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3권 2-32 2 석로釋老 32 증인상인贈仁上人 인仁대사에게 주다
1
인일도신녕人日到新寧 인일人日에 신녕新寧 땅에 도착하고선
신흥미관즐晨興未盥櫛 새벽에 일어나 세수하고 빗질 않았는데
홀유일산승忽有一山僧 느닷없이 한 山僧이 찾아와
수시래고알袖詩來告謁 소매 속에 詩 넣고 와 날 만나자네.
독시십사편讀詩十四篇 그 시축詩軸 열네 편을 다 읽어보니
일일개가작一一皆佳作 하나하나 그 모두 다 가작이었네.
상어어도덕上語語道德 높은 말은 도와 덕을 말한 것이요
하어어민속下語語民俗 낮은 말은 민중의 풍속 얘긴데
회무소순기迴無蔬筍氣 소순蔬筍의 기운은 멀리 없어졌으니
숙불추환열孰不蒭豢悅 누가 고기 먹길 즐겨하지 않으리!
도가쌍혜능道可雙惠能 도道는 혜능惠能과 한 쌍일 수 있고
시능량령철詩能兩靈澈 시는 두 영철靈澈이라 할 만하네.
2
상문구조상桑門久彫喪 상문桑門에 오랫동안 사람 없어서
전도백무일傳道百無一 도 전할 이 백 사람에 하나도 없더니
사야량겸지師也兩兼之 대사가 두 가지 다 겸하였으니
아하불괄목我何不刮目 내 어찌 눈 비비고 다시 보지 않으리.
욱일조동헌旭日照東軒 아침 해 동쪽 마루 환히 비치는데
산천반청설山川半晴雪 산과 내엔 半쯤이나 갠 눈[雪]일세.
사야귀고은師也歸故隱 대사는 옛 살던 곳 돌아가려는데
청등쌍백족靑縢雙白足 푸른 행전에 허연 두 발일세.
아우입홍진我又入紅塵 난 다시 홍진紅塵으로 들어가게 되니
골몰괴심적汨沒愧心跡 골몰하던 것 마음 자취가 하 부끄러워라.
로입교산방무림路入橋山傍茂林 교산橋山에 길이 들어 무성한 숲 옆으로 뚫렸는데
유승비석하요잠有僧飛錫下遙岑 지팡이를 날리며 한 중이 먼 산에서 내려오네
상봉일소량무어相逢一笑兩無語 서로 만나 한 번 웃고 둘 다 말이 없는데
주진계두생석음酒盡溪頭生夕陰 시냇가에 술 다하자 저녁 그늘 생기네.
►인일人日 사람 날. 음력 정월 초이렛날.
음력 1월 7일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관습이 전해지는 세시풍속.
이날에는 특히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관습이 전해왔다.
정초에는 남의 집에 가서 유숙하지 않도록 되어 있지만 특히
人日에는 밖에서 잠을 자지 않았다.
충청북도에서는 이날 객이 와서 묵고 가면 그해는 연중 불운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부득이 객이 와서 묵게 될 때에는
주인과 객이 머리를 반대로 두고 거꾸로 자야만 액운을 막을 수가 있다고 한다.
<동국세시기>의 人日에 대한 기록에 의하면
작고 둥근 거울모양에 자루가 달리고 뒤에 신선이 새겨져 있는
銅人勝(거울 모양의 머리 꾸미개)을 각신閣臣들에게 나누어주었으며
또 과거를 실시하였다고 한다.
이 과거를 人日製라 하여 太學의 食堂에 참석한 지 30일이 되어
圓點(시험 볼 자격 출석점)을 얻은 유생들에게 시험을 보도록 하였다고 한다.
성균관과 문묘에서 시행하기도 하고 대궐 안에서 임금이
친히 시험하기도 하였으며 지방의 유생도 불러 함께 보이기도 하였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도 비슷한 기록이 있다.
이 人日의 관습은 상대 중국의 세시기들에도 보이는 것으로 그 유래가 오랜 것이다.
한편 전라북도 지방에서는 간지가 신申인 날을
원숭이날이라고 부르지 않고 보통 사람 날이라고 하여 쉬었다고 한다.
즉, “오늘은 사람 날이니까.” 하며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특별한 행사나 금기는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경상북도 지방에서의 人日은 사람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며
질병을 예방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날이다.
