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풀꽃의 트리플 액셀
그 아이를 다시 만났다. ‘선·생·님’ 약간 특이한 발음을 하며 수줍게 다가오는 작은 얼굴, 출근길 러시아워를 막 지난 시간에 지하철 승강장 안에서다. 사방 천지가 화사한 봄날인데 피다 만 꽃잎인양 후줄근한 차림새가 우선 마음에 맺힌다. 그 나이 또래들처럼 멋 내기에 관심이 많았던 아이다. 까칠해진 피부로 예전만도 못해 보이니 어쩌나. 양손엔 불룩한 종이가방이 들린 채다. 장사하러 간단다. 남편은 뭐하며, 무슨 장사냐고 궁금해하는 내게 새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먹는 것’이라고만 답한다. 남편은 아기 본다는 말에 마음이 깜깜해진다.
몇 년 전, 동네의 한 문화원에서 결혼 이민 여성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던 때다. 그 아이를 처음 만났던 그해 겨울은 날씨조차 유난스레 추웠다. 낯선 타국 땅에 금방 닻을 내린 사람들이라면 겨울 날씨는 특히 그랬을 테다. 갓 스물을 넘긴 나이에 가난한 고국을 두고 과거와 현재와 일생과 함께 시집온 어린 신부들이었다. 베트남 중국 캄보디아 필리핀 등지에서 온 그들에겐 매운 날씨를 견딜 변변한 외출복 하나도 없었다. 코끝이 발갛게 얼어 강의실에 들어서던 앳된 모습들, 익숙하지 않은 것이 어디 겨울 추위뿐이었으리, 모든 것이 추위를 탔고 시린 속이나마 덥혀 주고픈 나는 겨울내내 마음의 열기를 지폈다.
그녀는 캄보디아에서 왔다. 그때 나이 스물하나, 한창 꽃띠이면서 이미 갓난애의 엄마로 내 앞에 나타났었다. 결혼과 동시에 들어선 첫아이를 출산 후 소통 부재중인 한국어를 배우러 나온 혼자만의 나들이였던 셈이다. 그녀를 처음 본 나는 깜찍한 미모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조그만 얼굴에 약간 가무잡잡한 피부와 보석처럼 빛나는 까만 눈동자. 어여쁜 콧날이며 새침한 입술이 가요계 걸 그룹’ 멤버로 서 있어야 딱 어울릴 것 같았다. 그런 아이를 생면부지의 타국 남자에게 딸려 보내야 했던 홀어머니의 심정은 어땠을까. 더구나 스무 살이나 연상으로 친정엄마인 자신과 동갑의 사위였다.
벌써 6년이 되었단다. 이젠 여섯 살과 네 살의 딸과 아들을 둔 스물일곱의 엄마다. 가녀린 몸에 어눌한 언어로 장사는 어떻게 하는지, 걱정이 담긴 내 눈빛을 읽었나 보다. 모르는 말에는 가만히 있으면 손님이 이렇게, 이렇게, 설명해 준다며 제스처를 곁들여 이어 가는 그녀의 떠듬거리는 말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추측하건대 그녀는 아마도 두고 온 고향에 대한 향수와 마음껏 소통할 수 없는 언어 장벽과 불안한 가정 경제까지 포함한 난관 앞에 서 있는 게다. 아직도 어린 나이에 스스로 극복해야 할 이국 생활의 어려움과 삼키고 있을 아픔이 오죽하랴 짐작된다.
사실 도시의 늙고 무능한 남편에게 시집온 그녀들은 생활 전선에 뛰어들기 바쁘다. 한국어를 채 익히기도 전에 일자리부터 찾는 그들을 누구라서 말리겠는가. 신혼의 단꿈은커녕 열악한 환경에 부대끼는 그녀들을 일러 황량한 들판의 풀꽃이라고나 할까. 아니 차디찬 얼음판 위의 이름 없는 꽃인지도 모른다.
‘얼음판’ 하면 퍼뜩 떠오르는 환상적인 영상이 있다. 바로 동계올림픽의 피겨 스케이팅이다. 사람들은 흔히 ‘은반 위의 꽃’이라 부른다. 토슈즈도 아닌 스케이트를 신고 발레를 추는 양 우아한 동작으로 스핀과 점프 등 숨막히는 연기를 선보이는 그것은 분명 몸으로 피우는 꽃이다. 그런 피겨 스케이팅에서 ‘트리플 엑셀’은 점프 중에서도 가장 고난도 기술이라 한다. 여차하면 미끄러지고 엉덩방아를 찧기 일쑤인 빙상에서 공중을 솟구쳐 세바퀴 반을 돌아 반대편으로 착지하는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펼치는 경이로운 묘기와 날아갈듯 그려내는 곡선을 보고 있으면 전율이 인다. 올림픽이라는 한 번의 꽃을 피우기 위해 수없이 넘어지고 깨어지며 몸을 연마한 선수들 아닌가. 차가운 얼름 바닥에 흘러내린 구슬땀이 있었기에 은반 위의 꽃도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은, 어떤 조건에도 흐트러짐 없는 정신력이지 싶다.
그 아이를 바라보면 짠하고 아프다. 그녀가 서 있는 곳은 화려한 의상과 환상적인 조명과멋진 음악에 맞춰 연기를 펼치는 무대와는 딴판인 세상이다. 정녕 엄숙한 삶의 진리 앞에 온몸으로 뿌리를 내려야 할 막막한 곳이다. 지하철 전동차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가슴이 또 철렁한다. “한국에 시집와서 좋아요?” “모…르…겠…어요.” “고향이 그리워서 그러니?” “아니예요, 아이가 있어서 아니예요.” 놀랍게도 고개를 흔드는 그녀는 정말 엄마가 되어 있었다. 순정한 모성 앞에 강해질 수밖에 없는 엄마다. 그러기에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신비라 하였나. 자꾸만 내려앉던 가슴이 겨우 평온을 되찾는다.
그녀는 당찬 풀꽃이다. 머나먼 길을 건너와 낯선 바람과 햇빛 아래 뿌리를 내리려는 풀꽃. 가진 것이라곤 어렵게 일군 가족이 전부다. 설레는 꿈을 안고 마음 다짐도 거듭했을 그녀에게 올림픽 선수들의 강인한 정신력만큼은 주어졌으면 한다. ‘은반 위의 꽃’ 도 처음부터 눈부신 꽃이 아니었듯이 그녀의 남모를 향수병과 높은 언어의 벽과 경제적 결핍이라는 고난도 ‘트리플 엑셀’을 거뜬하게 소화시켜 내기를 염원한다. 이 땅에 온전히 착지하여 현명한 아내, 따뜻한 어머니, 당당한 국민으로 꽃피울 날을 손꼽는다. 그러면서도 내가 그 아이와 헤어지면서 해 준말은 고작, 이랬다.
“장사 잘해… 몸 아프면 참지말고 꼭 병원에 가고…….”
선명한 신록의 오월, 아침 햇살이 가로수 이파리에서 영롱하게 빛나던 날이었다. 하다못해 두 손가락으로 브이(v)자를 그려 보이는 응원의 손짓이라든가, 산뜻한 ‘하이파이브’로 용기를 부추기는 제스처조차 나는 왜 까먹고 있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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