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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에 있는 분들 보면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인사하겠습니다.
한 번 더 인사할 때 풍성한 감사가 넘치는 날 되시기 바랍니다.
네 가을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가을이 지나가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스산함이 느껴지는 아침 시간 저녁 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 나무들은요 이 계절의 변화를 가장 우리에게 잘 보여주는 자연인 것 같아요. 겨울이 되면 이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단풍이라는 것이 우리가 가을에 볼 수 있는 아주 아름다운 풍경이기도 하지만 나무에게 있어서는 겨울을 준비하는 하나의 변화 과정입니다. 나뭇잎을 다 떨어뜨려 놔야 이제 나무가 수분을 막고 수분의 손실을 최소화해서 그 매서운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그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 이 나무들은 나뭇잎을 다 떨어뜨리죠. 그래서 그 수분을 차단하는 과정 속에서 이제 이 잎들이 색깔이 각양각색으로 요즘 우리가 보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아름다운 계절을 잘 느끼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귀한 신앙의 삶입니다. 우리 춘천은 조금만 걸어 다녀도 단풍이 너무 아름다워요. 여러분 오늘 조금 여유를 가지시고 마음을 열고 좀 주변 집 바로 옆에만 가도 단풍들이 있을 겁니다. 그런 단풍나무 여러 모습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좀 발견했으면 좋겠어요.
여러분 이 겨울을 맞이하는 차가운 바람을 이겨내기 위해서 그 모든 잎을 다 떨어뜨려버리고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되는 그 나무,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를 보면서 여러분 우리도 한번 우리의 인생,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인생도요. 마치 봄여름 가을 겨울처럼 뭔가 변화가 있어요. 어떤 때는 이 가을처럼 막 풍성하고 정말 뭐만 해도 잘 되는 것처럼 그런 형통한 시기도 있지만 때로는 매서운 그 겨울처럼 정말 황량하고 정말 어디에 갈 곳 없는 그런 우리의 심령의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 가운데 겨울 특히 고난의 시기가 다가온다고 할 때 그러한 것들이 늘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데 그것을 이기기 위해서 나무가 마치 그 고난을 준비하듯 우리의 삶에도 고난을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의 초점을 재조정하기 위해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잘못된 곳을 바라보며 살았던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을 향하여 고정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고난이 오히려 우리의 믿음을 성숙하게 하고 하나님께 더욱더 가까이 가게 하는 은혜입니다.
특별히 우리 하늘 소망 공동체에 요즘 일반적인 상황이 아닌 걸 여러분들 몸으로 느끼고 계실 겁니다. 지금 한 40여 명의 우리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는데요. 이 인원 안에 안 아프신 분 손 들어보세요. 그러면 더 인원이 작을 것 같아요. 제가 볼 때 다들 어딘가가 아프시고 뭔가 지금 삶의 좀 우여곡절 끝에 기도 제목이 있는 분들이 대다수입니다. 물론 연령대가 또 있기도 하지만 일반적이지 않아요.
이 정도 그룹에서 그렇게 많은 분들이 지금 아프고 그리고 그 아픔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해야 되는 이 상황들이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또 어떤 분들은 관계적으로 깨어짐 또 신앙적으로 연약한 가운데 있는 이들도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동력자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계신가요?
지금 우리는 기도해야 될 때임을 다시 한 번 기억하길 원합니다.
내 몸의 한 지체가 아파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냥 니가 아프구나 그러고 그냥 내 할 일 하면 됩니까?
이 팔이 아프면 온 몸이 이 팔을 위하여 수고하고 애쓰고 이 팔이 회복될 수 있도록 애쓰는 것처럼 우리 공동체 안에 지금 연약한 분들이 계신데 그 연약한 분들을 위해서 더욱 간절히 기도했으면 좋겠어요.
지난주에 이어서 우리 홍선희 성도님 자리해 주셔서 감사해요. 우리 이은주 집사님 지난주 중에 연락이 오셨어요. 요즘 항암 치료를 매주 받고 계신데 지난주 금요일날은 이제 항암 치료 요 근래 받았던 항암 치료의 결과를 이제 검사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예전에는 그런 부탁 안 하셨는데 그렇게 부탁하시더라고요.
