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18:7-12 스토리[간증]가 있으면 스토리텔러[간증자]가 된다
이스라엘은 애굽을 떠난 지 3개월 만에 드디어 하나님의 산에 진을 쳤다(5, 19:1). 이곳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모세가 80년 만에 생애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난 곳이다(출 3:4,5). 동시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사명을 받은 곳이다(3:6-4:17). 사명을 받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이 산에서 섬기리니”(출 3:12)라고 말씀하셨고, 애굽 왕에게 던질 메시지도 주셨다. “하나님 여호와께 제자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 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3:18) 그리고 실제로 모세는 애굽 왕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여러 차례 말했다(5:3, 7:16, 8:27). 3일 길쯤 광야가 어디일까? 하나님의 산 곧 시내 산이었다. 거대한 인구 200만 명이 이 광야에서 저 광야로 이동하면서 장막을 설치하고 철수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사건 사고를 해결하다 보니 3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스라엘은 정말 그곳에 와 있었다.
시내 산에서 처음 이 말씀을 들었을 때, 모세는 믿을 수 없었다. 상상도 되지 않았다. 430년 동안 노예로 살아온 이스라엘이 무슨 수로 출애굽을 하여 시내 산으로 올 수 있는가! 이스라엘을 어떤 식으로 설득할 수 있겠는가! 애굽 왕이 순순히 내어 주겠는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온갖 이유를 대며 부르심에 거절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하나님의 산에 와서 장막을 쳤다.
민 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
신 7: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
사 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 “서리라”는 “쿰
קוּם”의 미완료이다. “계속 굳건하게 반드시 서다/성취[실현]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롬 9:9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창 18:10,14) 하지만 아브라함 부부는 나이가 너무 많아 생리가 끊어져서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18:11).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100세의 할아버지와 90세 할머니가 아이를 낳는다? 상상이 가는가?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온다. 실제로 사라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18:12).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그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롬 4:19-21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 1년 후 어떻게 되었는가? 약속하신 말씀대로 아들이 태어났다. 창 21:1,2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생활에서 그대로 이루어질 때 짜릿함을 느낀다. 하나님을 경험함으로써 하나님과의 스토리가 생긴다. 내가 한 것이 없으니 저절로 겸손해진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그대로 이루어지려면 우리에게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 말씀에 대한 확신과 인내이다. 히 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 눅 8: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산에 도착하여 감격하고 있을 때, 모세에게 반가운 일이 생겼다. 장인 이드로가 모세의 두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 그리고 모세의 아내 십보라를 데리고 모세를 찾아왔다. 약 1년 만에 만난 가족들이었기에 매우 반가웠다. 여러분은 반가운 가족을 오랜만에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가? 안부를 묻고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나눌 것이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바로와 애굽 사람에게 행하신 모든 일[10재앙]과 길에서 당한 모든 고난과 여호와께서 그들을 구원하신 일을 다 장인에게 말했다(8). 홍해 사건(14장), 마라에서 쓴 물이 단물로 바뀐 사건(15:23-25), 신 광야에서 한 달 만에 바닥난 식량을 메추라기와 만나로 채워 주셨던 사건(16장), 르비딤에서 식수 문제를 해결하신 사건(17:1-7), 최근 르비딤전쟁에서 아말렉을 이긴 사건(17:8-16)을 말했다. “말하매”는 “사파르סָפַר”의 피엘[강조]형 미완료이다. “계속해서 숫자 계산하듯이 자세히 말하다[상술(詳述)]”는 뜻이다. 모세는 말하는 내내 신명 났을 것이고 흥분을 감출 수 없었을 것이다.
대화할 때 내가 직접 겪었던 일이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땐 신명이 저절로 난다. 들을 때도 누군가가 나를 좋게 말하면 눈과 귀가 활짝 열린다. 심지어 귓속말로 했는데도 잘 들린다. 더 듣고 싶어진다. 하지만 누군가가 자기 말만 하거나 나와 상관없는 말을 하면, 별로 듣고 싶지 않다.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한다면 그 시간은 고통이 아닐 수 없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어떤가? 눈이 초롱초롱해지고 귀가 쫑긋해지는가? 그렇다면 여러분과 연관되었거나 듣고 싶은 겸손한 마음일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말씀을 듣는데 따분하고 하품이 나오고 심지어 졸리기까지 하는가? 그 말씀이 나와 상관없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드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1년 만에 만나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 싶은 것이지 하나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드로는 하나님이 아닌 이방 신을 섬기는 제사장이었다. 다른 신에 대해 관심이 있겠는가? 여러분은 신천지, 불교에 대해 경청하고 싶은가? 그 실체를 밝히고 싶은 특별한 목적이 아니고선 듣고 싶지 않다. 간증하는 모세는 신명 났어도 이드로는 마지못해 들어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드로는 모세의 간증을 듣고 기뻐했고, 더 나아가 여호와를 찬송했다(10,11).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드로는 번제물과 희생 제물들을 하나님께 가져와 제사했고, 아론과 이스라엘 장도들이 와서 이드로와 함께 하나님 앞에서 떡을 먹었다(20). 이드로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매우 따분하고 졸음이 올 수밖에 없는 간증이었을 텐데 어떻게 기뻐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심지어 번제와 희생 제물을 드리고 이스라엘 리더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며 어울릴 수 있었던 것일까?