전라남도 지방에서는 정월 上寅日에 일을 하지 않고 노는데
이날을 사람 날이라고도 한다.
‘인寅’과 ‘人’은 그 음이 같기 때문이다.
또한 옛날부터 인寅날에 일을 하면 호랑이가 나타난다고 하였다고도 한다.
경상남도 지방에서는 칠인팔곡七人八穀이라 하여
정월 초이렛날은 사람 날이라고 하고 초여드렛날을 곡식날이라 한다.
이 지방에서도 인일에는 일하지 않고 놀며
‘바느질하면 생손 앓는다.’ ‘칼질(혹은 연장질)하면 다친다.’는 금기가 전해오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人日은 文士들은 名日처럼 시를 주고받았다.
‘정월 초하루를 닭[鷄]의 날, 이틀을 개[狗]의 날, 사흘을 돼지[豕]의 날, 나흘을 양羊의 날,
닷새를 소[牛]의 날, 엿새를 말[馬]의 날, 이레를 사람[人]의 날, 여드레를 곡식[穀]의 날이라 하는 바
그 날이 맑으면 生育에 좋고 흐리면 災殃이 든다.’/<동방삭점서東方朔占書>
원일도인일元日到人日 설날 이어 인일에 이르니
미유불음시未有不陰時 음침하지 않을 때가 있지 않도다./<두보杜甫 인일양편人日兩篇>
인일청명점시상人日晴明占是祥 인일의 날씨 맑음 이 해 상서 점괘이니
가가양주상년광家家釀酒賞年光 집집이 술을 빚어 풍년을 즐기네.
제시욕기두릉노題詩欲寄杜陵老 시를 지어 당의 시성 두소릉에 보내곱네.
만수매화공단장滿樹梅花空斷腸 일만 그루 매화만이 남의 애를 끊고 있네.
/<두보杜甫 인일人日>
인일제시기초당人日題詩寄草堂 인일이라 시를 지어 초당에 부치노니
요련고인사고향遙憐故人思故鄕 애달파라 그대는 고향 생각 하려니.
/<고적高適 인일기두이습유人日寄杜二拾遺>
자몽촉주인일작自蒙蜀州人日作 촉주자사 고적의 인일 시를 받고 나서
불의청시구영락不意淸詩久零落 그 청신한 시가 오래 문갑 속에 떨어져 있음을 몰랐는데
금신산질안홀개今晨散帙眼忽開 오늘 새벽 흩어진 글을 살피다 눈에 번쩍 띄어
병루유음사여작迸淚幽吟事如昨 눈물 머금어 읊어보니 어제의 일 같구나.
/<두보杜甫 추수고고촉주인일견기追酬故高蜀州人日見寄>
일이삼사오륙칠一二三四五六七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자꾸 가서 이렛날 인일이 되니
만목생아시금일萬木生芽是今日 온갖 나무 오늘에야 싹이 나네.
원천귀안불운비遠天歸鴈拂雲飛 먼 하늘 구름 헤치며 기러기 돌아가고
근수유어병출수近水遊魚迸出水 가까운 물에는 물 솟구치며 고기 뛰노는구나.
/<나은羅隱 인일입춘人日立春>
►관즐盥櫛 세수洗手하고 머리를 빗음. 목욕하고 머리를 빗다. 화장하다.
‘대야 관/깨끗할 관盥’ 대야. 강신제降神祭(내림굿) 깨끗하다
‘빗 즐櫛’ 빗, 머리빗. 모닥불, 화톳불. 빗다, 빗질하다
►소순기蔬筍氣 푸성귀와 죽순의 기운.
중은 본래 채식菜食만 하므로 중의 本色을 일러 ‘소순기’라 한다.
소식蘇軾의 〈증시승도통시贈詩僧道通>詩에
“어대연하종고소語帶煙霞從古少 氣含蔬筍到公無 氣含蔬筍到公無”라 하였다.
►추환蒭豢 소, 양, 돼지와 같은 가축의 고기로 가장 맛있는 가축의 고기.
蒭는 초식草食. 가축, 豢은 잡식雜食. 가축을 말함.
‘꼴 추蒭’ 꼴(말이나 소에게 먹이는 풀) 꼴꾼(말이나 소에게 먹일 꼴을 베는 사람) 풀 먹는 짐승
심리의지열아심⼼理義之悅我⼼ 理와 義가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은
猶芻豢之悅我⼝ 마치 고기 음식이 우리의 입을 즐겁게 하는 것과 같다 /<孟⼦告⼦上>
►혜능惠能(638-713) 당나라 때의 승려. 선종禪宗의 제6祖. 속성俗性은 노씨盧氏.