목사님 이번 이 항암 치료의 과정 속에서 호전될 수 있는 그런 결과가 나오게 해주세요. 요즘 손 다리에 감각이 무뎌져서 그 지금 요양병원에 별관 쪽에 자리하고 계셨는데 의사가 넘어지면 큰일 날 것 같다 그래서 신관으로 자리도 옮기셨다고 합니다.
여러분 기도해 주세요. 또 지난 주 중에는 우리 오우람 청년이 이제 이식을 하려고 지금 기도 중에 있는데 우리 어머니이신 유정욱 권사님이 그 이식을 위해서 같이 먼저 검사받는 시간을 가졌어요. 여러분 건강한 사람도 병원 가면 뭔가 두려운데 이제 그 이식 수술을 해야 되는 우리 권사님의 마음을 저도 느껴보면 참 얼마나 애탈까요? 또 그 어머니와의 이식 수술을 해야 되는 우울함 청년 또 얼마나 애탈까요? 여러분 내 몸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그 마음의 감정들을 좀 같이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주 중에 또 우리 유준이가 제대를 했어요. 오늘 제대 떡을 아주 제대로 아주 근사하게 만들어놨더라고요. 좀 이따 보시고 여러분들 아마 스티커까지도 제작해가지고 붙여가지고 감사 표현을 했습니다.
근데 여러분 지금 군 생활하는 친구들도 있잖아요. 근데 아까 그러더라고요. 지금 군대가 나라적으로 복잡하니까 막 전쟁의 소리도 들리고 이러니까 군대가 막 어수선한데 그전에 제대해서 감사하다고 그래서 저도 감사하다고 말해놓고 보니까 또 우리 교회에 다른 군인들이 있는 거야.
아이고 올해는 우리 교회에 수능생이 없어가지고 다행히 한 해 좀 넘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셨지만 여러분 근데 수능 시험이 고등학생들에게 전부가 아니더라고요.
작년에 우리 아이가 수능 시험을 봤지 않습니까? 근데 저는 고3 때만 잠깐 바짝 긴장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근데 요즘 고등학생들은요. 1학년 때부터 1학년 2학년 3학년 내신이 똑같은 비율로 적용됩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가 둘째가 고1인데 친구 중에 공부를 잘하는 친구가 벌써 자퇴를 했대요. 왜냐하면 중간고사를 한 번 실패 실수했다는 거예요. 실수 상위권에 있는 애인데 한 번 실수를 하니까 자기는 이 내신을 극복할 수가 없다고 그냥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 봐가지고 시험 본다고 수능 중심으로 보겠다고 그랬대요.
너무 안타까워요. 고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가 이제는 1 2, 3학년이 다 수험생이에요. 이제 여러분 여러분들 자녀들이 수험생일 때 애타게 기도했던 그 마음을 지금 우리 고등학생들을 위해서 여러분들 품어주시기 바랍니다.
또 결혼을 앞두고 있는 우리 신숙 권사님 여러분들 자녀 결혼을 앞두고 우리 유정욱 권사님 지나갔지만 얼마나 애타는 심정으로 그 여러 가지 넘어야 될 언덕들이 많습니까? 여러분들의 자녀가 결혼한다고 생각하시고 우리 신승숙 권사님 그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그 외에도 지금 우리 동력자들 가운데는요 육체적으로 너무 아프고 연약한데도 막 교회의 일들을 헌신하는 분들이 참 많아요. 여러분 특별히 11월달은요 우리에게 기도의 계절을 허락하셨습니다. 지난 1일부터 다니엘 기도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어떻게 여러분 열심히 참여하고 계신가요?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틀간의 그 강사님들의 그 말씀이 얼마나 은혜로운지 모릅니다. 첫째 날 목사님 하나님으로 쉬지 못하게 하는 그러한 신앙인이 되십시오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그 말씀처럼 하나님을 쉬지 못하시게 하는 우리 하늘의 소망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살라고 하셨나요?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선교적인 삶을 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선교적인 삶을 복음 증거의 삶을 살아가면 하나님이 역사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복음을 증거할 때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기도를 쉬지 않으면 그 기도 가운데 하나님은 역사하신다고요. 이제 이틀 지났습니다. 여러분 이 기도의 잔치는 나를 위해서 준비된 것인데 우리를 위해서 준비된 것인데 여러분 이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 어제 말씀에서 고난의 시간이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시간이라고 하는 그 강사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오히려 평안하고 풍성한 가난 땅에 들어가서 사는 것이 지옥일 수도 있다라고 하는 그 이야기를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여러분들의 삶의 광야와 같이 지금 뭔가 고통스럽고 말할 수 없는 아픔으로 신음하고 계십니까?
