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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8장 14-17절.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교인들에게 성령 받게 함
14절.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when the apostles in Jerusalem heard that Samaria had received the word of God, they sent them Peter and John,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Ἀκούσαντες δὲ οἱ ἐν Ἱεροσολύμοις ἀπόστολοι, ὅτι δέδεκται ἡ Σαμάρια τὸν λόγον τοῦ Θεοῦ,
Having heard now the in Jerusalem apostles, that had received the Samaria the word of God
‘듣고’(Ἀκούσα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이고(Having heard) 과거에 분명히 들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받았다’(δεκται)는 완료형으로서(had received) 이미 받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은 그들이 빌립의 복음 전도를 받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빌립의 말을 따랐다는 뜻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ἀπέστειλαν πρὸς αὐτοὺς Πέτρον καὶ Ἰωάνην,
they sent to them Peter and John,
‘보내매’(ἀπέστειλαν)는 부정과거로서(they sent) ‘보냈다’는 뜻이고, 확실히 보낸 사실을 가리키며, 공적인 권위를 가진 대표자로(as an official authoritative representative) 보낸 것을 가리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부활 이전에도 매우 친밀했고(마 27:1, 눅 8:51), 예수님의 부활 후에도 서로 친밀하게 협력했습니다( 행 3:1, 요 20:4).
이 두 사람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품에 누워있는 요한에게 머릿짓만 해도 서로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친밀한 사이였습니다. (요 13:23-25)
이처럼 베드로와 요한은 오랫동안 서로 친밀하게 지냈기 때문에, 함께 동역하기에 알맞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은 당시 교회에서 기둥 같은 존재로 여김을 받았습니다(갈 2:9).
이처럼 예루살렘 교회가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 교회에 파송한 것은 새로운 복음의 결실을 확인해보고, 사마리아 교회의 새로운 공동체를 본부와 같은 예루살렘 교회 및 사도와 연결하고자 하는 목적이었습니다.
이후에 안디옥 교회가 설립되었을 때도,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파송했습니다. (행 11:22)
물론 예루살렘 교회가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 교회에 파송한 것은 성령을 받게 하기 위해서 파송한 것이라는 명백한 증거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베드로와 요한은 사마리아 교회에 가서 성도들에게 성령을 받게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부흥강사가 어느 교회에 파송될 때는 성령과 말씀의 은혜를 받게 해야 한다는 일종의 암시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 빌립 집사의 전도로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 교회에 파송했습니다.
이처럼 빌립 집사를 통해서 설립된 사마리아 교회에 사도들을 파송한 것은 오늘날 목사가 없는 교회에 노회에서 목사를 파송한 것과 같습니다.
즉 목사가 없는 교회는 허위교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장로가 없으면 미조직 교회)
2. 이처럼 예루살렘 교회가 두 사도를 사마리아 교회에 파송했다는 것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장벽을 허물고, 유대인 중심의 예루살렘 교회와 사마리아인 중심의 사마리아 교회가 예수님 안에서 동질성을 가진 동등한 교회임을 인정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15절.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o came down and prayed for them that they might receive the Holy Spirit.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기도하니
οἵτινες καταβάντες, προσηύξαντο περὶ,
who having come down, prayed for them,
‘내려가서’(καταβά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이고(having come down), ‘기도하니’(προσηύξαντο)는 부정과거로서(prayed) 둘 다 과거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성령 받기를
ὅπως λάβωσιν Πνεῦμα Ἅγιον·
that they might receive Spirit Holy
직역하면 ‘그들이 성령 받기를’이란 뜻입니다.
‘받기를’(λάβωσιν)은 부정과거 가정법 동사로서(they might receive) 목적을 나타내는 불변화사이므로(particle to express purpose) 그들이 꼭 성령 받도록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이 때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교인들이 성령 받기를 위해서 기도한 것은 회심(예수님 믿고 회개하고 중생한 것)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마리아 교인들은 이미 예수님을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성령을 받았음에 틀림없습니다. (고전 12:3)
고린도전서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오순절에 성도들에게 부어졌던 성령의 역사가 사마리아 교인들에게도 주어지기를 위해서 기도했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 믿고 회심할 때는 성령님의 일반적 사역으로 거듭나게 되는데, 여기서는 성령님의 일반적인 중생 사역이 아니고, 특별하고 기적적인 성령의 인치심과 은사를 받기 위해서 기도한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베드로와 요한의 안수를 통해서 성령 받은 사마리아 교인들은 아마 방언도 했을 것이고, 신유의 역사도 나타났을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 받은 현상들은 후에 교회에서 성령 받은 성도들이 했던 현상들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2:9-10.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그런데 이런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것은 사도들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었습니다. Baker
1.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사마리아 교인들을 위해서 성령 받기를 기도해주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이미 복음 전도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성도들도 성령 받는 것이 필요함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와 요한 같은 사도들도 오순절 성령을 받기 전에 이미 예수님을 믿었으나, 오순절 사건을 통해서 성령 받은 체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신학적으로 볼 때, 사람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앙고백은 성령님을 통해서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마태복음 16장 16절에서 성령으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앙고백도 필요하지만, 사도행전 2장 1-4절에서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것처럼 믿는 자가 성령을 받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분은 처음 믿을 때, 성령을 받은 경우가 있고, 어떤 분은 믿은 후에 성령을 받은 경우가 있습니다.