시호는 대감선사大鑑禪師. 영남嶺南 신주新州 사람.
집이 가난하여 나무를 팔아서 어머니를 봉양했는데 어느 날 장터에서
어떤 사람이 <금강경金剛經> 읽는 것을 듣고 불도에 뜻을 두었다.
이어 무진장無盡藏 비구니가 <열반경>을 읽는 것을 듣고 곧 그 뜻을 이해한 뒤
황매산黃梅山 5조 홍인弘忍을 찾아가 방아를 찧으면서 노역에 종사하기를 8개월
道를 깨달아 印可되어 의발衣鉢을 전해 받아 선종의 6조가 되고
남해南海에 가서 조계曹溪에 살며 남종 곧 조계종을 창시했다.
신수神秀와 더불어 홍인 문하의 2대 선사로
후세에 신수의 점오漸悟 계통을 받은 사람을 北宗禪,
혜능의 계통을 南宗禪이라고 했다.
이때 신수와 깨달음의 깊이를 겨루면서 지었다는 게송偈頌
보제본무수菩提本無樹 보리는 원래 나무가 아니고
명경역비대明鏡亦非臺 명경도 또한 대가 아니라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하처야진애何處惹塵埃 어디서 먼지가 일어나겠는가?
나중에 소주韶州 조계산曹溪山 보림사寶林寺에 있으면서
見性成佛의 돈오법문頓悟法門을 널리 펼쳤다.
입적한 뒤 헌종憲宗이 대감선사大鑒禪師란 시호를 내렸다.
제자에 하택신회荷澤神會와 남양혜충南陽慧忠, 영가현각永嘉玄覺,
청원행사靑原行思, 남악회양南岳懷讓 등 40여 명이 있었다.
저서에 그의 설법을 기록한 <육조단경六祖壇經>이 있다.
혜능음익왕도惠能陰翊王度 혜능은 도덕으로 국가를 도왔기에
당사휴칭唐賜休稱 당 나라에서 아름다운 명칭을 주었다.
/<최자崔滋 조계종삼중신정위선사관고曹溪宗三重神定爲禪師官誥>
자괴국은종막보自愧國恩終莫報 나라의 은혜를 끝내 못 갚음이 부끄럽구나,
미능의발계남능未能衣鉢繼南能 의발로 남종 혜능을 잇지 못하네.
/<임유정林惟正 제해문선원題海門禪院>
<이 시는 백가의시百家衣詩로 앞구는 구양영숙歐陽永叔 이름 修), 뒷구는 곽진郭震의 싯귀.
►영철靈澈(746-816) 당唐나라 때의 유명한 시승詩僧.
속성俗姓은 탕湯씨, 자는 원징源澄, 월주越州 회계會稽(浙江 紹興縣) 사람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학문에 정진하여 엄유嚴維에게 시를 배웠다.
나중에 오흥吳興으로 가서 시승인 교연皎然과 사귀었다.
교연은 그를 시랑侍郞인 포길包佶에게 추천했는데 포길은 다시 시랑 이서李紓에게 추천했다.
그의 이름이 京師에서 날리게 되자 여러 스님들이 그를 시샘하여
유언비어를 퍼뜨려 환관의 노여움을 사게 함으로써 정주汀州로 폄적되었다.
사면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왔고 나중에 선주宣州 開元寺에서 일생을 마쳤다.
저작으로 시집 10권이 있는데 <수창집酬唱集> 10권은 이미 없어졌다.
지금 남아 있는 16수의 시는 <전당시全唐詩>에 1권으로 편집되어 있다
►상문桑門 사문沙門의 음역어.
머리를 깎고 출가한 중. 뜻이 변하여 佛敎, 또는 사찰寺刹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함.
분향대어공전등焚香對御共傳燈 향 피우며 마주 앉아 함께 불법을 전도傳道하니
미필상문능달도未必桑門能達道 반드시 상문에 들어가야 도를 통하는 것은 아니라네.
/<홍언박洪彦博 제어화윤율정택진題御畫尹栗亭澤眞>
►‘봉할 등縢’ 봉封하다. 노. 끈,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