)을 지불했다. 일반도자기 두 개를 덤으로 더 주었는데 방안의 서랍장위에 놓아두고 아이들이 자다가 오줌이 마렵다고 하면 얼른 갖다 대 주곤 하다가 몇 번 이사 끝에 깨어지고 없어져 버리고 비싸게 주고 산 그 도자기만 그때까지 남아 서랍장 위를 지키고 있었다.
바로 이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보물이라는 것이다. 도공이 도자기를 구울때 굽는 사람의 정성과 그날의 천기와 불의 온도와 흙의 재질등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질때 천개 만개 중에 이런 명품이 하나 나오는데 도자기중의 보물이 되어 강력한 자장을 내 뿜는다는 것이다. 수맥파를 제지하고도 남을 그런 강력한 자장, 이것이 바로 그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주시해서 보고 있더니 보물의 자장이 잠자고 있다는 것이다. 그냥 있을 내가 아니다. “그러면 잠을 좀 깨울수 없는가?” 하고 물으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깨우느냐고 물으니 이 보물의 자장보다 더 강력한 자장을 내뿜는 보물이 깨우든지 아니면 ‘경’으로서 깨울 수 있다는 것이다.
무슨 ‘경’이냐고 물었더니 ‘천부경’으로 깨울 수 있으니 깨우겠다는 것이다. 한쪽 손을 도자기 위에 올려 놓더니 눈을 지그시 감고 '천부경’을 외우는 것이었다. 81자로 되어있는 '경'인데 ‘경’중에 최고의 ‘경’이란다. 한참을 정성스레 외우더니 “됐다, 깨어났다, 3분후부터 작동한다”라는 것이다.
다시 거실의 제자리로 돌아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바랭이에서 검침봉을 꺼내서 들고 거실을 걸으니 조금전 검침봉이 서로 붙었던 그 자리에서 검침봉이 서로 붙지않고 평행을 유지하는 것이 아닌가. “이제 됐다. 양택이 상지상(上之上)의 원래 역활로 돌아왔다”고 하면서 가능하면 자리를 옮기지 말되 만일 자리를 옮기게 되면 그때로부터 3분후에 다시 자장을 내뿜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집 거실 한켠의 장식장위에 그 보물이 굳건히 자리잡고 있어 수맥파를 잠재우는 강력한 자장을 내뿜고 있음은 물론이다. 나는 이환스님이 해 준 말을 새겨듣고 가능하면 자리잡은 한곳에 오래두고 옮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아내는 영 내 말이 먹히지 않는다. “씰∼데없는 소리 한다”고 하면서 청소를 할 때 마다 이 도자기를 한 손으로 치켜들고 먼지털이를 가지고 사정없이 먼지를 털어댄다. 나는 기겁을 하고 제발 좀 그대로 두라고 사정한다. 우 하 하 하 . . . 역시 믿거나 말거나다.
그날 점심식사후 그렇게 한담을 나누다 서면 태화백화점 커피숍으로 나가 옛 지인 한사람을 만나기로 했다. 모두 옛날의 세칭 동방교 동지들이었다. 30여년만에 만나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눈 그녀는 요즈음 불교에 심취해 있었다.
이환스님을 만나자 여러 이야기 끝에 신수를 좀 봐 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환스님이 옛 지인의 사주와 그 남편의 사주를 물어보고 이리저리 손을 짚어보고는 눈을 지그시 감더니 대뜸 한다는 소리가 “남편하고는 천리요 자식하고는 만리구만” 하는것이 아닌가, 옆에서 듣기가 좀 민망했다.
사실 그녀는 남편과의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고 대학다니는 자녀는 중학생때 부터 멀리 카나다에 유학을 보내놓고 있었으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30여년만에 서로 만났으니 서로의 사정을 알 리가 없었고 누가 말해주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한참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어서서 백화점안의 어느 점포를 지나가다가 이환스님이 몇 발자국 뒷걸음쳐 돌아와 그 점포 귀금속점의 점원 아가씨를 좀 보자고 하더니 연필과 종이를 좀 달라고 해서 며칠뒤의 날짜를 적어주면서 이날은 어떤일이 있어도 집밖에 나가지말고 그날 하루를 꼬박 집안에서만 지내라고 말을 해주는 것이 아닌가,
의아해 하는 아가씨가 왜 그러시냐고 물으니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눈에 보이니 말을 해 주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날 밖에 나오면 교통사고 같은 큰 액운이 생기게 되니 병원에 입원을 하던지 출근을 하지말고 꼭 집에 있으라고 신신당부 하는것이 아닌가, 그 아가씨가 그대로 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날의 목격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