1절에 그 해답이 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를 찾아온 목적이 단지 가족의 안부를 묻는 것이 아니었다. 이드로는 하나님께서 모세와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일 곧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모든 일을 소문으로 들었다(1). “들으니라”는 샤먀שָׁמַע의 미완료이다. “순종하려는[받아들이려는] 태도로 즐거이 계속 듣다”라는 뜻이다.
이드로는 소문만으로 하나님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다. 그 궁금증을 풀고 싶어서 자신이 살고 있는 미디안 근처 시내 산으로 모세가 왔다는 소식에 가족들을 데리고 한걸음에 달려왔던 것이다. 모세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 더 자세히 듣고 싶었다. 모세의 간증을 듣다 보니 여호와는 그가 생각했던 이상이었고, 소문으로 들었을 때 풀리지 않았던 의문들이 모세의 생생한 간증을 통해 완전히 해소되었다. “이제 내가 알았도다”(11) 퍼즐이 맞춰진 느낌. 기쁠 수밖에 없었고,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기쁨과 찬송을 제물로 표현하고 싶었고, 아론과 이스라엘 장로들은 이드로와 함께 식사하면서 기쁨과 감격을 함께 나누었다. 하나님께 드린 번제물과 희생 제물은 어디서 생겼을까? 미리 가져왔든지 아니면 모세에게 부탁하여 구했든지 어쨌튼 하나님을 향한 이드로의 믿음은 매우 컸다. 다른 신을 섬기는 이방 제사장이 최초로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는 장면이다.
예수님이 여리고 사람들 중 왜 하필 손가락질받는 삭개오를 찾았을까[전도]? 눅 19: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 예수님을 알고 싶은 마음이 여리고에서 1등이었다. 이것이 예수님이 여리고에 온 목적이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예수님의 마음은 삭개오에게 있었고, 돌무화과나무에 숨어서 예수님을 보고 있는 삭개오를 예수님은 불렀고, 삭개오의 집을 선택했다. 기쁨과 감격에 빠진 삭개오는 재산의 1/2을 가난한 자들에게 환원하고 속여 빼앗은 것은 4배로 갚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감격의 표현이다. 히 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
예수님은 그 당시 뛰어난 인재들을 배제하고 왜 사회 약자들을 제자로 선택[전도]하셨는가? 그들은 예수 소문을 들었고, 예수님에 대한 동경심이 남달랐고, 그의 제자가 되고 싶었다. 예수님이 그들을 부를 때, 가장 소중히 여기는 배, 그물, 아버지, 직장을 즉시 버리고 따를 정도였다(마 4:18-22; 9:9). 한 치의 고민도 없었다. 이것을 보셨기에 제자로 선택한 것이다.
왜 여리고 주민 중 유일하게 라합만 구원받을 수 있었는가? 홍해의 기적과 요단강 저쪽 두 왕에게 행한 일을 듣고 모두가 마음이 녹고 정신을 잃을 때, 오직 라합만이 하나님을 믿었고(수 2:11), 발각된 순간 죽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목숨 걸고 이스라엘 정탐꾼을 숨겨 주었다. 그 대가로 라합과 그의 가족은 여리고 멸망 중에 구원되었고, 믿음의 가문에 이름을 올렸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우리도 이드로, 삭개오, 제자들, 라합과 같은 마음을 갖길 축복한다. 들었던 말씀을 더 듣고 싶어 하고, 그 가운데 궁금증이 풀어져 기뻐하고, 찬양하고, 감격의 예물을 드리고, 믿음의 사람들과 더 교제하는 자들이 되길 축복한다.
목감 안에 이드로, 삭개오, 라합, 제자들과 같은 예수님을 기대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여러분이 전도할 대상자들이 여러분의 간증을 듣고 눈이 초롱초롱하고 귀가 번쩍 뜨인 자들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예비된 영혼을 만나게 해 주실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처럼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싸우거나, “교회 그만 다닐래. 옛날[애굽]로 돌아가고 싶어” 하며 원망하거나, “하나님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하며 시험하지 말고, 모세처럼 부르짖어 기도하고, 인내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고 하나님이 직접 행하시는 기적과 같은 간증[스토리]들이 많이 생기길 축복한다.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한 간증이 한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의 메시지[무기]가 될 것이다.