그 여정이 오히려 주님을 붙들고 주님을 만나는 은혜의 때임을 기억하고 더욱더 주님께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요. 기도라는 단어가 무려 7번이나 반복됩니다. 야고보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고난 중에 기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보통 기도를 더 열심히 할까요?
퀴즈 첫 번째 삶이 즐겁고 평안할 때 두 번째 크고 작은 고난을 겪고 있을 때 1번이에요. 2번이에요. 2번입니다.
근데 여러분 우리가 일반적으로 지금 신앙 최소한 몇 년 이상 하신 분들은 기도는 어떻게 해야 된다고 알고 계세요? 고난당할 때 기도해라 그러셨나요? 저기 병원 가서 중환자실 들어갈 때쯤 한 번씩 기도하거라 그러셨나요?
아이고 네 우리 역시 요즘 엄청난 속도를 지금 향해서 성장하고 있는 우리 박백강 성도님 우리한번 박수 한번 보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성도님이 아마 여러분들 긴장하셔야 됩니다.
지금 항상 기도하라고 했어요. 근데요. 우리는 항상 기도해야 함을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것을 마음속에 부담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해서 평안하고 뭔가 잘될 때는요. 그냥 마치 내가 하고 있는 것처럼 술렁술렁 넘어가 버릴 때가 많아요.
그런데 고난이 닥치면 그때서야 무릎을 꿇고 도움을 구합니다. 근데 그것도 대단한 거예요. 우리 박백강 성도님이 지난번에 갑자기 그 큰 질환일 수도 있다고 하는 진단을 받고 갑자기 그 죽음의 위기 속에서 교회를 생각하고 또 하나님을 붙들고 목사를 향해서 도와달라고 부탁했던 그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도 은혜죠. 근데 여러분 우리는 어떠한 상황과 상관없이 기도해야 되는 신앙인들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환경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고난이 닥쳤을 때 더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연약함입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성숙하게 하기 위해서 더욱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 고난이라는 도구를 그래서 사용하시는 것 같아요. 그냥 평탄하기만 하면 사람이 단단해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고난과 기도의 관계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은요.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 유지하기 위해서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 기도하게 됩니다. 성도는 믿음의 사람들은 이 기도 가운데 고난으로부터 이길 수 있는 힘을 공급받게 됩니다. 고난 자체에 집중하면요. 그 고난이 우리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고 불안하게 합니다.
제가 그런 예를 항상 많이 들어요. 이게 고난입니다. 내 삶의 고난이 다가왔어요. 근데 이 고난을 우리는 집중해서 여기를 쳐다봅니다. 이게 왜 나한테 왔을까 이 고난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이 고난을 어떻게 해결하지 목회하면 어떻게 하지 계속 생각하면서 이것만 쳐다보고 있어요.
그러면 지금 내 시선에서 무엇이 가장 커 보일까요?
네 그렇습니다. 고난이 커 보이는 거예요. 여러분 하지만 이 땅에서 우리보다 더 큰 고난을 직접 경험하시고 이기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 이것을 내어 맡겨드리면 솔직히 지금 보세요. 이거를 지금 눈앞에서 이렇게 걷어내기만 해도 내 눈에 보이는 건 이건 아주 그냥 그 일부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근데 그냥 우리는 고난을 겪으면 마치 그 고난이 내 인생의 전부이고 그냥 내 인생이 그 고난 때문에 다 무너질 것처럼 그 고난에 확 빠져들어버리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기도 제목이 아까 전에 다양하게 있지만 그 기도의 제목에 너무 함몰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가십시오. 오히려 그 고난이 하나님을 더욱더 바라볼 수 있는 우리에게 주신 유익이고 하나님과 더 깊이 만날 수 있는 행복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시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요.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예수님과 제자들이 만나게 됩니다. 그는 너무나도 고통스럽죠. 생각해 보십시오.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에요.
우리 김기동 목사님 위해서 같이 기도하고 있잖아요. 벌써 김기동 목사님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은 지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가 가끔 만나요.