표현상 어떤 분들은 나중의 사건을 성령 충만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3. 어쨌든 오늘 사도행전 8장 14-17절 사건과 사도행전 19장 1-7절 에베소 교회 사건은 예수님을 믿은 후에 성령을 받은 것을 결정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이 문제로 논쟁이 있지만, 어떤 사람은 처음 믿을 때 성령 세례를 받은 경우가 있고, 어떤 사람은 믿은 후에 나중에 따로 성령 세례를 받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 세례를 받았더라도 계속 성령 충만하지 못하면 연약해집니다.
4. 그러므로 우리는 누가복음 11장 13절 말씀의 약속대로 기도하여 성령을 날마다 선물로 받아야 하겠습니다.
누가복음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그런데 똑 같은 내용을 말씀한 마태복음 7장 11절에는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가장 좋은 선물은 성령님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6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He had not yet fallen upon any of them; they had simply been baptized in the name of the Lord Jesus.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οὐδέπω γὰρ ἦν ἐπ’ οὐδενὶ αὐτῶν ἐπιπεπτωκός,
not yet for He was any of them fallen
직역하면 ‘왜냐하면 그가(성령님께서) 그들 중 누구에게도 아직 내리시지 않았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내리신’(ἦν ἐπιπεπτωκός)에서 앞의 단어는 미완료 과거로서(He was) 계속되는 것을 가리키고, 뒤의 단어는 완료분사로서(fallen) 두 단어와 부정사(οὐδέπω, not yet)와 합하여 ‘아직 내리시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아직 성령이 내리신 일이 없었다는 것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로는 (since the day of Pentecost) 아직 한 번도 성령 내리신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로마서 8장 9절 말씀대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은 성령님이 그 안에 함께 하십니다.
로마서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러나 사마리아 지역 성도들에게는 아직 일반적인 표적으로서 성령님이 분명하게 내리신 적이 없었습니다. (But the Spirit had not been made manifest to the Christian in Samaria by usual signs)
그러나 이제는 베드로와 요한이 안수함으로써 이러한 부족점이 보충되었습니다. NIV-SB. 1659.
이처럼 안수함으로써 성령을 받게 하는 것은 다시 안수를 통해서 불같은 은혜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즉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다시 안수하여 은사가 불일 듯하게 하기 위해서 안수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1: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이전에 일곱 집사가 선출되었을 때도 사도들이 그들에게 안수하여 임직을 잘 감당하게 했습니다. (행 6:6)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μόνον δὲ βεβαπτισμένοι ὑπῆρχον εἰς τὸ ὄνομα τοῦ κυρίου Ἰησοῦ.
only but having been baptized they had been into the name of the Lord Jesus
‘세례 받을’(βεβαπτισμένοι ὑπῆρχον)에서 앞의 단어는 완료분사 수동태이고(having been baptized) 뒤의 단어(ὑπῆρχον)는 미완료과거로서( they had been) 원형(ὑπάρχω)은 ‘시작하다, 준비하다’(begin, be ready, exist)는 뜻인데, 둘이 합하여 ‘세례를 받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고넬료의 가족들은 세례를 받기 전에 먼저 성령을 받았고 (행 10:44-48), 에베소에 있는 12명의 신자들은 먼저 세례를 받았고 후에 바울이 안수할 때 성령을 받았습니다. (행 19:1-6)
이처럼 경우마다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1. 사마리아 교인들은 빌립 집사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지만, 아직 한 사람도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세례를 받았으나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에베소 교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도행전 19장 2-6절.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니라.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그들이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2. 반면에 고린도 교회는 방언도 잘하고 예언도 잘하고 성령의 은사들을 받은 교회였지만, 아직도 육신에 속하여 바울파 아볼로파 베드로파 그리스도파로 나뉘어서 싸우는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 교회는 믿을 때 성령을 받았지만 율법주의 이단으로 흘러가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 세례를 받았다고 완전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고, 늘 기도로 성령 충만하고, 하나님 말씀 안에서 성장해 가야 합니다.
17절.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n they began laying their hands on them, and they were receiving the Holy Spirit.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τότε ἐπετίθεσαν τὰς χεῖρας ἐπ’ αὐτούς,
then they were laying the hands on them
직역하면 ‘이에 그들이 그들에게 계속 손들을 얹었다’는 뜻입니다.
‘안수하매’에서 동사(ἐπετίθεσαν)는 미완료 과거로서(they began laying) 계속 안수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emphasizing the repetition)
성령을 받는지라.
καὶ ἐλάμβανον Πνεῦμα Ἅγιον.
and they were receiving Spirit Holy
직역하면 ‘그들이 계속 성령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받는지라’(ἐλάμβανον)는 미완료 과거로서(they were receiving) 계속 반복적으로 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1. 오늘 본문에는 성령 받는 몇 가지 요소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14절에서 빌립 집사의 전도를 통해서 예수 믿고, 세례받고, 말씀을 받았습니다.
둘째 15절에서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기도해주었습니다.
셋째 17절에서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안수해주었습니다.
이처럼 성령 세례받는 데는 여러 가지 요건이 있었습니다.
전도와 믿음과 세례와 말씀과 기도와 안수 등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데는 전도 믿음 세례 말씀 기도 안수 등이 다 필요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혼자서 독단적으로 믿는 것은 위험한 일이고, 사도적부터 내려온 전통교회에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미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성도들도 날마다 성령을 충만히 받기를 위해서 계속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의 인도를 따라 성공적인 삶을 살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성도님들에게 복이 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