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여행 인터넷 언론 ・ 1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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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두이 문화국장(연극배우)
[장두이 문화국장] 요즘 연극 뿐 아니라, 전 분야 예술을 수학하는 세대들에게 필자가 던지는 화두(話頭)! “너희들이 TADEUSZ KANTOR를 알아?”
필자가 폴란드 태생의 연극 연출가이자 화가 ‘칸토르’의 공연작품을 관람할 수 있었던 건, 연극인으로서 같은 폴란드 연출가 ‘예지 그로토프스키’와 더불어, 내 삶의 최대 '따블' 행운이었다.
1979년 뉴욕 'LAMAMA ANNEX 극장'에서 난 온 몸의 세포줄기 하나하나 송골송골 샘솟는 감동의 작품을 만났다. 그날 기막히게도 내 앞자리엔 할리웃의 명품배우 ‘캐서린 햅번’이 석고처럼 꼿꼿이 앉아, ‘칸토르’의 최고 충격~강탈 작품 <The Dead Class>를 응시하고 있었다.
사진: 폴란드 칸토르 연출작품1
그 연극은 충격 이상(理想)에 이상(以上)이었다.
마치 무조주의(無調主義) 작곡가 ‘죤 케이지’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온몸으로 체현하는 듯한 강렬한 퍼포먼스였다. 공연이 끝나도 관중석은 그대로 얼음(!) 얼어붙었다. 박수조차 손사레를 칠 수 없게 만드는, 한 편의 끊임없이 움직이는 비구상 추상화를 감명 속 눈앞에서 펼쳐보는 듯한 공연이었다.
사진: 폴란드 연출가 칸토르 연출작품2
무더기 팬덤들이 특정 배우나 극단에 박수와 외침으로 떠들어대는 시장판 난장공연이 아닌, “(1)진정 연극이 무엇인지? (2)연극을 왜 하고, 반드시 왜 해야만 하는지? (3)연극은 일상적인 삶의 재현이 아닌 ‘BIGGER THAN LIFE’이고, 연극이라는 ‘라이브 아트’를 통한 메시지 전달이 얼마나 중요한지? (4)그리고 연극은 보고, 듣고, 감지하고, 소통하고, 영감을 얻고, 치유케 하고, 깨달음의 경지로 어떻게 이끌고 만들어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그리고 체험케 한 ‘참여연극(Participating Theatre)’의 결정판(結晶版)이었다.
사진: 폴란드 연출가 칸토르 연출작품3
Tadeusz Kantor(1915.4.6-1990.12.8)는 폴란드 출신의 연극연출가이자, 화가, 무대미술, 소품 디자이너다. 엄격하고 독실한 캐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칸토르는 1939년 ‘크라쿠프 아카데미’에서 미술을 수학, 2차 대전 중 나치가 폴란드를 점령하고 있는 동안 크라쿠프에서 연극에 입문한다.
사진: 폴란드 연출가 칸토르
전쟁이 끝난 후, 매우 창의적인 무대미술 디자인을 통해 전방위적인 작업을 감행,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마침내 1955년 시각예술가들을 중심으로 ‘Cricot Ensemble 극단’을 결성, 미술과 연극의 ‘혼합 연계 해프닝 공연’을 국내외에서 펼치며 주목을 받는다. 당시 유럽 연극계에 풍미(風靡)한 ‘反연극’과 ‘不條理 연극’ 운동에 동참, 폴란드 극작가 'Witkiewicz'의 작품 <오징어(1956)>와 <The Water Hen(1969):에딘버러 연극제 참가작>에 무대미술과 연출을 겸해 작업하며 확고한 ‘칸토르式 공연’의 독자적 예술세계를 확립시켜 나간다.
사진: 폴란드 연출가 칸토르 연출작품4
칸토르를 세계적인 연극인으로 각인시킨 최고의 걸작 <The Dead Class>는 1975년에 발표,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최고의 연극으로 칭송 받게 된다.(1977년 이 작품은 와이디 감독에 의해 TV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이 작품에서 칸토르는 연출과 무대미술 외에 등장인물의 어린 자아(自我) 마네킹을 대면하는 교사역할을 맡아 뛰어난 정곡(正鵠)의 서사적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필자가 1979년 뉴욕 ‘라마마 아낵스 극장’에서 본 바로 그 작품이다.
사진: 폴란드 연출가 칸토르 연출작품5
연극 <The Dead Class>는 실제배우와 마네킹을 동시에 사용하는 기묘하며 그로테스크한 색채의 연극으로, 배역들의 돌아갈 수 없는 과거 어린 시절과 기억 환기(喚起)에 대한 내용이다. 그가 만든 연극 소품(小品) 마네킹과 실제 배우들 간의 ‘합성 및 혼용연기’는 싸이코 심리연극과 영적(靈的)연기를 접목한 프로이드적 연기의 접근이다.
사진: 폴란드 연출가 칸토르 연출작품6
전 세계에서 1,500회 공연을 기록했으며, 1976년 뉴스위크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명품연극’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몇몇 평론가들은 <The Dead Class>를 “칸토르가 청소년 시절에 겪은 세계대전에서 받은 전쟁과 충격 그리고 죽음의 트라우마에서 나온 걸작품”이라 평하고 있다.