근데 얼마 전에는 이제 저희 어머니가 좀 교회로 쌀을 좀 보내주셨는데 저희 교회만 그걸 다 먹기에는 마음이 그래서 좀 연약한 교회 몇 교회 이렇게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그걸 이제 목사님한테 전해주려고 이제 학교를 다니고 있거든요. 요즘 명진학교라고 장애인들을 향한 학교가 있습니다. 거기서 요즘 안마 그걸 배워요. 그래서 이제 아마 몇 년 후에 이제 그걸 세울 것 같습니다. 요즘 아주 비전이 분명해지고 있어요. 제가 이제 나중에 협력교회들 이야기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나눌 시간을 가질게요.
근데 그 목사님 만나려고 제가 그 앞에 가서 이제 픽업을 좀 해주려고 갔는데 보니까 이 목사님은 그래도 잘 보시다가 안 보이시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셨잖아요. 그리고 너무 씩씩하게 잘 다녀서 솔직히 모르는 사람들은 안 보이는지도 몰라요. 잘 축구차러 다니지 혼자 막 서울도 다니지 막 이러니까요. 그리고 이 학교 다니는 사람들도 이 목사님이 그렇게 잘 안 보이는지도 몰랐대요. 그러니까 자기들도 잘 안 보이면서 이 목사님은 너무 막 뭔가를 척척척 해내니까 잘 보이는 줄 알았더라고요.
근데 제가 이제 이렇게 가서 그날 픽업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이제 그 스쿨버스를 타는 걸 봤는데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장애를 가진 분들은요. 얼굴 형태도 약간 변화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약간 이 맹인들 눈이 보이지 않는 분들의 그 얼굴 형태가 비슷한 느낌이 있습니다. 딱 봐도 저분은 저분은 지금 시각이 안 좋으시구나라고 하는 느낌이 들죠.
그러면 여러분 일반적으로 지금 이 김기동 목사님만 해도 사람들이 모를 정도라고 했잖아요. 근데 이 사람들은 모르게 살아도 사람들이 보면 아는 정도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어릴 때부터 태어날 때부터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그 태어날 때부터의 소경 그는 너무나도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제자들이 묻지 이 사람이 앞을 보지 못하는 이유가 이 사람의 죄 때문입니까?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당시의 사람들은요. 불행의 원인을 죄에서 찾으려고 했어요. 고난이 찾아왔을 때 이 고난의 이유를 죄라고 생각을 했다는 거예요.
하지만 예수님은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고자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신앙생활을 하는데요. 우리에게 어떤 고난이 찾아오면 그 고난의 이유를 원인을 찾고 싶어 합니다. 알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고난이 다가오면 이 고난에 집중하는 거예요.
내가 뭘 잘못해서 이 고난이 왔을까? 내가 뭐 때문에 이 고난을 당해야 되지?
고난에만 집중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때로는 내 탓을 하면서 내가 그냥 함몰되는 경우도 있고요. 때로는 남 탓을 해요. 너 때문에 당신 때문에 그래서 오히려 그 원인을 찾다가 더 힘겨워지는 모습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고난 가운데 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의 시간임을 기억하길 원합니다. 이 앞을 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하는 사람은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스스로 자책했을 겁니다. 그리고 또 스스로 자책을 했거나 아니면 부모를 원망하면서 살았겠죠. 우리 부모가 도대체 어떤 죄를 지었길래 내가 이렇게 태어날 때부터 보지 못하는가 그 당시에 유대 사회는 장애라고 하는 것이 죄의 결과라고 하는 통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이 사람은 그 장애 때문에도 힘들지만 그 당시에 사람들이 보는 시각이 너무 힘겨웠던 거예요. 그를 더 고통스럽게 했을 겁니다.
여러분 절대 동력자들 가운데 어떤 아픔을 겪을 때 조심하세요. 뭔가 고통을 당할 때 그런 우리 실수할 때가 많아요. 뭐 죄 있는지 한번 찾아봐. 하나님 앞에 뭔가 드려야 될 게 있는데 못 드렸는지 확인해 봐 막 이런 식으로 우리가 조언할 때가 있어요.
