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마리아의 행위(그때에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다.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찼다. 3절)
▶유대인들의 속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를 잡으려고 누구든지 그가 있는 곳을 알거든 알려달라는 명령을 내려 두었다.” 요한11:57 유대인지도자들은 예수가 걸리적거리는 존재로 제거의 대상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예수는 존재 그 자체로 불편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거짓된 종교권력은 선한 상황이 지속되는 것에 대하여 참지 못한다.
▶마리아의 전적인 헌신 / 마리아는 여성 특유의 감각으로 예수님이 베다니로 돌아오신 것에 대한 이해, 즉 잔치에 참석하는 예수의 모습 속에서 죽음을 준비하는 선생의 모습을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리아는 끝까지 주님과 함께 하겠다는 결단을 향유를 붓는 실천을 통하여 하고 있는 것이다.
2.손익분기점?(이 향유를 삼백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지 않고 왜 이렇게 낭비하는가? 5절)
▶가롯유다의 항변–대차대조표를 작성하는 가롯유다는 실용주의자인가? 주님의 찢어진 발에 대한 고귀한 헌신, 전적인 헌신은 비용에 재빠르고 이해에 밝은 인색한 정신과는 공존할 수 없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는 도둑이어서 돈자루를 맡아 가지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것을 훔쳐내곤 하였기 때문이다.” 6절
▶잔인한 사람들(그래서 대제사장들은 나사로를 죽이려고 모의하였다. 그것은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서 예수를 믿었기 때문이다. 10-11절) 자기들에게 방해가 되는 것은 제거하는데만 급급하며 슬픔에 애도를 표하고 함께 사람다운 삶을 살아는 방안을 고민하는데는 인색하기 짝이 없다.
3.다시 살펴보는 여인의 헌신(한 여자가 매우 값진 나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마가14:3) 옥합을 깨뜨린다는 것은 자신의 실존을 깨뜨리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부정/위무위爲無爲 - 더 이상 자기를 자기라 하지 않고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채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처럼 너를 존중하면서 살아가는 그 삶의 법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우리는 믿음의 길을 걸어간다.
4.삶의 자리에서(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롬8:28)
▶신앙공동체–보다 객관적인 삶의 자리를 탐색하는 여정이 믿음의 여정이다. 그러니 몸의 건강과 더불어서 영혼의 정결함을 위하여 끊임없이 정진해야 한다. 지식이 없는 열정은 광신/狂信이다. 열정이 없는 지식은 신앙/信仰이 아니다. 스승이신 예수의 삶을 따라 우리들도 나를 부인하며 세상을 살리는 그 일에 동참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