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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t by Shot
多畵 안현숙展 / DAHWA ANNHYUNSUK / 多畵 安賢淑 / installation
2009_0307 ▶ 2009_0327 / 일요일, 공휴일 휴관
多畵 안현숙_천국의 계단_혼합재료_가변설치_2009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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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9_0307_토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일요일, 공휴일 휴관
고통스러운 죽음의 대명사이자 여성주의 운동의 붐을 일으켰던 여류 시인, 실비아 플라스는 “찰나의 순간은 삶 그 자체. 순간이 사라지면 삶도 죽는다. 그러나 매 순간 인생을 새로 시작할 수는 없으니, 기왕 죽어버린 시간들로 판단하는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즉 마구잡이로 쪼개어져 지극히 주관적인 선택에 의해 간헐적으로 기억에 남게 되는 과거의 편린들로 우리는 나의 생과 타인의 생을 평가하고 판단한다는 말이다. 안현숙의 이번 전시의 컨셉트도 이와 유사하다. 과거의 편린들의 공존. 그 교묘한 결합이 누군가의 인생을 펼쳐 보이며, 우리로 하여금 그 인생에 대해 반추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플라스와 안현숙의 교점은 또 다른 데서도 발견되는데, ‘나의 생’에 대해 특별함을 부여하고자 하는 인간의 헛된 욕망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플라스는 ‘지금의 나와 닮은 삶을 백 년 전 한 소녀도 살았으며, 백 년 후 어떤 소녀도 살 것’이라 했으며, 안현숙 역시 폐기된 자개장과 낡은 벽지를 통해 개인에게는 지극히 특별하나 사실은 누구에게나 남아있는 아주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기억들을 보여준다.
多畵 안현숙_천국의 계단_혼합재료_가변설치_2009
안현숙의 작품을 우리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바로 「천국의 계단」에서 드러나는 시간들의 단면과 「Shot by Shot」에서 드러나는 분절된 시간의 집합이다. 「천국의 계단」은 철거 직전 아현동 빈 집의 낮과 밤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진이라는 형식으로 구현되어 그 분절은 매우 명확하고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분절된 시간이 전체의 시간과 공간을 담고 있음을 알게 된다. 2차원 평면으로 구현되었음에도 부분적으로 빛을 내는 라이트박스의 효과에 힘 입어 여러 공간이 겹쳐있는 듯 표현되어 있으며, 그 몽롱과 환상의 필터가 시간 자체를 모호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낮 혹은 밤으로 구현된 작품은 ‘개와 늑대의 시간’과 ‘새벽 별이 동쪽에서 빛나는 시간’을 포함하며, 시계(視界) 또한 한정돼 있지 않다. 우리가 그것을 ‘낮’과 ‘밤’이라 인식하는 것은 그저 고정관념에 의한 순간적 판단일 뿐이라는 말이다. 들여다 볼수록 모호해지고 불분명해지는 시간과 공간. 그것은 철거 직전 아현동 빈 집에 누워있는 것 같은 한 없는 평강을 선사하고 있다.
多畵 안현숙_Shot by Shot_혼합재료_112×112×10cm_2009
「Shot by Shot」에는 전혀 다른 시간에 존재하던 오브제들이 모여 있다. 에이젠슈타인은 분절된 그리고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시간들을 늘어놓으면서 극적 긴장감을 유발시킨 바 있다. 안현숙의 의도 또한 이와 일치한다.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했던 물체들. 그것들이 수행하던 역할 혹은 부여 받은 정체성 역시 모두 달랐다. 하지만 허름한 벽지 위에서 공존을 시작하면서 예술적 매체로 생소하고 특이한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다. 목이 잘린 사슴과 새, 거칠게 칠해진 물감들, 닳을 대로 닳은 벽지. 이들이 함께 모여 이루어내는 것은 안현숙이 써 내려간 시나리오와 다름 없다. 이렇듯 분절되어 있으며,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존재와 시간들에서 우리는 어떠한 영감을 받을 수 있을까. 사실 우리네 생에서 모든 존재와 시간들은 이렇듯 어떠한 연계성이나 필연성 없이 우연적으로 운명적으로 만나고 모여있지 않은가. 한 마디로 「Shot by Shot」에서 구현되어 있는 비필연적 비운명적 조우는 우리 세계를 독특한 방식으로 해석하여 표현한 결과라 말할 수 있겠다.
多畵 안현숙_카메라 아이즈_혼합재료_가변설치_2009
우리의 기억 속에서 시간은 어떤 모습으로 머무를까. 아마도 분 단위 혹은 초 단위 아니 그 보다 더 짧은 찰나의 단위일 것이다. 이렇게 견고하고 단단하게 압축되어 쪼개어진 시간들이 간헐적으로 뇌리에 남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분절된 시간의 견고함은 매우 강인하여 사건 전체를 담고 있기도 하고,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현상을 대변하기도 한다. 안현숙의 작품에서 우리는 이렇듯 나뉘어졌으나 전체를 드러내는 시간들을 만나게 된다.
多畵 안현숙_사거리-바벨탑_혼합재료_90×90×130cm_2009_부분
多畵 안현숙_사거리-바벨탑_혼합재료_90×90×130cm_2009
多畵 안현숙_추적_혼합재료_가변설치_2009
모든 탄생은 사라짐을 전제로 이루어진다. 아현동의 빈 집도 그러하였으며, 당신과 나의 존재 역시 그러하다. 그 중에서 우리가 그토록 집착하고 집중하는 것은 시간과 공간으로 이루어진 생의 간격들이다. 매우 단편적이고 협소한 간격이지만 과거의 누군가도 버텼으며, 현재의 누군가도 버티고 있으며, 미래의 누군가도 버텨낼 것이기에 그 가치는 매우 고귀하다. 고로 그것들의 의미를 되새기며,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안현숙의 시도는 아름답다 하겠다. ■ 김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