그거는 내가 확인해야 될 거지.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나한테 그 이야기를 하는 순간 그건 상처가 되는 거예요. 그건 나 자신이 나 스스로를 향해서 하는 말이어야 됩니다. 그냥 예수님의 시선을 보십시오. 예수님은요. 그 사람들이 가졌던 그 당시의 사회적인 통념과 전혀 상관없이 주님의 관심은 평생 앞을 보지 못했던 그를 회복하는 데 예수님의 관심이 있으십니다.
예수님이 왜 이 땅에 오셔서 그 마구간에서 그렇게 초라하게 태어나셨고 그 수많은 고난들을 겪으시면서 살아가셨고 그리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바로 우리를 위해서 우리를 회복하게 하기 위해서 죄의 종노릇 하고 있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자기 몸을 내어놓으신 것이죠. 죄의 마지막 결과가 바로 죽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이겨주신 거예요. 그리고 이제 너희는 죄로부터 해방되었다라고 우리에게 선포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에 수많은 고난들이 있지 죽음의 고난도 우리에게 찾아올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동력자들 가운데도 정말 기도하고 있는 그 간절한 기도의 제목들이 있잖아요. 근데 그런 죽음의 고난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할지라도 이미 죽음을 이기신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죽음이 우리의 죄의 결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은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하나님 나라에 완성되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그 관문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지난번에 어떤 동력자하고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러더라고요.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대요. 기독교인들은 저마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 우리 교회의 이름처럼 하늘 소망 하늘 소망 이야기를 하는데 다들 죽기를 싫어한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빨리 죽고 싶으신가요?
전혀 대답하는 사람이 없어요. 다들 하나님 나라에 하나님 나라에 갈 줄 믿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합니다라고 하는데 그렇게 믿는다는 사람들이 죽음을 그렇게 싫어하고 죽음을 거부하고 어떻게든지 더 안 죽으려고 발버둥치고 그러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하고 과연 뭐가 차이냐라고 하는 그런 질문들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죽음에 대해서도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세요. 죽음은 죄의 결과 우리의 영원한 죽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우리는 부족하고 우리는 연약합니다. 고난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완전하시기에 그 고난 가운데 나를 의지하는 게 아니라 내 옆에 있는 환경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신 하나님을 그때 의지하는 거죠. 그때서야 하나님을 더 붙들 수 있는 겁니다.
사랑하는 동력자 여러분 고난이 여러분들에게 찾아오셨다면 기도해야 될 때입니다고 하는 자명종이 울리고 있다는 그러한 신호로 받아들이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두 번째 치유와 기도의 관계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14절 오늘 본문 말씀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아멘 병든 사람은 교회의 장로들을 찾아가 기도받으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오늘부터 이제 장로님한테 열심히 찾아가서 이제 기도 부탁하게 생겼죠. 당시 장로님들은 교회 안의 양떼를 돌보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 따지면 이 교회 안에 리더 그룹들 여러분들 소그룹 리더들도 될 수 있고 우리 이제 또 직분자들이 될 수도 있고 또 목회자도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가서 청하라는 거예요. 병 들었을 때 혼자 끙끙거리고만 있지 말고 또 그냥 믿음 없이 그냥 무조건 병원만 다니는 그러한 삶을 살지만 말고 도움을 요청하라고 특별히 함께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물론 육체적으로 병이 들었을 때 기도만 하라고 말한 것이 아니죠. 여기 보면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라 여기서 기름이라는 것이 당시에 병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그러한 일반적인 행위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의료 행위라고 볼 수 있는 거예요.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를 만났을 때도 그 선한 사마리아인이 그 강도 만난 사람을 위해서 기름과 포도주를 사용했던 걸 우리는 알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한마디로 지금 우리로 따지면 의사를 찾아가서 진료를 받고 또 약을 받아먹는 병원에서 치료받는 과정을 이 기름 바른다고 하는 걸로 표현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기도와 의학은요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거예요.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많은 의사들과 그리고 또 의약품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근데 여러분 너무 이런 것들이 잘 듣다 보니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제 그것만 의지해버려요. 하나님은 그 선물로 미리 주신 의사의 처방과 의약품도 그 도움을 받으라고 말씀하시지만 그 모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하고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이 두 가지를 함께 사용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근데 현대 우리는요 의사나 약은 신뢰하는데 기도하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는데도 형식적이에요.
