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말이 씨가 된다고 했다. 그만큼 말을 할 때 주의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을 입에 달고 살았다. 작은 일도 더 과장해서 부정적으로 말하고 때론 속에 없는 말도 내뱉어서 자신들의 삶에 저주를 부르는 습관을 키웠다. 그런데 그들에게 우리 조상들이 가진 속담은 없었던 것일까?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말대로 되고 말았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해서 방향을 잡은 것은 곧바로 가나안으로 직행한 것이 아니라 홍해 길로 돌아간 것이다. (출 14: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그때 이스라엘을 급히 내보낸 애굽의 바로가 제정신이 들자 이스라엘을 내보낸 일을 다시 후회하고 이스라엘을 추격해 온 것이다.
(출 14:5) 그 백성이 도망한 사실이 애굽 왕에게 알려지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그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이르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가 하고 (출 14:6) 바로가 곧 그의 병거를 갖추고 그의 백성을 데리고 갈새
영락없이 애굽군대와 홍해 사이에 갇혀 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인도해 낸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출 14: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출 14: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사람들은 원망과 불평을 할 때 지나치게 과장해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려고 더 세게 이야기하는 버릇이 있다. 상황을 호도하고 의도를 왜곡해서 나쁘게 해석해 버리는 것이다. 그들은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다 죽은 사람처럼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그들은 뭐가 조금만 부족해도 믿음으로 극복할 생각은 안 하고 까딱하면 “죽겠다. 못 살겠다”를 입에 달고 살았다. 애굽군대가 쫓아와도, 물이 떨어져도, 먹을 것이 부족해도 입만 열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고 모세와 아론을 급박했다.
(민 21: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믿음이 없이 자기의 삶을 더 주눅 들게 하고 피폐하게 만든 것은 그들이 처한 상황이나 모세가 아니라 자기 자신들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말하던 사람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다. 말이 씨가 되고 그 씨가 자라서 운명이 된 것이다.
(히 3:17)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히 3: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하나님 아버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더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지어서 밖으로 발설함으로 우리의 운명을 더 어렵게 만들지는 않는지 돌이키고 돌이켜서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믿음의 말을 긍정과 희망의 말을 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우리 입술의 열매가 선한 감화가 되도록 우리의 삶의 습관을 바꾸어 주시고 부정적인 말의 습관대로 우리의 운명이 고정되지 않도록 우리를 변화시켜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