사진: 폴란드 연출가 칸토르 연극작품(7)
사진: 폴란드 연출가 칸토르 연극작품(9)
수 십 년이 지난 지금 필자의 기억 속에 그의 연극은 제목처럼 처절한 ‘죽음연극’이라고 생각된다. 배우들이 함께 움직이게 만든 마네킹과 BG 음악은 강렬하다 못해, 보는 관객의 잠재의식을 불러일으켜 의식화시켜서 냉철한 이성판단으로 바꾸어놓는 마법 같은 극효과를 가져다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손수 디자인한 무대는 빈티지 이미지 같은 텍스츄어로 움직이는 회화 같았다.
사진: 폴란드 연출가 칸토르 연극작품(10)
사진: 폴란드 연출가 칸토르 연극작품
책상이 놓인 교실에 덩그러니 쓰러질 것 같은 십자가와 곧 떨어질 것 같은 창문틀 그리고 공포와 경악의 표정 없는 밸런스를 잃은 마네킹들은 진실로 관객들의 기억 속에 숨겨진 어린 시절로 이끌어, 앙금처럼 가라앉은 잠재의식을 되돌려 가슴속에 불을 지르는 뜨거운 묘약(妙藥)이었다.
연출 기법도 그렇지만, 의상과 분장 그리고 배우들의 몽환적이면서 연옥 같은 분위기 속에서의 연기는 2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공연 내내, 꿈틀거리는 묘비명(墓碑銘)의 메시지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사진: 폴란드 연출가 칸토르 연극작품8
그의 일련의 연출 작품,
<The Cuttlefish(1956)>, <The Country House(1961>, <The Madman and Nun(1963)>, <The Water Hen(1965)>, <Wielopole Wielopole(1981), <Let the Artist Die(1985)>, <I shall never Return(1989)>, <Today is My Birthday(1990)> 등과 저서 <The Autonomous Theater(1963)>, <Theater Happening:The Theater of Events(1967)>, <The Informal Theater(1961)>, <The Zero Theater1963)>, <The Theater of Death(1975)>는 현대연극에 관한 서적 가운데 ‘안또낭 아르또’, ‘브레히트’, ‘그로토프스키’와 ‘피터브룩’에 버금가는 저서로 전해지고 있다.
사진: 폴란드 연출가 칸토르 연극작품(11)
사진: 폴란드 연출가 칸토르 연극 포스타
필자가 본 그의 또 다른 연극 <Wielopole Wielopole(1981)>에서 배우가 하나의 오브제를 향해 걷는데, 슬로우 모숀의 경지를 넘어 극도의 집중으로 움직임을 표현한 장면은 압권 중의 압권이었다. 매 작품 그의 연출과 시각적인 무대와 소품 그리고 배우의 합성연기 앙상블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연극확장의 4차원 공간’이었다.
사진: 폴란드 연출가 칸토르 회화작품
예술에 있어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하면 아방가르드, 전위예술이라 칭하는데, 칸토르는 ‘마치 인간 세상만사가 이해 못할 비극적 아방가르드 아닌가!’ 라고 외치는 것 같다.
사람 됨됨이는 그 사람의 얼굴에 여실히 나타나는 법.
칸토르의 얼굴을 보면 내겐 러시아의 천재 발레리노 ‘니진스키’가 떠오른다.
사진: 폴란드 연출가 칸토르 회화작품1
평생 유태인들의 삶과 캐톨릭에 준한 예술가로의 천착(穿鑿)처럼 지내온, 칸토르의 집념은 그 배경을 넘어 또 다른 영적(靈的)인 연극의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
1990년 12월 8일 흩뿌리는 소슬비가 내리는 속에, 칸토르는 <오늘은 나의 생일/Today is My Birthday> 마지막 리허설 도중, 프랑스에서 거짓말처럼 조용히 마지막 단말마(斷末魔)의 숨을 거두었다.
사진: 폴란드 연출가 칸토르 회화작품4
유물적 물질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에 칸토르가 추구한 연극예술의 표현은 현대와 미래에 대한 무섭고 엄중한 경고라 하겠다. 매서운 연극을 통해 교훈과 의식의 감각을 일깨워 준 칸토르를 앙망(仰望)하며, 다시 한 번 연극예술의 지고지순(至高至純) 경지를 암묵 속에 곱씹어본다. 연출, 연기, 무대에 대한 컨셉조차 미미한 우리나라 연극인들을 위해, 그의 공연 사진 몇 점과 화가로서의 회화 몇 작품을 간추려보았다.
사진: 폴란드 연출가 칸토르 회화작품(3)
칼럼을 마치며, 문득 1974년 명동 카톨릭 여학생회관에서 필자가 쓰고 연출한, 비운의 불세출 작가 李箱을 기린 <李箱+-現狀> 공연작품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다시 펼쳐보고 싶은 충동과 함께........ 역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지 않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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