어렸을 때 병원이 활성화가 되지 않고 병원을 막 잘 찾아가지 않던 여러분들, 어렸을 때 시절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 믿음의 부모님들과 함께 지냈던 분들이 계시다면 어떻게 하셨나요?
보통 자녀가 아프면요. 밤새 그 배를 문지르면서 눈물로 기도해 주셨어요. 근데 신기하게 어머니의 그 눈물의 기도가 회복하게 하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 은혜를 경험한 자녀는요. 또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우리 아이들이 아프면 그 어머니처럼 또 손을 문지르고 있어요. 물론 이것만으로 끝내지 않고 병원도 데리고 갑니다.
하지만 병원은 하나님의 은혜의 방편 중에 하나라고 생각을 하고 두 가지를 병행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가는 거예요.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병든 자를 위한 치유 기도는요. 생사화복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또한 질병 가운데 있는 그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애쓰는 형제의 아픔을 나의 고통으로 여기며 기도하는 그 치유의 기도는 바로 주님의 마음을 품는 시간입니다.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우리가 당할 아픔을 미리 겪으시고 죽으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도 한번 경험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의 치유를 위하여 기도할 때 여러분 여러분들 요즘 우리 동역자들의 아픔을 위해서 기도할 때 그 아픈 그 동역자들의 마음이 우리에게 동일하게 주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더 애타는 심령으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함께 나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 가운데 주님의 마음이 우리 가운데 임하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에서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신다고 하는 이 말씀을 붙드는 우리 공동체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가 마지막 예배를 끝낼 때 죽도 전에 우리 치유 기도를 함께 하고 있어요. 제가 능력이 있어서 그 기도를 하는 게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제가 어렸을 때 치유의 은사를 하나님이 주신 적이 있었다고 부교자 생활을 하면서 이게 사라졌다고 그런 표현을 잘 활용을 못했다고 그런 표현을 하니까 목사님 치유의 은사를 회복하셔가지고 능력을 행하셔야 교회가 부응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분도 계셔요.
근데 여러분 그게 도구가 되는 순간 저는 저 이단 사이비의 저 무리 한가운데 서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하는 게 아니고요. 하나님이 하시는 거예요. 그렇죠 여러분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라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의 기도도 하나님은 들으세요? 오늘 본문에서 뭐라고 그래요? 믿음의 기도, 의인의 강구를 하나님은 들으신다고요?
목사님의 기도만 들으시면 다 목사 돼야죠 그렇죠 장로님의 기도로만 들으신다면 다 장로 돼야죠 아니에요. 성경은요 목사 장로가 아니라 또 대단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기도, 의인의 기도에 응답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는 그래도 나 같은 사람이 기도해 가지고 뭔 일이 일어나겠습니까라고 의심하는 분들이 혹 계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이어지는 엘리야의 이야기도 한번 들어보십시오. 17절 말씀에 보면요.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 즉 3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않았다. 엘리야는 우리하고 성경이 똑같은 사람, 그러니까 한마디로 우리랑 똑같은 인간인데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했더니 이 스토리는 여러분들이 이미 아시니까요. 그 당시에 우상과의 영적인 전쟁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 기도를 했잖아요. 그런데 정말 3년 6개월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가뭄이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3년 6개월이 지나서 18절에 보니까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엘리야가 다시 비가 오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더니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서 땅에 곡식들이 자라나고 다시 열매를 맺게 되었다는 사실.
근데 여기서 포인트는 이겁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어떤 사람이라고요? 성정이 같은 사람이다. 그러니까 엘리야가 특별히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에요. 아닙니다. 여러분 속으시면 안 돼요. 이단 사이비가 거기서 시작됩니다.
사람이 능력 있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그를 잠시 사용할 뿐입니다. 엘리야도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이지, 조금 더 특별하게 많은 역사 가운데 쓰임 받은 사람이지. 엘리야 자체가 능력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 말씀처럼 엘리야는 우리와 성경이 똑같은 사람, 우리랑 똑같은 인간이라는 거예요. 나약하기도 하고 또 상처받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 사람이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니까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다가 다시 기도하니까 하늘이 비를 주고 열매를 맺게 하셨다.
이건 뭔 말하는 겁니까?
우리 모두가 기도하는 가운데 그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기도합시다. 여기서 말하는 엘리야가 간절히 기도했더니라고 말하는 이 간절히가 인간의 열심을 표현하는 것일까요?
그러면 다니엘 기도의 앞에 서서 간증하는 사람들은 우리보다 열심히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장소에서 기도해가지고 응답을 받아서 저렇게 간증자가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인생 가운데 기도하는데 응답을 여전히 경험하지 못한 분들은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응답받지 못하는 걸까요?
여기에서 간절히라고 하는 말이 인간적인 열심을 표현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내 뜻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그리고 그 기도의 모든 결과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하는 그 마음이 바로 이 간절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일부터 우리를 위한 잔치 다니엘 기도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 어떤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 참여하고 계십니까?
여러분 특별히 우리 가운데 연약한 지체들을 바라보며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우리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한 우리 공동체도요. 이제 7주년을 넘어서 8년 차가 되었습니다.
우리 인간 나이로 따질 때도 8년 차가 되면 뭘 해요?
초등학교에 입학합니다.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은요. 하늘과 땅 차이예요. 우리가 볼 때 1학년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요. 1학년 애들은요. 유치원 아이들을 쳐다도 안 봅니다. 이제는 수준이 달라져야 돼요. 여러분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기도로 준비해야 됩니다.
8년 차가 시작된 이때에 우리가 나아갈 길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해야 될 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2024년을 맞이하면서 리셋을 외쳤잖아요. 여러분 개인적인 공동체적인 리셋을 했다면 리셋만 하고 끝내버리면 안 되죠. 리셋을 했다면 이제 다시 쌓아가야 될 거 아닙니까?
근데 그 과정에 지금 이 다니엘 기도회가 우리를 위해 준비됐다면 여러분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이 모습 이대로 지금 내 모양, 내 꼴대로 이대로 가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제가 이 시간 기도합시다고 외치고 몇 가지를 쫙 이렇게 읽을 건데 여러분들 제가 기도합시다 하면 여러분들도 기도합시다를 외쳐보는 거예요.
기도합시다.
우리 가운데 연약한 이들과 고난 있는 이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우리 주변에 길을 잃은 어린 양과 같은 또 미혹되어 진리의 길을 떠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신앙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서 또 우리 다음 세대들을 위해서 또 동력자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우리 하늘 소망 공동체가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강구하며 기도합시다.
목자 없이 길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지금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을 바라보며 또 여러 위기와 위험 가운데 있는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해서 위정자들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언제 끝날지 모르고 계속되고 있는 세계 열방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각종 전쟁들과 기후의 위기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이거 외에도 너무나도 기도 제목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기도합시다.
특별히 이제 새벽 예배도 보니까요. 고정되기 시작했어요. 물론 인원은 예전보다 2배는 늘었지만 여러분 한 달에 한 번도 나는 못 온다. 그건 저는 뭔가 마음의 문제나 육체적인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말 안 되시는 분들은요. 온라인으로라도 꼭 참여하라고 제가 꼭 말씀드립니다.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거 체크하는 거 그거 여러분들 다른 사람들 의식하면서 하지 마시고요. 그냥 내 신앙의 고백으로 하나님 기도하게 하시니 내가 기도합니다 하고 결단하고 한번 도전해 보세요.
특별히 우리 남성 교우들 저녁 시간에 할 일이 아주 많으시죠 바쁘고 힘드신 거 압니다. 하지만 여러분 다니엘 기도회 기간 적극적으로 한번 참여해 보십시오. 우리 박백강 성도님이 여러분들의 자리를 지금 지키고 계세요. 한번 적극적으로 함께 참여해서 함께 손잡고 우리 나가보자고요. 그리고 그 시간대에 도저히 안 되는 분들은 낮 시간에 다시 보기도 가능합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을 위해 준비된 이 은혜의 잔치에 참여하십시오.
야고보는 야고보서의 편지를 마치면서 인생 가운데 고난이 오면 목자 되시는 주님께 기도할 때임을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또 기쁠 때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 가운데도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도 우리와 우리 가운데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우리의 삶의 여정 가운데 어떠한 고난이 나에게 다가온다 할지라도 어떠한 연약함이 나에게 있다 할지라도 더욱더 주님을 붙들고 나아가면 주님이 우리의 모든 상황을 역전시키실 줄 믿습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